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4주 설교] 비워야 채워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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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6–55 NKSV
46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48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49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1. 들어가는 말: 가득 찬 방, 빈 방이 없는 마음

사랑하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어느덧 성탄을 코앞에 둔 대림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리고 화려한 트리가 반짝이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십니까? 연말의 들뜬 분위기 속에 있지만, 정작 우리 내면은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다가올 새해에 대한 막연한 불안,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삶의 과제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가 오실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구유'에 누우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여관에 빈 방이 없었던 것처럼, 오늘날 현대인들의 마음에도 '빈 방'이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계획, 너무나 많은 걱정, 그리고 '나 자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마리아의 노래, '마그니피캇(Magnificat)' 라틴어성경, 찬양하다 라는 의미로 앞에 붙여진 이름. 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비움의 영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2. 마리아, 자신의 서사를 멈추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장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부르는 찬가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46-48a, 새번역)
우리는 이 장면을 너무나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으로만 상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당시 마리아의 현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는 약혼한 상태였고, 평범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릴 자신만의 '미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인생 계획에 대한 완벽한 파산 선고였습니다. 처녀의 임신은 당시 사회에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스캔들이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는 대림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문으로 들어오신다."
마리아에게 예수가 찾아온 순간은 축복인 동시에, 그녀가 쌓아 올린 삶의 서사가 중단되는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순간, 자신의 계획과 두려움을 '비워내는' 결단을 내립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자신의 인생이라는 캔버스를 하얗게 지우고, 하나님이 그림을 그리시도록 붓을 넘겨드린 것입니다.

3. 현대인의 비극: 채워야 산다는 강박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마리아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채워라"고 명령합니다. 스펙을 채우고, 통장을 채우고, 인맥을 채우고, SNS의 피드를 채워야만 내가 증명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비어있는 꼴을 못 봅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1분조차 스마트폰을 보며 정보를 채워 넣습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여가 시간을 꽉 채우고,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염려로 머릿속을 꽉 채웁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현대인들의 이러한 상태를 두고 **"영혼의 빈터가 사라졌다"**고 탄식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미 가득 찬 컵에는 더 이상 물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과 욕심으로 마음이 꽉 차 있기에, 예수님이 오셔도 들어오실 공간이 없습니다. 내 인생의 시나리오가 너무 완벽하고 견고해서, 하나님이 개입하실 틈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신앙인의 비극입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주님 오시옵소서"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주님, 잠깐만요. 제 계획이 아직 안 끝났거든요. 여기는 짐이 많아서 누우실 자리가 없어요"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4. 비천함(Tapeinosis): 거룩한 비움

마리아는 본문 48절에서 자신의 **'비천함'**을 하나님이 돌보셨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비천함(타페이노시스)'은 단순히 가난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낮아짐', '비워짐'**을 의미합니다. 그릇이 비어있었기에 하나님이 그곳에 생명을 담으실 수 있었습니다.
본문 53절을 보십시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요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누가복음 1:53, 새번역)
이것은 역설입니다.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하여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은 빈손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마음을 비운 사람은 배부르게 됩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자궁과 같은 '빈 공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은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하는 '채움'이 아니라, 내 뜻을 내려놓는 '비움'입니다.
비움은 포기가 아닙니다. 비움은 '공간 만들기(Making Space)'입니다. 나의 염려가 있던 자리를 비워 기도가 앉게 하고, 나의 욕심이 있던 자리를 비워 이웃을 향한 사랑이 앉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탄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5. 나가는 말: 당신의 구유는 비어 있습니까?

설교를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곧 성탄입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비어있는 구유를 찾아오셨습니다. 가장 낮고, 가장 비어있는 그곳이 거룩한 탄생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저는 여러분에게 **'거룩한 비움'**을 제안합니다.
디지털 비움: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끄고 침묵하십시오. 소음을 비워야 하늘의 소리가 들립니다.
계획의 비움: 내년의 계획에 대한 강박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움켜쥔 핸들을 잠시 놓고, "주님,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마음의 비움: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나 섭섭함이 마음을 채우고 있다면, 그것을 털어내어 빈 구유를 만드십시오.
우리가 비워야, 예수님이 태어나십니다. 내가 죽고 내 안의 고집이 비워질 때, 비로소 우리 삶을 통해 예수가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자신의 계획을 비우고, 그 빈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복된 대림절 4주 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걱정과 욕심, 그리고 나 자신의 계획으로 꽉 막힌 우리 마음에 주님이 들어오실 틈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마리아처럼 우리의 주권을 주님께 이양합니다. 우리 마음의 구유를 비웁니다. 비어있는 우리 영혼에 찾아오셔서 생명으로 잉태되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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