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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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
서론
서론
인생에는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만남이나 우연처럼 발생하는 사건들을 경험할 때, 초자연성을 믿지 않는 현대인들은 그저 ‘운이 좋았다’거나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며 가볍게 넘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압니다. 그 기막힌 우연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 세밀한 섭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사도행전 8장의 말씀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우연처럼 찾아온 그 놀라운 축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한 사람의 구원 이야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떻게 환경을 주관하시고, 사람을 준비시키시며, 정확한 시간에 개입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은혜의 추적기’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낭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가 여러분에게 그런 낭만적인 만남의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연으로 포장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가 어떻게 한 영혼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는지, 그리고 그 축복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갖게 하는지 본문을 통해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본론1
본론1
이 에피소드는 철저히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당시 빌립은 사마리아에서의 성공적인 복음 사역으로 매우 분주하고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나타나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로 가라고 지시합니다. 가사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고 있는 가자 지역으로, 구약 시대에는 블레셋의 성읍이었던 곳입니다.
주의 사자가 내리는 명령은 종종 그 이유나 결과를 미리 밝히지 않습니다. 칼빈은 이를 두고 "우리의 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출발했다면 예루살렘을 거쳐 가사까지 가는 길은 150km가 넘는 먼 여정이었고, 1세기 팔레스타인의 광야 길을 홀로 걷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토를 달거나 묻지 않고 즉각 순종합니다.
그렇게 지시하신 길을 며칠간 내려가던 빌립은 마침내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고위 관리였는데,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이 광활한 광야 길에서 정확한 시간에 약속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간의 눈에는 기적이고 우연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성령님께서 주도적으로 진행하신 일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빌립에게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빌립이 수레에 접근했던 바로 그 시각, 내시는 성경을 읽고 있었고, 그것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한 이사야서 53장을 읽는 중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본문과 타이밍은 없었을 것입니다. 빌립은 내시가 읽는 소리를 듣고 "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묻습니다. 내시는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해하며 빌립을 수레로 청했고, 빌립은 바로 그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처럼 세밀합니다. 한 영혼을 위해 전도자를 준비시키시고, 정확한 장소와 시간에 만나게 하시며, 심지어 읽고 있는 성경 구절까지도 주관하십니다. 우리의 구원 사건은 언제나 하나님이 주도하신 결과입니다.
본론2
본론2
빌립이 광야에서 만난 이 내시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당시 고대 누비아 왕국이라 불렸던 에디오피아에서 온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에디오피아의 왕들은 신성한 존재로 추앙받아 직접 정치를 하지 않았고, '간다게'라고 불리는 여왕(대비)이 국정을 수행했는데, 이 내시는 그 나라의 모든 국고를 맡은 실세 관리였습니다.
성경이 굳이 그를 '내시'라고 반복해서 부르는 데에는 의도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신체적으로 훼손된 내시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교로 개종하여 예루살렘까지 예배하러 왔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비록 신분상 유대교의 중심부에는 들어갈 수 없는 경계 밖의 사람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갈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에 이어 이 내시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에디오피아는 지리적인 '땅끝'이었습니다. 또한 유대교 안에서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던 내시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은, 복음이 생물학적·사회적 '땅끝'까지 도달했음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이사야 56장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고자(내시)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내가 내 집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약 내시가 빌립과 헤어진 후 이사야서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면, 바로 이 대목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전율하며 감격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복음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합니다. 복음은 그 어떤 신분이나 신체적 조건, 지리적 거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도가 아닌 평범한 일꾼 빌립을 통해, 세상이 소외시킨 한 사람을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입양하셨습니다.
본론3
본론3
에디오피아 내시의 입장에서 이 날의 사건을 재구성해 본다면, 모든 것이 기가 막힌 '우연'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지루한 광야 길에서 하필 이사야서를 읽고 싶어졌고, 마침 이해되지 않는 구절을 마주했을 때 누군가 곁에 나타나 말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 낯선 이방인(빌립)이 자신이 읽던 고난받는 종의 노래(사 53장)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완벽하게 풀어낼 때, 내시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점에서 이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빌립을 미리 사마리아에서 불러내어 광야 길로 이동시키셨고, 내시의 손에 이사야 두루마리를 쥐어주셨으며, 성령을 통해 수레로 다가가게 하셨습니다. 내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며 세례를 받기까지, 하나님의 정교한 시간표는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리켜 '낭만'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낭만입니까? 우리 인생의 배후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길목에서 복음을 준비하시고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이것이 신자만이 누리는 삶의 신비요 낭만입니다.
더 나아가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사용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직접 내시에게 복음을 가르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빌립'이라는 사람을 참여시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때, 굳이 우리 같은 인간을 동참시키시는 이유는 그 영광과 기쁨을 우리와 함께 누리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어떤 성경 구절에서 시작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칠 수 있는 준비된 전도자였고, 하나님은 그의 순종과 실력을 통해 한 영혼의 운명을 바꾸셨습니다. 세례를 마친 후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가셨을 때, 내시는 더 이상 빌립을 찾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기쁨으로 길을 갔다"고 기록합니다. 빌립이라는 도구는 사라졌지만, 내시의 안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복음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기쁨'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적용점
적용점
첫째로, 내 삶의 ‘우연’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십시오
우리는 오늘 에디오피아 내시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들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발견합니다. 그날 아침, 내시는 자신에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장소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성령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빌립과 내시가 만나기 2~3일 전부터 이미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사마리아에 있던 빌립에게 천사를 보내 광야 길로 가라고 지시하셨고, 한편으로는 예루살렘에 있던 내시에게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손에 넣게 하셨습니다. 내시는 자신이 왜 그 길을 가고 있는지, 왜 하필 그 성경 구절이 읽고 싶은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시간에 두 사람을 마주치게 하셨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들 속에, ‘우연’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는 자신이 보고 아는 것 외에, 언제나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하심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65절의 말씀처럼,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주님께 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회심과 여러분이 처한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섭리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단지 운이나 우연으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밖에서, 우리 위에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예기치 못한 순간을 즐기는 ‘그리스도인의 낭만’을 회복하십시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 삶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의 낭만'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자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결코 맛볼 수 없는 이런 신비로운 낭만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인생의 광야 길을 걷고 있다고 느끼며 낙심하지만, 실상은 그 광야 한복판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의 내시를 보십시오. 그는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지만, 동시에 내시라는 신분 때문에 유대교의 경계선 밖에서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빌립과 헤어진 후에도 '기쁘게' 길을 갔습니다. 만약 그가 가던 길에 성경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야 56장에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내시)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내가 내 집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라는 예언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귀한 이름을 얻게 된다는 이 약속을 읽었을 때, 그가 느꼈을 전율과 감격이 어떠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낭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과 상처를 아시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며 당신의 자녀로 인쳐 주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상황 속에는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능력도 무한하고 지식도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의 삶을 낭만적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신뢰하십시오. 내시의 구원 이야기가 단순히 그가 하나님을 찾은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추적하셔서 당신의 품으로 안으신 이야기인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기적과 같은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준비된 빌립’이 되어 누군가의 축복이 되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실 때 ‘빌립’이라는 인간 도구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직접 내시에게 보내어 복음을 가르쳐 주실 수도 있었지만, 굳이 빌립을 부르셔서 이 복잡하고 먼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때 우리를 참여시키셔서, 그 구원의 영광과 기쁨을 함께 누리게 하려는 그분의 일하시는 방식 때문입니다.
빌립은 주의 사자가 내린 명령에 토를 달거나 이유를 묻지 않고 즉각 순종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거둔 사역의 성공이나 자신의 편의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빌립은 성경 어느 곳에서 시작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칠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사야 53장의 말씀으로부터 복음을 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빌립처럼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알고, 자신이 믿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내시를 진정으로 구원한 것은 빌립의 능력이 아니라 그가 전한 ‘복음’ 자체였다는 점입니다. 전도자는 그저 복음을 들려주는 통로일 뿐이며,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오직 복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이유는 그들이 특별한 능력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립과 내시가 만났던 그 가사 땅은 지금 전쟁의 참화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비참한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도, 그리고 오늘 우리 곁의 이웃들에게도 정말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뿐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누군가에게 우연처럼 찾아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준비된 빌립’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품고 나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