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31-39절(사랑으로 덮어주시는 하나님)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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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인사 합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말은 단순한 인사나 위로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또 기분 좋으라고 건내는 말도 아니며, 
“하나님이 너 사랑할껄? 그러니 긍정적으로 살아”
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우리가 방금 건낸 이 말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던 힘이며, 능력이며, 소망이며, 은혜 입니다. 
독일 신학자 필리프 슈페너는 로마서 8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만약 성경을 반지에 비유한다면, 로마서는 보석이고, 8장은 그 보석에서 가장 빛나는 중심부의 정점이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칭함을 받는 성도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삶을 살고, 
마침내 도달하는 영화로움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고난 속에, 무너지고, 낙심하며 
승리보다는 패배에 가까운 삶을 살아갑니다. 
특히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중, 세상 사람들도 잘 겪지 않을 시련과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거나 낙심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 왜 하필 저 입니까? 
하나님 왜 저한테 이런 고통과 고난을 주십니까? 
저를 사랑하시는 것이 맞습니까? 
왜 저를 이렇게 고통과 고난 가운데 버려두시고 바라보지 않으십니까?” 
이해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우리는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만약 확신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본문 31절 입니다.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일에 대하여.. 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위하신다는 확언적 선언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대하여 그 누가 감히 어떤 말을 할 수 가 있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자가 아무도 없다 
라고 바울은 선언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중대한 확증은 
32절 입니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아들의 생명과 우리의 생명을 바꿔주신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의 구원은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의 끈에 의해 확고히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온 우주에 선포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2절 입니다.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의 판결은 신자들의 구원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근거 입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구원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인생은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로 
하나님의 사랑을 끊어낼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고백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과 위험과 사고가 온다 는 뜻 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위기와 고난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성경에도 주님께 고침을 받은 자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셨지만, 모든 죽은 자들을 나사로 처럼 살려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비참하게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성경은 고난을 피하게 해주겠다, 해결해주겠다 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단순히 사고나 고난을 막거나, 중질환에 걸리지 않기 위해, 풍요의 삶을 위해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동기로 종교인은 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삶에서 겪는 모든 고난 속에서 함께 하실 것이라 약속 하십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향한 그 분의 사랑을 흔들 수 없을 것 이라 선포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확신하게 하십니다. 
고난과 고통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고난과 고통을 주시면서 고생해보라고?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내가 구원을 줬고, 자녀도 삼았는데 왜 너는 그것 밖에 못해.. 탈락이야~ 라고 하시기 위해서?
고작 이렇게 하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전혀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 생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걷지 않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 곳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탄식은 우리가 처한 고난으로 하나님을 보게 하고, 인내하게 합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고난과 역경에 처한 우리를 향한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어 나갑니다. 
어두운 삶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은 고난 가운데서도, 성령을 통해 
우리를 비추는 태양과도 같은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부르짖지만, 
결국 모든 일들 속에 /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알고, 확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분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덮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계획과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이 전혀 다르듯이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과 내가 원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은 문제를 척척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인 우리와 동행하시길 원하시며, 보호하시기를 원하시며, 더 깊은 관계를 원하십니다. 
저희 아들이 막 뛰기 시작할 때, 밖에 데리고 나가면 남자 아이라서 어디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계단 두 칸 정도는 항상 뛰어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좀 높은 화단에 올라갔습니다. 
저는 밑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넘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함께 길에서 걷고 있었는데 
화단의 끝이 높아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저를 믿지 못하고 뛰어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빠라고 무조건 신뢰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몇번 안아서 내려줬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높은 곳에서 아빠가 손을 뻗으면 받아 주는 구나 라는 것을 경험하니까 
그 이후에는 일부러 뛰어 내릴테니 받아 달라고 올라가기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35절 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 
그 어떤 세상의 위협과 고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는 것은 당연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꾸만 의심합니다. 
왜 나에게,, 왜 그렇게 하시지? 라고 의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도우심을 망각해버립니다. 
하나님은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오히려 이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유익이 되게 하십니다. 
절망적인 상황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선을 이루는 항목에 포함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은 있을지언정, 절망은 없습니다. 
오히려 고난은 우리의 관점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는 거대한 전환 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시간을 통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사랑하시는 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실패와 고난과 환난의 장소는 하나님께 버려진 곳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장소 입니다. 
우리는 비로소 그곳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뛰어내리는, 
하나님의 손과 힘을 의지해야 함을 배우고 알아 갑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하나님과 믿음의 교제를 깊이 나누는 자들의 삶은 변화 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 입니다.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나의 고난과 약함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기대려고 할 때 
그때가 가장 강한 때임을 확신 하시기 바랍니다. 
37절입니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근거로 받는 확고한 승리에 우리의 지분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소망과 자격이 없는 나를 위해, 낙심과 좌절로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되어질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하여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고 
우리의 손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마~ 하나님을 믿지마~ 이걸 사랑이라고 해? 
그렇게 하다가는 구원 못받아~ 
라는 사탄과 세상의 소리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어떤 핍박과 환난과 고난으로.. 
심지어 손해를 보고 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훼손 되지 않습니다.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영원한 주인되시며, 
영원한 능력이시며,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덮고, 승리를 확신하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의 여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 모든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 이십니다. 
나의 힘과 능력으로, 경험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하나님의 사랑을 가볍게, 때로는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38절 과 39절 입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울은 삶의 고난과 고통이라는 긴장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영원한 안정감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받은 수 많은 고난과 이해할 수 없었던 환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고백하고, 묵상하며 그 사랑 안에 거하면서.. 
자기의 아들조차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이 땅에서 바울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런 자격없고 낮은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며 주의 자녀로 삼아주신 
한계가 없으며,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사랑안에 거하며,,
삶의 처음과 끝까지, 시간과 공간의 모든 것을 넘어 
우리를 보호하시며, 사랑하시며, 함께 하시는 
우리 주님과 함께 기쁨으로 걸어가는 
사랑받는 주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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