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장 16-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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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리석은 자랑

본문: 고린도후서 11장 16-21절

찬송:

오늘은 고린도후서 11장 16-21절 말씀을 가지고 "어리석은 자랑"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바울은 자신을 비난하는 거짓 사도들의 방식, 즉 세상적인 조건과 배경을 자랑하는 방식'어리석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린도 교인들을 깨우치기 위해 부득불 그들의 방식을 빌려 '어리석은 자랑'을 시작한다. 본문은 육신을 따르는 자랑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리고 성도가 진정으로 분별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16-18절은 육신을 따르는 자랑의 어리석음을 말한다.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18절).
바울은 지금 자신이 하는 자랑이 결코 주님의 성품을 따르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그는 대적자들이 좋아하는 방식, 곧 '육신을 따르는 자랑'에 동참하는 척하며 그들의 실체를 폭로하려 한다. 여기서 육신을 따른다는 것가문, 학력, 외모, 언변 등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무런 영적 가치가 없는 것들을 내세우는 행위를 의미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랑거리를 만들라고 유혹한다. 남보다 더 많이 가졌거나, 더 높은 위치에 있음을 증명해야만 인정을 받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육신의 자랑에 목숨을 걸 때가 많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어리석음'이라고 단정한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느냐가 유일한 자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신의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그 경쟁에 뛰어들지 말아야 한다. 성도의 자부심은 세상적인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아 주셨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는 혹시 내 마음속에 은근히 나를 드러내고 싶은 육신의 자랑이 자라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리석은 세상의 자랑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높이는 진정한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19-20절은 거짓된 가치관을 용납하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20절).
바울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거짓 사도들의 횡포에는 너무나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한다. 대적자들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종삼고 그들의 소유를 빼앗으며 심지어 인격적인 모독까지 가했지만, 교인들은 그것을 '카리스마'나 '권위'로 오해하며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참으로 기괴한 용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분별력이 사라진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언변이나 강한 카리스마를 영적인 능력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참된 분별력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가르침이 십자가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역의 동기에 성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는지를 살피는 데서 나온다. 겉모습이 강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권위는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리더십은 복음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힘과 능력에 속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성도를 종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성도의 종이 되기를 자처한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던지는 아첨이나 화려한 모습 뒤에 숨은 탐욕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세상적인 권위에 무릎 꿇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오직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는 진리의 말씀 앞에만 온전히 복종하는 깨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21절은 약함 속에 감추어진 사도의 위엄을 말한다.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21절).
바울은 대적자들이 자신을 비난할 때 썼던 '약함'이라는 단어를 역설적으로 사용한다. 대적자들은 바울이 성도들에게 굴림하지 않고 섬기는 태도를 보고 '약해 빠졌다'고 비웃었다. 바울은 그 조롱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래, 나는 너희를 휘두르지 못할 만큼 약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바울이 진짜 무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대적자들처럼 육신적인 힘을 쓰지 않는다는 거룩한 풍자이다.
사도의 참된 위엄은 사람을 압도하는 폭력적인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섬기는 '복음적 약함'에서 나온다. 바울은 대적자들이 담대하게 자랑하는 그 어떤 육신적인 조건들보다 더 담대하게 내세울 것이 있지만, 그것이 복음을 가릴까 봐 스스로 약한 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가진 영적 기백이자 사도의 자부심이었다.
우리는 강함이 곧 능력이라고 믿는 세상의 논리를 거부해야 한다. 주님은 가장 강하신 분이었으나 십자가에서 가장 약한 모습으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 삶에 나타나는 약함이나 부족함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 약함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기 때문이다. 세상이 비웃는 나의 유순함과 겸손함이 사실은 악한 세력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무기임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랑은 영적으로 어리석은 행위이다. 우리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거짓된 권위에 속아 우리 영혼을 내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약함을 조롱하지만, 우리는 그 약함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오늘 하루,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어리석은 자랑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새벽, 말씀을 통해 우리가 버려야 할 어리석은 자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남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거나 세상적인 조건을 자랑거리로 삼았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자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사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며 우리를 미혹하려는 거짓된 가치관들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힘에 매료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보여주신 섬김과 희생의 길을 묵묵히 따르게 하옵소서. 세상이 약하다고 비웃는 우리의 겸손과 온유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삶의 무거운 문제를 가지고 이 새벽 주님 앞에 엎드린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일터와 가정에서 겪는 수많은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하늘의 지혜로 능히 이기게 하옵소서. 특별히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치유의 광선을 비추시고, 눈물로 기도하는 모든 제목 위에 주님의 선하신 응답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먼저 육신의 자랑을 내려놓는 삶이 되게 하시고, 우리 모든 성도가 오늘 하루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헛된 자랑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소유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약함을 통해 주님의 강함이 드러나는 복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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