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이 싸운 믿음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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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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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첫 열두 명의 정탐꾼 중의 하나였던 갈렙이 이제 나이가 많아진 때에 여호수아에게 나와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주기를 구하는 장면입니다. 가나안 땅 밟기에 나섰던 45년 전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 갈렙이 구하고 있습니다.
1. 가나안을 탐지한 열두 정탐꾼의 보고 (6~9절)
14장 1~5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파별로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제 85세가 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와서 무려 45년 전에 있었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열두 지파에서 대표 한 명씩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발로 밟는 땅은 그 사람과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때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것은 말 그대로 그곳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정탐꾼은 그곳이 어떤 땅이며 그곳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간 사람들이지, 자기들이 보고서 ‘이래야 합니다. 저래야 합니다.’ 하며 무슨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라고 보낸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이스라엘의 대표들 열두 명이 돌아와서 그중 열 명이 두 가지를 보고했습니다. 첫째, 가나안 땅은 정말로 비옥하고 농사가 잘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로, 그곳은 사람들이 아주 많고, 성들은 모두 견고하며, 그 땅 사람들은 모두 거인 같아서 자기들은 그들이 보기에 메뚜기와 같고, 그래서 자기들의 힘으로는 결코 정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2명 중 10명이 그렇게 부정적인 보고를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바로 그 열 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정탐꾼들입니다. 그들 때문에 40년 광야 생활을 했어야만 했고, 그들이 그렇게 선동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녹아내리게 한 바로 그 장본인들입니다. 그렇게 악하고 믿음도 없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갈렙은 “내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그것들은’이라고 해도 되는데 “내 형제들은”이라고 하는 이 갈렙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인격이 훌륭해야 합니다. 믿음은 좋은데 인성은 좋지 않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열 명의 정탐꾼이 보고한 내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이 빈 땅이면 그냥 차지하겠다고 온 것이지, 막 싸우며 전쟁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하신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땅이 어떤 땅인지를 그냥 알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이 어떤 땅인지, 사람들은 어떤지를 알아보는 게 그들의 임무였지, 자기들이 싸워서 이길 수 있나 없나를 스스로 판단하라고 보내신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의 이야기를 듣고서 자기 나름대로 이미 다 판단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자기들의 힘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인이고 우리는 메뚜기다.”라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탐지했던 열두 명 중 열 명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서 다시 노예로 생활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고 백성들을 선동했고, 백성들은 거기에 넘어가서 반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반대로 말했습니다. 가나안 성이 견고하고 사람들이 거대한 것은 맞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이미 우리에게 저 땅을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완전히 다른 말을 한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땅을 보고도 완전히 반대되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선택했습니까? 부정적인 쪽을 선택했습니다. 아마 열 명의 숫자가 훨씬 많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했다는 점입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자기들이 본 것에 의해서 자기들의 생각대로 판단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자기들의 힘과 가나안 족속들의 힘을 비교해서 나름대로 판단한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너희들은 이렇게 해라.” 그러시는데, ‘아,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우리가 볼 때 그건 안 되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인간 전문가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된다고 하신 것을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하나님 백성의 힘은 자기들이 가진 능력이나 눈에 보이는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사실 물리적인 힘으로 따지면 한 개 민족인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 많은 가나안 민족들을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이 외쳤던 것처럼, 하나님 백성의 힘은 눈에 보이는 군사력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다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또 돌아간다고 이집트에서 받아주겠습니까? 그리고 도로 노예가 되는 것이 더 나은 겁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최악의 삶입니다. 노예 생활은 결코 안정적인 삶이 아니라, 속박이고 압제이며 자유가 없는 삶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불신앙의 결정을 내릴 때 갈렙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가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9절)
그때 모세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갈렙에게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될 것이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신 1:36). 그래서 갈렙은 그 말씀을 믿고 열심히 가나안 땅에 가서 헤브론 땅을 밟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 뒤로 물러서느냐 앞으로 나아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그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기들 마음대로 그것을 결정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미리 결론을 내리고서, 자기들 마음대로 애굽에 돌아가겠다고 결정해 버린 것입니다. 비전문가가 전문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보다 더 심한 결정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는 객관적으로 볼 때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자기들의 힘으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 사실은 틀린 판단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힘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4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여호수아 본문의 내용을 보십시오. 그들이 “우리는 절대 저곳을 정복하지 못한다.”라고 했는데 정말로 정복하지 못했습니까? 아이 성 전투 때 자기들의 죄 때문에 한 번 패한 것 외에는 져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 이겼고, 이제 남은 땅을 다 정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의 상황을 어떤 눈으로,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진짜 일어난 사건보다 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갈렙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맞다. 저 사람들이 정말 크고 장대하다.”라고 다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 자기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그분의 능력이었습니다.
“저들은 강하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가 약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하나님이 승리를 주겠다고 하셨는데, 저들이 강하든 우리가 약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라는 믿음의 태도를 가졌던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중요한 것이지, 자기들의 생각과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갈렙은 현실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냥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을 주셨고, 비록 지금 당장은 그 약속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갈렙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믿음의 사람이라 하면서도,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을 잘 보십시오.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결정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정말 현실적인 결정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내가 판단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 이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 그것을 배우고 그 방향대로 나도 하겠다고 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어렵냐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어려운가 쉬운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려움이 닥쳐왔더라도 이 상황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까지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 왔는데, 그대로 다 잘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우리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자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고, 그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지금 나의 삶에 닥친 상황을 올바로 보는 하나님의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2.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청하는 갈렙의 믿음 (10~12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대표들에게 발로 밟는 땅은 그들과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믿은 갈렙은 정탐하러 갔을 때 열심히 헤브론 땅을 밟고 다녔던 겁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것은, 믿음이 중요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약속을 주지도 않으셨는데 될 것이라고 믿으며 그냥 막 나가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것이 바로 잘못된 ‘긍정적 사고방식’입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나아가는 것은 긍정적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주지도 않으신 걸 믿고 나가는 것은 허황된 생각이지, 믿음의 생각이 아닙니다.
갈렙은 참된 믿음으로 헤브론 땅을 밟고 돌아왔지만, 다른 사람들의 불신앙 때문에 갈렙 역시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대신 다른 1세대는 광야 40년 동안 다 죽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살아남아서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모세도 들어가지 못했던 그 땅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 때문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신 똑같이 40년을 광야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했어도 갈렙은 다른 족장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의미 없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거기서 다 죽었지만, 갈렙에게 그 40년은 소망으로 가득한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나머지 1세대 사람들은 “너희는 이 40년 안에 다 죽을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거기에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냥 그렇게 살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갈렙은 ‘40년이 지나면 드디어 내가 저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라는 소망으로 가득한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 생활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달랐겠습니까? 언젠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가 오면 저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가 삶을 마감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은 그것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천국)에 들어가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확신이 없이 이 땅에서 그냥 사는 사람과, 그 확신 가운데 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 천국에 우리가 언젠가 들어갈 것이고, 영원히 이 땅에서 살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언젠가 다 죽습니다. 그러면 그 후에는 천국이나 지옥이고, 예수 믿는 사람은 분명히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천국에 대한 소망을 우리가 지금 얼마나 가지고 살아가느냐는 겁니다. 그 천국 소망이 있는 사람이 왜 천국 소망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까? 이것은 참 큰 문제입니다. 정말 그 천국의 소망이 있다면, 이 땅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망과 비전 가운데, 기쁨 가운데 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과 붙들지 않고 사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똑같은 일을 겪어도 보는 시각이 다르고 마음 자세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않고 고생하는 사람은 정말 고생만 합니다.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똑같이 고생하더라도 그것은 약속 있는 고생이고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고생입니다. 비록 힘들어도 소망이 있고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겪는 태도가 다릅니다.
갈렙은 광야 세월 40년을 그냥 살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왔습니다. 비전을 품은 사람은 절제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전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지난 45년 동안 모든 것을 절제하며 살아왔습니다. 자기가 밟았던 그 땅을 차지하게 해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언젠가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했습니까? 힘을 길렀습니다. ‘생애가 끝나면 난 그냥 죽어.’라고 하는 사람에게 무슨 준비할 게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이제 저 땅에 들어간다.’라고 하니까 준비를 한 겁니다.
사람은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지금 여기서 다 누려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은 꾹 참고 견디며 미래에 열매를 얻고 누리는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은 현재에 모든 것을 아끼고 절제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만족을 누리지 않고 그것을 연기해서 나중에 누린다는 겁니다.
지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이 사실 갈렙에게는 어쩌면 불필요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그냥 나아가면 되는 사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기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자신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불순종 때문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들과 함께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갈렙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그는 결코 늙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노화를 멈추는 비결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광야에서 믿음으로 더욱 훈련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되고 주름도 많아졌겠지만, 그의 마음만은 늙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혼은 더욱 새로워졌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늙어 죽었습니다. 이처럼 비전이 없으면 망하고 맙니다. 갈렙이 이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가운데 날마다 모든 것을 참으며 절제하고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짜로 풍성한 삶은 이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성공 같은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있습니다. 엄청나게 성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데 죽은 다음에 지옥에 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복은 어렵고 힘든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최고의 복입니다.
이제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가서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이라는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확실하지는 않은데 혹시라도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자기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45년 전 갈렙이 가졌던 믿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아무리 강한 적들이 있어도 그들보다 훨씬 강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85세가 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전쟁에 나가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갈렙은 자기가 그때와 똑같이 강건하다고 말합니다. 45년 전 40세였을 때와 지금 85세가 된 때에 자기가 똑같이 강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가 지금 나이는 85세이지만 육체의 나이는 40세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전쟁이라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것이지, 85세 노년에게는 힘든 일이 아닙니까? 그 당시 나이로 볼 때 은퇴해도 벌써 몇 번은 했을 나이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지금 싸우겠다는 것은 자기가 육신적인 힘으로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을 쭉 읽어보면, 갈렙은 이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그동안 뭔가를 했는데 바로 후세대 용사들을 길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40세 때 가졌던 강력한 힘을 지금 자기가 길러낸 용사들을 통해서 똑같은 힘, 아니 그보다 더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가서 싸울 수 있도록 젊은 용사들을 그동안 키우고 훈련하고 준비시키면서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지난 45년 동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갈렙이 처음 발로 밟았던 땅은 45년 동안 가나안 족속들이 계속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갈렙은 그곳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자기가 키운 용사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시간이 걸리는 동안 답답하거나 초조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중에 오히려 훈련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갈렙이 자기에게 달라고 한 헤브론 산지는 아주 험한 곳이며, 강하고 큰 가나안 용사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거저 차지할 수 있는 땅이라서 그곳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적들이 버티고 있는 곳입니다.
갈렙은 그런 곳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그러면서 그냥 가만히 믿고만 있었던 게 아니라 그사이에 싸울 수 있는 용사들을 45년 동안 기르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산지’라는 곳은 결코 쉬운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쉬운 길, 지름길, 편안한 길을 원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가 아니라 ‘이 평지를 내게 주소서. 이 옥토를 내게 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어렵고 힘든 길은 가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쉬운 길만 찾다 보면 결국 세상의 험한 물결에 휩쓸려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성공하고 너무 쉽게 잘살려고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비록 조금 힘들고 오래 걸린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겁니다. 믿음의 용사들은 쉬운 길, 편안한 길을 좋아하지 않고, 누워서 거저먹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들은 가장 어려운 곳에 파송되어 가장 힘든 적과 싸우는 것을 명예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준비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더 강한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3.주님이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13~15절)
자기에게 갈렙이 나아왔을 때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을까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가 뭐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아이고, 이 사람이 왜 이러나?’라고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갈렙으로 인하여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45년 전 자기와 함께 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믿음의 보고를 했던 그 갈렙이 이제 85세가 되었는데도 나와서 싸우겠다고 하니, 얼마나 감격스럽고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여호수아에게 갈렙은 피를 나눈 동지입니다.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했었고 함께 믿음으로 보고했으며, 또 함께 전쟁에 나갔던 믿음의 동지입니다. 사실 젊은 사람들도 가서 싸우기를 꺼리는 이 상황에서 그 갈렙이 나와서 오히려 자기는 나가서 싸워 헤브론을 차지하겠다고 합니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 보십시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12).
갈렙이 뭐라고 했는지 잘 보십시오. “(모세를 통해서)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 그것을 달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내가 저 땅을 보니까 저 땅이 상당히 탐스럽고 좋습니다. 그러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약속을 의지하며 나가서 싸우겠다는 겁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겠다는 겁니다. 자기 맘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나아가겠다는 겁니다. 이러한 갈렙의 모습을 본 여호수아가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도 다 ‘이 산지’가 있습니다. 과연 내가 정복해야 할 산지가 어디입니까? 우리도 갈렙처럼 믿음으로 나아가 정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로 나아가 정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런 곳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갈렙처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하나님의 비전과 소망을 품으며 나아가 주님이 허락하신 이 산지를 정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