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21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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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Joshua 22:1–9 NKRV
1 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2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에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여 3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4 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5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6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7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그 남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쪽 서쪽에서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기업을 준지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8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과 금과 구리와 쇠와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원수들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지니라 하매 9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받은 땅 곧 그들의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

1. 본문의 배경: 7년 전에 한 약속

이 본문을 이해하려면 약 7년 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민수기 32장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 동편에 도착했을 때,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가 모세에게 요청을 합니다. "이 땅이 목축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여기 살겠습니다."
모세는 처음에 진노합니다. "너희 형제들은 전쟁하러 가는데, 너희는 여기 앉아 있겠다는 거냐? 40년 전에 가나안 땅 정탐하고 돌아와서 백성의 마음을 낙심하게 만들었던 그 선조들처럼 하겠다는 거냐?"
그러자 르우벤과 갓 지파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여기에 가축 우리와 성읍을 짓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전사들은 무장하고 요단강을 건너 형제들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모든 형제가 자기 기업을 받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모세는 이 약속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너희가 이 약속대로 행하면, 이 땅이 너희 기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한 것이니, 그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이것이 7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약속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2. 본문 해석: 약속을 지킨 사람들

본문 1절부터 3절을 보겠습니다.
Joshua 22:1–3 NKRV
1 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2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에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여 3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세 가지를 확인해 줍니다.
첫째, "모세가 명령한 것을 다 지켰다." 둘째,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내 말도 청종하였다." 셋째, "오늘까지 이 여러 날 동안 형제를 떠나지 않았다."
"오늘까지 이 여러 날 동안"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주십시오.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표현은 '야밈 라빔'(יָמִים רַבִּים)인데, 이것은 단순히 '며칠'이 아니라 '오랜 세월', '긴 시간'을 의미합니다. 학자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대략 7년 정도 걸렸다고 봅니다.
7년입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전사들은 7년 동안 자기 가족을 요단 동편에 두고, 형제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 땅을 받았습니다. 자기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닙니다. 7년입니다. 길고 긴 시간입니다. 그 시간 동안 그들 중 누군가는 전사했을 수도 있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웠을 겁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남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단순히 모세와의 계약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3절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의 책임을 지켰느니라." 그들은 이것을 사람과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으로 여겼습니다.

3. 여호수아의 당부: 진짜 중요한 것

4절부터 5절을 보겠습니다.
Joshua 22:4–5 NKRV
4 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5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여호수아는 그들을 떠나보내면서 한 가지를 신신당부합니다. "이제 집에 가도 된다. 그러나 한 가지만 기억하라." 그것이 5절의 내용입니다.
여호수아의 당부는 다섯 가지 동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명령과 율법을 행하라"(לַעֲשׂוֹת, 라아소트) 행동하는 것 둘째, "여호와를 사랑하라"(לְאַהֲבָה, 레아하바) 셋째, "그의 모든 길로 행하라"(לָלֶכֶת, 라레케트) 예수님의 길로 가는것 ‘제자’ 넷째, "그의 계명을 지키라"(לִשְׁמֹר, 리쉬모르) 말 그대로 지키는것,
그래서 행하다는 것은 축그를 예를 들면 열심히 뛰어서 숫을 하며 공격하는 것이고 지키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 골대에 골이 먹히지 않도록 수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축구경기에서 아무리 숫을 많이 해도 숫비를 안해서 골을 다 먹히며 경기를 이길 수 없듯이, 신앙생활에도 열심히 봉사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세상 죄가 들어오지 못하게 수비를 잘 해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 "그에게 친근히 하고 섬기라"(לְדָבְקָה וּלְעָבְדוֹ, 레다브카 울라아브도)
이 다섯 가지는 사실 하나의 핵심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여호수아가 왜 이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이제 요단강 동편으로 돌아갑니다. 그곳은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성막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나머지 지파들과 물리적으로 분리됩니다.
여호수아는 이것을 걱정했습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신앙적인 거리로 이어질까 봐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부합니다. "형제들과 떨어져 살게 되더라도, 하나님과는 떨어지지 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분을 섬기라."
여기서 "친근히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다바크'(דָבַק)는 매우 강렬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2장 24절에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다바크)"라고 할 때 사용된 바로 그 단어입니다. 접착제처럼 달라붙는 것, 떨어지지 않는 것, 그런 친밀함을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말합니다. "하나님께 접착제처럼 붙어 있어라. 떨어지지 마라."

4. 축복과 파송: 나눔의 원리

6절부터 8절을 보겠습니다.
Joshua 22:6–8 NKRV
6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7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그 남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쪽 서쪽에서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기업을 준지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8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과 금과 구리와 쇠와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원수들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지니라 하매
여호수아는 그들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전리품을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너희 형제와 나누라"는 말입니다.
이 "형제"는 누구일까요? 요단 동편에 남아 있던 사람들입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가축과 가족을 지키며 남아 있던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32장의 기록을 보면, 전쟁에 나간 것은 "무장한 자들", 즉 전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가족과 일부 사람들은 요단 동편에 남아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말합니다. "너희가 얻은 것을 독점하지 마라. 남아서 지킨 형제들과 나누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나중에 사무엘상 30장에서 다윗이 아말렉을 치고 돌아왔을 때, 피곤하여 시내에 남아 있던 200명의 병사들에게도 전리품을 똑같이 나누어 준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건을 지키는 자의 분깃이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과 같을지니, 꼭 같이 나눌지니라."
전쟁터에서 싸운 사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뒤에서 지킨 사람도 똑같이 소중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그 역할의 가치는 동등합니다.
Joshua 22:9 NKRV
9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받은 땅 곧 그들의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
그들은 실로를 떠나 길르앗으로 갔습니다. 실로는 당시 성막이 있던 곳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장소를 떠나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5.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

이제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약속을 지키는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은 7년 전에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 약속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약속이었습니다. 이미 땅을 받았는데, 남의 땅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습니다. 자기 가족을 두고 7년간 타향에서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켰습니다. 왜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한 약속,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 나 자신에게 한 약속. 우리는 그 약속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요즘 시대는 약속이 가벼워진 시대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나중에 밥 먹자"고 하고, 실제로 만나지 않습니다. "다음에 연락할게"라고 하고, 연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약속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3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에서 나느니라."
약속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신뢰받습니다. 신뢰받는 사람은 더 큰 일에 쓰임받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 말씀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작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큰 약속도 지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한 작은 약속들, 그것을 지키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인격을 만들고, 신앙을 만듭니다.

둘째, 공동체를 위한 헌신에 대해 생각합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자기 땅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7년간 형제들을 위해 싸웠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공동체의 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땅 받았으니까 됐어.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해."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형제들이 안식을 얻을 때까지 함께 싸웠습니다.
청년 여러분,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나만 잘 되면 그만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만 얻으면 끝입니까?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정, 교회, 직장, 학교—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받기만 하는 사람입니까, 주기도 하는 사람입니까? 자기 몫만 챙기는 사람입니까, 형제의 몫까지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교회를 몸에 비유합니다. "눈이 손에게 내가 너를 필요 없다 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내가 너를 필요 없다 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지체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픕니다. 한 지체가 기뻐하면 온 몸이 기뻐합니다.
청년 시절은 자기 자신을 위해 달려가야 할 때입니다. 공부해야 하고, 취업해야 하고,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동체를 잊지 마십시오. 함께 가는 형제자매들을 잊지 마십시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은 자기 것을 먼저 받았지만, 형제들이 자기 것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습니다. 함께 싸워 주었습니다. 이것이 공동체입니다.

셋째, 거리를 넘어서는 신앙에 대해 생각합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보내면서 가장 걱정한 것은 물리적인 거리가 신앙적인 거리로 이어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단강 동편은 성막에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절기 때마다 와서 예배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지파들과의 교류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당부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 하나님께 친근히 하라."
청년 여러분,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있지 않습니까? 학교에 가면 교회에서 멀어집니다. 직장에 가면 신앙의 공동체에서 멀어집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예배당에 앉아 있을 때는 하나님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는 하나님이 멀게 느껴집니다. 과제 마감에 쫓길 때, 실적 압박에 시달릴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여호수아의 당부를 기억하십시오. "친근히 하라." 히브리어로 '다바크', 접착제처럼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붙어 있을 수 있을까요? 물리적인 거리가 있어도 신앙적인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입니다. 하루에 한 장이라도 성경을 읽으십시오. 바쁘면 한 구절이라도 읽으십시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긴 기도가 아니어도 됩니다. 출근길에, 점심시간에, 잠들기 전에 짧게라도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셋째는 공동체입니다. 바쁘더라도 신앙의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으십시오. 주일예배, 청년 모임, 소그룹. 혼자서는 신앙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이 신앙을 지켰는지 아닌지는 이후의 역사가 보여줍니다. 그들 중에는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들도 있었고, 안타깝게도 이방 신들에게 빠져버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거리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거리 속에서 하나님께 붙어 있느냐 아니냐가 문제입니다.

넷째, 나눔의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전리품을 가지고 가되, "형제와 나누라"고 말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얻은 것을 후방에서 지킨 사람들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분배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정의 문제입니다. "너희도 우리와 함께 한 것이다. 너희의 역할도 소중하다."
청년 여러분,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내가 한 일이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일을 얼마나 인정해 주고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수고를 인정해 주십시오. 함께 나누십시오.
나눔은 물질만이 아닙니다. 인정도 나눌 수 있고, 감사도 나눌 수 있고, 격려도 나눌 수 있습니다. "고마워", "수고했어", "네 덕분이야." 이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6. 결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여호수아 22장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은 "약속을 지킨 사람들"로 기억됩니다. 7년간의 긴 세월 동안 그들은 자기 가족을 두고 형제들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약속을 완수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약속을 어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자기만 챙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멀리 있어도 하나님께 붙어 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거리가 멀어지니까 신앙도 멀어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붙어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나눔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여호수아의 당부를 마음에 새기십시오.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그를 섬기라."
하나님께 접착제처럼 붙어 있으십시오. 떨어지지 마십시오. 그것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변하지 않는 우리의 정체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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