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설교 07 -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다
Notes
Transcript
484장 314장
본문: 요한복음 3: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난 객관적인 사건들—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다 좋은 이야기입니다만, 그 옛날의 사건이 현재를 사는 나와 도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오늘부터 우리는 그 복음이 어떻게 시공간을 넘어 내 영혼의 사건이 되는지, 즉 구원의 '적용'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그 첫 단추는 바로 '거듭남(중생)'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요즘 말로 하면 '엄친아', 모든 것을 갖춘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으로서 도덕적으로 흠이 없었고,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졌으며, '이스라엘의 선생'이라 불릴 만큼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왜일까요? 그의 화려한 겉옷 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영적 공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점잖게 덕담을 건넵니다. "선생님,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인사에 답하는 대신, 대뜸 그의 영혼 깊숙한 곳을 찌르십니다. 3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당황했습니다. "아니, 제가 이 나이에 어떻게 다시 태어납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옵니까?" 그는 여전히 물리적인 차원, 상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님은 6절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선언하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육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말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교육을 받고, 도덕을 닦고, 종교적인 훈련을 해도, 그 본질은 여전히 '육'이라는 것입니다. 말을 깨끗이 씻기고 훈련시킨다고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깨끗한 말이 될 뿐입니다.
죄인을 훈련시키면 세련된 죄인이 될 뿐, 의인이 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나쁜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 만드는 도덕 훈련소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만드는 '생명 종교'입니다. 개혁이 아니라 재창조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필요성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5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서 '물과 성령'은 두 가지 다른 재료가 아니라, 에스겔 36장 25-27절의 약속을 가리키는 하나의 짝입니다.
'물'은 씻음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와 우상 숭배를 씻어내는 정결케 하심입니다.
'성령'은 새 마음을 주심입니다. 굳은 마음(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살 같은 마음)을 주어 하나님을 순종하게 하는 내적 갱신입니다.
즉, 거듭남은 내가 결단해서 "이제부터 새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로부터, 위로부터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의 옛 자아를 죽이시고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심어주시는 초자연적인 수술입니다. 아담의 족보에서 끊어지고 그리스도의 족보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신비한 일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8절은 성령의 사역을 '바람'에 비유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이 비유에는 세 가지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주권성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우리는 바람을 조종할 수 없습니다. "바람아, 멈춰라" 한다고 멈추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원한다고, 내가 노력한다고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실 때 영혼이 살아납니다.
둘째, 불가시성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바람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언제, 어떻게 내 영혼에 들어오셨는지 정확한 시점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극적인 체험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변화되기도 합니다. 방식은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셋째, 가시적 결과입니다. "그 소리는 들어도."
바람은 안 보이지만,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깃발이 펄럭입니다. 그 효과를 보고 바람이 있음을 압니다. 거듭남 자체는 안 보이지만,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증거가 나타납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이 지루했는데 이제는 예배가 사모됩니다.
이전에는 죄가 즐거웠는데 이제는 죄 지으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이전에는 내 자랑뿐이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귀해 보입니다.
이것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니고데모는 당대의 최고 종교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거듭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충격을 줍니다. 모태신앙이라도, 직분이 있어도, 교회 마당을 수십 년 밟았어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거듭났는가? 내 안에 생명의 변화가 있는가?"
만약 확신이 없다면, 낙심하지 말고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싹트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성령의 바람이 여러분 영혼에 불어왔다는 증거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입니다. 시작하신 분이 끝까지 이루실 것입니다. 이 새 생명의 감격을 가지고, 육의 본성을 거스르며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