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 힙한 이유, 낮아지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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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빌립보서 2:1–8 NKRV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기다리는 크리스마스는 누가 이 땅 가운데 오심을 기념하는 날인가? 그렇다. 예수님이시다. 왜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셨고, 그러한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도 자신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겸손이라는 뜻이 무엇일까? 겸손은 보통 자신을 낮추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이런 태도는 겸손일까? 전도사님에게 누군가 “키가 크시네요”라고 칭찬해주셨을 때, 전도사님이 “아휴 아니에요, 저는 아담한걸요”라고 말한다면 과연 겸손한 것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수능에서 1등한 사람에게 공부를 왜 이렇게 잘하시냐고 인터뷰했을 때 1등한 사람이 “아휴, 저 공부 진짜 못해요”라고 말하는 것 또한 겸손이 아닐 것이다. 분명하게 겸손이 아닌, 자만하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겸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태도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받아들이는 덕목”이다. 전도사님이 키가 크다고 칭찬하면, “네, 저는 키가 큽니다”, 1등한 친구는 “네, 저는 공부를 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겸손은 한 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높으신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낮아지심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바울이 교회의 하나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만약 성도들이 겸손하고 자신들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타인 중심적으로 산다면, 그리고 만약에 빌립보 교회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보다 다른 사람들의 일을 먼저 신경 써준다면, 교회 안에 분명하게 기쁨이 넘칠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서,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 학교와 사회에서 일어난다면 정말 하나님 나라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님처럼 종이 되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삭막함을 느낀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서로 종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 존중이 아니라 서로 무시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고, 말 한 마디에 쉽게 화를 내고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본보기로서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모델 하우스로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낮아지셨음은 이런 느낌이다. 세계에서 리그오브레전드, 롤이라고 하는 게임의 최고 플레이어가 누구인가? 그렇다. 페이커이다. 그 사람의 컨트롤이나 플레이가 마치 신급이라고 불릴만큼 어마어마하게 어쩌면 손흥민보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만약 그 사람이 레벨 최하위인 아이언이라는 등급인 나에게 찾아와서 자신이 아이언으로 새로 아이디를 만들어서 너를 캐리해줄테니까 내가 하라는 것만 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졸졸 따라다니며 뭔가 질 것 같은 느낌인데 페이커가 하라는 말대로 했더니 절대 이기지 못할 것 같은 다이아 등급의 사람들을 쉽게 이기는 것을 보게 될 때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거기에 캐릭터 삭제 내기를 해서 다이아급의 유저들을 이길 순간에 페이커가 지금 한방 때리라고 했을 때 한방으로 이기면 얼마나 기쁨이 재밌겠는가? 그때 왜 저를 이렇게까지나 도와주시나요?라고 물어봤을 때, 페이커가 “그냥 당신이 너무 좋아서요”라고 말하면 얼마나 설레겠는가? 일반 유저들은 레벨이 낮은 사람이 잘할 때 페이커라는 것을 잘 모를 수 있으나, 페이커와 자주 대회에서 만난 프로게이머들은 그의 무빙의 실력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영적 세계에 있는 사탄들은 한번에 알아보았다. 그러니 천사보다 못한 모습의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떄문에 십자가가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으셨다. 십자가라는 것은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절대 받지 않는다. 로마시민이 아닌 사람이 극악무도한 정치범이나 반란 또는 최악의 강도짓을 했을 때 받는 저주의 상징이다. 우리가 받아아야할 극악무도한 죄와 저주를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대신하여 받으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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