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7) 17~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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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31(금) 20251229(월)
17:1~19:21 바벨론과 짐승이 받을 최후의 심판
17:1~18 큰 음녀에게 내릴 심판 / 세상의 경제적, 종교적 제도 및 국가와 그 동지의 몰락
○ 일곱 대접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 큰 음녀가 받는 심판을 보여준다. 큰 음녀는 로마 제국을 상징한다. ○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을 바벨론이라 불렀다. 그러나 로마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 하나님께서 로마 제국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힘을 주신 것이다.
○ 로마 제국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 대해서 서술
○ 짐승과 10왕의 연대는 한시적이다. 하나님이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줌
17:1~3a 환상의 소개 :천사는 요한에게 세상의 우상숭배적 경제적, 종교적 제도의 심판에 관한 환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17:1–3a 묵상 제안
광야의 의미: 17:1–3a을 통해 우리는 광야의 미묘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일관되게 광야를 위험성이 상존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안전을 제공하시는 곳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이 지금 자기 백성을 공격하는 자에게 심판을 선언하시는 것도 그들이 공격받는 바로 이 광야에서다. 요한을 (하나님의 안전이 있는 장소로 이해된) 광야로 데리고 갈 필요가 있었던 것은 그가 음녀의 미혹에 넘어가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음녀의 매혹적인 모습과 음녀가 자기와 결탁하는 자들에게 제공하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혜택에 현혹되기가 얼마나 쉬운가? 만일 지금 사회가 인간 역사상 가장 물질주의적이고 부유한 사회라면, 이 유혹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우리에게 훨씬 더 크지 않겠는가? 우리 자신의 바벨론으로부터 물질적이거나 사회적인 혜택을 얻기 위해 우리의 믿음을 양보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17:3b~7 환상과 선견자의 반응: 요한은 바벨론과 연결된 적대적인 경제적, 종교적 제도의 위압적인 모습에 놀라며 당혹스러워한다.
17:3b–7 묵상 제안
바벨론 음녀의 모든 시대와의 연관성: 만일 음녀가 모든 시대에 걸쳐 제도와 결합된 문화와 경제, 그리고 우상숭배적인 종교의 힘을 표상한다면, 이 제도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세계의 특정 분야(정부, 교회, 기업, 학교 등) 속에서 어떻게 그 정체성을 드러내겠는가?
타협의 유혹: 현대의 악한 세상 제도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선하게 나타나고 감탄할 만하게 보이는가? 신자들은 어떤 식으로 이런 제도들과 타협하라는 유혹을 받는가?
취하게 하는 바벨론의 영향력과 결과: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한 결과는 바벨론의 파괴적인 영향력에 저항할 모든 욕구를 사라지게 만든다. 바벨론의 궁극적 불안정과 참된 안정의 원천이신 하나님에 대해 눈이 멀게 되고, 다가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마비되는 것이다. 불경건한 세상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궁극적인 불안정을 보지 못하게 하고, 참된 안정은 오직 그리스도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눈을 멀게 하는 이 영향력에 대하여 묵상해 보라. 불경건한 세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가운데 또한 어떤 국면이 장차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실재성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마비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가?
박해의 원천: 신자는 언제나 믿음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 어떤 제도들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을 박해할 때 정치적 ·경제적 제도와 함께 결탁하는 종교 제도가 있는가? 만일 있다면 어떤 제도인가? 이와 같은 일이 신자들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가?
악의 분별: 그리스도인은 주변의 제도들이 악하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을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고, 따라서 어떻게 해야 그런 제도에 미혹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만일 7절이 요한에게 답을 제공한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떠한 답을 줄 수 있는가?
17:8~14 짐승에 대한 해석 : 사탄의 성품을 지닌 바벨론과 그 동맹국은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에게 심판을 받는다. 그때가 되면 이들은 세상을 속였던 사기꾼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17:8–14 묵상 제안
말씀 속에서 지혜를 찾는 법: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9절는 17:8–14에서 핵심이 되는 결정적인 말씀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주의하는 자에게 지혜를 베푸셨다. 이 말은 지혜와 통찰력을 갖고 있는 자만이, 특히 마지막 때(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된)의 역사 속에서 일어날 하나님의 행동을 진실로 이해할 수 있다고 분명히 진술하는 다니엘 11:33, 12:10을 돌아보게 한다. 본서의 주석은 성경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17:8–14에 언급된 짐승과 교회 시대 동안에 존재하는 왕과 나라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왕과 나라의 경력에 대해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인정한다. 요한계시록 다른 곳에서 종종 그러한 것처럼 17:8–14의 다양한 환상의 의미는 무엇보다 먼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으로부터가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파악되어야 한다는 진리가 특별히 증명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변 세상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먼저 지혜를 찾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일깨우는가? 진실한 신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원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본문을 심각하게 잘못 이해한다.
17:15~18 물과 짐승과 관련한 여자에 대한 해석: 역사의 끝에 하나님은 그 나라와 그 동맹국을 부추겨 경제적, 종교적 체에의 안전을 제거하고 멸망시키려고 그 체제에 반대하게 하신다.
17:15–18 묵상 제안
교회 안에 있는 음녀의 존재: 본서의 주석은 구약의 이세벨과 바벨론 음녀 간의 일련의 평행 관계를 세부적으로 제시한다. 요한계시록 2:20–24은 이세벨의 영이 최소한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7:15–18에서도 음녀의 특징은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이나 이방 민족을 언급하는 구약 본문들의 묘사에 의존한다. 우리는 세상(이방 민족들) 속에서 또는 심지어 죽었거나 불경건한 종교 제도(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속에서 거짓 이데올로기가 발견될 것을 예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으로 고백하는 곳 안에서 이런 거짓 가르침이 작용하는 것을 포착해 내기는 어렵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우상숭배적인 이세벨의 활동과 거짓 가르침을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가?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악한 본성을 가진 초자연적인 영의 세력에 직면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요한계시록 2장에서 이세벨의 가르침이 ‘사탄의 깊은 것’2:24으로 불리는 것을 유념하라. 사탄은 여전히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고, 거짓 가르침의 형태로 우리를 공격하는 원수를 패배시키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가? 우리는 세상(바벨론적 세상 구조)이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때 그것을 어떻게 분별해 낼 수 있겠는가?
18:1~24 바벨론의 패망
○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보여준다. 이 역시 로마 제국의 멸망이다.
○ 그 많던 부가 한 시간 만에 모두 사라졌다. 로마가 자랑하던 사치품들을 더 이상 자랑할 수 없다.
○ 18절. 로마에 빌붙어 무역경로를 장악하여 불공정무역을 통해 이익을 누리던 사람들의 탄식
○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고, 거기에서 희생당한 순교자들이 발견될 것이다. 이들의 찬양이 19장에서 이어진다.
〇 많은 부를 소유한 것 자체가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신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그 원인은 부의 교만한 사용과 결국 우상숭배에 버금가는, 안전을 신뢰한 데 있다.
18:1~3 한 천사가 바벨론이 받을 심판과 그 혹독한 결과를 선언한다. 바벨론은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미혹한 것으로 인해 심판받을 것이다.
18:1–3 묵상 제안
바벨론의 미혹 아래 떨어지는 것의 위험성: 천사의 힘찬 음성은 바벨론의 미혹 아래 떨어질 위기 속에 있는 자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이와 비슷한 위험 속에 있는가? 확실히 말해 바벨론의 유혹의 힘은 적어도 요한 당시에는 매우 강력하게 나타났다. 우리는 진정으로 믿을 수 없는 외관상의 부와 사치의 배후에 불안정이 놓여 있고, 궁극적으로 귀신들의 처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가?
18:4~8 천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받지 않도록 그 제도에서 나오라고 권한다.
18:4–8 묵상 제안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 본서의 주석은 18:4–8의 교훈 가운데 하나로,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세상에 ‘속하는’ 것은 우리가 다가올 심판에서 차지할 몫을 희생시키고 세상의 현재 부와 혜택을 누리기 위해 우리의 가치를 양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기승을 부리는 세속화는 언제나 경건한 기준을 이상한 것으로, 악한 가치를 정상적인 것으로 보게 만들고, 그리하여 우리는 세상이 정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일자리를 유지하고, 집이나 차를 사고, 은퇴를 위해 신중한 경제 계획을 짜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는 동안 실제로 이런 유혹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우리의 나머지 모든 재정도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 이런 식의 가르침과 제자도를 지역 교회 속에서 적용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청지기 직분과 관련된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는가? 예수는 돈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검토하며 실천하고 있는가?
18:9~19 바벨론의 제도에 연합했던 자들이 바벨론의 심판을 애통해할 것이다. 바벨론의 심판은 자신의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8:9–19 묵상 제안
인간적인 자기 이익의 파괴적인 힘: 본서의 주석은 왕들, 상인들, 선원들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울며 애통하는 것은 참된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의와 심판에 대한 인정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세상의 일들에 집착하고 특히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게 되면 내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게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에는 눈이 멀게 되며,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에 무감각해지고, 심지어는 심판이 임하는데도 그 심판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이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재물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을 상실하게 되면서도 재물에 눈이 어두워 임박한 영원한 심판을 분명하게 보지 못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런 일이 주변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가? 비록 우리가 역사가 끝날 때 일어날 사건을 증언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동일한 원리가 작용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우리는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도록”18:4 더욱더 바벨론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18:20~24 바벨론에서 나온 사람들은 바벨론이 받은 심판을 즐거워해야 한다.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그들의 믿음의 참됨과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에 대한 입증을 의미한다.
18:20–24 묵상 제안
하나님의 나라와 흑암의 나라의 근본적 분리: 18:20–24은 9–19절의 버림받은 자들의 애통함과 20–24절의 성도들의 즐거움 사이의 흥미로운 대조를 제시한다. 버림받은 자들은 바벨론의 멸망이 단지 개인적으로 물질적인 안정에 있어서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애통해한다. 성도들은 바벨론의 멸망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유익이 될 뿐만 아니라, 특히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심판의 정당하심 그리고 궁극적으로 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정한 다루심을 예증하기 때문에 즐거워한다. 본서가 20절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죄를 처벌하지 않고 놔두지 아니하심으로써, 그리고 자기 백성에게 늘 옳으신 것과 성도들에 대한 불경건한 세상의 평가가 잘못이라는 것을 보여주심으로써, 자신의 공의로운 이름의 영예를 지키셨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공의를 보장하시는 사건은 그들의 개인적인 복수를 표현하게 하려고 마련하시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모든 영혼들의 상실에 대해 운다(그리고 울어야 한다). 성도가 즐거워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당하신 분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버림받은 자는 그들 자신의 이익 외에 다른 것은 볼 수 없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난, 아니 심지어는 전체 세상 구조의 파멸을 염려하는 이유도, 그것이 그들 자신의 운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8:20–24의 맥락을 보면 흑암의 나라와 빛의 나라 사이에 차이가 나타나 있다. 궁극적으로 이 두 나라를 갈라놓는 것은 기꺼이(또는 마지못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인정하는지,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존귀와 경배를 그분께 드리는지에 있다. 특히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에 두지 않고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만일 이 문화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무 쉽게 흑암의 나라의 지배권에 휩쓸리고 말 것이다.
20211231(금) 요한계시록 16~19장
○ 상황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로마 제국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된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의 최후 승리를 선포한다.
○ 도전
한 해를 마감하는 날이다. 코로나19 2년 차를 지나면서 믿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 역사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하며 달려왔다. 감사하다.
○ 변화
한 해를 이끄시고 주관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기
한 해 동안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온 동역자들에게 감사하기
○ 기도
주님,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여전했음을 고백하고 감사드립니다. 위기 때마다 동역자들을 보내셔서 넘어지지 않도록 붙드셨으니 감사합니다.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희고 거룩한 옷,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81229(월) 요한계시록 17~18장
○ 상황
악의 세력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공의가 악을 이긴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기 때문이다.
○ 도전
한 해 동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여러 불의한 일들을 보며 당황하였으며 분노하였다. 또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 불의함에 가담하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실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고통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어떠한 압력에도 불의에 편승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를 결단한다.
○ 변화
한 해를 이끄시고 주관하신 하나님과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들에게 감사하기
다양한 방식으로 교묘하게 다가오는 불의한 세력의 유혹을 분별하고 물리치기
〇 기도
주님,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며 불의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여전했음을 고백하고 감사드립니다. 위기 때마다 동역자들을 보내셔서 넘어지지 않도록 붙드셨으니 감사합니다.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희고 거룩한 옷,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게 하소서. 때로는 교묘하게, 때로는 드러내놓고 우리 삶을 유혹하고 공격하는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나라를 세우고 드러내는 석교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