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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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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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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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주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피로한 삶을 끝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어진 신분'으로 들어가는 성탄의 복음
주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피로한 삶을 끝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어진 신분'으로 들어가는 성탄의 복음
1. 서론: "네가 누구인지 네가 정해라"라는 가혹한 숙제 (8분)
1. 서론: "네가 누구인지 네가 정해라"라는 가혹한 숙제 (8분)
(도입 예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여러분, 게임 시작할 때 캐릭터 만드는 '커스터마이징' 해봤죠? 머리 모양, 눈 크기, 능력치 하나하나 내가 정합니다. 요즘 세상은 우리 인생 전체를 그렇게 살라고 말해요. "네가 누구인지 네가 정해라!", "너의 성별도, 너의 가치관도, 너의 꿈도 네가 디자인해라. 그래야 진정한 너다!"
이걸 멋진 말로 '표현적 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라고 합니다. 내 내면에 있는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믿음이죠. 그런데 여러분, 솔직해져 봅시다. 이게 정말 자유인가요, 아니면 숙제인가요?
(교육학적 통찰: 에릭 에릭슨의 정체성 이론)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여러분의 시기(청소년기)를 '자아정체감 대 역할 혼란'의 시기라고 정의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세상이 주는 숙제는 너무 가혹합니다. 내가 나를 만들어야 하니까, 내가 공부를 못하면 '공부 못하는 나'가 내 정체성이 됩니다. 내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으면 '가치 없는 나'가 내 정체성이 됩니다.
내가 나를 창조해가야(I will Create) 하기에, 우리는 24시간 나를 증명(Prove)해야 합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내 존재 자체가 흔들립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현대판 노예 생활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 피로한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건넵니다.
2. 본론 1: 성탄, 하나님이 우리 삶에 '로그인'하신 이유
2. 본론 1: 성탄, 하나님이 우리 삶에 '로그인'하신 이유
(성경적 배경: 율법 아래의 노예) 오늘 본문 4절과 5절을 봅시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율법 아래 있다'는 말은 '무언가를 해야만 인정받는 상태'를 뜻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이었지만,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성적', '외모', '재력', '인싸력' 같은 것들이 새로운 율법입니다.
"이걸 해내지 못하면 너는 낙오자야"라고 속삭이는 기준들 말이죠. 우리는 이 기준들의 '종'이었습니다.
증명의 늪: "공부가 안 되면 게임이라도, 성적이 안 되면 외모라도"
증명의 늪: "공부가 안 되면 게임이라도, 성적이 안 되면 외모라도"
여러분, 왜 우리는 이토록 피곤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증명(Prove)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가장 강력한 '증명서'는 성적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봅시다. 공부는 하기 싫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건 고통입니다. 성적이 내 가치를 증명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는 거대한 공포가 찾아옵니다. "나 이러다 쓰레기 취급받는 거 아냐? 나 진짜 무가치한 사람 되는 거 아냐?"
그 공포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대체 증명(Alternative Proving)’의 길을 찾습니다. 공부로 나를 증명할 수 없으니, 게임 티어로 나를 증명하려 합니다.
"학교에선 공부좀못지만, 롤(LoL)에서는 챌린저야!"라는 외침은 사실 "나를 제발 가치 있게 봐줘!"라는 비명입니다. 성적이 안 나오니 외모나 OOTD(오늘의 패션)에 목숨을 겁니다. 거울 앞에서 한 시간을 보내고, 인스타에 올릴 사진 한 장을 위해 수백 번 셔터를 누릅니다. 공부 못하는 건 참아도, '못생겼다'거나 '센스 없다'는 말은 못 참습니다. 그것이 나를 증명할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친구들은 거친 언어나 반항적인 태도로 자신을 증명합니다. "나 우습게 보지 마,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가시를 세웁니다. 하지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것은 '종의 마음'입니다. 주인의 눈치를 보며 "저 쓸모 있는 종이에요! 저 이것만큼은 잘해요!"라고 외치는 비참한 몸부림입니다.
성탄은 이 비참한 '증명 전쟁'에 종지부를 찍으러 예수님이 오신 날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네 성적표 가져와 봐, 네 외모가 기준에 맞나 보자"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딸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이미 내 아들의 목숨을 값으로 치르고 너를 내 자녀로 샀단다. 너의 가치는 네가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너를 산 나의 '지불 가격'이 결정하는 거야." 여러분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값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명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간을 아껴줌.."얘들아, 너희가 하루 종일 유튜브 보고 인스타 필터 고민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가오' 잡느라 쓰는 그 에너지가 사실은 '내가 누군지 몰라서, 내가 나를 만들려고 애쓰느라' 생기는 에너지 낭비야. 얼마나 피곤하니? 성탄절은 그 에너지를 이제 '사랑하는 일'과 '성장하는 일'에 쓰라고 예수님이 대신 결제해주신 날이야."
아들로 사는 삶이 얼마나…평안한지모름..
(복음의 핵심: 속량) 예수님이 이 땅에 아기로 오신 것, 즉 성육신(Incarnation)은 하나님이 인간의 비참한 현장으로 내려오신 사건입니다(비하). 왜 오셨을까요? '속량'하기 위해서입니다. '속량'은 시장에서 노예의 몸값을 대신 지불하고 자유를 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짊어진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 죄책감, 실패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성탄은 여러분이 쌓아 올린 성적표나 스펙을 보러 오신 날이 아니라, 여러분의 노예 문서에 '완불(Paid in Full)' 도장을 찍으러 오신 날입니다.
3. 본론 2: 조직신학으로 푸는 '양자됨(Adoption)'의 은혜 (10분)
3. 본론 2: 조직신학으로 푸는 '양자됨(Adoption)'의 은혜 (10분)
(신학적 전환: 칭의를 넘어 양자로) 복음은 단순히 "너의 죄가 용서받았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5절 하반절을 보세요.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조직신학에서는 이것을 '양자됨(Adoption)'이라고 부릅니다. '칭의(Justification)'가 법정에서 판사가 "너는 무죄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라면, '양자됨'은 그 판사가 법복을 벗고 내려와 떨고 있는 피고인에게 "이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 우리 집으로 가자"라고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변증: I must Create vs I am Created)
세상의 정체성은 $I\ Must Create$(내가 나를 만든다)입니다. 그래서 늘 불안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정체성은 $I\ am\ Created$(나는 창조되었다), 그리고 $I\ am\ Adopted$(나는 입양되었다)입니다.
내가 만든 정체성은 내가 실수하면 무너지지만,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은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에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친밀함의 회복: 아빠 아버지) 6절을 보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주의 창조주가 여러분의 '아빠'가 되셨습니다. 시험을 망쳐도, 친구와 싸워도, 심지어 죄를 지어 넘어졌을 때도 여러분이 돌아갈 집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성탄절은 바로 그 입양 서류에 예수님이 피로 도장을 찍으신 날입니다.
4. [본론 3] 경기장 안에서 누리는 상속자의 진짜 자유
4. [본론 3] 경기장 안에서 누리는 상속자의 진짜 자유
(질문: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진짜 자유일까?)
여러분, 이제 결론적인 질문을 던져볼게요. "목사님, 제가 이제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면,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하나님은 내 아빠고 나를 사랑하시니까, 내가 사고 좀 쳐도 다 이해해주시겠죠? 이게 진짜 자유 아닌가요?"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아들의 자유'는 그런 '방종'이나 '멋대로'가 아닙니다. 이걸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게 바로 여러분이 좋아하는 '축구 경기'에요.
(비유: 축구장 라인과 플레이어의 창의성)
성탄절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자녀'라는 신분은, 마치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축구장의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된 것과 같습니다.
생명과 같은 라인 (절대적 경계): 축구장에는 '터치라인'과 '엔드라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손을 쓰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규칙이 있죠. 어떤 선수가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니까 내 마음대로 공을 들고 뛸 거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자유로운 플레이가 아니라 '반칙'이고 '퇴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별의 질서, 도덕적 거룩함, 신앙의 기준은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우리 인생이라는 경기가 유지되게 하는 '경기장의 라인'입니다. 이 라인을 벗어나는 순간, 인생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경기가 아니라 난장판이 되고 맙니다.
2. 라인 안에서의 무한한 창의성 (진정한 다양성):
하지만 그 라인 안에서는 어떤가요? 완벽하게 자유롭습니다! 누구는 손흥민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리고, 누구는 이강인처럼 예술적인 패스를 합니다. 수비수로 뛸지 공격수로 뛸지, 어떤 개인기를 부릴지는 여러분의 개성이고 다양성입니다.
세상은 "라인 자체를 지워버려! 네 마음대로 손도 쓰고 발도 쓰는 게 다양성이야!"라고 유혹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거룩한 라인 안에서, 너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플레이를 보여줘!"라고 격려합니다.
(방종 방지: '연봉' 때문에 뛰는 종 vs '명예'를 위해 뛰는 아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종'은 경기장에서 실수하면 구단주에게 혼날까 봐, 혹은 연봉이 깎일까 봐 무서워서 억지로 뜁니다. 눈치만 보죠. 하지만 '아들'인 여러분은 다릅니다.
여러분이 라인을 지키고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어기면 지옥 갈까 봐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나를 이 팀의 주인공으로 뽑아주신 감독님이자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나를 위해 자기 아들(예수님)의 생명까지 내어주며 이 유니폼을 입혀주셨는데, 내가 경기장에서 비매너 반칙을 일삼으며 아버지의 이름을 망신시킬 순 없지!"
이것이 바로 자녀가 갖는 '고귀한 책임감'입니다.
(청소년 적용: 클래스가 다른 자유)
"얘들아, 세상 친구들이 '야, 뭐 그런 구닥다리 성경 말씀을 지키며 사냐? 그냥 네 마음 가는 대로 살아!'라고 유혹할 때 당당하게 말하렴. '나는 내 인생이라는 경기장에서 반칙하며 승리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규칙 안에서, 나만의 멋진 골을 넣을 거야. 그게 하나님의 상속자인 나의 클래스거든!'"
성탄절은 여러분에게 멋대로 살 수 있는 '면죄부'를 준 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대표 선수답게 '거룩하고 멋지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선물해주신 날입니다.
5. 결론 및 적용: 증명을 멈추고 사랑받으라 (5분)
5. 결론 및 적용: 증명을 멈추고 사랑받으라 (5분)
(요약 및 선포) 사랑하는 중고등부 여러분, 오늘 성탄절에 여러분의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한 번 보세요. 세상이 붙여준 '몇 등짜리', '어디 사는 누구', '외모가 어떠한 아이'라는 이름표는 이제 떼어버리십시오.
예수님이 말구유에 오시고 십자가로 가신 이유는, 여러분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 내 사랑하는 딸"이라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이름표를 달아주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적용) 이번 한 주간, 거울을 볼 때마다 이렇게 외쳐보세요.
"나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수용되었다!" 스스로 정체성을 창조하느라 피곤했던 삶을 멈추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자녀'라는 신분을 누리십시오. 그것이 성탄절의 진짜 주인공인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주고 싶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결단 기도) "하나님, 내가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며 살았던 노예의 삶을 회개합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으로 오셔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은혜를 받아들입니다. 이제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만의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V. 기도문
V. 기도문
하나님 우리가 교회에서 거짓된 가르침을 경계하게 하시고, 또 잘못된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가 되지 않게하시고 오직 참된 복음을 겸손히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ord’s Prayers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