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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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道) 가에 앉은 자
길(道) 가에 앉은 자
여러분, 2026년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기분이 좀 어떠세요?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은 누군가에게는 기대가 되는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죠. 하지만 중요한 시험을 앞둔 누군가에게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드는 시간이기도 하고, 또 가족 중에 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낙심의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슬라이드1) 우리 모두는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우리에게 일어나 버린 일이 있어요.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가지고 있는 타임 스톤이 없기 때문이죠? 자, 고3으로 새롭게 태어난 친구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올해 수능시험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능한가요? 불가능합니다. 이 친구들이 고3이 된 것은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은 무엇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미 우리에게 일어나 버린 일로 인해 변화된 상황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제가 첫 설교에서 얘기한 내용을 잠깐 반복하겠습니다. 새롭게 중1이 된 친구들은 듣지 못했으니까요. 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좋은 소식이란 ‘땅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탄생으로 이 땅에 이미 임했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땅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탄생과 다시 오심 사이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땅의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슬라이드 2) 여러분 혹시 이 가수를 아세요? 선생님들은 백퍼센트 아실 것 같고. 이 사람들은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그리고 중학교 때까지 가장 좋아했던 GOD라는 가수입니다. GOD의 노래 중에 저는 ‘길’이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해요. 선생님들 혹시 불러보시겠어요?
(슬라이드 3)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그리고 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이 곡의 후렴은 이렇습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여러분 저는 이 노래가, 필연적으로 어딘가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잘 표현한 노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이 노래가, 내 삶의 답을 찾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노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이 노래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우리의 삶에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과장을 좀 보태서 저는, GOD가 예수를 믿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성령께서 이 곡을 통해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 질문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교회를 둘러보시고, 예배드리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을 한 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왜 여기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여러분의 길이 맞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그 꿈은 누구를 위한 꿈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방금 떠올렸던 그 꿈을 이루고 나면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오늘 본문에 우리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52절만 읽었지만 이 내러티브는 46절부터 시작됩니다. 46절을 보겠습니다.(슬라이드4)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그 사람은 바디매오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바-’는 ‘-의 아들’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라고 하신 것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재판받으실 때 ‘예수 대신 바라바를 풀어주십시오’라고 군중이 외쳤죠? 여기서도 ‘바라바’는 이름이 아니라 ‘바르-아바 즉 아빠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자 여튼, 디매오의 아들이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시각 장애인입니다. 그리고 구걸해서 먹고 사는 거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여리고라는 도시의 입구에 앉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을 보면 길 위가 아니라 길 가에 앉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세요. 이 구걸하는 시각 장애인은 길 가에 앉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맹인 거지는 사람들과 접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신체적인 장애를 하나님의 저주, 진노와 연결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풀어서 표현하면, ‘점마는 무슨 죄가 있어가꼬, 또는 점마 부모가 무슨 죄를 지어가꼬 저래 되뿠는갑다..’하는 눈총을 받는 존재였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께서 근방을 지나가고 계시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47절을 읽겠습니다.(슬라이드5)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여러분, 말씀에 그가 예수를 어떻게 불렀다고 되어 있습니까? ‘소리 질러 불렀다!’고 되어 있어요. 방금 여러분이 말씀을 어떻게 읽었나요? “(읊조리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는 분위기 파악을 해서 읽으십시오. 그래야 그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와닿을 수 있습니다. 국어 영역 지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괄호 열고 소리지르며 괄호 닫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러분 간절한 그의 외침이 예수의 귀에 닿았을까요? 다음 말씀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슬라이드6)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여러분 46절과 48절은 예수를 둘러싼 무리가 상당히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무리에 둘러싸인 시끌시끌한 상황에서 그의 목소리가 예수께 닿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는 그가 시각 장애인이었기에 예수가 계신 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 소리를 질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까 당시 장애를 가진 사람은 사회적으로 멸시를 받았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치유와 기적을 베푸는 슈퍼스타 예수’에게 걸맞는 사람이 아니었던 그는 무리로부터 질타를 받습니다. “조용해라! 니 같은 놈이 함부로 부를 수 있는 분이 아니야!” 누군가는 동전 몇닢 쥐어주며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말했을 수도 있겠죠?
길 위에서 따르는 자
길 위에서 따르는 자
그런데 그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디매오의 아들은 사람들의 질타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예수를 부릅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누군가를 믿는다면, 신뢰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에게는 예수라는 존재가 정말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믿음의 행동을 한 가지 더 하게 되는데 다음 장면을 보겠습니다.(슬라이드7)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자, 여기서 디매오의 아들은 자신의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께 나아갑니다. 패딩을 벗고 뛰어갔다는 말일까요? 셔츠를 벗고 뛰어갔다는 말일까요? 제가 저번 주에 말씀드렸죠?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 반드시 저자와 원독자가 공유하고 있는 배경지식을 알아야 한다. 당시에 ‘겉옷’은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유대인들은 ‘겉옷’을 어떻게 입었을까요? (슬라이드8) 유대인의 겉옷은 입는 용이 아니라 덮는 용입니다. 옷이라기보다는 이불에 가까운 것이라는 말이죠. 구걸하는 자들의 경우 낮에는 겉옷을 펼쳐놓고 돈을 구걸하는 용도로, 중동의 추운 밤에는 이불처럼 덮는 용도로 겉옷을 사용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부르셨을 때, 그 사람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달려갔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내버리고 그의 삶을 예수께 던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겉옷이 없는 거지 시각 장애인은 손에 아무것도 쥘 수 있는 것이 없는 자입니다. 겉옷을 버렸다는 것은 더이상 그가 낮에 제대로 구걸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겉옷을 버렸다는 것은 더이상 그가 밤에 자신을 추위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질타를 감수하면서 예수를 더 크게 불렀던 그의 행위, 그리고 그의 삶을 그나마 지탱하고 보호하고 있던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께 나아갔던 그의 행위. 그리고 그 행위 안에 담겨있는 그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슬라이드9)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이러한 것이어야 합니다. 제가 지난 주와 그 전 주에, 좋은 소식을 들은 우리는 그 소식에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거 기억나죠? 믿는다는 뜻의 pisteou는 ‘맡기다’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린 것도 기억나시나요? 이미 일어난 좋은 소식, 그리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그 좋은 소식에 우리의 삶을 한 번 던져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디매오의 아들, 시각 장애인 거지도 예수의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좋은 소식에 반응하여 소리지르고 겉옷을 벗어던졌습니다. 그의 삶을 예수께 pistis 즉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이자, 2026년 중고등부가 붙잡고 가야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크게 읽어보겠습니다.(슬라이드10)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여러분, 디매오의 아들은 원래 여리고 입구의 길 가에 앉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의 좋은 소식에 반응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길 위에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너는 이제 가도 돼!”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는 가지 않고 예수를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길 위에 서서 그를 따라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 길은 고속도로가 아니었어요. (슬라이드11) 그래도 그는 그 길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좋은 소식에 반응한다는 것, 그 좋은 소식을 가져온 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원래 삶인 ‘길 가에 앉은 채로’ 있겠습니까? 아니면 나의 삶을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회복을 가져올 하나님 나라의 소식에 반응하여 ‘좋은 소식을 가져온 예수를 길 위에서’ 따르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도를 아십니까? 우리는 도를 듣고 알며, 그 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 도는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에 관한 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산다는 것은, 죽어서 갈 천국을 기다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의 나라 그리고 아버지의 나라를 한 번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온 분의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조롱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내가 예수 외에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버리고 가야하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들을 것이에요. “그렇게까지 해서 너에게 이익이 무엇이 있냐?”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를 믿으면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매일매일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거에요!’라는 달콤한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삶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찾아올 것이에요.
여러분을 보호해 줄 겉옷이 없어질 겁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여러분의 겉옷이 되어 주세요.
양심적으로 살면 어리석다는 조롱을 들을 겁니다. 하지만 그 길을 먼저 가신 분이 평안을 주세요.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를 들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말씀을 따라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의 삶을 통해 천천히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러한 삶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에도 말했지만, 이 삶은 꽤 재밌는 삶입니다. 머리로 알던 예수를 삶에서 만나는 놀라운 은혜가 있는 삶입니다. 중1들! 유초등부에서 오늘 중고등부 올라왔는데 전도사가 앞에서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얘기를 해서 싱숭생숭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이런 길을 걷는 것이고, 거기에 나이 제한은 없습니다.
경로우대도, 촉법소년도 없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고 결국에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삶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슬라이드12)
기도(슬라이드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길 가에 앉아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길 위에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삶에 움켜쥐고 있는 겉옷과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을 마치 안정되게 하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 성적? 친구?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디매오의 아들을 기억합시다.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께 달려갈 때, 그에게 진정한 평안과 안정 그리고 만족과 회복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며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신뢰의 행동을 보이지 않았던 것을 돌이킵니다. 내가 나의 겉옷을 내버리고, 나의 삶을 그 도 위에 그 길 위에 다시 세우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좋은 소식에 나의 삶을 맡기고, 예수께서 가신 하나님 나라의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