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에 나실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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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9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성탄을 맞이한 특별 본문 묵상이다.
선지서는 예언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에 술술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운 본문들이 있다.
이에 각 절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미가 5:2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 에브라다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이 두 군데가 있다. 유다지파의 베들레헴과 스불론 지파에도 베들레헴이라는 곳이 있다.
에브라다는 곳은 룻기에 나타나는 지명인데 바로 룻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다.
룻기 1:2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창세기 48:7 “7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에브라다가 비옥하다는 뜻이 있다.
다윗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베들레헴 자체는 매우 작은 동네에 불과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분이 가장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신다.
미가 5:3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미가서 4장에서 나오는 딸 시온이 바로 여인이다. 고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해산하기 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해산하기 까지 그들을 압제에 놔두신다는 것이다.
고난에 끝이 있고 그 끝이 해산이라는 말에서 무엇이 느껴집니까?
고난이 무의미하고 아무 결실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험난한 진통 끝에 오는 것이 아이를 낳는 해산이 듯이
우리의 고난에 끝에는 결국 메시아의 오심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온다
그의 형제 => 혈육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혈육관계가 아닌 형제와 같이 가까운 관계를 이미한다.
그 후에 형제 가운데 남은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은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 이방인들 중에 남은 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말씀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고난과 고통이 우리를 주의 품으로 인도하였듯이
어쩌면 우리의 고난도 또한 또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게 된다입니다.
미가 5:4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그는 여인이 해산한 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위엄으로 의지하여 뭐하신다고 합니다.
서서
사극 같은 것을 보면 알현실에 보면 누가 서 있고 누가 앉아 있습니까?
신하들이나 왕을 알현하는 자는 서 있고
왕은 앉아 있습니다.
세상의 왕은 앉아서 다스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은 서서 다스리십니다. 일어나서 다스리시는데
목축한다.
이걸 또 다스린다하지 않고 뭐라고 말씀합니다.
목축한다고 합니다.
먹이시고 기르신다는 것이지요
목자는 양이 있는 곳에 목자도 있습니다. 양을 키운다는 것은 축사에 가만히 놔두는 것이 아니라. 양들과 함께 지내며 함게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함게 가는 겁니다.
미가 5:5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4절 까지는 ‘그가’ 라고 표현 했는데
5절에서는 ‘이 사람은’이라고 합니다. 그가 와 이 사람의 느낌이 어떻습니까? 무엇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까? 이 사람이죠?
4절을 보면 그분이 창대하며 땅끝까지 미친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위치가 고만고만하고 하면 겸손한데 좀 커지면 어떻게 됩니까? 가까이 할 수 있습니까? 멀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주님은 위대해지셨는데 창대해 지셨는데 더 가까워졌습니다.
이 사람이 평강이 되셨다고 하는데…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서 친다고 합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전에는 우리는 아무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납니까? 원수를 대적할 힘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일곱 목자와 여덟군왕은 넉넉한 능력이 우리에게 생겨서 우리가 이제 능히 원수를 대적할 수 있게 되었다는 표현입니다.
미가 5:6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그들이
일곱 목자와 여덟군왕인데 많은 목자들과 지도자들입니다.
앗수르 땅을 무찔렀지만
앗수르 사람이 우리 지경을 밟는다
누가 건지지는가?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모든 대적하는 능력의 근원은 이 목자나 지도자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쫗아내고 병을 낫게 하였지만 결국 그게 누구의 능력입니까? 주님의 능력입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사역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능력이 사역을 감당케 하시는 것입니다.
미가 5:7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미가 5:8 “8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미가 5:9 “9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야곱의 남은 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까지 믿음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를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많은 백성 가운데 있다.
많은 사람들 중에 있는 사람이다.
여러나라와 백성들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고 있는 장소와 혈통은 다를지라도 믿음을 갇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께로 부터 내리는 이슬과 단비같아서 사람이나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어떤 권세나 허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다
상황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슬이 언제 내리는지 모르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내리는 단비와 같이
조용히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움직이는 공동체이죠
수풀의 짐승 중에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믿는 자들을 사자로 표현합니다.
아 이상해요, 세상에서 나는 사자 보다는 초식짐승이나 양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최종 승리를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들레헴 에브라다, 가장 작고 보잘것없던 그곳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릴 왕을 보내셨습니다.
그 왕은 앉아서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서서,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는 목자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말씀처럼
우리 곁으로 더 가까이 오신 왕이십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압제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아직 해산하지 못한 진통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 시간을 헛되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의 끝에는 반드시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남은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거대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많은 백성 가운데 섞여 살아가고,
여러 나라와 문화 속에서 조용히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이슬과 단비 같다고 말씀하고,
또 사자 같다고 말씀합니다.
왜입니까?
우리 안에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건지시는 ‘그분’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약함의 한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작음 속에 감추어진 영원,
고난 속에 준비된 구원,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 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맞이한 우리는
더 커지려고 애쓸 필요도,
상황이 나아지기를 마냥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를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
오늘도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 왕께서
우리의 평강이 되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시며,
마침내 우리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작은 자로 오신 왕을 기다리며,
이슬처럼 세상 가운데 머물고,
사자처럼 소망을 붙드는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