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8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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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원하는 헌신
제목: 자원하는 헌신
본문: 고린도후서 8장 1-9절
본문: 고린도후서 8장 1-9절
찬송: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찬송: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오늘은 고린도후서 8장 1-9절 말씀을 가지고 "자원하는 헌신"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드린 마게도냐 교회의 본을 소개하며, 중단된 헌금을 독려한다. 참된 헌신은 환경이 넉넉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충만할 때 흘러나오는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기쁨으로 자원하여 연약한 자를 돕는 삶을 살게 됨을 보여준다.
1-5절은 은혜받은 자는 자원하여 헌신함을 말한다.
1-5절은 은혜받은 자는 자원하여 헌신함을 말한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2절).
마게도냐 교회들은 로마의 압제와 경제적 수탈로 인해 극심한 가난과 환난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어려움에 함몰되지 않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기쁨으로 동참했다. 그들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구했다.
헌신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할 때 일어나는 기적이다. 환경이 어렵다고 헌신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먼저 자신을 드린 자는 물질도 아까워하지 않고 형제를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다. 이것이 바로 은혜받은 자의 마땅한 반응이다.
우리는 상황을 핑계로 헌신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내 형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은혜가 있으면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이 기적을 만든다.
6-8절은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해야 함을 말한다.
6-8절은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해야 함을 말한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7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믿음과 말과 지식에 풍성한 것처럼, 이 은혜의 일, 즉 연보에도 풍성하기를 권면한다. 고린도 교회는 1년 전에 헌금을 시작했으나 중단된 상태였다. 바울은 명령으로 강요하지 않고, 마게도냐 성도들의 간절함을 소개하며 고린도 교회의 사랑이 진실함을 증명해 보이라고 도전한다. 말뿐인 사랑은 능력이 없다. 참된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동의나 화려한 언변에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구체적인 섬김과 희생적인 나눔이라는 증거로 증명되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일 년 전에 호기롭게 시작했던 선한 일을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성도의 모습임을 강조한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난관을 뚫고 완주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은 원이로되"라는 핑계 뒤에 숨어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실제적인 나눔으로 우리 사랑의 진정성을 확증해야 한다. 만약 나의 헌신이 중단되었다면, 그것은 재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식었기 때문일 수 있다. 다시 은혜를 구하고, 물질의 문을 열어 구체적으로 이웃을 섬기는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움직이고 희생하며 나누는 동사이다.
9절은 예수님의 헌신을 본받아야 함을 말한다.
9절은 예수님의 헌신을 본받아야 함을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9절).
우리가 헌신해야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주님은 하늘의 모든 영광과 부요함을 버리고 우리를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가난하게 되셨다. 주님의 가난해지심으로 말미암아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고 영적 부요함을 누리게 되었다.
그분은 단순히 물질적인 가난을 체험하신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주인이신 창조주께서 연약한 피조물의 손에 고난을 당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 죽음까지 맛보시는 철저한 낮아짐을 선택하셨다. 마치 왕이 노예의 옷을 입고 종처럼 섬기신 것과 같다. 십자가의 은혜는 자기를 비워 남을 채우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경제 원리이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버리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듯이, 우리의 희생과 나눔이 누군가를 살리고 부요하게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적 헌신을 본받아 나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연약한 자를 섬겨야 한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형제가 살고, 내가 낮아져야 형제가 높아진다. 내가 조금 가난해짐으로 형제가 부요해진다면, 그것은 손해가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가장 영광스러운 헌신이다.
헌신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은혜의 문제이다. 마게도냐 성도들처럼 자원하여 드리고, 예수님처럼 나를 비워 형제를 부요하게 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핑계 대는 마음을 버리고, 지금 내게 주신 은혜에 반응하여 작게라도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나의 헌신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됨을 기억해야 한다.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 하늘의 부요함을 누리는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헌신은 환경이 아니라 은혜에서 비롯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기쁨으로 드렸던 것처럼, 우리 안에도 자원하는 심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말로만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구체적인 섬김과 나눔으로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 친히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 사랑을 본받아 우리의 것을 기꺼이 나누고, 연약한 지체들을 세우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물질의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성도들의 가정을 돌아보시고, 하늘 문을 여사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작은 헌신이 모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귀한 도구로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