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회 설교] 구원하시러 오시는 주님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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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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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나의 구원자, 나의 지혜, 나의 동반자이신 예수님

본문: 마태복음 1:18–25

서론: 이름이 가진 힘 (3분)

할렐루야! 오늘은 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해 볼까요?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유 1:2)
여러분,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이름'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 이름, 내가 다니고 싶은 회사의 이름, 그리고 내 이름 뒤에 붙이고 싶은 타이틀이나 스펙들. 우리는 그 이름값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 인생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름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단순히 휴일이나 연인과 데이트하는 날이 아닙니다. 이 날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의 이름이 세상에 선포된 날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은 그분의 이름을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이 세 가지 이름의 비밀을 알면, 우리의 막막한 미래와 고독한 현실을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영원한 소망으로 오늘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 이름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한 아기가 태어나던 때의 구체적인 정황을 소개합니다.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아직 그와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 파혼하고자 합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모든 정황을 알립니다. 사자의 진술 속에 마리아가 잉태한 아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공개됩니다. 요셉은 사자의 명령에 순종했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아이를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게 됩니다. 그 아이가 바로 예수님 입니다.

1) '예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자 (7분)

첫 번째 이름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름, 바로 '예수'입니다. 본문 21절을 보십시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의 여호수아, 예수아를 그리스어로 표기한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으로, 신약시대에서와서는 예수라는 이름이 ‘구원할 자’라는 의미가 담겨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구원'이라는 단어가 왠지 멀게 느껴지시는 분이계신가요? 어쩌면 너무 허황된 이야기 인거 같거나 아니면 너무 익숙하고 무뎌지지는 않으신가요? 그러면 한번 말을 바꿔보도록 할게요!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무엇을 얻으면 행복할까요? 무엇을 이루면 행복해 질까요? 이루었지만 잠깐 행복합니다. 그리고 다시 불안해집니다. SNS 속에 사람들은 너무나 잘나가 보입니다. 하지만 모두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미국 심리학회에서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라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그런 의문이 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욜로(You Only Live Once) 라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순간 순간의 행복과 즐거움에만 추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과연 그 삶은 행복한 삶이 될까요? 정말 행복한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렇게 행복을 유지할 수 있나요?
나의 행복을 꿈꾸며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답 없을 내지 못한 우리는 세상의 급류에 휩쓸려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행복의 기준을 따라갑니다. 그러다 돌아보면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질문합니다. 점점 강팍해져가는 세상에는 조건 없는 사랑은 없고, 인생의 목적을 아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모두 이런 구덩이에 빠져 있습니다. 왜 빠져있나요?
성경은 분명하게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면 죄는 무엇인가요? ‘창조주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마음대로 하려는 태도’ 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로 인해 저주를 받은 우리는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육체의 죽음이라는 선고를 받게 되었고, 영의 죽음이라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라는 구덩이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런 죄의 구덩이에 빠진 우리 모두에게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아주 인상 깊은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깊은 산길을 가다가 그만 깊은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데, 마침 한 성인이 지나갑니다. 그는 구덩이를 내려다보며 혀를 찹니다. "쯧쯧, 다 전생의 업보요. 그냥 받아들이시오." 하고 지나갑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를 비유한 것입니다. 얼마 뒤 또 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그는 훈계를 시작합니다. "거봐라, 내가 평소에 조심하라고 했느냐 안 했느냐. 사람이 매사에 신중해야지." 공자를 비유한 것이죠.
세상의 가르침은 다 이렇습니다. "네가 노력해서 올라와라", "네가 잘못해서 빠진 거다"라며 정죄하거나 체념하게 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지나갑니다. 구덩이에 빠진 청년이 도와다라고 외칩니다! 부릅니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구덩이 안으로 직접 들어와서, 자신의 몸을 던져 그 사람을 밖으로 건져 올려주었습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은 행복을 외칩니다. 죄라는 구덩이에 떨어져 나는 행복하다고, 행복할 것이라고 외칩니다. 내가 그것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며, 그것의 이름을 부릅니다. 돈, 섹스, 권력 모두가 착각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러야 할 이름은 예수님입니다.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죄라는 구덩이에 빠진 자들을 구원해주시는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청년 여러분,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아시나요?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을 받을 때 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얻을 때 진정 행복해집니다. 그 구원을 이루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는 사랑하셔서 섬기셨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구속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죄의 구덩이에서 탈출하여 행복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자유로운 자들이 됩니다.
혹시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며 자책하고 계십니까? 막막한 현실 앞에서 무너지시나요? 공허한 마음으로 서 있나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직접 여러분의 어두운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아무리 발바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던 죄에서, 실패감에서, 열등감에서 우리 예수님은 건져내주십니다.
이제 행복을 내 스스로 찾으려는 '셀프 구원'을 멈추십시오. 내 힘으로 인생을 구원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진정한 자유와 회복, 그리 행복이 시작될 줄 믿습니다.

2) '그리스도', 우리의 왕이자 지혜자 (5분)

두 번째 이름은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18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고 시작합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특정한 역할과 신분을 나타내는 칭호 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직분을 맡는 자들에 기름을 부으십니다. 왕, 제사장 선지자 이렇게 세 가지 직분을 맡은 자는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각각 그 역할과 신분을 통해 하나님께 지혜와 은혜를 구합니다. 그의 백성들을 다스리고 지키고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에 와서는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아, 즉 구원자이자 왕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그리스도의 영역, 능력과 통제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단순히 믿음의 대상을 넘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삶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즉, 그리스도란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가리킴과 동시에 그분의 신적 신분과 구속적 사명을 표현하는 신학적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신적 신분은 왕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구속적 사명을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로우신 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구속을 이루는 왕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지혜로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원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말하는 지혜는 무언가 이윤을 내고 이득을 내고, 좀 더 합리적으로 좀 더 편리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살리고 사랑하는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의의 길로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마태복음 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는 기껏 생각하는 것은 원수된 이웃을 미워하고, 어떻게든 복수하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의 지혜는 원수된 이웃을 사랑하며 기도하라고 지혜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그런 지혜를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지혜로운 왕이신 예수는 우리를 의의 길로 선한 길로 인도하는 지혜를 베푸십니다. 이후 말씀은 너희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여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인정하게 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지혜 입니다. 세상 어느 누가 이런 지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지혜의 끝판 왕이십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나요? 마태복음에서 살펴보았듯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리스도, 기름부은 왕이신 그분이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는 내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왕이신 하나님께서, 지혜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지혜와 비전을 주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고민은 무엇입니까?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 꽉 막힌 진로, 답이 없는 인간관계입니까? 책상 앞에 앉아 끙끙대지 마세요. 컴퓨터 앞에서 챗지피티나 제니미한테 해답을 찾지 마세요. 스펙 한 줄 더 쌓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고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지혜로운 왕이십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 매일의 삶 속에 학업과 직장, 여러 관계 가운데 그리스도를 나의 왕 나의 주인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 여러분에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길을 보게하시며, 남들이 듣지 못하는 음성을 듣게 하시며,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게 하시고, 남들이 모르는 것들을 깨닫게 해주시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3) '임마누엘', 고통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 (5분)

마지막 세 번째 이름, 이 이름이 오늘 특히 외롭고 힘든 청년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본문 23절을 다 함께 읽어볼까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구약에서 유다 왕 아하스 시대에 태어날 아이에게 주어진 상징적인 이름입니다. 아하스 시대는 국가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각종 우상을 섬기던 때였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 상징적 의미가 바로 신약시대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고 이루어집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믿음을 통해 우리와 연합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청년의 시기는 참 외롭습니다. 군중 속에 있어도 외롭고, SNS 친구가 많아도 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 고독합니다. 내가 실패했을 때, 세상은 냉정하게 등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어쩔 때는 심지어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가? 내 기도는 듣고 계신가?"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내 메시지를 '읽씹'하거나 '잠수'타신 것처럼 느껴질 때 말입니다.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쓴 소설 <침묵>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17세기 일본에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아 처참하게 순교를 당합니다. 바닷가 십자가에 매달려 파도에 휩쓸려 죽어가는 성도들을 보며, 숨어서 지켜보던 신부가 절규합니다. " 죽어가는데 왜 침묵하십니까?"
그때, 신부의 마음속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들아,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너희와 함께 고통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여러분,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방구석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면접에서 떨어져 낙심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아파할 때, 멀리서 팔짱 끼고 구경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보다 더 아파하시며 함께 울고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셨을 때,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우셨습니다. 연약한 자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하셨고, 치유해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며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도록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십자가로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행복한 청년 여러분, 인생은 혼자가 아닙니다. 영원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신 그분은 지금도 여러분을 눈동자같이 지키고 계십니다. 지금 혹시 너무 외롭습니까?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느껴집니까? 제가 새벽기도를 끝내고 밖을 나오는데 살짝 공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무심코 하늘을 처다보았습니다. 여기는 별이 잘 보이더라구요. 반짝 거리는 별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또한 들었습니다. 저 별 넘어에 우주 넘어에 하나님이 계시지?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하늘을 보시고, 별을 보시고, 그 너머에, 임마누엘 주님을 부르십시오. 주님이 함께하시면, 슬픔 많은 이 세상에서도 영원에 기대어 드러나는 위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5. 결론 및 결단 (2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세 가지 이름을 나누었습니다.
나를 죄와 실패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시는 '예수'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지혜와 비전을 주시는 지혜자이자 우리 왕 '그리스도'
인생의 고통 속에 함께하시며 절대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임마누엘'
이 세 가지 이름이 바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실수투성이의 실패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목숨 걸고 구원해 내신 존귀한 자녀입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스펙과 사람들의 평가에 주눅 들지 마십시오. 대신 이 능력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예수님, 나를 건져주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 나의 왕되신 주님 지혜를 주세요." "임마누엘 주님, 나와 함께해주세요."
그 믿음의 고백 위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의 은혜가 청년 여러분의 삶에 가득 넘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함께 찬양합시다!
찬양 - 예수 예수(슬픈마음있는자)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와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 허덕이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상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할 때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무엇보다 외롭고 힘든 순간에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아파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붙듭니다. 우리 행복한 청년들이 이 능력의 이름을 의지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여행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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