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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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시편 42:1–5 NKRV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사랑합니다! 꿈사땅 2025년 마지막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2025년도를 마무리하고 2026년에는 소망하는 것이 있는가? 아마 각자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를 맞이하면서 소망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전도사님이 꿈사땅을 바라보며 2026년에 바라는 소망은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가고 전도사님과 다들 친해지고, 교회오는게 즐거운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다면, 과연 소망이란 무엇일까? 소망이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것은 희망과 같은 뜻을 가진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소망과 희망을 구분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찬 기대’, ‘하나님의 약속’,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가 함께 읽었던 시편 42편을 쓴 저자는 고라의 자손이다. 고라의 자손은 레위 지파이면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문지기 역할했던 사람의 후손이 쓴 시이다. 말씀을 살펴보니까 기분 좋은 상황이 아님을 첫 구절에서부터 심상치 않게 하나님을 찾는다.
시편 42:1 NKRV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내 영혼도 주님을 찾기에 갈급하다고 한다. 지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해 너무나 목마른 상태라고 표현한다. 보통 여러분들 목마를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떤가?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느낌이다. 전도사님은 주일에 예배 마치고 헬스나 런닝을 하는데, 특히 석촌호수에서 런닝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석촌호수 중간 중간에 급수대가 있어서 따로 물을 챙기지 않아도 무료로 물을 마시기 좋게 셋팅되어 있어서 석촌호수를 런닝코스로 하기에 너무나도 좋다. 그런데 겨울이 오면서 평소처럼 물을 따로 안 챙기고 런닝한 후에 목이 말라서 급수대에 가서 물을 틀어보았는데 물이 안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허둥지둥 석촌호수 안에 있는 카페에 가서 물을 구매하고 싶다고 말하니까 3천 원, 5천 원 하는 것이다. 여기가 과연 한국이 맞는지 물가에 놀라서 석촌호수에서 나와 급하게 편의점을 찾아서 천원을 주고 물을 흡입했다. 그렇게 전도사님이 물을 찾는 동안 목이 얼마나 타들어가며, 힘들었을지 여러분들 상상이 되는가? 시편 저자는 어떤 상황인지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절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라는 표현이다.
시편 42:3 NKRV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편 기자는 얼마나 자신의 상황이 슬펐으면 3절에서는 자신의 슬픔을 이렇게 표현한다. 얼마나 낙심이 커져서 하루종일 눈물을 흘렸으면 자신의 눈물이 아침, 저녁, 24시간으로 자신의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편 기자는 이렇게 슬프고 암울하고 우울함이 그의 일상이 되어버리고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큰 슬픔에 젖어있는 시편 기자에게 하루종일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같지 않는 감정을 크게 느낀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조롱할 때마다 그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심이 점점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왜 시편 기자가 슬픈 상황에 있었는지를 4절에서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시편 42:4 NKRV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여기서 성일은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 부림절, 오순절을 말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성일이 다가오면 기쁨과 감사가 넘쳐서 예배하러 성전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인도하던 일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 구절을 보면서 많은 신학자들은 이 시편의 글을 썼을 당시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버려 더 이상 성전에서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그 시기에 사실상 백성들은 성전에서 멀리 있었고, 하나님의 임재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과거에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었던 그 시절과 지금 그럴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하고 비교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더욱 괴롭다고 고백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1907년에 평양에서 대부흥이 일어나 조선에 교회가 점점 세워져가고 있는데, 일제강점기가 찾아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일본천왕을 숭배하라는 압박이 들어오면서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며 조선을 조롱하는 당시 시대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피가 거꾸로 솟겠는가? 그때 수많은 성도들이 핍박과 압제와 폭력과 고문과 옥에 갇혀 끝내 죽음을 맞이했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조선의 독립과 회복을 소망하며 살았는지 상상하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장면들을 생각하면서 그 마음으로 시편 42편을 읽었을 때 시편 기자의 상태는 하나님과의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은 사람의 정서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버려졌다고 느끼는 사람의 감정이 격해진 표현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2절에 이렇게 말한다.
시편 42:2 NKRV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언제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러 갈 수 있을지 고백한다. 구약성경에 사무엘이 등장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누군지 아는가? 바로 한나이다. 한나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했던 여인이었고, 항상 예배를 늘 정성껏드리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은 아내가 두 명이 있었는데, 브닌나라는 아내는 임신하게 되었고 한나는 임신하지 않는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임신이 안되는 여자는 저주받은 여자와 같이 제 역할을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니 한마디로 여자로써의 인생이 끝난 것과 같은 상황이 한나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가혹한 상황은 브닌나가 잘난체를 했는지, 아무튼간 한나를 엄청나게 화나게 만들고 계속 괴롭혔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렇게 마음이 괴로웠던 한나는 어떤 액션을 취했는가? 그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군의 여호와께 자신의 괴로움을 돌봐달라고, 자기를 기억해주시고 잊지말아달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아들을 주신다면 그 아들의 모든 인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그의 머리에 칼을 대지 못하게 하겠다고 서원기도를 드린다. 그때 옆에서 한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사장 엘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저 여자 술취해서 난리났네, 언제까지 취해있을 작정인가! 포도주를 좀 끊어라!”라고 말한다. 그때 한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무엘상 1:15 NKRV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문장은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이다. 한나는 자신의 마음에 슬픔과 괴로움이 생길 때 곧장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여인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했던 한나는 훗날 사무엘을 가지게 되었고, 그녀는 하나님께 서원기도한대로 하나님께 사무엘의 모든 인생을 바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무엘을 장차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정시대를 여는 마지막 사사로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과 2대 왕인 다윗 왕을 세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그녀의 인생은 저주 받은 인생처럼 보였으나,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채워주시고 선하심으로 인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스러운 마음을 드린 분이 계시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요한복음 12:27 NKRV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이 점점 십자가에 죽을 날이 가까워져올 때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죽음의 때를 어느 누구도 몰랐고 예수님만이 아셨던 죽음이었다. 성탄절에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해주셨지만, 예수님은 한가지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이 땅에 죽으러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군인들에게 붙잡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렸던 세 번씩이나 기도가 이 기도였다.
마태복음 26:39 NKRV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여기서 잔에 담긴 내용물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마셔야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이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만, 인간이셨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세상의 최악의 고통과 고난과 아픔과 저주를 다 홀로 짊어지고 그 진노의 잔을 마셔야했던 것이다. 그 지옥과 같은 잔을 아버지께서 하실 수 있다면 자기에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고백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를 고백한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도 마음에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누구를 찾아갔는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결국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가? 기도하는 자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언제나 행복하고 기쁘면 좋겠지만, 마음이 괴롭고 무너지고 우울한 날이 찾아올 때도 있다. 이러한 감정은 누구든지 올 수 있고, 심지어 예수님도 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셨다. 오늘 시편을 쓴 고라 자손도 마찬가지고 일제강점기에 신앙을 지킨 믿음의 선배들도 마찬가지고, 한나도 마찬가지고, 예수님도 마음에 고통이 있을 때 어떻게 기도의 자리에 나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면 우리는 의지할 수 없다. 마치 병을 잘 고치는 의사를 알고 그 의사 선생님에게 나의 아픔을 가지고 갔을 때 낫게 해줄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직접 손으로 지으시고 나보다 나를 더 가장 잘 아시며 나를 이해하실 수 있고, 나를 선하신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나의 아픔을 토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라 자손도 오늘 나의 상황과 힘듦을 바라보다가 슬퍼하는 중에도 시인은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시편 42:5 NKRV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여기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가 사실은 “하나님을 기다리라”로 히브리어로 번역된다. 그런데 기다린다는 이 동사의 기본형은 “기대”라는 뜻을 가진다. 이 단어는 기쁜 상황에서 쓰는 단어가 아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가지는 기대이다. 우리는 이 기대를 뭐라고 표현하는가? 바로 소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지금 처한 내 상황은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 같지만 하나님이 나타나 도와주실 것이기에 나는 여전히 찬송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시 임재하실 것이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그리하여 고라 자손의 기도는 어떻게 성취되는가? 훗날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백성들이 기뻐 즐거이 노래를 부르며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놀라운 회복을 시키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역사에서 똑똑히 보여준다. 우리 대한민국도 어떻게 되는가? 수많은 믿음의 순교자들의 기도를 통하여 한국이 독립하게 되고, 초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기도로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회복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된다. 한나를 통하여서 사무엘이 태어나고 이스라엘의 왕권이 새롭게 시작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열어가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게되는 구원의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셨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기도가 아주 작아보일지 몰라도, 믿음의 사람이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세상에 보여주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시라.
여기 있는 꿈사땅 모두가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그 믿음으로 기도드리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여러분을 통해 놀랍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을 날마다 누리시는 저와 꿈사땅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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