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회 설교]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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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주제: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성경 구절: 레위기 19:1–4
성경 구절: 레위기 19:1–4
거룩한 삶의 초대
거룩한 삶의 초대
Leviticus 19: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거룩입니다. 여러분들은 거룩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늘은 조금 깊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구별하다’, ‘분리하다’, ‘깨끗하게 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죄와 부정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분리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변화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사전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거룩의 의미는 단순히 분리나 거리감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불완전합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참여하는 일을 뜻합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거룩함 마치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거리감 있는 상태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거룩함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죄와 부정을 버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들 - 예배, 기도, 예전, 찬양, 하나님의 자녀 등- 도 거룩합니다. 따라서 거룩함은 단순한 도덕적 완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하며 그분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삶의 방식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성경적 거룩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실천적 거룩입니다.
성경적 거룩을 이야기 하려면 칭의와 성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칭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복음을 알게 되었고 듣게 되었고 그 복음으로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어 의롭다 칭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칭의를 얻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는 돌이켜 회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럼 성화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회심한 사람의 거룩은 개인적인 노력과 전혀 상관없이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성화는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 점차 거룩해져 나가는 과정입니다. 칭의와 구별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확실히 믿음은 모든 거룩의 뿌리입니다. 거룩한 삶의 시작일 뿐 아니라, 거룩한 삶을 이어가는 비밀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거룩을 위해서는 믿음뿐 아니라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갈 2:20, 고전 9:26-27, 고후 7:1, 히 4:11, 히 12:1)
사실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거룩하게도 할 것이라는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신뢰하는 은혜입니다(롬 4:5). 하지만 거룩 성결하는 믿음은 삶으로 역사하는 은혜입니다.
성경적 거룩은 일상에서의 거룩함에 대한 많은 실천적 권고를 강화시킵니다. 스스로 신자라 고백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날마다 자기를 구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에 힘써야합니다. 참된 거룩은 단지 믿음과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능동적인 행함과 수동적인 은혜가 우리의 행함과 태도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된 거룩은 우리의 말과 성품, 본성적 필요와 성향을 통해 그리고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 남편과 아내, 통치자와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행위를 통해 나타납니다. 우리의 몸가짐, 시간 사용, 일터에서의 행동, 아플 때나 건강할 때의 행동을 통해, 부요할 때와 가난할 때 우리의 처신등을 통해 나타납니다.
거룩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덧입는 것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습관과 성품과 행실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렇다고 거룩을 우리가 스스로 절대적이고 문자적인 완전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경험으로나 전혀 근거 없는 거룩의 표준을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양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거룩을 놓고 거룩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으며, 이 땅에서 어떤 완전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 다윗도 바울도 요한도 강한 어조로 자기 마음에서 느낀 연약함과 죄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스스로 “자비와 은혜에 빚진 자”로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육신을 입는 동안에 3개월 동안 죄 짓지 않고 죄악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주 무지한 사람입니다. 성경을 잘못 아는 것 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도리어 있지도 않은 “완전”에 이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선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상처받고 힘들어할 것입니다. 또한 이런 가르침은요, 연약한 형제들에게 자신이 무언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여 한껏 의기양양 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런 생각과 가르침은 한마디로 위험한 착각이며, 자신을 더욱 교만과 죄악으로 빠뜨리는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성숙은 무엇일까요? 로마서 7:24–25 에서 잘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면서 느낀 자신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로마서 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고백은 모든 시대의 성숙한 성도들이 자기 경험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거룩을 향해 나아갈 수 없으며, 여전히 이 땅에서의 사는 동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죄와의 싸움을 계속해야 함을 통감합니다. 오히려 이 기록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나 연약한 신자의 입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니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를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 과연 이 말이 옳은 것일까요?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꾸 이 말씀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묘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회개하고, 믿고, 행하는 것은 신자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그리스도가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가르침은 신자 개인의 삶과 인격을 완전히 분리합니다. 우리가 무슨 이중인격자입니까? 이런 잘못된 가르침의 결과는 자신이 무엇을 하든 그 일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신자 자신은 죽어서 그리스도만이 그들 안에 살면서,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의로운 자녀가 된 신분의 맞는 행동을 할 수 없다며 그 신분을 다시 되돌려주고 자신은 죄인으로 다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는 사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죄에 대하여는 죽었다. 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보시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방법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 약속하셨으며, 그 성령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하늘 보좌 우편에서 그분의 백성들의 마음에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그리고 갈라디아서 본문을 다시 볼까요? 내가 성령으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도 그와 함께 죄 가운데 있는 육체 가운데 산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앞전에 말씀드린, 믿음 그 자체와 느낌의 문제가 아닌 수동적인 은혜로 시작하여 능동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2 을 읽어봅시다. 시작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에서 해방된 사람이 나아가야 할 것은 성령의 법입니다! 자신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삽니다. 수동적으로 은혜를 입고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갑니다! 더 이상 죄의 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회심입니다!
우리는 매번 하나님 앞에서 내가 정결한지, 거룩함으로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하며, 항상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회개하며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함으로 정결함을 구하며, 그 정결함을 위해 거룩한 생활들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이것은 결코 자동적으로 되는 삶이 아닙니다! 싸워야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 속에 은혜가 자라가며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회심함으로 단번에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죄와 씨름하고 싸우기보다는 전적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맡기려고 합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은혜를 받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은혜에 감격하며 눈물 흘립니다! 그리고 주님께 맡깁니다!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돌아가서 삶에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다 은혜가 떨어진다고 느끼면, 다시 예배를 드리러 나옵니다. 그리곤 더 큰 감동과 은혜를 찾아요. 그런 것이 없으면 거룩하지 않다고 여겨요.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자신의 거룩은 신경쓰지 않은채 말이죠. 즉, 개인적 노력 없이 그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정확히 17세기 반율법주의적 광신자들의 가르침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확하게 칭의를 통해 사람에게 요구할 말은 “믿으라, 그저 믿기만 하라” 는 것이며, 성화를 통해 요구할 말은 “깨어 기도하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균형이 성경적 거룩입니다.
그럼 이제 실천적 거룩을 이야기하며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생각을 마음에 품는 습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판단과 합치하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습관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로 분별하는 성향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드러난 거룩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죄로 드러난 모든 것을 피하고, 알려진 모든 계명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을 슬프게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고자 분투합니다. 많은 것들이 있지만,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섬기신 것처럼, 온유하시고 오래참으신 것처럼, 쉬지않고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거룩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닮아가고자 애써야 합니다.
거룩한 사람은 온유함과 오래 참음과 양선과 인내와 친절한 성품을 추구하고 혀를 다스리려고 애씁니다.
거룩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기를 힘씁니다.
거룩한 사람은 사랑과 형재 우애에 힘씁니다. 형제의 몸과 성품과 감정과 영혼과 그의 모든 소유를 소중히 여깁니다.
거룩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비와 박애의 정신으로 대하려고 애씁니다.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합니다.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우리는 혼자 있을 때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벌 받아 무서울 때만 일하고 게으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코람데오 항상 하나님 내 앞에 계신다는 두려움으로 사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겸손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더 많은 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말했던 바울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삶의 모든 의무와 관계에 있어서 신실함을 추구합니다. 쉽게 말하면 거룩한 사람은 모든 일을 잘해야 합니다. 잘한다는 것은 잘하는 것 이상으로 최선을 다하는 태도입니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사람은 영적 사고방식을 갖기위해 힘씁니다. 살아가면서 해야할 일들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마음과 생각의 우선순위를 장차 오는 영원한 삶에 둡니다. 이 땅에서 이방인과 나그네처럼 살아가며, 기도와 성경과 교회 공동체 모임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실천적 거룩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유함, 자기 부인과 절제, 사랑과 형재 우애, 자비와 박애, 하나님 경외, 겸손, 삶의 모든 의무와 관계, 영적 사고방식 들을 추구하는 성품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룩하게 산다고 해도 남아있는 죄의 가능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정말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비참히 여기는 것은 항상 “사망의 몸”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선한 일을 할 때도 악이 함께 있습니다. 나의 옛 사람이 사사건건 그리스도를 방해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성화는 죄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이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고 벗어버리려 합니다. 마치 성화의 사역은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습니다.
우리가 거룩을 추구하는 이유는 거룩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룩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다는 유일하게 바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룩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그리스도께 이 세상에 오신 위대한 한가지 이유와 목적이 거룩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사랑하는 유일한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자녀의 유일한 증거이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가장 좋은 길이며, 지금 누리는 위로가 거룩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거룩하지 않으면 천국을 준비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청년 여러분, 하나님께서 명하신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삶은 단순히 죄를 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거룩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삶의 태도로, 우리의 매일의 선택과 행동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음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찬양 - 주는 거룩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거룩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고 믿음을 가졌다는 유일한 증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된 자녀의 유일한 증거가 거룩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청년 들이 세상 가운데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삶을 단순히 죄를 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 속에서 나오는 삶의 태도가 우리의 매일의 선택과 행동에서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청년들이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죄와 싸워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