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30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82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저희를 잠에서 깨워 주님의 전에 나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 하루의 분주함과 염려를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지친 마음과 무거운 생각들을 씻어 주시고, 이시간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이 자리에 모인 각 사람의 형편을 주님께서 아시오니, 말로 다 하지 못한 기도까지도 헤아려 주시고 주님의 평안으로 마음을 채워 주옵소서.
몸과 마음이 연약한 성도들엑게는 회복의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지금도 병상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이들에게 새 힘과 소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한 예물을 드리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매일의 기도를 쌓아가는 일천번제 예물과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감사 예물을 드리오니 기쁘게 받아 주시고, 예물속에 담긴 간절한 소원을 아시오니, 이들의 가정과 일터와 자녀들 위에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0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우리는 어제, 신명기 8장 말씀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함께 나누었습니다.
모세는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올 한해 동안 우리가 겪었던 광야 같은 시간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매일 내려주신 만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해를 막연한 두려움 대신 든든한 믿음으로 준비 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 본론: 우리가 본능적으로 동경하는 땅, 애굽]
[2. 본론: 우리가 본능적으로 동경하는 땅, 애굽]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10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들어가서 살게 될 가나안 땅을 설명하시기 위해, 먼저 그들이 과거에 살았던 '애굽 땅'과 비교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10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0절에서 하나님은 애굽 땅의 특징을 "발로 물 대기를 하는 땅"이라고 하십니다.
당시 애굽은 지리적으로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 기후에 속합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지게는 부적절하다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굽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나일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일강은 늘 풍부한 물이 흐르는 거대한 강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나일강 물은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아니라, 그들의 발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의 밭은 강물보다 높은 곳에 있었기에, 수차를 돌려 물을 끌어올리기만 하면 농사짓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수차를 돌리는 동력이 사람의 발이었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애굽 땅의 특징을 발로 물을 대는 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애굽에서의 삶은 내 눈앞에 확실한 보장이 있는 삶 입니다.
내 곁에 언제나 마르지 않는 나일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내일 당장 물이 없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그저 내 능력과 힘만 있으면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을 원합니다.
매일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올까? 비가 안오면 어떻게 하지? 하며 마음 졸이는 삶보다는, 내 창고에 물이 가득차 있어서 언제든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는 그런 삶을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새해를 두고 기도할 때도 이와 비슷한 마음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어떤 확실한 안전 장치를 쥐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내년에는 마음 졸이는 일 없이, 재정도, 건강도 확실해서 불안해하지 않으며 살게 해주실 것을 구하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나일강이 내 옆에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안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본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 가나안]
[3. 본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 가나안]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애굽의 방식에 머물게 하지 않으십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은 전혀 다른 환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11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경은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릅니다. 맞습니다. 그곳은 비가 제때 내려주기만 하면, 온갖 곡식과 과일이 풍성하게 열리는 아주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조간이 붙는데 바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 입니다.
애굽에는 비가 안와도 나일강이 있었기에 농사짓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에는 그런 큰 강이 없습니다. 게다가 땅이 물을 머금지 못하고 다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저수지에 물을 쌓아두고 쓸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가나안은 땅은 너무 좋은데 하늘에서 비를 주지 않으면 그 좋음을 누릴 수 없는 땅인 것 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계산과 효율로만 따져보면, 가나안은 애굽보다 훨씬 못한 땅 입니다.
그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계획한대로 살아갈 수 없는 땅입니다. 내가 통제 할 수 없는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자녀들을 물이 풍부하고 안정적인 애굽에서 끌어내어, 이 불안해 보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새해를 앞둔 우리에게 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기도의 제목들을 남겨두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말씀 들였듯이 우리는 배가 부르고 안전하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발로 물을 댈 수 있으면 굳이 고개 들어 하늘을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아침마다 눈을 뜨며 “하나님 오늘 하루도 주님이 도와주셔야 제가 살 수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주님 품으로 파고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지 ‘편안한 환경’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를 선물로 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를 내 힘만으로는 살 수 없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십니다.
[4. 본론: 가나안의 진짜 축복, '다라쉬']
[4. 본론: 가나안의 진짜 축복, '다라쉬']
그렇다면 가나안은 척박하고 힘들기만 한 땅이고 하늘만 쳐다보며 마음 졸여야 하는 땅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12절 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오늘 본문에서 가나안을 '물이 많은 땅'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하나님이 돌보시는 땅'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돌보아 주신다" 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찾다', '두루 살피다', '간절히 구하다', '조사하다' 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갓난아기를 돌보는 모습과 같습니다. 어머니는 잠시도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아기의 숨소리가 조금만 거칠어지면 금방 알아차립니다. 아기가 배가 고픈지, 기저귀가 젖었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온 신경을 집중해서 살핍니다. 엄마의 모든 관심이 아기에게 향해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돌보아 주신다’ 의 의미 입니다.
이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애굽은 나일강이 있어서 좋은 땅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아도 되는 땅인 것입니다.
'내 발'이 나를 지키는 땅, 그래서 내가 멈추면 죽는 땅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은 '하나님의 눈'이 나를 지키는 땅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물이 많아야 행복하다. 돈이 많아야 안전하다." 그래서 그들은 늘 애굽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아니다. 물이 많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가장 안전하다."
비록 가나안 땅은 물을 흡수해버려 겉보기엔 척박해 보일지라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머니처럼 세밀하게 살피시고 계시기에, 가나안은 진정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 세밀한 돌보심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입니까? 12절 하반절을 보면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우리는 이제 이틀 뒤면 1월 1일, '연초'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365일의 긴 여정을 지나 언젠가 또 '연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2026년에 우리나라 경제가 어떻게 될지, 우리 가정에 어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는 늘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새해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단 한 순간도 내 눈이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깊은 밤에도, 치열한 일터에서 땀 흘리는 낮에도, 때로는 실수하여 넘어져 낙심해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눈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보시며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갈렙을 아실 것입니다.
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왔을 때, 그 땅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성벽은 높았습니다. 환경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갈렙은 그 땅의 환경을 본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갈렙은 하나님의 눈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저 거인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포했습니다.
환경이 변한 것은 없었지만,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되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우리 삶의 환경이 천국처럼 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땅은 척박해 보이고, 우리는 하늘을 쳐다봐야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내 발로 열심히 노력하고 애써야만 사는 고단한 애굽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아시고 가장 좋은 때에 은혜의 비를 내려주시는 가나안의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기에 연초부터 연말까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그 돌보심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시는 2026년 한해 그리고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기도]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
세상은 물이 많아야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곳이 가장 안정한 곳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길이 때로는 광야 같고 메마른 땅 같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 힘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사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여 주셔서 삶의 순간마다 주님의 돌보심을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