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10장
게으름과 친숙한 그대에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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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도에 울었습니다. : 게으른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
그 기도에 울었습니다. : 게으른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그 기도에 울었습니다.
그 기도에 울었습니다.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어떤 기독교 잡지를 읽다가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하나님 만나고 전도자가 된 사람의 기사였는데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 저의 가슴에 처럼 박혔기 때문입니다. 불법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감옥까지 갔다 온 그 사람은 그 후 예수님을 영접하고 열심히 있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전철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희망사항을 묻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은 기도로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배운 것도 없고 갖춘 것도 없어서 더 크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언감생심 하나님께서 저를 크게 써주시도록 기도도 못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혹시 하나님께서 귀한 사명을 맡겨주신 사람 가운데 게을러서 그 일을 제대로 안 하며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게으른 그 사람 굳이 쓰지 마시고 저를 대신 그 자리에 보내주세요. 잘하는 것은 없지만, 정말로 열심히 주위의 일을 하겠습니다.”
그 기도를 읽으면서 사명감도 없이 감사도 없이 냉랭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았기에 우리 같은 사람이 이렇게 남아 있지. 만약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해 주셨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분발하지 않는 게으름
분발하지 않는 게으름
본문 게으른 자를 그림같이 생생한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씀을 기록한 지혜자의 머릿속에는 본문이 말하는 게으른 자의 이미지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일을 하기는 하는데 아주 게으르게 일하는 종이었습니다. 일을 함에 있어 전혀 분발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일을 잘 감당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고용한 사람의 마음에 극심한 고통과 불편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게으른 자로 인해 부리는 자가 느끼는 고통을 지혜자는 이에 초, 눈의 연기로 형상화합니다. 이것은 치명적인 고통은 아니지만, 견딜 수 없는 불쾌감을 동반하는 괴로움입니다. 게으른 자는 그러한 고통을 그를 부리는 자에게 안겨줍니다.
그런데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것만 게으름이 아니라 일을 하겠다고는 하는데 애정을 품고 그 일을 위하여 분발하지 않는 것도 게으름입니다. 사실 아예 일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고 게으름 부리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그것보다 더 빈번하게 발견되는 게으름은 어떻게든 그 일을 잘 완성해야겠다는 열정을 품고 분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였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간혹 자신이 10년째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거나 5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서 반주를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오래도록 꾸준히 한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섬김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 얼마나 마음을 써서 분발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는 단지 그것을 오래 감당하라고 맡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충성되게 하여 좋은 열매를 맺어가라고 맡기십니다. 그런데 아무리 한 가지 일을 오래 감당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수행해 온 방식이 파업을 앞둔 노동자들의 태업과 같은 것이었다면 그가 그 일을 감당한 기간이 오래되었다는 것은 부끄러움일 뿐입니다.
우리는 직업에 있어서도 이러한 원리를 배웁니다. 한 가지 직업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왔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얼마나 분발하여 해왔느냐입니다. 그저 일을 견디고 있는 사람과 그 일에 적극적인 열정을 가지고 잘 해내려고 애쓰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한 사람은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겨우겨우 해내 나가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일과 함께 발전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분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리는 자의 마음
부리는 자의 마음
사람을 부리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기업체를 하고 있는 사람의 가장 큰 자산은 땅이나 돈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업을 할 때 그 사업의 성공은 첫째, 그 기업가의 신앙에 둘째,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일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가에게는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고 그 사람을 최고의 자산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때 그 사람의 경영이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경영이 되고 그에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직장을 통해 자아가 실현되는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그 사업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에게 그 일에 대한 성실함과 충성스러움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리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큰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와 나라를 경영하는 정치가가 성직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정치 권력 자체가 부패한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권자가 바뀔 때마다 늘 앞사람을 욕하고 들어가 똑같은 사람이 되어서 나오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이러한 사실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돈도 사람을 부패하게 만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람을 일정한 원칙 없이 뜬구름같이 살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돈 때문에 혹은 쉬운 경영을 위해 그 도리를 저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두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책임감과 자신을 절제하는 성직자적인 도덕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정말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람을 부리는 자들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일을 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람을 고용할 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채용하는 입장에 있다면 어떠한 사람을 선택하겠습니까? 머리도 좋고 능력도 있으며 정직하고 순발력 있고 교양과 외모까지 갖춘 신앙 좋은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완벽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설령 구한다. 해도 그런 사람에게 걸맞는 월급을 줄 능력이 회사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을 고용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보다 중요한 가치를 몇 개만 선별하여 그것을 갖춘 사람을 고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그 고용 가치에 꼭 들어가는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게으른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그 자체로 악의 원상이 됩니다. 잠언은 게으른 사람을 정작 정직하지 않은 사람으로 이야기합니다. 잠언 15장 19절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에게는 늘 부정의 소지가 있습니다. 더구나 게으른 사람은 잡담을 좋아하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누설할 위험이 있습니다. 잠언 20장 19절
하지만 무엇보다 게으른 사람을 피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가 분발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믿고 있다가는 사업의 중요한 기회들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고통이 됩니다.
이에 초, 눈의 연기
이에 초, 눈의 연기
성경은 게으른 사람이 부리는 자에게 주는 고통을 이에 초, 눈의 연기로 묘사합니다.
사과 중에 국광이라는 품종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재배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신맛을 특징으로 하는 사과인데 깨물면 신물이 이 사이를 타고 흐르며 사람을 몸서리치게 만듭니다. 그것이 신선한 사과의 과즙과 함께 아주 잠시 그것이 신선한 사과의 과즙과 함께 아주 잠시 느껴지는 신맛이기에 먹는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것이지. 그 느낌이 끝없이 계속된다면 오히려 고통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게으른 사람을 고용한 고용주의 마음입니다. 신맛이 계속 이에 머무는 듯한 고통의 마음인 것입니다.
동남아 지역에 있는 선교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교회에 화장실이 없어서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었는데 한국에서라면 두 사람이 이틀이면 끝날 일을 그곳에서는 네 사람이 일주일을 하더랍니다.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삽질을 하는데 옆에서 그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답답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해 아예 일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사업하는 사람으로부터도 들었습니다. 업무를 돕고 있던 현지인 젊은이가 성실하게 일을 잘해서 보너스로 한 달 월급을 더 주었더니, 그 다음 날부터 소식도 없이 일주일간 나오지 않더랍니다. 일주일 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출근한 그에게 왜 결근하였는지 물었더니, 그는 생각지 않게 생긴 그 공돈을 쓰느라고 못 나왔다고 태연하게 이야기하더랍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리는 것이 부리는 자에게는 고문입니다. 그래서 사회가 발전하려면 부당하게 해고당하는 사람도 없어야겠지만, 그 회사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책상을 비워주고 나와야 합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리는 자가 볼 때 그가 신맛을 내는 이의 초 같고, 눈을 못 뜨게 만드는 눈의 연기와 같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함의 꽃, 열정
부지런함의 꽃, 열정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이 단지 직장에서 신우회를 만들고 주일이면 교회 가는 것으로만 확인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삶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이어야 그에게서 열정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마지못해서 움직이는 게으른 사람에게 어떻게 열정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신발을 만드는 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사업 아이디어를 놓고 고심하다가 두 명의 사람을 아프리카로 보냈습니다. 그들에게 아프리카의 시장성을 타진해 보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 후 그들은 돌아와 판이하게 다른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한 사람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신발을 신지 않고 다니므로 신발을 만들어도 사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의견을 냈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도 신발을 신은 사람이 없습니다. 시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라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열정에 있습니다. 후자의 사람에게는 아프리카 사람 하나하나를 쫓아다니며 신발 없이 걸으면 발이 얼마나 아픈지 알려주고 신발 신고 다니도록 만들 열정이 있었지만 전자의 사람에게는 그런 수고를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기골이 장대한 가나안 원주민을 보면서 “우리의 밥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저들은 버리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민 14장 9절) 하지만 다른 정탐꾼들은 “그들은 신장이 장대하나 우리는 메뚜기와 같아.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니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민 13장 33절)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싸우려는 열정이 있었지만 다른 정탐꾼들에게는 믿음도 열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열정은 게으른 사람에게는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열정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편안히 쉬고 싶다는 게으른 자의 자기 사랑과 상치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랑하기에 기다리시는 하나님
마음에 담으면 담을수록 마치 식초를 입에 머금은 듯 찡그리게 하고 바라보면 볼수록 눈을 아리게 하는 연기처럼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 옆에서 시중 들고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에게 좋은 보수를 주고 특별히 사랑해주고 중요한 직책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게으른 사람들은 생수와 같은 기도의 세계를 가질 수 없고 하나님과의 기쁨에 찬 관계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연합 속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공급받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충성스럽고 지혜롭게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성격이 괴팍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신경질적인 고용주가 아니십니다. 그래서 일단 세워 놓으시면, 우리가 충성되고 성실하게 섬기지 않더라도 긍휼을 베푸시며 충성되이 섬기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사명을 맡았다가 자신의 신앙까지 망쳐버리며 도중 하차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십니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에게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니다. 언젠가는 그가 게으르게 섬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때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열정이 없는데도 섬김을 놓지 못하는 이유.
열정이 없는데도 섬김을 놓지 못하는 이유.
그런데 열정을 품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만 함을 잘 알고 있지만 내 안에 열정이 없음을 아는데도 섬김을 내려놓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섬김을 내려놓자니 그동안의 섬김이 너무나 후회스러워 좀 더 열심을 품어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을 것이며, 이나마도 하지 않으면 신앙이 바닥까지 떨어질 것 같아 두려워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직함이 필요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정이 어떻건 일을 맡았으면 그것을 그냥 붙들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계속 고통을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사명을 맡았으면 마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열렬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활을 재편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으면 다른 일을 포기하고, 집이 멀면 이사를 하고 돈이 필요하면 조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일을 하기에 앞서 주님께서 만약에 내 자리에 계셨더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생각하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매 순간 자신이 그 일을 위해 움직이는 동기가 무엇인지 자신이 올바른 동기로 움직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가지셨을 태도와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종으로 인정받는 것, 종으로 취급받는 것
종으로 인정받는 것, 종으로 취급받는 것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분발하는 열심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부지런하게 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신분에 있어서는 아들이지만 섬김에 있어서는 그분께 순종하며 일하는 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신분을 누리지 않으시고 종처럼 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화려하고 주목받는 일들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칭송과 우러름보다는 비난과 손가락질을 더 많이 당하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은 당시의 시선으로 볼 때 결코 고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리와 창기에게 인생의 도리를 가르치시고 병자와 가난한 자를 찾아다니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장 45절 이것이 바로 이 땅에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섬김을 감당할 때 필요한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으로 섬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도자에게 마음을 다하여 성실하게 섬기는 조력자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는 오래전 같이 일했던 부교역자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그 부교육자는 어려웠던 시절 목사님을 도와 충성을 다해 섬겼던 사람으로 목사님께서는 대화 가운데 그를 떠올릴 때마다 늘 “그의 고마운 섬김을 잊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충성된 종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그렇게 충성하는 사람은 너무나 소수입니다. 하나님께 일을 맡겨 달라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종 같은 헌신으로 그분을 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러주는 것은 좋아해도 종처럼 취급받는 것은 견디지 못해 합니다. 우리는 섬김의 동기가 종으로서 섬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노리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섬김의 동기가 그 자리를 누리겠다는 것인 사람들은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종이십니다’라고 인정하면 기뻐하지만 종처럼 취급하면 불쾌해하는 이중성을 갖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식이 강한 사람에게서는 종 같은 헌신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진실로 충성된 섬김은 나는 그 자리에서 흐려지고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 빛나시는 것입니다.
이 모습 이대로 할 수 있는 일, 부지런함
이 모습 이대로 할 수 있는 일, 부지런함
어떤 때는 비감한 생각이 들어 잠을 이룰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많은 영혼들을 돌봐야 하는데 이렇게 지혜롭지 못하여 어떻게 할까?’ 하면서 저도 모르게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다른 사람을 사로잡는 출중한 카리스마나 고매한 인격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지식은 다른 이들의 깊고 넓은 지식의 세계에 비하면 지푸라기 같기만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의 설교를 듣고도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 정말 하나님의 기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좀 더 지혜롭게 살아보고자 하는데 단숨에 극복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면 늘 같은 결론이 납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기를 간구하며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고 게으르지 않게 부지런히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벽하게 해낼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게으르지 않을 것을 요구하실 뿐입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못 하는 것은 영적인 생활에 부패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부패하게 만들고 영혼의 생명을 쇠퇴하게 하고 정욕으로 가득 차게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이 한 가지 생각은 붙들어야 합니다. 모자라고 부족하여 실패할 수는 있어도 게을러서 넘어지지는 않으리라.
‘내가 은혜 받고 성화되면 부지런해질 거야’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게으른 사람은 결코 성화될 수 없습니다. 생각이 게을러서 부주의하고 마음이 게을러서 정욕에 불타고 의지가 게을러서 의무를 행치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배어 있는 게으름의 정신들을 추방해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잠자는 일에 이르기까지 절제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힘 닿는 대로 열심히 시간을 아껴서 섬기고 열정을 불태워 그분의 일을 하여야 합니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어나도록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알기 전보다 몇 배나 더 부지런하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비결
예수님과 하나 되는 비결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아 맡겨주신 삶의 자리에서 힘에 진하도록 살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되는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임을 깨닫습니다.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저는 가끔 과도한 사역으로 몸이 너무 힘들면 누워서 생각합니다. ‘예수님 저 오늘 아픕니다. 주님께서도 그러셨지요. 유대 땅으로 사마리아로 갈릴리로 그 먼 길을 금가마 타고 다니지 아니하시고 걸어 다니신 주님 교수님께서도 그때 저처럼 다리가 쑤시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셨죠? 그래도 우리를 섬기셨지요? 힘주세요. 잘 할게요.’ 이렇게 고단하시던 예수님의 제상 생애를 생각하면 온몸을 부서뜨릴 듯 짓누르던 피곤이 달콤한 은혜로 바뀝니다. 감히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에 참여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고통에 동참하면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을 배워 나가게 됩니다. 거기서 분투하는 삶을 위한 은혜를 공급받으며...
해주신 설교문을 바탕으로 PPT 슬라이드 형식으로 요약 및 정리해 드립니다.
제시해주신 설교문을 바탕으로 PPT 슬라이드 형식으로 요약 및 정리해 드립니다. 설교의 핵심 논지와 예화를 중심으로 **[도입 - 전개 - 적용 - 결론]**의 흐름으로 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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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PT 슬라이드 구성안**
### **Slide 1: 타이틀**
**제목: 그 기도에 울었습니다 : 게으른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
**본문: 잠언 10:26**
>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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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ide 2: 도입 - 어느 전도자의 기도**
**1. 충격과 회개**
* 노동 운동가 출신 전도자의 인터뷰 내용.
* **그의 기도:**
> "하나님, 저는 부족하여 큰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 게으름으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를 그 자리에 대신 보내주소서. 열심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 **설교자의 묵상:**
* 사명감 없이 냉랭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
*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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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ide 3: 대지 1 - 분발하지 않는 게으름**
**1. 게으름의 정의**
* 일을 아예 안 하는 것만이 게으름이 아님.
* **일을 하되 애정과 열정 없이 '분발하지 않는 것'도 게으름.**
* 오래 했다는 것(기간)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했느냐(태도)임.
**2. 고용주(주인)의 고통**
* 게으른 자는 주인에게 불쾌감과 괴로움을 줌.
* **잠언의 비유:**
* **이에 식초:** 계속되는 신맛처럼 몸서리치게 하는 고통.
* **눈에 연기:** 눈을 뜰 수 없고 답답하게 만드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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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ide 4: 대지 2 - 게으른 자의 사회적 해악**
**1. 부리는 자의 입장에서 본 고용**
* 완벽한 사람을 찾기 힘들 때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기준: **성실함(게으르지 않음).**
* 게으른 사람의 위험성:
* 정직하지 못함 (잠언 15:19).
* 말이 많고 비밀을 누설함 (잠언 20:19).
*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만들고 동료에게 피해를 줌.
**2. 선교지와 사업장의 예화**
* 일의 효율이 떨어지고, 주인의 마음을 답답하게 함.
* 그리스도인은 직장에서 '이에 초, 눈에 연기'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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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ide 5: 대지 3 - 부지런함의 꽃, 열정**
**1. 열정의 차이가 결과를 만든다**
* **아프리카 신발 시장 예화:**
* A: "아무도 신발을 안 신으니 시장성 없음." (열정 부재)
* B: "모두가 맨발이니 시장성 무한함." (열정 충만)
* **가나안 정탐꾼 예화:**
* 10명의 정탐꾼: "우리는 메뚜기 같다." (믿음과 열정 없음)
* 여호수아와 갈렙: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믿음과 싸우려는 열정)
**2. 게으름과 열정의 관계**
* 게으른 자에게는 열정이 생길 수 없음.
* 열정은 편안히 쉬고 싶은 '자기 사랑'과 상치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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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ide 6: 적용 1 -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태도**
**1.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괴팍한 고용주가 아니시라, 우리를 사랑하여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
* 그러나 게으름으로 도중하차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심.
**2. 사명자의 자세**
* 열정이 식었어도 사명을 놓지 말아야 함은 맞지만, 태도는 변해야 함.
* **삶의 재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시간, 거주지, 물질 등을 조정하는 결단 필요.
* **점검 질문:** "예수님이 내 자리에 계셨더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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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ide 7: 적용 2 - 종(Servant)의 정체성**
**1. 종으로 인정받기 vs 종으로 취급받기**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사역에 있어서는 **'종'**임.
*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호칭은 좋아하나, 진짜 종처럼 취급받는 것은 싫어함.
* **진정한 섬김:** 나는 흐려지고 하나님만 빛나시는 것.
**2. 예수님의 모범 (막 10:45)**
*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심.
* 가장 낮고 천한 곳에서 고통스러운 일을 감당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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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ide 8: 적용 3 - 이 모습 이대로 할 수 있는 일, 부지런함**
**1. 완벽함이 아닌 성실함**
* 능력이 부족하고 카리스마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 **게으르지 않게 부지런히 섬기는 것.**
* 하나님은 '능수능란함'보다 '충성됨'을 요구하심.
*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것은 죄가 아니나,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은 타락이다."
**2. 성화(聖化)와 게으름**
* 게으른 사람은 성화될 수 없음 (생각, 마음, 의지의 나태함).
*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기 위해 생활 전반의 게으름을 추방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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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ide 9: 결론 - 예수님과 하나 되는 비결**
**1. 고난 속에서 주님을 만남**
* 사역의 현장에서 육체가 고단할 때,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묵상함.
* "주님도 걸어 다니시며 피곤하셨지요? 저도 주님의 고통에 동참합니다."
**2. 맺음말**
* 맡겨주신 자리에서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분과 하나 되는 은혜를 누리십시오.
* 게으름을 버리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충성된 종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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