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1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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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도의 표와 인내
제목: 사도의 표와 인내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11-13절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11-13절
찬송: 573장 말씀에 순종하여 /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찬송: 573장 말씀에 순종하여 /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오늘은 고린도후서 12장 11-13절 말씀을 가지고 "사도의 표와 인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바울은 자신을 비난하는 대적자들에 맞서 부득불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며, 참된 일꾼의 증거가 무엇인지를 선포한다. 그는 화려한 기적보다 더 위대한 '인내'를 말하며, 공동체가 가져야 할 사역자를 향한 마땅한 도리를 가르친다.
본문은 진정한 믿음은 눈에 보이는 기적보다 끝까지 견디는 사랑의 인내를 통해 증명되며, 성도는 서로를 책임지고 보호하는 거룩한 의무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11절은 공동체가 사역자를 보호하고 세울 책임이 있음을 말한다.
11절은 공동체가 사역자를 보호하고 세울 책임이 있음을 말한다.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지금 자신이 사도권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의 자리에 선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방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울을 가장 잘 아는 고린도 성도들이 침묵했기에, 바울 스스로가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공동체는 한 지체가 비방받을 때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진실함을 변호하고 지켜주어야 할 거룩한 의무가 있다.
성도들이 사역자를 '칭찬(추천)'해야 한다는 것은 사적인 아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동역자인 서로가 거짓 비방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그 진실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함께 진리를 파수하는 동역자적 자세를 의미한다. 특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지도자들의 헌신을 귀히 여기고 기도로 함께하는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을 돕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영적 질서와 거룩함을 수호하는 일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귀함을 인정하고 신뢰의 울타리가 되어줄 때, 공동체는 비로소 세상의 비방을 이길 영적 권위를 갖게 된다.
12절은 참된 믿음의 표지는 기적이 아니라 인내와 도구 됨에 있음을 말한다.
12절은 참된 믿음의 표지는 기적이 아니라 인내와 도구 됨에 있음을 말한다.
“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바울은 사도의 표(증거)로 기적보다 "모든 참음(인내)"을 앞세운다. 진정한 믿음은 화려한 이적을 많이 일으키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으로 견디며 섬기는 인내를 통해 증명된다. 기적은 거짓 사도들도 흉내 낼 수 있지만,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인내하는 사랑은 오직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또한 12절의 '행한 것'은 원어상 수동태로 기록되어 있다. 즉, 바울이 스스로 능력을 부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행하신 일이라는 뜻이다. 능력은 내가 소유하고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정직한 도구로 쓰임 받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온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하려 하기보다, 주님이 마음껏 쓰실 수 있는 순종의 도구가 될 때 우리 삶에는 참된 영적 권능이 나타나게 된다.
13절은 복음을 향한 순수함이 사랑의 가장 큰 증거임을 말한다.
13절은 복음을 향한 순수함이 사랑의 가장 큰 증거임을 말한다.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선교했다. 대적자들은 이것을 이라고 비꼬았으나, 바울은 이것이 자신의 복음을 향한 순수함이었음을 역설한다. 당시 헬라 문화에는 경제적 후원을 받으면 후원자의 뜻에 복종해야 하는 '후견인 제도'가 관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바울이 후원을 사양한 것은 인간 후견인에게 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감 없이 전하려는 영적 독립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13절에서 "용서하라"는 표현은 바울의 반어법적인 고백이다. 그는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 스스로 낮아졌고, 이는 오직 그들을 사랑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울이 재정적인 도움을 사양한 것은 복음이 세상의 권력이나 돈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게 하려는 사역의 결벽증적인 정직함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그 동기가 얼마나 깨끗한지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유익이나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복음의 순수성을 회복할 때 우리 삶에는 참된 능력이 나타난다.
참된 일꾼의 진짜 표지는 기적 자체가 아니라 모든 환난을 견뎌내는 거룩한 인내이며, 세상의 계산법에 매이지 않는 복음의 순수성이다. 또한 성숙한 공동체는 서로를 방관하지 않고, 동역자의 진실함을 기쁨으로 보증하며 보호하는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오늘 하루,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세상의 보상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오직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겸손한 도구가 되어 끝까지 참아내는 사랑을 실천하자. 우리의 삶이 곧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새벽,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의 표지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기적이나 세상적인 성공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길을 따르며 겪는 모든 고난을 끝까지 견뎌내는 인내의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서로를 책임지고 보호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역자의 수고를 귀히 여기며 서로를 세워주는 성숙함을 주시고, 어떤 비방 앞에서도 복음의 군사 되어 서로를 지켜주는 사랑의 울타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려 하기보다, 그리고 세상의 논리나 인간적인 계산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이 기뻐 쓰시는 정결한 도구가 되어 우리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영광만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말씀을 전하는 이와 듣는 우리 모두가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높이며, 지체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나의 권리를 내려놓는 진실한 사랑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며 인내와 순수함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