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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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적이 일어나는 새해
본문: 미가 7장 14-20절
주제: 오늘도 하나님은 실패한 백성을 통해 자신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신다.
[서론]
이번 주일이 올해 2025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저는 이 시간을 보내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고 싶었지만 결국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일들,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반복하고 말았던 실수와 선택들,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남는 순간들이 적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성공의 기억보다 실패의 장면들이 더 많이 떠오릅니다.
아마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 해를 정리하며 비슷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실패들을 어떻게 끌어안고 새해를 맞이할 것인가?” 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과거에 묶어 두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실패를 가볍게 묻어버리는 낙관주의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소망의 신앙입니다.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실패 가운데서도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실패의 자리에서 자신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십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었고,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미가서의 말씀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실패한 백성, 무너진 공동체, 희망이 사라진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용히 증언하십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실패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과 함께 새해를 여는 소망을 붙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1]
먼저 미가서의 배경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멸망을 코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지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질 것이고, 그들은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모든 민족들의 수치와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예언자로서 미가는 얼마나 절망스럽겠습니까?
그런데 미가는 그 절망 속에서도 뜻밖의 기도를 드립니다.
14절입니다.
“주님, 주님의 지팡이로 주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어 주십시오. 이 백성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주님의 소유입니다. 이 백성은 멀리 떨어진 황무지에 살아도, 그 주변에는 기름진 초장이 있습니다. 옛날처럼 주님의 백성을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여 주십시오.”
놀랍게도 미가는 회복을 기도합니다.
아직 심판도 안 왔는데 회복을 기도한다는 것이 말이 될까요?
미가에게 심판은 일어날지 모르는 위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확정된 사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미가는 현실을 부정하고 낙관하는게 아닙니다.
심판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기 때문에 소망하는 것입니다.
미가가 소망하는 것은 막연한 긍정이나 상상이 아닙니다.
상황을 잘 몰라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미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에 신뢰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미가는 기도합니다.
“주님 다시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십시오.”
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목자였던 왕과 사회, 종교 지도자들이 모두 순종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기대할수 없기에 미가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새해를 향한 우리의 믿음도 그래야 합니다.
올한해 목자없는 양처럼 방황하며 살았다면, 이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새해에는 제 삶의 목자가 되어 주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때로는 지팡이로 우리를 책망하시더라도 그 길이 가장 선한 길임을 신뢰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지난주 우리가 영상으로 보았던 그 양을 떠올려 봅니다.
다리를 절며 무리에서 뒤쳐진 양이 있습니다.
털이 볼품없어 쓸모없어 보이는 양입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스스로도 패배자라고 생각한 양입니다.
그때 그를 찾아 나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목자입니다.
목자는 많은 위험과 방해를 무릎쓰고 결국 그 양을 구해냅니다.
그 양이 살아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 양이 너무 좋은 양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목자가 그 양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목자를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길을 잃습니다.
그런데 올 한해 우리는 목자를 따르지 않아 얼마나 방황했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어떨까요?
우리를 먹이시고, 책임지시고, 공급해주십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올 한해 우리는 얼마나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살았습니까?
하나님께 맡기지 못해 아둥바둥하며 살지는 않았습니까?
성급히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선택하지는 않았습니까?
제가 그랬습니다.
주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신뢰해야 하는데 자주 실패했습니다.
불안해서 내 뜻대로 성급하게 나섰다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고 기도합니다.
새해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교회의 목자가 되어 주실 것을 말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삶과 우리 교회를 옳은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를 먹이시고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본론2]
그럼 미가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일까요?
15절입니다.
“네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처럼 내가 그들에게 기적을 보이겠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나올때 어떤 기적들이 있었나요?
열가지 재앙이 이집트에 일어났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엄청난 기적들보다 더 큰 기적을 다시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더 놀라운 기적이 필요한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충분히 많은 기적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변했나요?
아닙니다.
기적을 보고도 불평했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문제는 기적이 아닙니다.
그들의 완고함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이 반복해서 반역하고 죄를 지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기적입니다.
바다가 갈라진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으신 게 기적입니다.
한번 도와주신게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신 게 기적입니다.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큰 기적입니다.
올해 우리가 실패했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올해에도 새해에도 여전히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해 기대해야할 기적은 상황이 단번에 바뀌는 기적이 아닙니다.
나의 믿음과 능력이 위대해지는 그런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대할 기적은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시 실패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습니다.
나의 강점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 분의 신실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드시는 사랑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본론3]
이러한 주님의 신실하심은 단지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증거가 됩니다.
16-17절입니다.
“민족들이 그 기적을 보면, 제 아무리 힘센 민족이라도, 기가 꺾이고 말 것입니다. 간담이 서늘해서 입을 막을 것이며 귀는 막힐 것이며,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무서워 떨면서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주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주님 때문에 두려워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던 자들은 세상 권세를 누리던 자들입니다.
앗시리아와 바벨론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패배한 것처럼 보이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다시 회복하실때 그들은 놀라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엄청난 기적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놀라운 방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앞에 세상의 힘과 질서는 무력해지고 말 것입니다.
교만하고 자만하며 높이 있던 자리에서 뱀이나 벌레처럼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앞에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실패입니다.
가장 연약함을 드러내고, 결국 실패하고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승리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참혹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신실하신 사랑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못박으셨습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승리는 부활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조롱하던 세상의 권세는 부활 앞에 침묵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앗시리아나 바벨론처럼 힘과 권력으로 남을 짓밟아 온 세상의 왕이 되신게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가장 큰 기적입니다.
새로운 출애굽의 기적입니다.
죄의 노예로 실패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를 덮습니다.
다시 시작할 근거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미가는 이렇게 찬양할수 밖에 없습니다.
18절입니다.
“주님, 주님 같으신 하나님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살아 남은 주님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진노하시되, 그 노여움을 언제까지나 품고 계시지는 않고, 기꺼이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주와 같은 분은 없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미가 예언자의 이름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변함없으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주님 안에 있다면 우리의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다시 일으키십니다.
우리를 다시 회복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목자되신 주님의 성실과 인애가 오늘도 우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약속이며 성경이 주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내년 한해 또다시 나를 신뢰하지 맙시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다짐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잘해보겠다고 말입니다.
올해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때로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미가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새해의 출발점은 다릅니다.
“내가 더 잘하겠다”가 아닙니다.
“내게 기적을 보여주십시오”가 아닙니다.
“주님, 제 삶의 목자가 되어 주십시오.”라는 고백입니다.
나 자신을 신뢰하는 인생은 다시 넘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매번 기적만 바라는 인생은 다시 넘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그것을 증명해 보여줍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인생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가장 큰 기적이라고 믿는 인생은 다릅니다.
넘어져도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미가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그의 이름대로 그는 “주님과 같은 분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고백이 새해를 여는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나를 신뢰하지 말고, 끝까지 신실하신 주님을 신뢰하길 소망합니다.
참 목자되신 주님과 함께 새해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