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설교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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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주차 방송설교]

주제: 방향의 전환 - 시계를 멈추고 나침반을 꺼내라 본문: 로마서 12장 2절
(시그널 음악: 희망차고 밝은 오케스트라 선율 - 새해의 설렘을 담아)
[오프닝: 따스한 격려와 공감 - 이찬수 목사님 스타일]
사랑하는 극동방송 청취자 여러분, 그리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시는 전파선교사 여러분,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평안하십니까.
새해 첫 주, 어떻게 보내셨나요? 아마 많은 분이 새 다이어리를 펴놓고 빼곡하게 계획을 세우셨을 겁니다. "올해는 꼭 영어 공부해야지", "운동해야지", "성경 일독해야지"... 저마다의 다짐으로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시작부터 마음이 급해지진 않으셨나요? 남들은 벌써 저만큼 앞서가는 것 같고,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벌써 어깨를 누르지는 않으신지요.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더 열심히 뛰라"고 채찍질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잠시 숨을 고르셔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26년,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지 전개: 명쾌한 논리와 예화 - 김병삼 목사님 스타일]
우리는 흔히 인생을 '시간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효율적으로, 더 빨리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믿습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는 그의 명저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에서 아주 통찰력 있는 비유를 듭니다. 우리 인생에는 두 가지 도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나침반'**입니다.
'시계'는 약속, 일정, 목표, 활동 같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빨리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반면 '나침반'은 비전, 가치, 원칙, 그리고 방향을 의미합니다.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입니다.
현대인의 비극은 나침반 없이 시계만 들고 뛰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사다리를 타고 벽을 오르는데, 정말 젖 먹던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빨리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꼭대기에 도착해서 보니, 그 사다리가 엉뚱한 벽에 걸쳐져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허무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공허함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오셨습니다. 다만, 너무 열심히 뛰느라 내 나침반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을 뿐입니다.
[본문 강해: 깊이 있는 통찰과 적용 - 송태근 목사님 스타일]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권면을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속도와 시간표(Timeline)에 휩쓸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재촉합니다. "지금 안 사면 늦어", "지금 승진 못 하면 끝이야." 이것이 세상의 '시계'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시계를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즉 영원한 **'나침반'**을 꺼내 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치웠느냐보다, 우리 마음의 중심이 누구를 향해 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혹시 지난 한 해, 열심히 살았는데도 마음에 기쁨이 없고 소진된 느낌만 남으셨나요? 그것은 여러분이 잘못 산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재조정하라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사인(Sign)입니다.
죄(Sin)라는 단어, '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뜻입니다. 속도가 느린 것이 죄가 아니라, 방향이 틀린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에게 "괜찮다,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나를 바라보며 방향만 다시 맞추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론 및 축복: 따스한 응원 - 이찬수 목사님 스타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2026년의 출발선에 선 청년 여러분.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은 속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경주마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새해 첫 주, 무리하게 계획을 세우며 자신을 몰아세우기보다,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지시면 어떨까요? 하루에 딱 10분이라도 좋습니다. 스마트폰의 시계를 끄고, 성경을 펴서 하나님의 나침반을 확인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지금 바른길로 가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은 무엇입니까?"
이 작은 질문이 2026년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끌 것입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주님과 함께 정확한 방향으로 걷는 여러분의 발걸음을 축복합니다. 그 길 끝에는 헛된 성공이 아니라, 참된 평안과 열매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올 한 해, 나침반 되신 주님 손 꼭 잡고, 넉넉히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잘 살아보려 애쓰는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을 주님이 아십니다. 조급함과 두려움은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이 보여주시는 인생의 정북향(True North)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세상의 시계에 맞추느라 지친 영혼들에게, 주님의 나침반이 주는 확신과 평안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월 2주차 방송설교]

주제: 영적 호흡 - 의지력을 넘어선 습관의 힘 본문: 다니엘 6장 10절
(시그널 음악: 규칙적이고 안정감을 주는 피아노 연주 - 평온한 일상의 느낌)
[오프닝: 실패에 대한 공감과 위로 - 이찬수 목사님 스타일]
사랑하는 극동방송 애청자 여러분, 그리고 곳곳에서 복음의 통로가 되어주시는 전파선교사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1월의 두 번째 주간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떠셨나요? 한 주간 주님이라는 나침반을 좀 들여다보셨습니까?
사실 이맘때쯤 되면 우리 마음 한구석에 슬슬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바로 '작심삼일'이라는 녀석입니다. "올해는 기도를 매일 해야지", "성경을 꼭 읽어야지"라고 야심 차게 결심했는데, 벌써 흐지부지된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유, 나는 믿음이 이것밖에 안 되나 봐. 나는 역시 안 돼."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오늘 저는 여러분의 그 무너진 마음을 토닥여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전략, 우리 몸의 작동 원리를 조금 몰랐을 뿐입니다. 오늘은 그 죄책감을 털어버리고, 다시 가볍게 시작할 방법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메시지 전개: 뇌과학적 통찰과 논리 - 김병삼 목사님 스타일]
우리는 신앙생활을 너무 '의지력'으로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하지만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찰스 두히그는 그의 책 **《습관의 힘》**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의지력(Willpower)'**은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쓰면 닳아 없어지는 **'근육'**과 같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루 종일 직장에서,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참아내고, 업무에 집중하느라 의지력을 다 써버렸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집에 와서 또다시 의지력을 발휘해 기도의 자리에 앉으려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습관'**입니다. 습관은 의지력을 쓰지 않고도 우리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자동 시스템'입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할 때 굳은 결심이 필요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번 이를 악물고 힘들게 당신을 찾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밥을 먹듯이, 숨을 쉬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습관'입니다.
[본문 강해: 본문의 깊이와 재해석 - 송태근 목사님 스타일]
성경에 바로 이 거룩한 습관의 정수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다니엘입니다. 다니엘 6장 10절을 보면, 그는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합니다. 자칫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여기서 **'전에 하던 대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원어적인 의미를 살려보면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규칙적인 리듬'**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은 위기가 닥쳐서 갑자기 특별 새벽기도를 시작한 게 아닙니다. 평온할 때나, 위급할 때나 변함없이 해오던 그의 '루틴'이었습니다. 그에게 기도는 특별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영혼의 호흡이었습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그는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어두는 것이 사는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사자 굴의 위협 앞에서도 다니엘이 평온할 수 있었던 비결은 '초인적인 용기'가 아니라, 매일 쌓아온 이 단단한 '습관의 힘'이었습니다. 몸에 밴 거룩한 습관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지탱해 준 것입니다.
[결론 및 축복: 구체적 적용과 격려 - 이찬수 목사님 스타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나는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은 못 하는데..."라며 부담을 느끼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횟수를 세시는 분이 아닙니다.
2026년, 거창한 계획 대신 아주 작은 습관 하나만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의지력을 쓰지 않아도 되는 아주 쉬운 것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신호), 이불 속에 누운 채로 "하나님, 오늘도 생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행동)라고 10초만 기도하는 것.' 또는 '운전대를 잡으면(신호), "주님, 이 차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행동)라고 고백하는 것.'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이 작은 습관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새 기도는 노동이 아니라 호흡이 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호흡이 여러분의 가정을, 여러분의 일터를 숨 쉬게 만들 것입니다.
작심삼일이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거창한 서원보다, 매일 마주하는 그 작고 따뜻한 눈맞춤을 더 기다리십니다.
이번 한 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습관을 시작해 보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도우십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새해 결심이 무너져 속상해하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우리의 의지는 약하지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 가실 줄 믿습니다. 내일부터가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주님을 기억하는 작은 기도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호흡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월 3주차 방송설교]

주제: 내면의 변화 - 소비하는 자아에서 섬기는 자아로 본문: 마가복음 10장 45절
(시그널 음악: 깊이 있고 사색적인 첼로 연주 -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
[오프닝: 시대적 공감과 따뜻한 터치 - 이찬수 목사님 스타일]
사랑하는 극동방송 애청자 여러분, 그리고 전파선교사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어느덧 1월도 하순을 향해 갑니다.
여러분, 요즘 마음이 좀 어떠신가요? 우리는 참 열심히 사는데, 이상하게 문득문득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흔히 '헛헛하다'고 표현하지요.
그래서인지 요즘 많은 분이 나를 위한 선물을 삽니다. 퇴근길에 현관 앞에 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그래, 내가 이러려고 돈 벌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저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얼마나 힘들면, 얼마나 고단하면 그 작은 소비로라도 보상받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솔직하게 한번 들여다볼까요? 그 택배 상자를 뜯었을 때의 기쁨, 얼마나 오래가던가요? 며칠 지나면 또다시 밀려오는 공허함 때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찾고 계시지는 않나요? 오늘은 그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잔을, 진짜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비밀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메시지 전개: 논리적 접근과 대안 제시 - 김병삼 목사님 스타일]
우리는 자꾸 밖에서 안으로 무언가를 집어넣어야(Input)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논리, 즉 '소비자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경영학의 대가 스티븐 코비는 그의 책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에서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그는 우리가 사소한 유혹이나 소비에 흔들리는 이유는, 우리 내면에 더 큰 열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불타오르는 '예스(Yes)'가 있을 때,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 웃으면서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
참 멋진 말 아닙니까? 우리가 끊임없이 쇼핑하고, 먹고, 미디어에 빠져드는 진짜 이유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가슴 뛰는 목적, 즉 **'불타는 Yes'**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그 '불타는 Yes'는 무엇일까요? 바로 나만 배불리는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고 돕는 인생, 즉 **'섬김'**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나를 위해 쓸 때보다, 남을 위해 나를 내어줄 때 훨씬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행복 호르몬이 나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설계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강해: 말씀의 깊이와 재해석 - 송태근 목사님 스타일]
오늘 본문, 마가복음 10장 45절을 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당시 제자들은 '누가 더 높으냐',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를 놓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철저히 세상의 방식, 소비와 소유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주러 왔다. 내 시간, 내 마음, 심지어 내 목숨까지 다 주러 왔다."
여기서 '섬기다'라는 말은 단순히 식당에서 서빙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어적으로는 먼지를 뒤집어쓰며 종의 위치로 내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대접받는 것"을 성공이라 말하지만, 예수님은 "낮은 자리에 내려가서 대접하는 것"이 천국의 성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소비해도 소비해도 목마른 줄 아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의 DNA 속에는 '섬길 때' 비로소 작동하는 기쁨의 버튼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꾸 '소유'로 누르려고 하니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 및 축복: 삶으로의 초대와 격려 - 이찬수 목사님 스타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 물건 하나도 사지 마십시오"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웃음)
다만, 2026년에는 여러분의 기쁨의 출처를 조금만 옮겨보시라는 겁니다. 나를 위해 십만 원을 쓸 때의 기쁨보다,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커피 한 잔을 대접할 때의 기쁨이 훨씬 크다는 것을 맛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3040 여러분, 여러분은 월급 받는 기계가 아닙니다. 그곳에 사랑을 흘려보내라고 파송된 하나님의 대사들입니다. 가정을 지키고 계신 성도님들, 여러분의 설거지와 청소는 허드렛일이 아닙니다. 가족을 살리는 가장 거룩한 섬김입니다.
"나는 가진 게 없어서 못 섬겨요."라고 하지 마십시오. 따뜻한 눈빛 하나, 경청해 주는 귀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번 한 주, '소비하는 소비자'에서 '사랑을 공급하는 공급자'로 살아보십시오. 여러분이 베푼 그 작은 섬김이 돌고 돌아, 결국 여러분의 텅 빈 마음을 꽉 채우는 하나님의 위로가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복, 그 신비한 기쁨을 누리는 한 주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의 주님. 세상의 헛된 것으로 채우려다 오히려 더 배고파진 우리 영혼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 하신 말씀이,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가슴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한 주, 내 손을 펴서 누군가를 섬길 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기쁨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1월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4주차 설교입니다.
나침반(방향), 기도(습관), 섬김(내면)을 지나, 이 모든 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함께의 힘'**을 강조합니다. 혼자서는 버거운 2026년의 파도를 '공동체'라는 배를 타고 함께 건너가자는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요청하신 대로 **인용은 책 1권(습관의 힘), 인물 1명(릭 워런 목사)**으로 구성하여 깔끔하게 마무리했습니다.

[1월 4주차 방송설교]

주제: 공동체의 힘 - 함께라면 갈 수 있다 본문: 히브리서 10장 24절-25절
(시그널 음악: 웅장하면서도 가슴 벅찬 합창곡 또는 오케스트라 피날레 - 연대와 희망의 느낌)
[오프닝: 솔직한 현실 점검과 공감 - 이찬수 목사님 스타일]
사랑하는 극동방송 가족 여러분, 그리고 세계 곳곳의 전파선교사 여러분. 어느덧 1월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한 달 동안 '기초를 다시 세우자'는 말씀을 나누며 달려왔는데, 어떠셨습니까?
아마 말씀을 들을 때는 "그래, 해보자!" 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가도, 막상 혼자 세상에 나가 부딪혀 보면 금세 식어버리는 자신을 보셨을 겁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사는 게 참 외롭습니다. 저 혼자만 유별난 사람 같아요." 이렇게 하소연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혼자서는 힘듭니다. 이 거친 세상의 물살을 혼자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학'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함께'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1월 시리즈의 마지막 결론, 바로 우리를 지탱해 주는 '공동체'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메시지 전개: 사회학적 분석과 논리 - 김병삼 목사님 스타일]
우리는 흔히 "신앙은 하나님과 나, 1대1의 관계다"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반만 맞는 말입니다. 그 믿음이 자라나고 유지되려면 반드시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찰스 두히그는 그의 책 **《습관의 힘》**에서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어떻게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분석합니다. 그는 흑인 민권 운동의 불씨가 된 '로사 파크스' 사건을 예로 듭니다. 그녀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을 때, 그것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거대한 운동이 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강한 유대와 약한 유대'**의 결합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를 지지하는 수많은 지역 사회와 친구들, 즉 '공동체'가 있었기에 그녀의 용기는 꺾이지 않았고, 마침내 세상을 바꾸는 습관(문화)이 되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믿음을 지키려 하면, 그것은 내 의지력 싸움이 됩니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 들어가면, 옆 사람의 기도가 나를 끌어당기는 '거룩한 관성'이 생깁니다. "저 집사님이 기도하니까 나도 해야지", "다들 섬기니까 나도 도와야지." 이 거룩한 눈치 보기, 즉 선한 영향력 속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내 믿음을 지키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본문 강해: 원어의 의미와 깊이 - 송태근 목사님 스타일]
오늘 본문 히브리서 기자는 핍박받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24-25절)
당시 '모인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발각되면 잡혀가고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모이라고 했을까요? 흩어지면 죽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살지 몰라도 영혼은 죽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격려하며'라는 단어, 헬라어로 **'파라칼레오(Parakaleo)'**는 단순히 "힘내, 파이팅!" 하고 말로만 응원하는 게 아닙니다. '파라(Para)'는 '옆에', '칼레오(Kaleo)'는 '부르다'는 뜻입니다. 즉, 넘어진 사람 옆으로 바짝 다가가서, 그를 일으켜 세우고 어깨동무하며 함께 걷는 행동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 홀로 신앙인'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런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교제(Fellowship)를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가 아닌 가족으로 부르셨습니다."
내가 힘들 때 내 팔을 잡아줄 사람, 내가 기도를 쉴 때 나를 대신해 기도해 줄 사람. 그들이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고, 공동체입니다.
[결론 및 축복: 따스한 권면과 마무리 - 이찬수 목사님 스타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애청자 여러분.
혹시 상처 때문에,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공동체를 떠나 '나 홀로 예배'에만 머물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라디오로 말씀을 듣는 것도 귀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삶을 나누고 체온을 나눌 영적인 가족을 꼭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고, 때로는 서로 찌르기도 하는 고슴도치 같습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 고슴도치들이 서로의 가시에 찔리면서도 꼭 붙어 있어야 얼어 죽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연약함을 끌어안을 때 이 험한 세상을 이길 온기를 얻습니다.
2026년, 혼자 짐을 지려 하지 마십시오. 구역 모임에 나가십시오. 봉사팀에 들어가십시오. 쑥스러우시면 맨 뒷자리에 앉아서라도 "저도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손을 내미십시오.
잡아주는 손이 있으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나침반을 보며,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섬김의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는 2026년. 이 아름다운 동행이 여러분의 한 해를 가장 든든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마무리 기도]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1월 한 달간 주신 말씀들이,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단단한 기초석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2월을 향해 나아갑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믿음의 동역자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일으켜 주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친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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