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8 성탄절 첫째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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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6:2-8
2 너희 산들아, 땅을 받치고 있는 견고한 기둥들아, 나 주가 상세히 밝히는 고발을 들어 보아라. 나 주의 고소에 귀를 기울여라. 나 주가 내 백성을 상대하여서, 고소를 제기하였다. 내가 내 백성을 고발하고자 한다.
3 내 백성은 들어라!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짐이라도 되었다는 말이냐? 어디,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4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다. 나는 너희의 몸값을 치르고서, 너희를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서, 너희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게 한 것도 바로 나다.
5 내 백성아, 모압의 발락 왕이 어떤 음모를 꾸몄으며, 브올의 아들 발람이 발락에게 어떻게 대답하였는지를 기억해 보아라. 싯딤에서부터 길갈에 이르기까지, 행군하면서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아라.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돌이켜보면, 나 주가 너희를 구원하려고 한 일들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6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7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8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오늘 말씀에서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예배드릴 때에 가지고 가야 할 것은 번제물이나,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이나 또는 맏 아들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미가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은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의를 실천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본질이다.
우리가 흔히 ‘예배’라고 말하는 예식은 이 본질들을 담기 위한 그릇이고, 또 일상에서 그렇게 살기 위한 훈련입니다. 예배는 예식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주일에 교회는 매일 오더라도 그 삶 속에서 이런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예배를 드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미가를 포함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미가의 말씀을 인용한다면, 우리로 하여금 공의를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것,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것, 또 겸손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함께 행하기보다는 자신이 보기에 옳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공의와 사랑과 겸손을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무지해서 못하기도 하고, 용기가 없어서 못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 핵심 중에 하나에는 ‘불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안은 내가 위험하다고 느껴질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위험하다고 느낄 때에는 정의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나의 안전에 관심을 갖게되고, 나를 챙기느라 이웃을 보지 못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행할 용기도 얻지 못합니다.
유발 하라리라는 역사학자는 인류가 ‘불안’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은 농경사회에 진입하면서부터라고 말합니다. 그 이전에는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면서 미래를 계획하지 않았기에 불안할 것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먹을 것을 구하면 구하는대로 누리고, 구하지 못하면 그저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농경사회가 되면서 농사를 계획하게 되었고, 그 계획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불안은 내가 내 삶을 만들어가야 하며, 그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의 감정과 욕구도 잘 통제되지 않는데 그 외에 것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삶은 언제나 변수로 가득차있습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통제하고 계획한대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으면,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그저 받아들이면 우리의 마음이 한결 평안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고, 또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회개의 핵심은 이전에 자신의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자신의 주권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그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계획을 하지 말거나, 대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대비하되 그것이 언제든지 틀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고, 그렇게 되었을 때 그것을 나의 탓으로 자책하지 않고 그저 수용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숙고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믿음이 우리를 평안으로 인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하나님이 결국 우리를 지키시리라는 믿음입니다.
미가는 6장 3-5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해오셨는지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있었을 때에 모세를 통하여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하셨고, 모압의 발락 왕의 음모로부터 어떻게 구원하셨으며,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는지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너의 지난날 내가 너와 함께 했던 일들을 기억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문제가 없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크건 작건 언제나 나를 압박하는 일들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오히려 그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 일하던 곳에서 해고. 그러나 마음은 평안했음.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고,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며,
결국 나를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
말씀을 정리하려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크게 보고, 문제는 작게보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 앞에 닥친 일들을 너무 크게 보지 맙시다. 그것이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뜻을 구한다면, 우리를 분명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 평안함 가운데에서 우리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