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갓생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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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해에는 갓생 살기
본문: 창세기 2:4-25
[서론]
새해가 밝았습니다.
다시 시작입니다.
2026년 첫번째 주일입니다.
‘시작’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참 좋습니다.
기대와 열정, 희망이 느껴지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가 되면 새로운 계획들을 세웁니다.
“올해는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야지, 운동도 열심히 해야지.”
“기도도 열심히 하고, 묵상도 열심히 해야지.”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새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다 보면 오히려 삶의 본질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살겠다고 말하지만, 어느새 ‘자기착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한 걸음 멈춰 진짜 ‘갓생’이란 무엇일까 고민해봐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갓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때 의도하셨던 삶이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창세기는 새해 첫 주일에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창세기는 모든 시작의 이야기로서 ‘과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존재로 창조하셨는지’ 다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새해 첫 주일,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갓생’을 찾아가보려 합니다.
그 안에 우리 삶의 본질이 담겨 있으리라 믿습니다.
[본론 1]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는 말 그대로 모든 것들의 시작을 다루는 책입니다.
그 중에서도 1-11장까지는 세상의 기원과 인류 역사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장 1-2장 3절까지가 주일 본문 전까지의 말씀입니다.
어떤 말씀인가요?
하나님이 6일 동안의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각종 식물과 동물 무엇보다도 사람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장 4절부터 다시 한번 창조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2장 4절입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주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이 부분은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다시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마치 영화 상으로 보면 카메라가 공중에서 전체를 다 비추다가 사람에게 ‘줌인’을 한 것입니다.
“자~이제부터는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춰 이야기를 해봅시다.”입니다.
어쩌면 이런 방식이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의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은상의 삶을 잘 지켜 봐야겠다, 내가 찬양이의 삶에 관심이 많아.”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사람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럼 왜 사람이 중요한 것일까요?
5-6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
하나님이 땅 위에 비가 내리시지 않은 상태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니 땅에는 나무도 없고, 풀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황량한 광야나 사막같은 상태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뭔가 아직 미완성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바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질서와 완성을 위해 하나님이 핵심이자 정점에 둔 피조물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사람을 어떤 존재로 만드신 것일까요?
7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앞에 나온 사람에 대한 설명과 비교해 볼까요?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1장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어떤 사람이든 존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 인간은 신의 노예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런 선언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1장과 달리 2장은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마치 토기쟁이가 도자기를 빗듯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게 아닙니다.
흙으로 사람을 빗으시고 하나님의 숨인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인간이 단순한 육체가 아닌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사람이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만이 채우실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질상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습니다.
앞에서는 모두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 즉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2장 4절부터는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여호와’, ‘주 하나님’이라는 명칭으로 부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일컫는 이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살아갈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런 사람을 두신 장소가 어디인가요?
에덴동산입니다.
에덴 동산은 ‘기쁨,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 에덴을 ‘성전의 원형’, 즉 하나님 나라의 원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누리는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에서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곳이 곧 천국,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기쁨을 깨닫지 못한다면 천국은 누릴수 없습니다.
우리가 새해 살아가야 할 ‘갓생’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에이 목사님, 그건 너무 식상한 말이잖아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삶의 자리가 ‘에덴’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요?
내 가정, 일터가 에덴이 되어 기쁨이 넘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게 ‘갓생’입니다.
그럼 이 에덴 동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온갖 열매 맺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또한 에덴에서 흘러나온 물은 네 개의 강줄기를 만듭니다.
이 강줄기들을 통해 온 땅에 에덴동산의 기쁨과 생명과 풍요가 흘러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복입니다.
우리는 이 복을 흘려 보내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내 이웃과 기쁨과 생명과 풍요를 나눌수 있는 삶이 곧 ‘갓생’입니다.
[본론2]
그럼 우리는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수 있을까요?
15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동역자, 파트너로 세워주십니다.
고대 세계에서 인간은 신의 노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에덴동산에서 사람이 할 일은 그곳을 맡아서 돌보는 일입니다.
그런데, ‘맡아서 돌보다’라는 단어가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개역개정은 이를 ‘경작하며 지키다’라는 번역을 사용합니다.
놀랍게도 이 두 단어는 성막을 섬기는 제사장의 사명을 언급할때도 똑같이 쓰이는 단어들입니다.
즉, 에덴을 돌보는 일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곧 예배 행위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섬기는 제사장의 사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이 주신 각 자의 영역들이 있습니다.
가정, 직장, 학교 이런 곳에서도 마치 제사장이 성막을 섬기듯 잘 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 사명에는 자유와 책임이 따릅니다.
16-17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에덴의 모든 나무 열매를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선악과만은 금지하십니다.
그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죄지을줄 뻔히 아시면서 왜 이 선악과를 만드셨나요?”
“이거 하나님이 그냥 우리에게 덫을 쳐놓으신 거 아니냐?”
아닙니다.
선악과는 단순히 뭘 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나 덫이 아닙니다.
자유를 줘도 나를 신뢰하길 원하신다는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우리 삶에는 어떤 선악과들이 있습니까?
우리가 충분히 할수 있지만 하나님 말씀때문에 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직장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성과를 낼 능력이 있지만 하나님 때문에 정직을 선택하는 것, 주일에 더 쉬거나 돈을 벌 수 있지만 그 시간을 떼어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 내 능력과 자유를 하나님을 위해 '제한'하는 그 모든 순간이 바로 오늘날의 선악과를 지키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진짜 갓생은 내 마음대로 계획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채워나가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나의 자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제사장처럼 충성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본론3]
그럼 우리는 이 사명을 혼자 감당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주신 동역자가 있습니다.
18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하나님은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좋게 보지 않으십니다.
창조하실때 다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아담이 혼자 있는게 ‘좋지 않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왜 일까요?
사람은 관계없이 홀로 살아가는 존재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결혼을 위해 여자를 만드신게 아닙니다.
아담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를 창조하셔서 함께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재료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아담은 흙인데 하와는 뼈 아닙니까?
23절입니다.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개역개정은 하와를 “뼈중의 뼈, 살중의 살”로 표현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파트너를 주셨다는 기쁨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3장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보다 서로 범죄를 돕는 관계가 됩니다.
마치 신약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말입니다.
잘못된 관계는 죄와 타락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좋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갓생은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처럼 혼자 재밌게 사는 게 아닙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과 학교, 교회에도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할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25절은 이렇게 마칩니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부부 사이라서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받아주며, 숨기지 않아도 되는 진실한 관계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갓생은 혼자 멋있게 사는 삶이 아니라 함께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중심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또 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이 붙여주신 동역자가 있습니다.
그곳이 가정이든, 회사든, 학교든, 교회든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갓생’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2026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갓생은 빼곡하게 투두 리스트를 꽉 채워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갓생은 우리 존재의 본질을 회복해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로 지음받았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 동역자를 붙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예배자이자 제사장으로 우리를 세워주십니다.
우리가 있는 삶의 자리가 그 에덴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곳에 동역자들과 함게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짜 갓생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그들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새해 첫 주일, 하나님 앞에 진짜 갓생을 살겠다고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어디에 서있든 그곳이 에덴동산,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될줄 믿습니다.
그런 삶을 사는 우리 함께걷는교회 모든 식구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