1장 천지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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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천지 창조의 목적.
I. 천지 창조의 목적.
A. 하나님 자신이심.
[창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유일한 해답]
성경 전체의 첫 시작은 이렇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성경은 이 한마디의 선언으로 우주와 인간의 궁극적인 근원에 대한 인류 역사의 철학적인 탐구가 던지는 질문에 답합니다.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고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의지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른 만물과 함께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성으로 인지되는 창조주의 존재]
비록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사려 깊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이 세상에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질서 있게 작용하는 우주와 자기를 창조하신 절대자를 인식하는 인간의 오성이 그것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창조하신 이가 없다면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었어도 인간은 가장 단순한 생명체 하나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만물이 저절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입증하지 못합니다. 만드신 이가 없이 어찌 만물이 존재하겠으며 돌보시는 이 없이 어찌 그것들이 서로 작용하며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지으신 이가 없이 어찌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창조의 동기: 하나님의 자기 계시]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성과 의지를 가지고 이 세계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지성과 의지에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그분의 성품과 관련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순결한 영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서 고정된 실재로 계시지 아니하시고 끊임없이 당신의 지성과 의지를 밖으로 드러내시는 경향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1).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적인 경향성이 천지를 창조하시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심으로써 그 피조물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에는 신성의 영광의 충만함이 깃들게 되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불연속성과 연속성]
여기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로 불연속성이란 비록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분이라지만, 어떤 의미에서든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피조 세계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피조물은 피조물일 뿐입니다. 양자는 서로에 대하여 전적인 타자wholly other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피조세계의 일부분이 되실 수 없고 피조세계 역시 결코 하나님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연속성이란, 비록 하나님은 피조 세계와 구별되지만 그 피조세계를 통하여 당신의 신성의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심으로 창조주이신 당신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의 목적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지 창조의 목적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피조물의 기쁨]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천지 창조의 목적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러한 의도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창조 교리에 대한 오해입니다. 인간의 이러한 반응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질서 안에서 본래의 목적을 따라 존재하기를 스스로 거절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창조를 통하여 밖으로 드러난 당신의 영광을 바라보시며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그 영광을 보면서 창조주를 기뻐하는 것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수많은 피조물들, 크게는 우주에 떠 있는 커다란 별들과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우주 공간으로부터, 작게는 육지와 바다의 생물들과 들판의 풀과 꽃, 그리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을 깃들게 하셨습니다.
[만물의 유기적 연합과 청지기 인간]
또한 하나님께서는 창조해 놓으신 세계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것들을 통치하고 보존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당신의 지성과 의지를 보여주심으로써, 존재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하나하나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인 관계를 갖도록 지정되어서, 모든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신성의 충만으로 가득 차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2).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는 피조 세계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물은 창조될 때뿐 아니라, 그 후에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원인이실뿐 아니라 목적이 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을 대신하여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대리자로 삼으셨습니다. 노동과 경배로 창조주 하나님을 공경함으로써 피조세계가 창조주의 영광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보도록 인간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완전했고, 충만하게 창조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B. 성경이 말하는 선(善).
B. 성경이 말하는 선(善).
[선(善)의 정의: 창조 목적과의 일치]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 안에서 선의 개념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가지셨던 궁극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조건이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판단하는 선과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선을 부분적으로 일치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인간도 자신의 존재의 목적으로 받아들여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피조세계의 일부가 되어 천지 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선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 행복 사이에 어떤 갈등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선에 대한 견해에도 어떠한 갈등이 없었습니다.
[죄의 본질: 자기 중심성으로의 이탈]
그러나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의 시작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존재하기를 거부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유혹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 안에 머물던 위치에서 떠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해서 영혼의 싫증을 경험하게 되었고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함으로써 하나님의 선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절하였습니다(창 3:5).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지정해 놓으신 가장 좋은 자리를 떠난 것이었으며, 창조의 목적에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범죄하였습니다. 이후로부터 죄는 인간들을 죽음이라는 질병에 걸리게 하였고, 그 죄는 모든 사람들 위에 왕 노릇하였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단지 불법을이를 저지른 것이나 부도한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이고 자신의 행복이 최종가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인간의 선에 대한 기준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선에 대한 기준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3).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선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은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입니다. 사회의 일반적 통념상, 양심상으로 선하다고 인정받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일부 집단의 이익만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논하는 가운데 “악은 최종적인 어 공통선으로부터 보다 좁은 의미의 선으로 이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4).
[객관적 선의 기준: 토브(Tov)]
인간은 자신에게 좋은 것을 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이 본성상 하나님의 선의 기준을 따라 살기에 전적으로 무능해진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통합적으로 창조되었고, 창조된 세계가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관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선의 기준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선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선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구약 성경에서 ‘선’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원래 히브리어로 ‘토브’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성경에서 가장 먼저 쓰인 곳이 바로 창세기 1장입니다. 창세기 1장에 천지 창조의 기록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그것들을 바라보시며 하신 말씀에 ‘토브’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기에서 ‘좋았더라’가 히브리어 ‘토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선하였더라’는 뜻입니다.
[건축자의 비유: 의도의 성취와 만족]
어떤 사람이 집을 지었다고 칩시다. 그는 집을 짓기로 결심한 다음 설계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직접 많은 인부들을 거느리고 여러 날 동안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집을 다 짓고 나서 보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 말했습니다. “아아, 참 좋다.” 이때 ‘좋다’라는 고백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건축된 집이 그것을 짓고자 할 때에 가졌던 계획과 목표에 충분히 부합한 것에 대한 만족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창조된 세계가 당신의 신성의 영광의 충만을 드러내게 하시려는 의도가 충분히 성취되자 그것을 보고 만족스러워하신 표현이 바로 “보시기에 선하였다”입니다 6).
그렇게 집을 지은 사람은 자기 보기에 좋은 그 상태를 유지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행복하게 거주하는 것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안방에는 안락한 침대를 놓고 거실에는 정성껏 고른 소파를 배치하고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배려한 넓은 유리창 너머로 잘 정돈된 정원을 뛰어다니는 토끼들이 보이게 하고, 주방은 고운 빛깔의 원목을 깔아 바닥을 삼고 최신식 싱크대와 주방에 필요한 가구를 배치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거기에 입주한 사람들이 생활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안방에 토끼집을 들여놓고 거실 바닥을 파헤쳐 구덩이를 파고 웅덩이를 만들어 뒤뜰에 있는 붕어들을 옮겨놓고 싱크대에 앉아서 대변을 본다면 한때 그 집을 보며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였던 건축자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보기에 좋았던” 만큼 그 마음은 자신의 건축물의 망가진 현 상태에 대한 슬픔과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창조의 영광의 빛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7).
C. 창조의 목적에서 이탈함
C. 창조의 목적에서 이탈함
[깨어진 선과 고통의 시작]
그렇습니다.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피조세계는 창조시에 드러내던 영광스러운 광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보시게 좋았던 피조세계의 선이 깨뜨려진 것입니다 8). 그리고 인간은 창조의 목적에서 이탈하는 가운데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행동하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는 상관없는 삶을 숙명처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피조물 사이에 존재했던 영적인 연합은 깨어지고 치열한 갈등과 생사를 건 투쟁 관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사람의 행복을 간절히 원하지만 정작 행복한 사람은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 고통은 과거와 현재에만 있고 미래에는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가 지난날과 비교할 수 없게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입니다. 결국 인간은 존재하고 있는 한, 이러한 악과 고통으로부터 결별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짓 유혹과 죽음의 족보]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본래의 자리에서 이탈하게 되자 그는 본래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도 살 수 없었고, 자신도 행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뱀을 통하여 인간을 유혹하였고 그 달콤한 유혹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며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라는 제안과 함께 다가왔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기사가 끝난 후 창세기 5장은 그 족보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930세를 살고 죽었더라”(창 5:4-5). 이후로 “죽었더라”라는 말과 함께 이어지는 긴 그 긴 족보는 불멸하도록 창조된 인간이 어떻게 죽음의 형벌 속에서 사라져갔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로써 뱀의 유혹은 거짓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이었음에 입증된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탄식]
아아,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였습니까?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허무한 욕망에 굴복함으로 본래의 모든 아름다운 지위와 선한 목적을 이탈하여 피조물 중에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가 가져온 가공할 파괴력에 우리는 놀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지정해 주신 지혜를 지키며 선한 목적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더라면 그가 누렸을 영광과 행복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을까요?
이제 우리는 인간의 창조 목적에서 이탈함으로써 겪는 겪게 된 모든 악과 고통의 문제와 그 원인이 되는 죽음과 죄의 문제를 보다 상세히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의 처지와 구원을 필요성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II. 결론
II. 결론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오라.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오라.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선한 상태는 그것을 가장 잘 가꾸고 보존하도록 부름받은 인간에 의하여 파괴되었습니다. 창조의 아름다운 상태가 깨어진 세상에서 인간은 죄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도 그를 다시 행복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과 세상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세상이 인간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자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창조의 원래 목적으로 돌이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행동은 구속의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행복을 위한 유일한 길]
하나님의 창조의 선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고는 인간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자신이 지정하신 ‘선’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인간은 무엇으로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주의 교향곡과 지휘자로서의 인간]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온 천지의 아름다움을 생각해보십시오. 낮에는 찬란한 태양과 아름다운 바다가 하나님을 노래하고 밤에는 반짝이는 별들과 빛나는 달빛이 그 영광을 찬송하였습니다. 바다에 반짝이는 햇살과 풀밭에 아름다운 꽃들과 바람과 새들의 노래와 흐르는 시냇물과 대지를 가로지르는 바람과...
이 모든 것들이 크고 작은 악기가 되어 하나님을 노래하는 교향곡이 되었다면, 인간은 그 앞에 선 지휘자였습니다. 인간의 지휘로 아름다운 곡조가 창조하신 이 땅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울려퍼졌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 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작성해 드린 문단 제목들은 각 대지(I. A, B, C 및 II. 결론)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논리적으로 뒷받침(Support)**하고, 청중이 설교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따라가도록(Guide)** 돕는 역할을 합니다.
각 대지 안에서 문단 제목들이 갖는 구체적인 성격과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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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천지 창조의 목적**
#### **A. 하나님 자신이심 (대지의 성격: 신학적 원리 선포)**
이 대지는 설교의 가장 기초가 되는 신학적 명제를 다룹니다. 문단 제목들은 **"왜 창조의 목적이 하나님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철학적, 신학적 근거를 단계적으로 쌓아 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 **[창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유일한 해답] & [이성으로 인지되는 창조주의 존재]:**
* **역할:** 도입부로서, 성경의 선언이 이성적으로도 타당함을 변증합니다.
* **성격:** **변증적(Apologetic)**.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이성에 호소하여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 **[창조의 동기: 하나님의 자기 계시] &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 **역할:** 하나님의 내적 성품과 피조물과의 관계를 설명하여, 창조가 우연이 아닌 '필연적 목적'을 가짐을 설명합니다.
* **성격:** **교리적/설명적(Doctrinal)**.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정립합니다.
* **[하나님의 영광과 피조물의 기쁨] & [만물의 유기적 연합]:**
* **역할:**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행복과 충돌하지 않음을 밝히고, 인간의 위치(청지기)를 규명합니다.
* **성격:** **통합적(Integrative)**. 하나님과 인간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킵니다.
#### **B. 성경이 말하는 선(善) (대지의 성격: 개념의 재정의 및 예화)**
이 대지는 세상의 가치관과 성경의 가치관을 대조합니다. 문단 제목들은 추상적인 '선'의 개념을 **구체적인 이미지(건축 비유)**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 **[선(善)의 정의] & [죄의 본질] & [객관적 선의 기준]:**
* **역할:** '선'과 '죄'를 도덕적 행위가 아닌 '창조 목적과의 부합 여부'로 재정의합니다.
* **성격:** **규범적(Normative)**. 청중의 기존 통념을 깨뜨리고 성경적 기준을 제시합니다.
* **[건축자의 비유] & [망가진 집과 주인의 슬픔]:**
* **역할:** 앞서 설명한 신학적 개념(토브)을 '집 짓는 사람'의 예화를 통해 감정적으로 이해시킵니다.
* **성격:** **예시적/감성적(Illustrative/Emotional)**. 하나님의 마음(분노와 슬픔)을 청중이 느끼게 하여 설득력을 높입니다.
#### **C. 창조의 목적에서 이탈함 (대지의 성격: 현상 진단 및 위기 고조)**
이 대지는 타락한 현실의 비참함을 다룹니다. 문단 제목들은 죄의 결과를 나열하며 **구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한 배경**을 조성합니다.
* **[깨어진 선과 고통의 시작]:**
* **역할:** 현재 인류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진단합니다.
* **성격:** **진단적(Diagnostic)**. 고통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 **[거짓 유혹과 죽음의 족보]:**
* **역할:** 죄의 결과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합니다.
* **성격:** **실증적(Empirical)**. 성경 족보를 근거로 죄의 치명성을 강조합니다.
*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탄식]:**
* **역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해결책(구원)에 대한 갈망을 일으킵니다.
* **성격:** **탄원적(Lamenting)**. 청중의 마음에 영적 갈급함을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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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결론: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오라**
#### **(결론의 성격: 대안 제시 및 적용)**
결론부의 문단 제목들은 앞서 제기된 문제(창조 목적 이탈)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행동을 촉구**합니다.
*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 & [행복을 위한 유일한 길]:**
* **역할:**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목적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중보자임을 선포합니다.
* **성격:** **케리그마적(Kerygmatic/선포적)**. 복음의 핵심을 제시합니다.
* **[우주의 교향곡과 지휘자로서의 인간]:**
* **역할:** 회복된 상태의 아름다움을 시각적/청각적 이미지(교향곡)로 그려내며 설교를 마칩니다.
* **성격:** **비전 제시(Visionary)**. 청중에게 회복된 미래를 꿈꾸게 하고 헌신을 다짐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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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 **I. A (신학적 기초):** 이성적 변증 → 교리 설명 (기초 다지기)
* **I. B (개념적 심화):** 정의 대조 → 예화 활용 (이해와 공감)
* **I. C (현실적 적용):** 고통의 원인 분석 → 위기감 조성 (문제 제기)
* **II. (최종적 해답):** 그리스도 제시 → 비전 선포 (해결과 소망)
이 설교문은 창조론을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목적과 행복, 그리고 구원의 당위성**으로 연결하는 매우 조직신학적이고 구속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주경신학적(Exegesis & Biblical Theology)으로 더 깊이 있고 단단하게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포인트 5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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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라(Bara)’와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의 의미
설교의 서론(I.A)에서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임을 선포할 때, 히브리어 동사 **‘바라(Bara)’**의 독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 **주어의 독점성:** 구약성경에서 ‘바라’(창조하다)의 주어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인간은 기존의 재료로 ‘만들(Asah)’거나 ‘지을(Yatsar)’ 수는 있어도, 없던 것을 있게 하는 ‘바라’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설교에서 "과학이 발달해도 생명체 하나 못 만든다"는 논지를 강력하게 뒷받침합니다.
* **절대적 주권:** 고대 근동의 창조 신화(에누마 엘리쉬 등)는 신들이 이미 존재하는 혼돈의 물질(물, 괴물의 시체 등)을 가지고 세상을 만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세상의 목적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증명하는 주경학적 근거가 됩니다.
### 2. ‘토브(Tov)’의 기능적, 목적론적 의미
설교의 중반부(I.B)에서 ‘선(Good)’을 정의할 때, 히브리어 **‘토브(Tov)’**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 **도덕을 넘어선 기능적 완전함:** 현대어의 ‘좋다/선하다’는 주로 도덕적이거나 감정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토브’는 **"설계자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기능한다(Functional completeness)"**는 뜻이 강합니다.
* **예화의 근거:** 설교에 나온 ‘건축가의 비유’는 ‘토브’의 원뜻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경학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적합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악(Evil)은 단순히 나쁜 행동이 아니라, 이 기능(목적)이 고장 난 상태를 뜻합니다.
### 3. 하나님의 형상(Imago Dei)과 성전(Temple)으로서의 우주
설교에서 인간을 **‘대리자’**이자 **‘지휘자’**로 묘사한 부분(I.A, II)은 창세기 1-2장의 **성전 신학(Temple Theology)**과 연결됩니다.
* **우주적 성전:** 주경신학자들(G.K. Beale 등)은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우주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해석합니다. 성막/성전의 구조가 창조 기사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 **제사장적 사명:** 아담에게 주신 "경작하며 지키게"(창 2:15)라는 명령에 쓰인 히브리어 ‘아바드(Abad)’와 ‘샤마르(Shamar)’는 나중에 레위 제사장들이 성전을 섬길 때 쓰는 단어와 동일합니다.
* **적용:** 설교자가 "노동과 경배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표현한 것은, 인간이 단순히 농부가 아니라 **우주라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는 신학적 배경을 가집니다.
### 4.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자율성(Autonomy)’의 문제
설교에서 죄를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는 것"**으로 정의한 부분(I.B)은 창세기 3장의 핵심 주해와 일치합니다.
* **선악 지식의 의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은 지능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결정하는 사법적 권위(Judicial Authority)**를 하나님으로부터 탈취하겠다는 선언입니다.
* **판단 주체의 이동:**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며 구했던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왕상 3:9)는 하나님께 의존하는 지혜였습니다. 반면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기가 판단의 주체(왕)**가 되겠다는 반역입니다. 이 배경을 알면 "자신의 행복이 최종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죄"라는 설교의 대지를 더 강력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 5. ‘종말론적 안식’과 그리스도의 회복 (Already & Not Yet)
결론부(II)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을 말할 때, **창조와 종말의 연속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 **제7일의 안식:** 창조의 목표는 6일간의 노동이 아니라 제7일의 ‘안식’이었습니다. 안식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피조물이 완전한 교제(Communion)를 누리는 상태입니다.
*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 첫 아담은 이 안식을 깨뜨렸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사역을 통해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선언하시며 창조의 목적을 완성하셨습니다.
* **회복의 성격:** 구원은 단순히 죄를 씻는 것을 넘어, 태초에 의도되었던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우주적 교향곡(Shalom)’의 복귀**입니다. 요한계시록 21-22장이 창세기 1-2장의 이미지(생명수, 나무 등)를 회복하는 것은 이 설교의 결론이 성경 전체의 결론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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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설교자는 **'바라(창조의 주권)', '토브(목적 부합성)', '임마고 데이(성전의 제사장)', '선악과(도덕적 자율성 시도)', '새 창조(그리스도를 통한 안식의 회복)'**라는 5가지 주경신학적 기둥을 마음에 두고 설교를 전개하신다면, 텍스트의 깊이와 설득력이 배가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경신학(Exegetical Theology)**이 성경 본문의 단어와 문법, 역사적 배경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것이라면,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은 성경 66권을 관통하는 **'큰 그림(Big Picture)'**과 **'역사의 흐름(Redemptive History)'**을 망원경처럼 조망하는 것입니다.
이 설교문은 창조에서 시작하여 타락을 거쳐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전형적인 **'창조-타락-구속(Creation-Fall-Redemption)'**의 드라마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5가지 핵심 주제를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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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창조와 종말의 상관관계 (Protology & Eschatology)
성경신학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종말은 창조의 회복이자 완성이다"**라는 것입니다.
* **처음과 끝의 일치:** 설교의 결론부에서 언급된 '회복된 세상'은 요한계시록 21-22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과 연결됩니다. 창세기 1-2장의 에덴(생명나무, 강, 보석 등)은 요한계시록에서 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재등장합니다.
* **설교 포인트:** 설교자는 구원을 단순히 '죽어서 천국 가는 것'으로 축소하지 말고, 태초에 하나님이 계획하셨으나 아담이 실패했던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돌아갈 곳은 '과거의 에덴'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미래의 새 예루살렘'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2. 아담과 그리스도의 모형론 (Adam-Christ Typology)
이 설교의 허리 부분은 아담의 실패를 다루고, 결론은 그리스도의 성공을 다룹니다. 이는 바울 신학(롬 5:12-21, 고전 15:45-49)의 핵심인 **'두 아담 신학'**에 기초합니다.
* **대표성의 원리:** 첫 번째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서 실패하여 죄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설교의 I.C).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의 머리가 되셔서 순종을 통해 생명과 의를 가져오셨습니다.
* **설교 포인트:** 설교문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 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라고 할 때, 예수님을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신 '참된 인간(True Human)'**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만 참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강조해야 합니다.
### 3. 하나님의 영광(Kavod)의 역사적 점진성
설교의 대주제인 '하나님의 영광'은 성경 전체를 꿰뚫는 핵심 주제입니다.
* **영광의 이동 경로:** 창조 시 우주에 가득했던 하나님의 영광은 타락으로 인해 가려졌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막과 성전에 제한적으로 임재(쉐키나)했으나, 신약에 와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영광의 본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성령을 통해 성도(교회) 안에 그 영광이 거하십니다.
* **설교 포인트:** 설교자가 I.A에서 말한 "피조물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심"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성도)의 착한 행실을 통해(마 5:16) 세상에 비춰져야 함**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 4. 만물 회복(Cosmic Redemption) 사상
설교의 결론부에서 자연 만물(바다, 별, 꽃)이 교향곡처럼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내용은 로마서 8장의 **'피조물의 탄식과 고대함'**과 연결됩니다.
* **죄의 우주적 영향:** 인간의 죄는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고 땅을 저주받게 했습니다(창 3:17). 따라서 구속 역시 인간의 영혼 구원에만 머물지 않고 만물의 회복으로 확장됩니다.
* **설교 포인트:** "인간과 세상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설교문의 문장은 매우 성경신학적입니다. 인간이 제사장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할 때, 피조물들도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에서 해방되어(롬 8:20-2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본래의 기능을 되찾게 됨을 강조하십시오. 이는 환경 문제나 자연을 대하는 태도까지 적용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 5. 안식(Sabbath)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
창조 기사의 정점은 제7일의 안식입니다. 설교문에서 인간을 '대리 통치자'로 묘사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입니다.
* **왕적 통치의 위임:** 하나님은 왕이시고, 인간은 그분의 형상(Image)으로서 대리 통치자(Vice-regent)입니다. 타락은 이 통치권을 사탄(거짓말)과 욕망에게 넘겨준 반역 사건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를 되찾으시고, 우리를 다시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 임명하신 사건입니다.
* **설교 포인트:** 결론부의 "지휘자로서의 인간"이라는 비유는 성경신학적으로 **'왕적 통치권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선한 삶)은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깨어진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통치 행위'**임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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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이 설교를 성경신학적으로 준비한다는 것은, 설교 속의 이야기(창조-타락-회복)가 단편적인 교훈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흐르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드라마의 압축판**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특히 **'첫 아담의 실패를 역전시키신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의 구원을 넘어선 우주적 회복'**이라는 두 축을 견지한다면, 설교는 훨씬 더 웅장하고 복음적인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설교문은 **창조론, 신론, 죄론, 인간론**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교리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역사신학적(Historical Theology) 관점에서 준비한다는 것은, 기독교 2천 년 역사 속에서 위대한 신학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이 주제를 어떻게 변증하고 정립해 왔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 설교의 뼈대를 튼튼하게 해 줄 5가지 핵심적인 역사신학적 배경을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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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와 초대 교회의 투쟁
설교 서론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물을 만드셨다"는 선언은 역사적으로 매우 치열한 논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 **영지주의(Gnosticism)와 플라톤주의의 반박:** 초기 헬라 철학이나 영지주의는 물질을 악하거나 하등한 것으로 보았고, 신이 '이미 존재하는 물질(Pre-existing matter)'을 빚어서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레나이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 이 초대 교부들은 이에 맞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확립했습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빚은 장인이 아니라 물질 자체를 만드신 주권자임을 선포함으로써, **물질세계(육체, 자연)가 본래 선하다(Good)**는 것을 방어해 냈습니다.
* **적용:** 설교자는 이 교리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이 세상과 우리 몸이 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것"**임을 변증하며, 염세주의나 물질 혐오를 배격하는 역사적 중요성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 2. 아우구스티누스의 ‘악의 본질(Privatio Boni)’과 ‘순서의 질서’
설교문에서 직접 인용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사상은 이 설교의 중반부(죄와 악의 문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입니다.
* **악은 실체가 아닌 결핍(Privatio Boni):**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선과 악의 두 신이 대립한다는 이원론)에 빠졌다가 회심한 후, "악은 하나님이 만든 물질이 아니라, 선한 것의 **결핍(Deprivation)** 혹은 부패"라고 정의했습니다. (예: 어둠은 빛의 부재, 질병은 건강의 부재).
* **사랑의 질서(Ordo Amoris):** 또한 죄를 **"더 높은 선(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더 낮은 선(피조물/자아)을 더 사랑하는 무질서"**라고 정의했습니다.
* **적용:** 설교문에 나오는 "악은 최종적인 공통선으로부터 좁은 의미의 선으로 이행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죄는 나쁜 짓을 하는 것 이전에, **사랑의 순서가 뒤바뀐 상태**임을 설명하면 설득력이 높아집니다.
### 3.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창조 목적’
설교문 I.A.5에서 다루는 "하나님의 영광 추구가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탁월한 답을 제시한 신학자는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입니다.
* **충만함의 흘러넘침:** 에드워즈는 그의 명저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에서,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해서(결핍) 영광을 받으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충만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피조물에게 전달하고 나누어 주시기 위해(발산)** 창조하셨다고 설명합니다.
* **영광과 행복의 일치:**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하는 것과 피조물이 행복해지는 것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마치 샘물이 흘러넘쳐야(샘의 영광) 시냇물이 마르지 않는(시내의 행복) 것과 같습니다.
* **적용:** 설교자가 "하나님은 밖으로 드러내시는 경향성을 가지셨다"라고 한 부분은 에드워즈의 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가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의 공유'**임을 역사신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 4. 칼빈의 ‘하나님의 영광의 극장(Theatrum Gloriae Dei)’
설교 결론부에서 우주 만물을 '교향곡'이나 '아름다움'으로 묘사한 것은 장 칼빈(John Calvin)의 우주관과 연결됩니다.
* **우주는 극장:**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이 전시된 극장(Theater)"**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하나님의 솜씨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 **일반 계시의 한계와 안경:** 그러나 칼빈은 인간이 타락하여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이 극장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라는 안경(Spectacles of Scripture)'**을 써야만 비로소 창조주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적용:** 설교자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할 때, 타락한 인간은 맨눈으로는 이 아름다운 극장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다시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됨을 칼빈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5.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의 ‘기독교적 쾌락주의’
설교의 제목과 결론이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17세기 청교도 신학의 정수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Enjoy Him)**입니다."
* **앤드(And)의 신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과 '나의 즐거움'을 별개로 생각하거나 대립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개혁신학은 이 둘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즐거워할 때 하나님이 가장 영광 받으십니다(존 파이퍼의 해석).**
* **적용:** 설교의 핵심 메시지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곧 인간의 최대 행복이다"라는 명제는 단순히 설교자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가 고백해 온 가장 중요한 신앙 고백임을 상기시키며 청중에게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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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이 설교는 **초대 교부(무로부터의 창조) → 아우구스티누스(악의 기원과 질서) → 칼빈(영광의 극장) → 웨스트민스터(인간의 목적) → 조나단 에드워즈(창조의 동기)**로 이어지는 정통 신학의 흐름 위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염두에 두신다면, "이 말씀은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피 흘려 지키고 고백해 온 진리입니다"라는 권위와 무게감을 설교에 더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설교문은 **신론(God), 인죄론(Man and Sin), 기독론(Christ), 구원론(Salvation)**의 핵심 교리들이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은 성경의 진리를 주제별로 체계화하여 논리적 정합성을 세우는 학문입니다. 이 관점에서 설교자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5가지 핵심 기둥(Dogmatic Pillars)을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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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나님의 자존성(Aseity)과 자유성(Freedom)
설교 초반부(I.A)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창조하셨다"는 대지를 다룰 때, 가장 기초가 되는 신론적 속성입니다.
* **자존성(Aseity):**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a se)'이십니다. 하나님은 존재하기 위해 외부의 원인이나 도움이 필요 없으시며, 결핍이 전혀 없으신 완전한 충만(Fullness) 그 자체입니다.
* **창조의 자유:** 따라서 창조는 하나님의 '필요(Need)'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자유(Freedom)'와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외로워서 창조했다면 피조물은 하나님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어 신성이 훼손됩니다.
* **설교 포인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창조가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직신학적으로 **"완전한 충만이 흘러넘치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가장 고귀한 사랑의 발현"**임을 명확히 논증해야 합니다.
### 2.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적 차이' (The Infinite Qualitative Distinction)
설교문 I.A.4에서 언급된 **'불연속성(Discontinuity)'**은 키르케고르나 바르트 같은 신학자들이 강조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의미합니다.
* **초월성(Transcendence)과 내재성(Immanence):** 하나님은 피조물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분(전적 타자, Wholly Other)이시지만(초월성), 동시에 피조 세계를 붙드시고 통치하시며 그 안에 거하십니다(내재성).
* **범신론(Pantheism) 배격:** 이 교리는 하나님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범신론적 사고를 막아줍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은 피조세계의 일부가 되실 수 없다"고 한 부분은 조직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진술입니다.
* **설교 포인트:** 이 구분이 명확해야 **인간의 위치(피조물)**가 바로 섭니다. 인간의 불행은 이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자신이 신의 자리에 오르려 한(초월성을 침범한) 데서 왔음을 강조하십시오.
### 3. 죄의 본질로서의 '자율성(Autonomy)'과 전적 타락
설교문 I.B와 C에서 죄를 정의할 때 사용된 개념들은 인죄론(Hamartiology)의 핵심입니다.
* **자율성(Autonomy = Auto(Self) + Nomos(Law)):** 조직신학에서 죄의 본질은 도덕적 비행 이전에, **'스스로 법이 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 의존성을 버리고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 곧 죄입니다. 설교문의 "자신이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정확히 이 개념입니다.
* **지성의 타락(Noetic Effects of Sin):** 죄는 의지뿐만 아니라 지성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설교문에서 "자신의 기준을 선이라고 착각한다"는 내용은 타락으로 인해 선악을 판단하는 이성의 기능이 고장 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이라고 합니다.
* **설교 포인트:** 죄를 단순히 '나쁜 짓'으로 축소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이라는 존재론적 반역으로 규정해야 설교의 무게감이 실립니다.
### 4. 언약적 대표 원리 (Federal Headship)
설교문 I.C에서 "아담의 범죄로 죄가 모든 사람 위에 왕 노릇했다"는 내용과, 결론부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는 논리는 **언약 신학(Covenant Theology)**의 대표 원리에 기초합니다.
*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하나님은 아담과 '행위 언약(순종하면 생명, 불순종하면 사망)'을 맺으셨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머리(Federal Head)로서 실패했습니다.
* **둘째 아담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의 대표로서 오셔서 아담이 실패한 순종을 완성하시고, 그 의(Righteousness)를 우리에게 전가(Imputation)해 주십니다.
* **설교 포인트:** 나의 행복과 불행이 왜 아담이나 그리스도와 연결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대표자 안에 속한 연대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소속(아담 → 그리스도)이 바뀌는 것입니다.
### 5. 인간의 목적론(Teleology): 영광과 행복의 관계
설교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결론(II)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곧 인간의 행복"**이라는 명제입니다.
* **목적론적 존재:** 조직신학에서 인간은 목적(Telos)을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 **기독교적 쾌락주의(Christian Hedonism):** 존 파이퍼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복음주의 조직신학의 흐름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가장 영광 받으신다"고 가르칩니다. 영광(하나님의 몫)과 행복(인간의 몫)은 제로섬 게임(Zero-sum)이 아니라, **상호 함의적 관계**입니다.
* **설교 포인트:** 이 교리는 율법주의(기쁨 없는 의무)와 세속주의(하나님 없는 쾌락)를 동시에 타파합니다. "참된 행복은 창조의 목적(하나님의 영광)과 일치될 때만 발생한다"는 조직신학적 명제를 결론의 강력한 근거로 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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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설교자는 이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단순히 "착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자존자이시며(신론),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지음받은 의존적 존재인데(인간론), 우리가 독립을 선언하여 망가졌으나(인죄론), 그리스도께서 대표로서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그 영광스러운 목적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셨다(구원론)."**
이 논리적 뼈대(System)를 마음에 새기고 설교하신다면, 감정적 호소를 넘어 지성까지 설득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은 신학적 이론을 **‘교회의 현장과 성도의 구체적인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현할 것인가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이 설교문이 강단에서 선포되고 성도들의 삶에서 열매 맺기 위해 고려해야 할 5가지 핵심 포인트를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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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교학적 관점: '접촉점(Point of Contact)'과 변증적 소통
이 설교는 주제가 매우 거대하고 철학적(존재, 근원, 목적)입니다. 자칫하면 성도들에게 "나와 상관없는 어려운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 **실존적 질문과의 연결:** 서론에서 우주의 기원을 다룰 때, 단순히 과학 vs 창조론의 대결 구도로 가지 말고, 현대인의 **허무함(Nihilism)과 정체성의 혼란**을 건드려야 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가?"라는 청중의 내면적 질문에 이 설교가 유일한 해답임을 제시하는 **'변증적 설교(Apologetic Preaching)'** 전략이 필요합니다.
* **언어의 번역:** '불연속성', '전적인 타자', '경향성' 같은 신학적 용어들을 설교 현장에서는 **일상의 언어**로 풀어줘야 합니다. 설교문에 있는 '건축가와 집' 예화처럼, 추상적 개념을 감각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 2. 목회상담적 관점: '행복'의 재정의와 욕망의 치유
설교의 결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로 맺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상담적으로 매우 중요한 접근입니다.
* **욕망의 방향 수정(Reordering Desires):** 현대인들은 불행의 원인을 '결핍(돈, 건강, 관계의 부족)'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이 설교는 불행의 원인을 **'방향 착오(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향함)'**라고 진단합니다. 목회적으로 성도들이 자신의 욕망을 정죄받는 느낌이 아니라, **"아, 내가 엉뚱한 곳에서 물을 찾고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도록 돕는 치유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 **고통의 해석:** 설교 중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부분에서, 현재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들의 고통이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에덴의 회복)이 있음을 알려주는 **'거룩한 불만족'**이 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 3. 예배학적 관점: '영광의 체험'으로서의 예배
설교문은 우주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교향곡'으로 묘사합니다. 이 설교가 선포되는 예배 자체가 그 교향곡의 절정이 되어야 합니다.
* **송영(Doxology)적 분위기:** 이 설교는 논리적 설득으로 끝나선 안 되고, **감격적인 찬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설교 후 찬송이나 기도 순서에 창조의 위대함과 구속의 은혜를 높이는 웅장한 찬양(예: "참 아름다워라",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을 배치하여, 성도들이 지적으로 동의한 내용을 정서적으로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 **지휘자로서의 정체성 확인:** 파송(Benediction) 시에 성도들을 세상으로 보낼 때, 단순히 "착하게 사십시오"가 아니라 **"무너진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고 하나님을 노래하게 하는 지휘자로 파송합니다"**라는 예배학적 선언이 있으면 좋습니다.
### 4. 기독교 윤리적 관점: 소명(Vocation)과 청지기직
설교에서 인간을 '대리 통치자'이자 '만물을 보존하는 자'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성도들의 일상생활 윤리에 직접적인 지침을 줍니다.
* **직업 소명설:** 성도들이 하는 세상의 일(사업, 직장, 가사, 공부)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창조 세계를 가꾸고 보존하는 거룩한 노동'**임을 일깨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라는 구체적인 적용이 필요합니다.
* **생태 신학적 적용:**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건축자의 집을 망가뜨리는 행위'임을 언급했으므로, 환경 보호나 생명 존중과 같은 **현대 사회의 윤리적 이슈**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책임감을 가져야 함을 부드럽게 터치할 수 있습니다.
### 5. 교육학적 관점: 기독교 세계관(Christian Worldview)의 형성
이 설교는 단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세계관'을 뜯어고치는 교육적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 **메타 내러티브(Meta-narrative)의 변화:** 세상은 인간을 '우연의 산물'이나 '진화된 동물'로 가르칩니다. 이 설교를 통해 성도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이자 **'우주적 사명을 띤 존재'**로 인식하도록 재사회화(Re-socialization)해야 합니다.
* **가정 교육과의 연계:** 부모들이 자녀에게 "공부해서 성공해라"라고 가르치는 대신, **"너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그것이 너의 가장 큰 행복이란다"**라고 가르칠 수 있도록, 설교 후 가정 예배나 교육 자료와 연계하면 실천적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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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실천신학적 관점에서 설교자는 강단에서 이 원고를 읽는 낭독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 청중의 **삶의 질문(불행, 허무)**에 응답하고(**설교학/상담**),
2. 그들을 **예배의 감격** 속으로 이끌어(**예배학**),
3. 세상 속에서 **거룩한 직업인과 환경지킴이**로 살게 하며(**윤리**),
4.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 재무장**시키는(**교육**)
**'목회적 전략가'**가 되어 이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지만, 그 진리를 담는 그릇은 '세상의 언어와 지식'입니다. 도서관 십진 분류법(DDC, Dewey Decimal Classification)의 체계에 따라, 이 설교를 더 풍성하고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교양학문적 소양 5가지를 제안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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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0 철학] 목적론(Teleology)과 행복론(Eudaimonia)**
설교의 핵심 주제인 '존재의 목적'과 '행복'을 다루기 위해 필수적인 배경 지식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존재에는 고유의 목적(Telos)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도토리의 목적은 참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설교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을 설명할 때, **"망치로 못을 박지 않고 스마트폰 액정을 깬다면, 망치는 악한 것인가?"**와 같은 기능적 선(Functional Good)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현대인이 생각하는 행복은 쾌락(Hedonism)에 가깝지만, 고대 철학의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은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할 때 오는 충만함'**입니다. 설교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 때 오는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이 에우다이모니아에 가깝다는 것을 인문학적으로 설명하면 지성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 **2. [500 순수과학] 우주 미세 조정(Fine-Tuning)과 엔트로피 법칙**
설교 중 I.A와 C에서 창조의 정교함과 타락 이후의 무질서를 설명할 때 과학적 지식이 큰 힘이 됩니다.
* **[520 천문학]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 우주가 인간이 생존할 수 있도록 기가 막히게 세밀하게 조정되어 있다는 이론입니다. 중력 상수나 지구와 태양의 거리 등이 조금만 달랐어도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연히 생겨났다"는 진화론적 우연성을 반박하고 "설계된 우주"를 변증할 수 있습니다.
* **[530 물리학]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 자연 상태의 모든 것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낡아지고 부패합니다. 이는 죄로 인해 세상이 **'썩어짐의 종노릇(부패)'**을 하게 되었다는 성경의 타락 교리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과학적 현상입니다. 타락을 설명할 때 이 법칙을 예로 들면 매우 효과적입니다.
### **3. [600 기술과학/응용과학] 건축학(Architecture)과 사용자 경험(UX)**
설교의 중반부(I.B)에 나오는 '건축가의 비유'를 더 생생하게 살리기 위한 지식입니다.
* **[690 건축]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루이스 설리반의 유명한 명언입니다. 건축물은 그 용도에 맞게 지어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형태(하나님의 형상)'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능'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 **사용자 매뉴얼과 오작동:** 최첨단 기계도 매뉴얼(창조의 법)대로 쓰지 않으면 고장이 납니다. 죄를 **"인간이라는 정교한 기계를 제작자의 매뉴얼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조작하여 발생한 시스템 오류"**로 비유한다면, 현대인들이 죄의 개념을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4. [700 예술] 음악 이론(Music Theory)과 부조화(Dissonance)**
설교의 결론부(II)에서 우주를 '교향곡', 인간을 '지휘자'로 묘사한 부분을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 **[780 음악] 화성학(Harmony)과 불협화음:** 교향곡에서 수십 개의 악기가 있어도 조화(Harmony)가 깨지면 소음(Noise)이 됩니다. 죄는 악기 자체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조율(Tuning)이 풀린 상태'** 혹은 **'지휘자의 비트를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연주하는 상태'**입니다.
* **해결(Resolution):** 음악에서 불협화음은 반드시 협화음으로 '해결'되어야 곡이 아름답게 끝납니다. 인생의 불협화음(고통, 죄)이 그리스도라는 으뜸화음(Tonic)을 만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으로 해결됨을 예술적으로 묘사하십시오.
### **5. [800 문학] 실락원(Paradise Lost)과 비극(Tragedy)**
설교의 I.C에서 타락한 인간의 비참함을 묘사할 때, 문학적 소양은 설교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 **[820 영문학] 존 밀턴의 『실락원』:**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날 때의 상실감, 사탄의 교묘한 유혹 과정을 묘사한 이 고전은 설교자에게 풍부한 어휘와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특히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망"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한 묘사는 설교의 예화로 탁월합니다.
* **비극의 주인공(Hamartia):** 그리스 비극에서 주인공이 파멸하는 원인을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하는데, 이는 성경의 '죄'와 어원이 같습니다(과녁을 빗나감). 인간은 스스로의 결함(오만, Hubris)으로 인해 파멸을 자초한 비극의 주인공임을 문학적으로 터치하면 청중의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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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설교자는 이 설교를 준비하며 **서재의 다양한 책들**을 펼쳐야 합니다.
* **철학** 책에서 '목적과 행복'의 정의를 빌려오고,
* **과학** 책에서 '우주의 정교함과 엔트로피'를 가져오고,
* **건축** 책에서 '설계자의 의도'를 배우고,
* **음악** 책에서 '불협화음과 조화'의 원리를 깨닫고,
* **문학** 책에서 '상실의 슬픔'을 공감하십시오.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Liberal Arts)들이 성경 말씀(Text)을 받치는 탄탄한 강대상(Context)이 되어줄 것입니다.
제시된 설교문은 창조-타락-구속의 거대 서사(Meta-narrative)를 다루고 있으며, 이는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이 말하는 **‘성경의 기능과 목적’**과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이 설교를 들은 청중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지적, 정서적, 의지적 변화**를 해당 성경 구절의 논리적 순서에 따라 4단계로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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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15절)
>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 설교는 인간 불행의 근본 원인이 '환경'이 아니라 '창조 목적(하나님)으로부터의 이탈'임을 진단합니다.
* **변화의 핵심:** 청중은 자신의 고통과 허무함이 어디서 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 **기대되는 반응:** "아, 내가 불행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이구나."라는 자각이 일어납니다. 이는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없음을 인정하고, **유일한 회복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는 ‘구원적 지혜’**로 이어질 것입니다.
### 2. 세계관의 “교훈”과 죄에 대한 “책망”을 받게 됩니다. (16절 상반절)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설교는 '선(토브)'과 '악(자율성)'을 성경적 기준으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 **교훈(Teaching)의 변화:** 청중의 세계관이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뀝니다. "우주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정교한 극장"이라는 창조 신앙이 지성에 심어집니다.
* **책망(Reproof)의 변화:** 청중은 자신이 주인 되어 살아온 삶(자율성)이 멋진 것이 아니라, 건축가의 집을 망가뜨리는 **'반역'이자 '죄'였음**을 뼈아프게 깨닫습니다. "내 행복이 최종 가치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님 앞에 죄였구나"라는 거룩한 찔림과 회개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 3. 삶의 방향을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받게 됩니다. (16절 하반절)
>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설교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바르게 함) 본래의 자리(지휘자)로 돌아오라(의로 교육함)고 촉구합니다.
* **바르게 함(Correction)의 변화:** 청중은 쾌락을 좇던 삶의 방향을 수정하여, **창조의 목적(하나님의 영광)과 일치되는 삶**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망가진 집을 고치듯, 무너진 삶의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의지적 결단이 일어납니다.
* **의로 교육하기(Training in Righteousness)의 변화:** 설교 결론부의 '지휘자' 비유처럼, 청중은 일상의 삶(가정, 직장,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연주하는 **‘거룩한 습관’**을 훈련하게 됩니다.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 소극적 삶을 넘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연습하게 됩니다.
### 4.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춥니다. (17절)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 설교의 최종 목표는 청중이 행복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 **존재의 변화(온전하게 하며):** 청중은 결핍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존재에서, 창조주의 사랑과 계획 안에 거하는 **‘자존감 높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정체성이 회복됩니다.
* **실천의 변화(선한 일을 행할 능력):** 설교에서 언급된 '선(토브)'은 창조 목적대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청중은 이제 세상 속에서 환경을 보존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직업 소명을 다하는 구체적인 **‘선한 일(Good Works)’**을 통해 세상의 고통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능력 있는 성도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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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이 설교를 통해 청중은
1. **지적으로는** 창조주 중심의 세계관을 확립하고(교훈),
2. **정서적으로는** 죄에 대한 애통함과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책망과 구원의 지혜),
3. **의지적으로는** 삶의 방향을 수정하여(바르게 함),
4. **실천적으로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지휘자로 살아가는(선한 능력을 갖춘)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설교문 **"천지 창조의 목적"**을 바탕으로 제작한 PPT 슬라이드 구성안입니다. 설교의 논리적 흐름(서론-본론-결론)을 시각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도록 12장의 슬라이드로 요약 및 디자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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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PT 구성안] 천지 창조의 목적과 인간의 행복**
### **# 슬라이드 1: 표지**
* **메인 타이틀:** 천지 창조의 목적
* **서브 타이틀:**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인간의 참된 행복
* **본문 말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 **배경 이미지:** 광활한 우주나 아름다운 자연 풍경 (창조의 웅장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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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2: 도입 (질문)**
* **제목:** 인류의 영원한 질문
* **내용:**
*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 **성경의 대답:**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존재한다. (창 1:1)
* **키워드:** 근원, 존재,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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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3: 대지 1. 천지 창조의 목적 - 하나님 자신**
* **제목:**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 **내용:**
* **이성적 증거:** 질서 있는 우주와 인간의 오성(지성)은 설계자를 가리킴.
* **창조의 동기:** 하나님의 지성과 의지를 밖으로 드러내려는 경향성.
* **창조의 결과:** 만물에 깃든 **'신성의 영광'**.
* **도식:** 하나님(원인) → 창조(과정) → 영광의 현현(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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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4: 신학적 개념 (연속성과 불연속성)**
* **제목:**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 **내용:**
1. **불연속성 (Discontinuity):** 하나님과 피조물은 전적으로 다르다. (전적인 타자, Wholly Other)
2. **연속성 (Continuity):**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 **핵심 메시지:**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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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5: 적용 (인간의 위치)**
* **제목:** 유기적 연합과 인간의 사명
* **내용:**
* **만물의 연합:** 모든 피조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을 의존함.
* **인간의 지위:** 하나님의 **대리자 (Vice-regent)**.
* **인간의 역할:** 노동과 경배로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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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6: 대지 2. 성경이 말하는 선(善)**
* **제목:** 선(Good)이란 무엇인가?
* **내용:**
* **세상의 선:** 인간의 이기적 욕망 충족.
* **성경의 선:** **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상태.**
* 타락 전 인간: 하나님의 영광 = 나의 행복 (갈등 없음).
* **키워드:** 목적 부합성,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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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7: 핵심 단어 연구**
* **제목:** 보시기에 좋았더라 (토브, Tov)
* **내용:**
* **히브리어 '토브(Tov)':** 선하다, 좋다.
* **의미:** 설계자의 의도와 목적이 **완벽하게 성취된 상태**.
* **비유:** 건축가가 설계대로 완공된 집을 보며 느끼는 만족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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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8: 죄의 본질**
* **제목:** 망가진 집, 슬퍼하는 건축가
* **내용:**
* **건축가의 비유:** 아름답게 지은 집을 입주자가 파괴함.
* **죄(Sin):**
* 창조 목적에서 이탈함.
*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음.
* 최종적 공통선에서 좁은 의미의 선(이기심)으로 추락.
* **이미지:** 망가진 집 혹은 시들어가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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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9: 대지 3. 창조 목적에서의 이탈**
* **제목:** 선의 상실과 고통의 시작
* **내용:**
* **결과:** 영광스러운 광위 상실, 죽음과 고통의 유입.
* **뱀의 거짓말:**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거짓)
* **역사적 현실:** "살고... 죽었더라" (창세기 5장의 족보 = 죽음의 역사).
* **핵심:** 목적을 잃은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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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10: 결론 1**
* **제목:**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
* **내용:**
* 인간과 세상은 하나(유기적 운명 공동체).
* 스스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
* **구속(Redemption):** 만물을 창조의 원래 목적(하나님의 영광)으로 되돌리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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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11: 결론 2 (이미지화)**
* **제목:** 우주의 교향곡과 지휘자
* **내용:**
* **자연 만물:** 하나님을 노래하는 **교향곡 (악기들)**.
* **인간:** 그 앞에 선 **지휘자**.
* **회복:** 지휘자가 제 자리를 찾을 때, 우주는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 **배경:** 오케스트라 지휘자 혹은 조화로운 자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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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이드 12: 마지막 (결단)**
* **제목:**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오라
* **내용:**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곧 나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지휘자의 자리를 회복하십시오.
* **마무리 문구:**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