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4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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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피조물 이상의 존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러브레터]
[서론: 피조물 이상의 존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러브레터]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껏 하나님의 섭리 방법 그 가운데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은 이 모든 섭리와 역사하심, 징계하심과 구원의 이유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다른말로 뭐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러브레터 입니다.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피조물 이상의 존재로 부르고 있음을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고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아들로 표현 되며 신부로 표현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피조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에게 인간은 특별한 존재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호세아 2장 17절에서 19절에 이렇게 표현 되는겁니다.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 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을 바알로 섬기는 영적 타락과 지식 없는 망함]
[본론 1: 하나님을 바알로 섬기는 영적 타락과 지식 없는 망함]
호세아서는 북이스라엘 가운데 나타난 영적타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이 바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으로 생각하는겁니다.
바알을 섬기는 방식으로 바알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거에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바알을 섬기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겁니다.
우리가 지금 믿으며 지금 행하는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방식과 예배입니까? 하나님의 것이 맞습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바알로,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긴 것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졌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렇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편한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것은 바알을 섬기는 방식입니다. 이미 100~150년 전에 그 땅에 퍼져있었습니다.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이들은 욕심과 탐욕대로 편한 대로 한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대로 음란 마음에 미혹되었습니다.
산꼭대기는 높은 곳으로 가야 신이 내 말을 더 잘 들어줄 것이다라는 가나안의 오래된 방식이며, 참나무와 버드나무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는 종교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쾌락으로 빠져들고 싶은 인간의 욕심을 그대로 따라간 것입니다.
그들의 타락은 심각했으며 음란과 탐욕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윤리적으로도 타락해 있었고 자신의 이기심대로 행동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겁니다. 이때가 제2의 황금기라 불릴 정도로 부강했던 때 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타락했습니다. 영적으로 찌들었습니다.
거리에는 풍요함 속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쳤습니다. 얼마나 극심하게 타락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의 예배와 삶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지고 있습니까? 호세아 4장 6절은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비추어 보았을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삶을 살고 있습니까?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부요한 자는 저렇게 쾌락에 빠졌습니다. 아모스 3장을 보면 상아로 집을 장식하며 계절마다 집을 옮겨 다닐 정도로 부유했으나 거리에는 불우한 자들이 넘쳐났습니다.
[본론 2: 심판을 넘어 광야에서 소망으로 이끄시는 사랑]
[본론 2: 심판을 넘어 광야에서 소망으로 이끄시는 사랑]
이러한 그들을 하나님께서 심판 하신 후에 뭘 하신다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타이르고 위로하며 소망을 주겠다 하십니다.
그리고 19절에서 20절에는 장가들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하나님을 혼합하여 섬기는 저들인데, 음란하며 창기와 이방신 앞에서 음란한 행위로 그들을 예배했던 저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있을 거랍니다.
음행한 저들에게 다시 장가들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지금 호세아 선지자도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아내를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그 여인은 다른 남자에게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호세아가 찾아옵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시 찾아오겠다는 것입니다.
바람핀 아내는,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그런 여인을 값을 주고 사오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그들을 심판하면 하나님이 함께 수치를 당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찾기 위해 그들을 심판 하십니다. 그들의 모든 것을 다시 거둬들입니다. 그들이 누리던 풍요는 바알로 인한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14절 말씀처럼 그들을 광야, 즉 다른 것은 없고 오직 하나님과 나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그들을 이끌고 가 위로 하시며 설득하시며 당신을 다시 보이십니다.
그리고 심판을 통해 세상에서, 다시 말해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는 것에서 그들을 떼어놓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급하시며 보호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십니다.
어떤 풍요와 번영과 태평성대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임을 광야와 같은 때를 지나게 함으로 알려주시는 겁니다. 이 심판을 통해 노예에서 아내라는 신분으로 회복되는 겁니다.
그리고 바람핀 아내를 찾아오는 건 당시 사회에서는 수치를 짊어지는 행위 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수치를 기꺼이 짊어지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이 기꺼이 수치와 조롱을 감당함으로 그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15절과 같이 포도원을 그에게 준다고 하십니다. 비옥한 땅을 다시 허락하시는 겁니다. 심판은 하나님께로 이끌며 그 이후에 회복이 있는 겁니다.
병 주고 약 주고가 아니라 이미 스스로의 선택으로 노예로 전락한 그들에게 장가듦으로 그들의 신분을 노예에서 하나님의 아내와 같은 신분으로 회복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풍요와 번영을 있게 하시는 겁니다.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5절 말씀에 아골 골짜기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소입니다. 여리고 근처에 위치한 이 골짜기는 아간이 여호와께 바쳐진 물건을 훔친 후 그와 그의 가족이 돌에 맞고 불태워져 죽임을 당한 곳입니다. 아골(아코르)은 ‘괴로움’을 의미하며, 이 골짜기는 절망과 죽음의 땅, 황폐한 처소로 상징됩니다.
그곳을 지금 하나님께서 소망의 문으로 바꾸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을 소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의 것으로 회복하려는 겁니다. 사랑으로 회복시키는 겁니다.
[본론 3: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만물의 회복]
[본론 3: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만물의 회복]
심판이 왜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비두시지 그러거나 말거나 굳이 심판으로 사람을 왜 괴롭게 하십니까? 사랑한다면서요. 사랑하니까요.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요. 우상은, 바알은 없는 겁니다. 가짜 거짓입니다.
그것에 속아 하나님 없는 삶으로 스스로 걸어갑니다. 자기 편한 종교생활을 만들어 냅니다. 호세아서 4장 12절에서 14절로 말씀드렸습니다
스스로 사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영원한 삶을 살 수 없으며 사망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분만이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니 내버려 두시지 않는 건 거짓된 것을 향해 사망과 죽음으로 나아가는 인간을 놓아두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시기에 놓아두지 않으시는 겁니다. 간섭하시고 다가오시고 참견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싫으십니까?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창조주 유일하신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포기치 않으신답니다. 가장 좋은 것이 그분께 있습니다. 아직 우리는 그 가치를 잘 몰라 하나님의 사랑이 힘겨울 수는 있으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모든것은 사랑하셔서 사랑으로 하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그 땅의 모든 피조물까지 회복시키신다고 합니다. 우리의 회복이 우리의 회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회복됨으로 그것이 이어져 다른 모든 피조물이 회복됩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우리의 위치가 엄청납니다. 우리가 회복됨으로 세상이 회복되어 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 돌아감으로 세상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갈 때 세상이 회복됩니다.
[결론: 하나님을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삶]
[결론: 하나님을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삶]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 것은 심판은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를 가장 깊은 사랑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공의와 정의를 결혼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의를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는 겁니다. 사랑으로 그렇게 하신답니다.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닌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가드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는 겁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사건입니다.
모든 섭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친 광야로 이끌어 나를 설득하십니다. 위로하십니다.
그 모든 아픔, 상처, 고난, 고통을 위로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여 나에게로 너를 이끌려 함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의 남편이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 완성되어 이미 역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당신을 알리고자 하시며 알리셨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인애를 원한다, 이것을 풀어 해석하면 변함없는 사랑을 원한다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변함없는 사랑을 원하십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사랑으로 오심은 우리를 사랑해서이며,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리셔서 당신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갖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것을 위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어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타이르시고 위로하시며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세상의 욕심을 따르며 하나님을 따른다고 바알을 따르며 하나님을 따르듯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편한 대로 하나님의 주신 말씀이 아닌 전통과 나의 이해로 하나님을 따르며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끊임없이 점검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