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7-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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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분한 주의 은혜
제목: 충분한 주의 은혜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찬송: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찬송: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오늘은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말씀을 가지고 "충분한 주의 은혜"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빼내고 싶은 '육체의 가시'를 만난다. 어떤 이는 건강의 문제로, 어떤 이는 깨어진 관계로 인해 몸과 영혼이 찢기는 고통을 겪는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왔느냐며 삶을 불평하곤 한다. 위대한 사도 바울에게도 평생을 괴롭힌 가시가 있었다. 본문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가시가 실상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하는 거룩한 장막이며, 우리가 약한 그때가 진정한 강함의 시작임을 보여준다.
7절은 육체의 가시가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말한다.
7절은 육체의 가시가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말한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 커서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가시를 뜻하는 원어 '스콜롭스(skolops)'는 단순히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가 아니다. 그것은 몸을 꿰뚫는 '말뚝'이나 '창끝'을 뜻한다. 바울의 고통은 잠시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의 삶을 송두리째 고정시키고 깊숙이 찌르는 근원적이고 치명적인 아픔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가시가 사탄의 사자처럼 우리를 괴롭힐지라도, 바울은 이 가시가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다고 고백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바울이 하늘의 신비에 도취되어 자만하지 않도록, 그를 땅에 고정시키는 '사랑의 안전장치'로 가시를 허락하셨다. 가시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주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피조물임을 깨닫게 하는 겸손의 도구가 된다. 내 삶에 박힌 말뚝 같은 고난이 나를 주님께로만 고정시킨다면,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관리하심이다.
8-9절 상반절은 기도의 응답이 결핍의 제거가 아니라 충분한 은혜의 발견임을 말한다.
8-9절 상반절은 기도의 응답이 결핍의 제거가 아니라 충분한 은혜의 발견임을 말한다.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바울은 이 고통스러운 가시가 떠나가기를 세 번이나 간절히 구했다. 하지만 주님은 가시를 뽑아주시는 대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의외의 응답을 주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강함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약함 속에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응답 앞에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기꺼이 수용하며 자랑하기로 결단한다.
진정한 기도의 응답은 내 상황이 변하는 것보다, 상황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를 발견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가시를 남겨두신다. 그 결핍의 공간에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채워주시기 위함이다. 가시가 제거되지 않은 이유는, 그 고통보다 더 크고 풍성한 주님의 사랑이 지금 내 삶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를 넘어, 그 문제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9절 하반절-10절은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거룩한 성막임을 말한다.
9절 하반절-10절은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거룩한 성막임을 말한다.
“9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약함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려 한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머물다(episkēnōō)'는 원어적으로 '장막을 치다'라는 뜻이다. 이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쳤던 성막(Tabernacle) 위에 하나님의 영광인 쉐키나가 임했던 것과 같은 이미지이다. 우리의 '약함'이라는 초라한 천막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놀라운 선포이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 의 말씀과 연결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다. 내가 강하여 내 힘이 가득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이 없지만, 내가 철저히 약해져서 빈 장막이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이 나를 처소 삼아 일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한 그때가 곧 강함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내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성전 삼아 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다. 우리의 약함은 부끄러운 수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가장 영광스러운 처소가 된다.
인생의 말뚝 같은 가시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기도의 진정한 응답은 충분한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거룩한 성막이다. 이제 삶의 가시를 불평하는 입술을 멈추고, 그 가시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자. 나의 약함을 정직하게 고백하며 주님의 능력을 구할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해 주님의 위대한 일을 행하신다. 약함 속에서 온전해지는 주의 은혜를 의지하여 오늘 하루도 담대히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새벽,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가시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통로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삶의 말뚝 같은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나를 자만하지 않게 하고 주님께만 고정시키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임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이 새벽, 자신의 연약함을 들고 나온 성도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하시고,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그 상황을 압도하는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온전해짐을 믿사오니, 우리의 한계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의 질병이라는 창끝에 찔려 신음하는 환우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들의 약함 위에 치유와 영광의 장막을 쳐 주시고, 고통 중에도 주님의 품에 안겨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를 얻게 하옵소서. 가정의 문제와 경제적 결핍으로 마음이 찢긴 성도들에게 하늘의 풍성한 자비로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나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이 친히 영광 받으시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을 살아갈 새 힘을 공급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