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1:6, 눅1:67-75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
Notes
Transcript
눅1:78절과 말 4:2절의 관계
기다리는 자들이 부른 찬송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이 설레어합니다. 제가 늘 가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왜 성탄절인데 선물은 아이들이 받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주인공도 아닌데 왜 아이들에게 성탄의 선물을 해야 할까요? 저는 왜 성탄 선물을 못 받는 걸까요? 그래도 아이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기쁨니다.
우리가 성탄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성탄에 아기 예수님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는 분의 아기 때 생일을 우리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이들이 있고 못 누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자들이,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다리는 자의 찬송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씨와 복과 땅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들 부부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언제일까요? 아브라함과 사라가 참으로 대단한게 그들 살아 생전에 약속의 실현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약속의 실현을 믿음으로 믿고 기다리고 맛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의 칭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이 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주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중에 만족할 만큼 받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삭을 출생함으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모든 것을 받은 것 처럼 기록합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을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봄으로 앞으로 역사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라는 이삭을 낳고 이 믿음으로 찬송했습니다. 이삭의 출생을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고 찬송했습니다.
이와 동일한 찬송이 마리아의 찬송입니다. 눅1:45에 보면 엘리사벳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찬송입니다. 엘리사벳 역시 말씀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사람이기에 같은 믿음의 여인을 보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찬송에 이어 마리아가 찬송합니다. 46절에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한다고 말합니다. 왜 마리아는 찬양할까요? 처녀로 임신해서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54-55입니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심을 찬양합니다. 여기에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 등장합니다.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 즉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실 것이다고 찬양합니다.
마리아는 임신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한 아이가 가지는 의미를 찬송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리아가 보통 여인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신 약속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찬송하는 것입니다. 마리아 역시 아브라함과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있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다렸기에 내용을 아니 찬송하는 것입니다.
사가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68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사가랴도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약속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백성을 돌아보십니다. 사가랴도 역시 아브라함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하고 노래한 것입니다.
사라의 찬송, 엘리사벳의 찬송, 마리아의 찬송, 사가랴의 찬송. 모두 기다림의 찬송입니다. 무엇에 대한 찬송입니까?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을 기다리며 하는 찬송입니다. 오늘 이 사람들은 전부 아직 예수님을 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의 찬송이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돌아보심을 찬송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며 찬송합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음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바라보고 기다렸으며,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세례 요한의 임신을 통해 예수님이 약속되로 오시는 분임을 알고 기다리고 찬송했으며,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찬송했습니다.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성취될 것을 보고 찬송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살아가는 우리의 찬송이 이들과 함께 부르는 찬송이어야 하고 그보다 더 감격과 기쁨의 찬송이어야 합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여 참된 찬송을 올려드리기 바랍니다.
둘째 기다리는 자들의 찬송의 내용입니다.
사라는 무엇을 찬송했습니까? 우리가 2주 전 주일에 살펴본 대로 이삭의 출생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찬송했습니다. 게다가 사라의 찬송은 할례 후에 찬송입니다. 즉 세례받고 난 이후에 찬송했습니다. 그러니 구원을 찬송한 것이죠.
마리아는 사라의 찬송을 이어 받았습니다. 찬송의 내용이 동일합니다. 내가 구주를 임신해서 찬송한다가 아닙니다. 48절 그의 여종을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마리아는 결혼하지 않았기에 불임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리아가 말하는 비천함은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3:21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에 비천함이 등장합니다. 우리의 낮은 몸이 비천함입니다. 동일한 단어입니다. 우리의 비천함과 대조되는 몸이 예수님의 영광의 몸입니다. 부활한 몸입니다.
우리의 비천함은 세상에 있는 몸입니다. 육신입니다. 성경에서 육은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죽은 몸을 성경은 비천함이라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바로 이 부분을 노래한 것입니다. 내 몸은 죄와 사망으로 인해 죽음이라는 굴레 아래서 살아가는 몸이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내 몸이 영광의 몸이 될 것이다. 죄와 사망아래 살아가는 내 몸을 그가 돌보시고 구속하심을 찬송합니다.
사가랴의 찬송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68절 같이 읽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사가랴는 예수님의 탄생을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사가랴는 세례 요한의 탄생을 보고 노래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사가랴는 요한의 출생을 노래하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임신을 노래했습니다. 사가랴는 세례요한을 찬송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가랴는 세례 요한의 출생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된 구원자를 보내 주실 것을 믿으며 찬송한 것입니다. 사가랴도 요한이 구원자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예수님 앞서 오는 예언된 엘리야임을 알았습니다. 요한이 출생했으니 이제 구속주가 오신다, 이것을 찬송한 것입니다. 찬송의 내용은 속량입니다.
속량이라는 단어는 돈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값을 치루고, 대가를 치르고 사는 것입니다. 몸값입니다. 누가복음 2:38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안나라는 선지자가 동일하게 예수님을 보고 속량을 말합니다. 이제 이 아이로 인해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사가랴는 요한을 통해 구속주가 뒤이어 오시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찬송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7:16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돌보셨다는 말이 사가랴의 찬송과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죽음 가운데서 살리는 것을 돌보셨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2:6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편을 인용한 것입니다. 사람을 잊지 아니하고 찾아오셔서 구원하시는 것을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사가랴의 찬송과 같은 찬송입니다.
우리는 성탄절로 모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찬송하며 무엇을 찬송합니까? 성탄절은 우리의 절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 타락 이후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날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고, 약속대로 구원자가 오셔서 우리를 위해 탄생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사람들과 다르게 구원이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찬송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속량을 찬송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속량을, 하나님의 구원을 즐기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오심으로 진정한 속량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해마다 보냅니다. 해마다 보낼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자기백성을 돌아보시고 그 소식을 듣는 모든 자들이 기뻐하게 하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망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모든 자들이 타락했습니다. 우리 역시도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었고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면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 없는 인생에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보다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병들고 지치고 연약한 인생에 구주가 찾아오셨다는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의 사건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오셨습니다. 기다리는 우리 인생에 실제 구원의 소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오셔서 우리의 인생을 속량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 자녀의 인생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성탄은 찬송하는 사람들의 날입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합시다. 그가 행하신 구속을 찬송합시다. 찬송으로 인해 즐기고 찬송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