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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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오늘은 재미 있는 에피소드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 청년이 지방 출장 때문에 기차역을 갔습니다.
이 청년이 기차표를 끊고 보니까…기차 탈 시간이 좀 남은 거죠.
그래서, 빵 한 봉지와 신문을 사서….대합실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청년이 신문을 펴서 읽고 있는 사이…
한 노인이 이 청년의 옆 자리에 와서 앉습니다.
그러더니…이 노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 쳥년의 빵 봉지에서 빵을 하나 꺼내 먹는 거죠.
순간적으로, 청년은 당황스럽고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쳥년이 빵을 하나 꺼내 먹으면, 노인도 빵을 하나 꺼내 먹는 거예요.
청년이 또 하나를 먹으니까, 노인도 또 하나를 꺼내 먹는 거죠…
그러다…빵이 마지막 한 개가 남게 됩니다.
그러자 이 노인이….. 그 마지막 빵을 꺼내서는 반으로 쪼개는 거죠.
그리고는……그 반쪽을 청년에게 주고, 다른 반 쪽은 자신이 먹는 겁니다.
그러더니…이 노인이 청년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유유히 자리를 떠납니다.
여러분….이 청년이 이 노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와…저런 뻔뻔하고 몰염치한 인간 같으니라고….”
청년은 속으로 이렇게 분노했죠.
그런데….시간이 되어서, 청년이 기차에 올라타게 되었습니다.
기차에 앉아서 청년이 자신의 가방을 여는 순간….깜짝 놀라게 됩니다.
가방 속에….자신이 산 빵 봉지가 그대로 있었거든요.
여러분….무슨 이야긴지 아시겠습니까?
이 청년이 자기 것인 줄 알고 먹었던…그 빵 봉지가… 사실은 자기 게 아니라…노인의 빵 봉지였던 거죠.
자신의 빵 봉지는 사자마자 가방에 넣었는데….이 청년은 그 사실을 까많게 잊어버리고요….
똑 같은 빵 봉지가 옆에 있는 걸 보고….그것이 자기 것인 줄 알았던 겁니다.
결국…..노인이 자신의 빵을 뺏어 먹은 게 아니라..
사실은 청년이 노인의 빵을 뺏어 먹었던 것이죠.
재밌는 이야기죠?
그런데….여러분, 혹시…이런 경험 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내건 줄 알고, 챙겼는데….알고보니…내 거랑 똑 같은 남의 것을 챙기는…실수…
또… 상대방 잘못으로 생각했는데…알고보니….그것이 내 실수였던….
저게는 그런 실수들이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뭡니까?
우리는 종종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확신하지만,
사실은 내가 틀렸을 가능성도 항상 존재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할 때,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죠.
어떤 생각입니까?
내가 옳다는 생각, 내가 맞다는 생각, 내가 정상이라는 생각이죠.
그런데….여러분, 이런 생각이 사실은…위험한 착각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우리는 항상 옳을 수 없고, 항상 맞을 수 없고, 또 항상 정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야고보는 우리가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맞고 옳다는 확신 가운데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 하죠.
그런데… 이 예화에 나오는 청년처럼,
자신이 했던 그 비방과 판단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뻔뻔하고 몰염치한 인간이 …
다른 사람이 아니라…바로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바로 겸손이죠.
내가 틀리 수 있다는 겸손, 내가 비정상일 수 있다는 겸손, 나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겸손…
오늘, 야고보 말씀을 통해 그런 겸손을 배우기 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야고보는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문제를 통해 겸손을 가르쳐 주고 있죠.
사실….우리가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지만 않아도요….겸손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것은 교만한 자가 흔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행동이죠.
오늘 야고보가 가르쳐주는 진리를 통해….우리도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이 비방과 판단을…
이제는 우리 안에서 뿌리채 뽑아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더욱 겸손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4장 11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여러분…비방이 무엇입니까?
보통 당사자가 없는 데서..그 사람의 뒷담화를 하는 거죠.
그런데…그 사람을 세워주는 뒷담화가 아니라…
그 사람을 깍아 내리는 뒴담화죠.
오늘, 야고보는 비방에 대해....크게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요…..
색칠한 부분만 한 번 다시 읽어 볼까요?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여러분…..
야고보는….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 곧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어떤 계명입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이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으로 두 가지를 말씀하셨죠.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가 똑 같이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우리가 이웃을 비방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죠.
그렇죠?
이웃을 비방하는 것은, 결코…이웃을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죠….
사랑한다면…비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웃 사랑이라는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것도…계명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을 어긴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야고보가 여기서….더 무서운 말을 합니다.
이웃을 비방하는 것이 단순히 계명만 어기는 것이 아니라….
율법 자체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우리가 율법 자체를 비방하고 판단한다면…
이게 결국….무슨 말이 됩니까?
우리가 무엇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게 됩니까?
마치…이런 거 아닙니까?
이 법이 왜 이 모양이냐고….이 법이 도대체 뭐냐고…..그 법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고 비방하는 거 아닌가요?
여러분….이 말은 결국….법의 권위에 도전하겠다는 거죠…..
야고보가 하는 말이 바로 이런 의밉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방할 때, 그것이 단순히 남을 비방하는 문제로 끝나지 않고요..
그 법….이웃 사랑이라는 …그 법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가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법을 누가 만드셨습니까?
이웃 사랑의 법….
하나님이 만드셨죠…
그렇다면, 이 법에 대한 도전은 곧…. 하나님에 대한 도전과도 같다는 겁니다.
무서운 말이죠….
남을 비방하는 것은…말하자면.... 하나님이 세우신 법 보다 내 생각이 더 위에 있다는 교만인 겁니다.
야고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남을 비방함으로…하나님께 도전하는 교만을 저지르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므로…여러분…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시기 전에….야고보의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남을 비방하는 문제는 단순히, 나와 이웃과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단순히 계명 하나를 어기는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와 이웃과의 문제를 넘어 나와 하나님과의 문제가 되는 ……
그래서….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심각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다시, 11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또….색칠한 부분만 읽어볼까요?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남을 비방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 될까요?
그 이유를 야고보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역할인 재판관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율법을 지키는 준행자가….감히 그 율법을 판단하는 재판관이 되려는 것이고요.
말하자면….하나님의 역할을 대신 하려는 것이죠.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오케스트라를 보시면…..오케스트라에는 수많은 파트의 연주자들이 있죠.
그런데… 연주하는 사람들이….연주를 하다가요…
옆 사람의 음이 틀렸다고 해서,
옆 사람의 연주가 이상하다고 해서…
자신의 연주를 멈추면 될까요?
연주를 멈추고는 그 사람에게 “왜 거기서..틀렸나고….왜 똑바로 못하냐”고 말할 수 있나요?
없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멈추는 것은 오직 지휘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연주자들의 연주를 지적하고 판단하는 일은 지휘자의 역할입니다.
연주자들은 지휘자가 멈추지 않는 이상 끝까지 연주해야 하죠.
율법 앞에서 우리의 역할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율법 앞에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누가 율법에 맞지 않는지….누가 잘못 하고 있는지….
그것을 판단하는 일은 오직 재판관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일이죠.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가 된 사람들, 성도들은
서로를 주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고 부르죠.
이 형제 자매라는 관계는 주님 앞에서…평등한 관계를 말하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높낮이가 없습니다.
그런데…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방하기 시작하면…
이 관계 속에 높낮이를 정하려는 것이 됩니다.
누군가 형제 중에서…맏형이 되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맏형의 자격을 허락하신 것은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로마서 8장 2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다 그분의 아들과 딸로 삼으셨지만….
그 중에 맏아들이 된 자가 누구라고요?
예수님….
우리는 다 똑 같은 하나님의 아들, 딸이고……다 똑같은 형제 자맵니다.
그리고….우리 중에서 맏아들, 맏형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죠.
이 말은 형노릇 할 사람이 예수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것을 우리는 복음의 평등성, 은혜의 평등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 앞에 설때, 은혜로 서로를 바라볼 때…우리는 누구든지 평등해 진다는 겁니다.
그러나....여러분…..우리가 복음을 무시하고, 은혜를 망각하기 시작하면…
이 평등성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어떻게요?
우리가 복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은혜로 서로를 받아 들이지 못할 때….
우리의 관계 속에는…세상의 기준이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준이요?
얼마나 가졌는가….얼마나 이루고 성취했는가, 또 어떤 지위에 있는가…
그런 것으로….서로의 높낮이를 정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면….띄워주고, 인정해 주고, 대우해 주고…
그러나..그 기준에 못 미치면….깔보고, 하대하고, 무시하는….
이런 세상 기준이 들어올 때…그 공동체의 평등성은 결국….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우리는 무엇보다…..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복음으로, 은혜로…..날마다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리고….이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 앞에, 그리고 죄의 유혹 앞에 우리는 모두 똑 같은 자들….” 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주의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아무도 없고요,
또…죄의 유혹이 올 때, 넘어지지 않을 사람도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우리는 누구도….다른 사람의 죄를 비방할 자격이 없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야고보는 최종적으로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모든 판단의 주권이 오직 한 분……하나님께만 있다고요.
왜요?
법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요…그 법으로 심판할 이도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죠.
즉, 구원하고 멸하기를 결정할 수 있는 이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리를 넘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어떤 유명한 우주 과학자가 지구를 가리켜 이렇게 불렀습니다.
“창백하고 푸른 점”
여러분…이 과학자가 지구를 왜 이렇게 불렀을까요?
우리가 지구 안에서는…이 지구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우리 인류가 대단한 듯 보입니다…
그런데요….과학자들이….저 광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를 보니까…
이 지구가 그냥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구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하고…크고 멋진 것들로 가득한 우주 속에..
지구는 오히려 창백하고 연약해 보이는 푸른 점에 지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어쩌면….이것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아닐까?
위대하고 전능한,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한 점과도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 존재가…어찌 하나님처럼, 다른 존재를 감히….판단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한 가지 예화를 더 들면요….
스티븐 코비라는 박사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스티븐 코비가 박사가 직접 경험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스티븐 코비가 뉴욕의 한 한적한 지하철 안에 있었답니다.
전철이 한 역을 지나가는데, 한 남자가 아이들과 함께 그 지하철을 타게 되죠.
그런데…아이들이 지하철을 타자마자….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면서 난장판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멍하니 앉아 아이들에게 어떤 제제도 하지 않는 거죠.
이것을 보고 있던 스티븐 코비 박사가 화가 나서 그 사람에게 한마디를 합니다.
"선생님, 아이들이 저렇게 소란을 피우는데 좀 나무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비로소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들더니 힘없이 대답을 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한 시간 전에 병원에서 아이들 엄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지금 정신이 없고, 아이들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저러는 모양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그 사람의 속 사정도 모르면서….보여지는 단면만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할 때가 있죠.
특히…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더 그러죠.
그런데….이것은 마치….빙산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빙산은 물 위로 보이는 것보다 물 아래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거대하고 크잖아요.
우리는 물 위에 떠있는 빙산의 작은 일부분만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볼 수 없는 빙산의 그 거대함 처럼…..우리가 판단하는 그 사람에게는…..생각보다 더 거대한 아픔이나 말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이지….극히 일부분만 볼 수 있고, 일부분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라나…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죠.
우리는 빙산의 일부만 보지만,
그분은 빙산 전체를 보고 계시죠.
그래서, 야고보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해 볼까요?
“네가 뭔데…이웃을 함부로 판단하냐…..
그러므로….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취해야 할 태도는 오직 겸손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겸손은 애써서 낮아지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리가 아닌데…일부러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원래 있던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 가장 낮은 자리가 바로 우리 원래의 자립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우주 속에 보이지 않는 한 점….
보일 듯, 말듯한…
그 작고 작은 점이 바로 우리의 자립니다.
여러분….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면…
겸손이란, 결국….나 자신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있어야 할 우주 속의 한 점…
창백하고 푸른 점….
그 자리가 어딥니까?
감히….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 자리죠.
율법을 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율법을 준행하는 자리죠.
그리고, 맏형의 자리가 아니라, 복음 앞에서 은혜 앞에서 서로가 평등한 자리죠.
그 자리는 결코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지 않는 자립니다.
또…서로가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자립니다.
혹시라도….누군가가 여러분을 비방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여러분도 거기에 반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억울하게 비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도 비방하는 자리에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모든 걸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겁니다.
누군가 그들을 비방하려 하면…
오히려….우리는 그들을 감싸고, 변호해야 합니다.
결코…비방하는 자리에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방은 결국….비방을 받는 사람에게도....비방하는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일화를 들려 드리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 다 아시죠?
최후의 만찬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이ㅛ…
다빈치가 이 그림을 그릴 때…제자들을 먼저 그리고요, 그리고 예수님을 마지막에 그렸답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 중에서…..다빈치가….가룟 유다의 얼굴을 그릴 때….
평소에 자신과 다투던.,..원수 같은 그 사람을 모델로 그렸습니다.
그렇게 가룟 유다를 그리고 나서, 예수님을 그리려고 하는데….
다빈치가 도무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가 없는 거죠.
그의 마음에 원수같이 여기는 그 사람 때문에….마음이 계속 걸리는 겁니다.
결국….다빈치는 그 사람을 마음으로 용서하고 나서야….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하죠.
이 일화가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것이.. 비방하는 그 사람에게도 결코 유익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비방은 상대방에게 흡집을 내고 상처를 남기려는 것이죠…
그런데….그 비방이요…..
사실은 비방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도 흡집과 상처를 남긴다는 겁니다.
여러분….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방하게 될 때…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도 흠집을 남기게 됩니다.
어떤 흠집이요?
하나님을 향한 도전자라는 흠집…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 했다는 흠집…
그리고….무엇보다….사랑해야 하는 내가…
사랑하는 것에 실패한…… 실패자라는 흠집이죠.
여러분….우리 안에 이런 아픈...흠집을 남기는 비방과 판단을 더이상은 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겸손히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내일이면…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입니다.
여러분….예수님은 우리를 비방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리를 마다하시고….
오히려 자신이 비방을 받는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 자리를 끝가지 지키신 분이시죠.
그분이 지키신 자리는 십자가라는 가장 낮은 자리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시간의 마지막 구절이었죠…
야고보서 4장 10절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마치겠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