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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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204, 310 장
신명기 14장의 말씀가운데 은혜받고 가는 귀한 시간되길 소망합니다.
요즘에 제 일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임신을 했다는 걸 5개월쯤 다 지나갈 때 쯤 알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전까지는 정말 평소처럼 살았습니다. 막 먹고 싶은거 먹고, 여름 휴가를 오사카로 갔었는데 거기서 로러코스터 타고 하루에 3만보 움직이고,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여느 때 처럼 새벽기도회하고—그냥 “내 몸은 내 몸”이라고 여기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임신을 알게 된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나만”이 아니기 때문에 내 안에 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제 일상을 변하게 했습니다.
예전에는 “오늘은 뭘 먹을까?”가 먼저였다면, 이제는 “이게 아이에게 괜찮을까?”가 먼저 떠오고,
예전에는 “조금 무리해도 되지”였다면, 이제는 “이제는 멈춰야겠다”가 됩니다.
예전에는 선택의 기준이 ‘내 컨디션’ 정도였다면, 이제는 내 컨디션보다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더 생각하면서 선택하는 제 자신을 봅니다.
중요한 건, 이 변화가 억지로 규칙을 외워서 생긴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정체성이 바뀌니까 경계가 생겼습니다.
내가 누구인지가 분명해지니, 자연스럽게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오늘 신명기 14장도 같은 흐름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정체성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붙들고, 우리 삶의 가장 현실적인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일상을 재정렬하십니다. 그래서 신명기 14장은 ‘먹는 것’ 같은 작은 선택부터, ‘십일조’ 같은 돈의 흐름까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다시 정렬되도록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거룩은 “정체성”에서 시작: 너희는 여호와의 자녀다
거룩은 “정체성”에서 시작: 너희는 여호와의 자녀다
신명기 14장은 아주 의외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음식 규정이 나오기 전에 먼저 애도를 다룹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사람이 죽으면 슬퍼하기 마련인데 슬픔의 방식에서 몸을 베는 자해적인 애도나,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미는 표식을 남기는 애도의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이유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1절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고, 2절 여호와의 성민이고, 택함받은 기업의 백성이라고 하시면서 슬픔 속에서도 ‘너는 누구인가’를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순간, 우리는 쉽게 무너지고 슬퍼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애도의 첫 자리에서 먼저 “너희는 여호와의 자녀, 이며 성민이며, 선택받은 기업의 백성”임을 잊지 말라고 선언하십니다.
슬픔이 너를 무너뜨려도, 너는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14장은 레위기의 여러 규례들을 정리해주는 말씀인 동시에, 그 모든 규례의 뿌리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자녀다. 너희는 성민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가지고, 이제 다음 절들에서 식탁과 재정의 자리까지 내려오십니다.
저희도 애도와 같은 슬픈일이 있을 때, 때로 낙심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며 여호와의 자녀, 백성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음식 규정은 ‘위생’보다 ‘구별됨’: 식탁이 믿음의 훈련장
음식 규정은 ‘위생’보다 ‘구별됨’: 식탁이 믿음의 훈련장
이제 3–21절입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구분합니다.
3절에 “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하시면서 4-20절까지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이 쭉 나오죠.
땅의 짐승은 특정 특징(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것)을 기준으로 구분해서 대표적으로 소와 양과 염소는 정한 짐승이고 낙타, 토끼,사반, 돼지는 부정하다고 정합니다.
물속 생물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나머지는 부정하다 합니다.
새도 종류를 두어 제한하여 먹으라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맹금류나 사체를 먹는 새는 부정하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19절에 날기도 하고 기어다니는 것도 있는데 이건 곤충을 합니다. 레위기 11장은 메뚜기류는 일부 허용하지만 날개 달린 곤충은 부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21절은 스스로 죽은 것(사체)은 먹지 말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14:21) 같은 독특한 규정도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먹는 것”을 말씀하실까요?
첫째, 먹는 것은 매일 반복됩니다.
저희만 보더라도 먹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맛집있다고 하면 멀어도 찾아가고, 좋은 식당있다고 하면 수소문 해서 찾아가고, 여기가 더 맛있네 저기가 더 맛있네 하면서 누구보다 맛있는거 먹었다고 자랑하는 모습들이 우리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먹는 다는 것은 굉장히 편범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신명기 14장의 의도는 “특별한 날에만 거룩해져라”가 아니라, 평일에도 거룩해져라입니다.
거룩은 예배당에서만 반짝이는 장식이 아니라, 내가 매일 반복하는 자리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먹는 식탁에서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이 규정은 단지 정한 것, 부정한 것과 같이 위생 차원의 목록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앞선 “너희는 여호와의 자녀다”(1절), “너는 성민이다”(2절),라고 했다면 21절에서도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고 말하며 식탁 규정을 마무리합니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애굽과 같은 타지에서, 광야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살았죠. 이것은 주변 민족의 수많은 문화와 관습과 의례를 접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고대세계에서 식탁이 단순히 생존의 뿐만 아니라 ‘누구와 가족을 이루고, 공동체를 이루고, 어떤 신 앞에서 살 것인가’를 들어내는 자리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식탁에서부터 “너희는 내 백성이다”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사소한 먹는 규칙이 아니라, 너희가 소속을 몸으로 기억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는 이 목록을 그대로 지키는 방식으로 거룩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명기 14장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내 안으로 들이고 있는가?
내 삶의 습관은 무엇으로 길들여지고 있는가?
나의 선택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정립되고 있는지 질문합니다.
오늘 우리의 식탁은 음식만이 아닙니다.
내가 매일 소비하는 말과 행동, 늘 핸드폰으로 보는 정보들, 내가 반복해서 드러내는 습관과 관계도 결국 내 영혼의 식탁입니다. 무엇이든 “반복해서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은 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4장은 말합니다.
“너는 아무거나 먹고 아무 데나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거룩은 금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룩은 “구별됨”이고, 그 구별됨은 “나를 살리는 경계”가 됩니다. 임신을 알게 된 이후 먹는 것, 행동하는 선택이 달라진 것처럼, 하나님께 속한 정체성은 우리 삶의 선택을 바꾸어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식탁에서만 멈추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돈의 흐름까지 다루십니다. 왜냐하면 돈 역시 우리 삶에서 가장 반복되고, 가장 강력하게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매년 십일조는 ‘세금’이 아닌 ‘예배의 기쁨’
매년 십일조는 ‘세금’이 아닌 ‘예배의 기쁨’
22절부터 십일조 규정이 나옵니다. 여기서 신명기 14장은 십일조를 “내라”, 돈을 바쳐라로 끝내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라고 하냐면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낸 십일조를 먹으며 네 하나님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십일조는 단지 “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는 예배의 방식입니다.
돈의 흐름이 하나님 앞에 놓일 때, 우리는 다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조항이 붙습니다.
성소가 너무 멀면 물건을 돈으로 바꿔서 가져가고(24–25절),
현지에서 원하는 것을 사서(26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14:26).
이 말씀을 보면 신명기에서십일조가 단지 “빠져나가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기쁨의 예배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즘은 돈이 단지 돈이 아니라, 정체성이 되기 쉽습니다.
“얼마 벌었나”,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 “돈으로 뭘 샀나” 같은 질문이 나를 규정합니다. 그러다 보면 돈이 어느 순간 내 마음의 주인이 되기 쉬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십일조는
내 삶의 주인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내가 가진 것은 내 능력만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신명기가 말하고 있는 십일조의 핵심은 숫자만이 아니라, 주인이 누구냐는 고백입니다.
“나는 내 돈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 고백이 내 재정을 다시 정렬합니다.
그리고 27절이 붙습니다.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
예배는 개인이 혼자 즐기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공동체가 예배를 지속하도록, 공동체의 섬김과 사역이 지속되도록 책임을 가르치셨습니다.
3년 십일조: 교회는 약자의 식탁을 책임진다
3년 십일조: 교회는 약자의 식탁을 책임진다
마지막 28–29절은 더 선명합니다.
3년마다 십일조를 성읍에 쌓아두고,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가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십일조의 규례에 대한 큰 흐름을 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예배(22–27절)가
약자를 먹이는 공동체적 책임(28–29절)과 이어집니다.
즉, 예배가 즐거워 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예배는 공동체의 약한 이들이 실제로 “먹고 배부르게”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교회에도 그대로 질문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실제로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
우리의 예배는 공동체 안에서 약한 이들을 어떻게 품고 있는가?
도움이 “그때그때”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약자를 돌보는 길을 가지고 있는가?
신명기 14장은 거룩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거룩은 “더러움을 피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이 ‘분리’로 끝나지 않고 ‘돌봄’으로 증명됩니다.
거룩하기 위해 구별되지만 폐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일상에 구현하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명기 14장은 우리에게 거룩을 아주 멀리서 찾지 말라고 말합니다. 거룩은 특별한 자리에서만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자리에서도, 식탁의 자리에서도, 지갑을 여는 자리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자녀다. 너희는 성민이다.” 그 정체성을 붙들게 하신 뒤, 가장 흔들리는 애도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가장 반복되는 식탁과 재정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다시 정렬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말씀은 제게도 특별히 가까이 다가옵니다. 저는 올해 만안교회에서의 사역을 정리하고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떠남은 늘 아쉬움이 남지만, 신명기 14장이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자리와 형편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를 붙들게 하십니다. “너는 내 백성이다.” 교회를 섬기며 걸어온 시간 동안, 제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붙드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성도님들의 기도와 사랑, 기다려 주심과 품어 주심이 제게는 큰 은혜였고 힘이었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던 식탁 같은 일상들, 서로를 위해 마음을 쏟던 순간들, 작은 헌신과 큰 인내의 자리들 속에서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신명기 14장의 말씀처럼 오늘도 “너는 내 자녀”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거룩이 삶이 되고, 예배가 돌봄이 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신명기 14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너희는 여호와의 자녀요 성민”이라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흔들릴 때에도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하셔서 슬픔의 자리에서도, 일상의 자리에서도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세상에 끌려가기보다 주님께 다시 나아가게 이끌어 주옵소서.
식탁과 재정까지 다루며 우리의 삶 전체를 거룩으로 부르시는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선택하는지, 무엇을 가까이하며 무엇을 멀리하는지, 또 우리 손에 맡겨 주신 재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까지 주님 앞에 정직하게 살피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말로만 머물지 않게 하시고, 평범한 하루의 반복 속에서 주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드러나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돌보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은혜의 주님,
만안교회의 사역을 마무리하며 올해를 마지막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종을 이 교회에 보내 주셔서 함께 예배하게 하시고, 기도와 사랑으로 섬김의 길을 배우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함께 걸었던 시간들을 주님께 올려 드리오니, 남은 시간 은혜롭게 마무리되게 하시고, 그동안 받은 사랑을 잊지 않게 하시며, 떠나는 자리에서 감사와 축복만 남게 하옵소서.
특별히 만안교회를 더욱 붙들어 주셔서 앞으로도 말씀과 기도 위에 든든히 서게 하시고, 모든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주님의 위로와 강건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모든 영광 주님께 올려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