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할 수 없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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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역사적 배경

때는 바야흐로 국왕국 이스라엘 왕 아악이 봉차된 시기 전 약 874~854년경이었다. 아람왕 베나닷은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수도인 사마리아를 포위했다. 아랍 왕국은 이스라엘 북쪽 국경에 위치하여 두 나라 사이의 갈등과 전투가 잦았던 나라다. 두 나라가 갈등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로는 영토 문제였다. 가릴리와 같은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전략적 차원에서 선점하려는 양국의 군사정책 때문이었다. 둘째로는 경제 문제였다.
아란 왕국은 동서를 잇는 무역로에 위치하여 이는 양국의 경제적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외교 문제였다. 두 나라는 서로를 효과적으로 대적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과 외교적 동맹을 서로 강화하고자 했고 비로소 군사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아란 군대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이스라엘 군대는 대패배하여 도주했고 사마리아는 포위가 되었다. 이러한 군사적 상황은 엄청난 경제적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특히 먹을 것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었다. 그때 엘리사가 예언했다. 내일 아합대의 자머리아 성분에서 고운 밀가루 한스알을 한세길로 매매하고 보리두스알을 한세길로 매매하리라. 이 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곡식 가격이 평소의 가격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한 장관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 침묵할 수 없는 소식 고문은 이런 상황 속에서 일어난 극적인 이야기를 보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네 명의 나병 환자와 그들이 발견한 뜻밖의 전장의 상황이다. 에이 사라진 아랑 군대 첫째로, 사라진 아랑 군대다.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는 네 명의 나병 환자가 굶주림 속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일찍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의 회중들로부터 격리되어 성 밖에서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아무도 돕는 이가 없이 굶어 죽기 직전이었던 그들은 서로에게 말하였다.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도 굶어 죽고 여기서 남아 있어도 굶어 죽을 것이니 차라리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아람 군대의 진영으로 들어가서 항복하자. 그들은 아란 군대가 자신들의 항복을 받아주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겠지만, 그들이 살려주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뇌나병 환자들은 아란 군대의 진영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란 군인은 한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도착하기 전 밤중에 아랑 군대들로 하여금 엄청나게 많은 병고 소리와 말소리 대군들이 행진하는 소리를 듣게 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실제로 있었던 군대들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란 군인들 모두에게는 실제처럼 들린 일종의 환청이었다. 그래서 아란 군대의 지도자들은 생각했다. 이스라엘 왕이 햇사람의 왕들과 애국 왕들의 값을 주고 그들을 오게 하였다. 그래서 그 많은 아랑 군인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극심한 두려움 속에 장막과 말과 나귀까지 버려두고 홀몸으로 도주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사를 구원하고자 베푸신 기적의 사건이었다. 여러분들의 아람 군대는 무엇인가?
도저히 맞출 수 없어서 절망하고 절망하게 하고 죽음의 벼랑 끝자락까지 몰고 가는 문제는 무엇인가? 사업 실패, 가정의 불화, 절망적 질병, 경제적 궁핍,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겪고 있는 죽음의 위협인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일과 기적 사이에 커다란 구분점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두 가지 모두 평범한 일일 뿐이다. 기적을 위해서는 더 많이 힘을 쓰셔야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니 당신의 고난으로 온 우주와 세상을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나병 환자들은 절망의 밤에 굶어 죽을 위협 앞에서 어차피 자신들은 죽게 될 목숨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절망적 사항에 믿음으로 도전하였다. 비록 우리가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할지라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면 하나님이 살 길을 주신다. 자신의 처지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희망 없이 사는 것은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하나님. 아무도 도울 수 없는 절망의 밤에 믿음으로 위대한 일을 꿈꾸며 도전하는 자의 자들에게 희망의 아침을 선사하신다. 그러므로, 강구하기를 멈추지 말라.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있음을 잊지 말라. 쉬지 말고 기도로 도전하며 싸우기를 멈추지 말라. 하나님의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비 나병 환자들의 기쁨. 둘째로, 나병 환자들의 기쁨이다.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은 아람 군대의 진영 끝에 이르렀다. 거기서 한 장막을 발견하고 들어가서는 실컷 먹고 마셨다. 굶어 죽어가던 그들에게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만찬이었을까? 그들에게는 계획에도 없었던 뜻밖의 양식이었다. 그것을 마음껏 먹고 마시며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장막 안에 가득한 금은 보석들과 값비싼 의복들을 발견하고는 그것들을 감추어 두었다. 또 다른 장막으로 이동을 해서 또 다른 보물들을 취하였고 자기들만이 아는 장소에 감추어 두었다. 그들에게 이 놀라운 상황의 반전은 서로의 볼을 꼬집어 보고 싶을 만큼 실감이 나지 않는 의외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굶주림에서 배부름으로 거지에서 부자로 꿈에서 현실로 죽음의 절망에서 생명의 희망으로의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으니 그 누구도 감히 꿈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내 나병 환자들은 마치 비현실의 세계에 들어와서 꿈을 꾸는 것과 같은 행복을 누렸다. 그래서 그들은 두렵던 절망과 패배의 밤을 환희의 송가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사는 것은 관증의 연속이다. 믿으면 믿을수록 더 많은 증거들을 주시기에 절망의 밤에도 우리의 믿음은 결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으로 기대하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절망의 한숨을 기쁨의 함성으로 바꾼다. 이제껏 살아온 우리 인생의 날들을 뒤돌아보자.
하나님을 얼마나 자주 꿈꾸는 것과 같은 위대한 일을 우리에게 베푸실 특히 삶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셨던 놀라운 응답은 마치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기적과 같은 기적과 같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폭풍의 허감 속에 해치사 빛으로 인생의 큰 위기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기회다. 하나님을 만나고 기적과 같은 응답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씨 침묵할 수 없는 소식, 셋째로, 침묵할 수 없는 소식이다. 격정적인 기쁨의 시간이 지나갔고 잠시 후 나병 환자들은 평정심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자신의 친구들에게 일치하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마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그들은 배불렀다. 많은 재산도 차지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성 안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동포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성 안에 있는 백성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어 있는 줄 알고 두려움 속에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소위를 건전한 양심에 비춰 보며 돌이켰다. 빨리 성으로 들어가서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기쁜 소식을 빨리 가서 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까지 확신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절망의 밤을 보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들이 본 그 놀라운 기쁨 소식을 전하였다. 굶주림과 두려움 속에 떨던 백성들은 그 소식을 듣자 환호하였다. 그들은 텅 빈 아람 군대의 진으로 달려가서 음식을 마음껏 먹고 마셨다. 그들이 챙길 수 있었던 제물은 덤이었다. 생각해보라.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 나병 환자가 기쁜 소식을 전해주지 아니하였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어느 바다를 향하고 있는 배가 있었다.
얻은 밥에 큰 폭풍을 만났다. 선원들은 죽을 힘을 다해. 배를 보호하고 자기 동료들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배는 암초에 부딪혀서 좌초되고 많은 선원들은 목숨을 잃었다. 밀려와 살아남은 사람은 단 3명이었다. 알고 보니 그 바다는 많은 배들이 지나가는 해로였는데 계절마다 물살의 변화가 아주 심할 뿐만 아니라 많은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한 해에도 여러 번씩 사고가 나는 곳이었다.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세 사람은 함께 결심했다. 바닷가에 움막을 짓고 해난 사고에 살아남은 자신들의 목숨은 덤으로 받은 행운이니 이제 남은 인생을 값지게 쓰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제일 먼저 힘을 합하여 숲에서 큰 콩나무를 잘라 등대를 세웠다. 그리고 세시성 순벌을 정해 돌아가면서 등골을 밝히기로 했다. 세 사람의 그러한 봉사의 목적은 하나였다.
그것을 항해하는 배들이 안전하게 지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또 다른 배 한 척이 조난을 당했다. 세 사람은 힘을 다하여 작은 배를 타고 풍랑이 있는 밤바다로 나가서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건져냈다. 그렇게 살아남게 된 사람들은 이제 세 사람. 이전에 새 사람처럼 자신들도 거기에 살면서 조난당한 배들의 선원들을 구조하겠다고 자문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등대도 몇 개 더 세워졌고 함께 거주하는 인원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속도동이 더 지어지고 주방시설도 확장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 시간에 한 사람이 건의했다. 우리가 이 어려운 구조사업에 효과적으로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단합이 잘 되어야 합니다. 구조는 단합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의견에 공감했다.
숲속 옆에 숙소 옆에서 수시로 파티를 열어 열 수 있는 화려한 연회장이 건축되고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모여서 친목을 다졌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고 흐르고 난 후 사람들은 이제 어두운 밤에 등대에 불을 밝히고 물에 빠진 자들을 구조해 내는 일보다 교제하고 파티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회의 시간에 한 사람이 건의를 하였다. 이제 세상은 많이 변했고 근로자들에 대한 대우도 달라져. 앞으로는 8시간만 근무합시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만 구조작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각자 취미생활로 가정생활에 충실합시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더 많은 사람은 올소를 외치며 큰 박수로 그 의견에 동의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한 폭풍으로 풍랑이 이른 밤이었다.
여러 척의 배들이 길을 잃고 항해하다가 난파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 위에서 이리저리 쓸려 떠밀리면서 외쫓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고로 아비규환이 된 밤바다와는 달리 해변가 연회장에서는 찬란한 샹드리아와 불빛 아래서 많은 구조대원들이 화려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장난이 창문을 통해서 앞바다에서 구조를 외치는 비명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은 연회장의 음악 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에 묻혔다. 그들은 마침내 이렇게 풍랑이 드높게. 이는 밤바다에 작은 배를 타고 있다. 구조 활동을 하러 나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파티가 거의 끝나갈 때 밤바다에서는 살려달라는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해변에 더욱 크게 들려왔다. 그러나 한때 밤바다 빛나던 등대들의 불빛은 이미 오래전에 꺼졌고 누구 한 사람? 밖으로 나와서 해변을 살피는 이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전도하지 않는 현대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참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과 애끓는 마음이 있는가. 삼, 적용각, 결론, 교회가 전도하지 않는 것은 죄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상실한 모든 교인들의 죄가 합쳐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단호하게 돌이켜 전도하기로 결단을 하느냐이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과 자녀, 남편, 아내 사랑하는 친구와 이웃들의 죽은 영혼을 생각하라. 그들이 처할 운명을 생각하라. 다시 한번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멈추지 말고 우리를 살린 예수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자. 응
[전도 설교 독려 하는 말씀]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들로 하여금 전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래서 요새도 이제 계속 설교 준비를 하면서 느끼는 건데 부흥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은 교양이 잘 돼 보편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어요.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고.
그걸 위해서는 한다. 그것이 하나의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한 번 더 말씀을 주셨고 그리고 지금 우리 세 번째 오늘 공부하는 게 교회학기도 세 번째 게 됐는데 네 번째까지도 지금 말씀을 하나하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해가 바뀌어도 더 열렬하게 기도하면서 모금을 전하는 부흥의 역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복음의 역사가 부흥의 역사가 여러분들 교회 속에서 일어난 게 그렇게 목숨을 건 그런 기도가 확실하게 필요한 겁니다.
그거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한번 경험을 해야지만 그래야지만 진짜 상대성으로 그때 언제 한 번 전도에 대해서 설교를 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그게 언제였었나? 정도 축제하는 5월달에 또 5월달 그렇지?
6월달에 우리가 새생명 축제 했었지 5월달에 그 설교를 교회에서 한 사람을 손 들어봐. 봐요. 어 네 사람이구나. 세 사람은 세 사람은 아직 오기 오기 저기 뒷전이 아니라 그 설교를 좀 그 받아가지고, 이게 누구 저기 중국 사장님한테 받으면 될 거야.
이 원고 가지고 있지 아주 그리고 마지막에 내 같은 밤바다의 영화 그것도 다 나눠져 있어요. 그래서 인제 여기 못 들은 사람들 세 사람을 자꾸 얘기하자면은 뭐냐 하면은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던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고 하다가 이제 그 풍랑을 만났어요.
그래 가지고 이제 저 멀리 보이는 이제 어떡하든지 배에 접근을 육지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거기에 암초들이 많아 가지고 거기에 부딪쳐서 배가 산산조각이 났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죽었고 그중에 몇 사람들이 이제 간신히 살아남아서 육지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이거는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다.
생각하면서 이제 우리 어차피 다 죽었을 사람들이야 죽었을 사람들인데 이렇게 살아났으니까 우리가 이제는 이 위험한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는 사람들을 돕자 그래 가지고 이제 등대도 세우고 그리고 이제 열심히 그 일을 해서 많은 조난당하는 배들을 많이 구워냈어요. 그런데 이제 시간이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나태지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우리가 전도를 잘하려면 서로 인간관계가 좋아야 되고 친목도 하고 또 숙소도 짓고 그다음에 뭐 파티장도 짓고 이렇게 했는데 나중에는 이제 사람들이 이렇게 캄캄한 밤바다에 나아가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생각하면서 이제 하게 돼요. 그런 것을 이제 전두하 그 구원하는 일을 그만두고 자기네들은 이제 파티를 하는데 저 바깥에서는 이제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설들을 강력하게 해 가지고 사람들에게 도전을 해야 돼요. 뭐 기회는 많잖아. 주일 오후도 있고 주일 오후도 있고 수요일도 있잖아. 그런데 강력하게 설교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너무 많은 울림을 줘야 돼. 그렇게 하지 않고 안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무슨 원리를 생각했냐 하면 시골에서 기름 짜는 원리를 생각해 봐. 참기름을 참깨를 가지고 참기름을 짜잖아. 그런데 참깨를 갖다가 그냥 그냥 누르는 게 아니라 참깨를 볶잖아.
먼저 아 볶아서 그렇게 해서 인제 노릇노릇하게 볶아졌을 때 그때 집어넣고 그다음에 눌러서 깨의 기름을 짜는 거야. 마찬가지로 그래야지만 이제 볶아야지만 기름이 온전히 싹 빠져나온단 말이야. 그러니까 어떡하든지 간에 모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야 돼요. 설교를 통해서 감동을 줘야 되는데 어떤 감동이냐 하면 전부 해야 되겠다. 우리 아빠가 아니면 우리 담임 목사님이 저렇게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면서 설교를 하는구나.
그런 나라도 도와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그렇게 도전할 수 있어야 되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 목회 상황들을 꼭 하고 뛰어넘어야 돼. 자꾸 거기서 안 되는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안 돼.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꾸 찾고 변명을 하려고 하면은 안 된다. 변화가 없잖아.
여기 와서 같이 공부하고 6개월이 지나고 7개월이 지나고 8개월이 지나고 해도 지금 전체 국위 시작한 지 9개월 됐지만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그만뒀어 그런 부담을 못 떨치고 그냥 그냥 상황에 그냥 딱 상황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거지 그렇게 해서는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나는 하고 싶어 대략 15분 정도 차도 마시고 좀 쉬시고 그렇게 계속 시작했습니다.
6월 15일 날이었네. 이 능소선교회에 오늘 또 이제 떠나버렸어요. 윤영광 목사님부터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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