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회개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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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개와 믿음. 하나님께서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는 중생은 회개 믿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혼 안에서 은밀하게 이어진 중생은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에서 죄에 대한 회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이며 유효적인 변화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그가 복음 전도를 위하여 전파한 내용의 핵심을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00:55)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죄인들을 위한 중보자적 용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촉구한 것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틀어서 우리는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회심은 하나님께서 중생한 사람으로 하여금 의식생활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게 하시고 믿음을 불러일으키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심이 항상 같은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좁은 의미로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일회적인 회심을 가리키고 넓은 의미로는 신자의 삶 속에서 이러한 회심이 새롭게 경험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01:45)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일생 동안 진실한 신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구원에 이르도록 회심할뿐 아니라 참회와 신앙으로 그 심을 보존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중생은 하나님 홀로 행하시는 일이지만 회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회개가 오직 하나님이 홀로 하시는 일이라면 성경은 그렇게 많은 곳에서 회개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하나님 홀로 하시는 것이라면이 또한 성경이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게 되는 것은 먼저 그렇게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고자 하는 자에게 믿음을 주시고 돌이키고자 하는 자에게 회개하게 하십니다.
(02:40) >> 심의 두 요소인 회개와 신앙을 언급함에 있어서 어느 것이 먼저 인가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가진 신앙이 진정으로 구원에이를 만한 신앙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죄에 대한 회개가 있고 그것이 죄에 대한 진실한 회개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 죄를 해결해 주실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에 대한 미움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결코 어 분리될 수 없습니다. 회개는 도덕적인 악에 대한 인간의 마음에 일반적인 변화를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03:21) 이것은 보다 특별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적용을 말하는 가운데 회개를 언급할 때 다음 몇 가지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첫째로 회개는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영혼의 변화에서 비롯된 마음의 변화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정신과 육체로부터 모두 영향을 받습니다. 직접 직접 듣지 않고 칼로 유리를 긁는 소리를 상승만 해도 마음이 서름이 끼칠 듯 꿈치려듭니다. 더러운 것을 보기만 해도 마음의 혐오감을 느끼고 반면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 마음이 육쾌해집니다. 제가 고통스러우면 마음도 우울해지게 됩니다.
(04:09) 이것들은 모두 영혼의 변화 변화와는 별로 상관이 없이 인간의 감각적 기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마음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회기가 마음의 변화라고 말할 때 그 변화는 영혼 안에 일어난 변화로 말미암아 온 변화입니다. 믿음이 죄로부터 구원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죄가 자신의 고통과 비천함의 궁극적인 언인이라는 인식과 지혜에 대한 토모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변화 없이는 죄에 대한 그런 인식과 혐오의 경향이 일관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의 뿌리가 자신 안에 있음을 인식한 마음의 변화입니다. 예. >> 목사님 읽어십시오. 둘째로 회개는 개별적인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입니다.
(05:03) 개별적인 죄란 자기가 지은 특정한 죄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죄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자기 안에 있는 총체적인 죄의 뿌리를 보게 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불리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의 이름을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자기만의 개별적인 죄에 대한 인식이 있고 그 죄에 대한 회개도 있습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신자에게는 언제나 진실한 참 그리스도에 대한 의존의 마음이 있는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짓는 개별적인 죄를 통하여 자신의 부패한 성품에 있는 죄의 경행선을 봅니다. 그리고 자기를 거룩하게 하시는 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05:59) 진정한 회 회개의 삶이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 속에서 반목된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셋째로 회개는 인격적인 작용입니다. 신앙과 마찬가지로 회개 역시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 은혜 없이는 일어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영적으로 거듭난 자의 인격 안에 회개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회개하는 죄가 무엇인가를 아는 지적인 요소와 그 죄를 범한 것을 슬퍼하는 정서적인 요소와 그 죄에 돌이키는 하나님의 돌가고 싶어 하는 의지적인 요소가 어 존재합니다. 우리를 회개케 하심에 있어서 성령님은 우리 밖에서 우리의 마음을 거슬러 역사하시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06:47) 회개의 경 경 경 경 경험이 인격적인 작용으로 나타난 것도 바로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생은 곧 실생활의 도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지만 회개는 회개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실생활에 있어서 도덕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넷째로 회개는 율법적인 회개와 복음적인 회개로 나눕니다. 청교도인들이 회개를 이처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구원과 거룩에 이르는 참된 회개와 그렇지 않는 회개를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어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아내 회개를 가능케 한 동기가 무엇인가를 따른 율법적인 회개는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에 대해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죄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갖게 되는 후회나 가책을 가리킵니다.
(07:49) 이러한 회개는 동기 자체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받게 된 창조의 주이신 하나님의 불명에 대한 슬픔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음으로써 손해 보게 될 자신에 대한 이재인 집착입니다.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분을 전심으로 의전한 믿음을 동반한 회개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회개는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회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죄를 미워하고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그리스도서 대신 죽으셨고 자신이 지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바로 자기를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 때문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08:44) 이것은 구원을 얻는 신앙과 부합하는 회개입니다. 따라서 율법적인 회개는 율법의 영혼의 자유함을 주지 못하지만 복음적인 회개는 진실로 영혼의 자유함을 줍니다. 율법적인 회개는 영혼의 참된 변화 없이도 가능하지만 율어 복음적인 회개는 영혼의 참된 변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참된 회개가 심적인 유침이나 도덕적인 준수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를 통 통해 사랑의 교재를 회복하는 통종적인 과정임을 기억한다면 율법적인 회개는 참된 회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삶믿음. 저는 신앙을 갖게 된 순간부터 예수를 믿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까지 심지어는 신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믿는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09:42)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저뿐만 아니라 예수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굳게 믿는데 자신이 지금 믿는이 믿음은 정말 구원받을 믿음인가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성경에서 구원을 얻기 위한 믿음으로 제시하는 믿음과는 전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데이 경우가 훨씬 더 심각합니다. 그가 소유한 믿음을 가지고는 구원받을 수 없는데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0:28)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하심으로 이루어놓으신 구원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믿음이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라는 말은 내가 믿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을 주실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받을 때 손을 내미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결코 공로적인 의미에서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기능적인 설명.
(11:14) 어떤 사람은 믿음을 설명할 때 이런 비유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이발소에 가도 면도를 할 때 눈을 감고 그 면도날이 우리의 목 날에 우리의 목을 맡길 수 있는 것이 이발사는 이발사를 믿는 믿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확률을 의존하는 것일 뿐이며 구원 얻는 믿음은 그런 종리의 믿음이 아닙니다. 에이든 토저의 지적과 같이 성경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정의하려고 하기보다는 기능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히브리서 11장 첫 구절도 바로 그것입니다. 믿음은 바라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니 그리고 믿음의 기원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분명합니다.
(12:05) 그러나 그것은 모두 기능과 발생 원인에 관한 설명이지 철학적이는 아닙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 캠피스도 나는 믿음의 정의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믿음의 믿음을 행사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구원에 관한 예수님의 선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든 것처럼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이는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 이 말씀 속에 믿음이 무엇인지 말해 주는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니거도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들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이 말씀은 여러분이 알고 계신 대로 민수기 21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2:57) 호르산에서 홍해를 돌아 에돔 땅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그 여정이 매우 험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하셔서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된 상황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는데 그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서 높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살았습니다. 신명기에 나타난이 사건은 예수님 시대 상황과 해석적인 대칭이 이루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에 물려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곧 예수님 시대를 비롯해서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죽어하는 백성들을 나타냅니다.
(13:48) 또한 장대에 달려도 피달린 뱀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쳐다본즉 살리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보시고 요한복음 3장에서 그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곧 쳐다보는 것입니다. 에이든 토저는 믿음을 곧 보는 것이다.라고 말하였 말한 바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본다는 것은 그냥 보는 것과는 달리 어떤 대상을 목적을 가지고 응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의 성질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뱀에 물려서 약도 없이 죽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장대끝에 놓인 높이 매달린 뱀을 보는 자는 살 것이라고 초방을 받았습니다.
(14:41) 그때 그 장대끝에 달린 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알면 예수님이 왜 쳐다보는 것을 믿음으로 보셨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제시되었습니다. 그것은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쳐다보는 그들의 눈빛이 얼마나 간절겠습니까?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단순한 지식의 동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 얻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성질은 절대 의존입니다. 단순한 지적인 동의는 믿음이일 수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 절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지 못하면 거룩하게 살도록 노력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15:32) 교회에 나오는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도움 받은 사람의 숨길 숨길 수 없는 특징은 주없이 살 수 없네라는 고백이든 삶입니다.이 이 의롭게 하는 믿음의 번제. 이제는 우리는 이번 장을 중심으로 이루는 내용을 다루고자 합니다. 그것은 의롭게 하는 믿음의 본질에 관한 내용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고자면 드리자면 의롭게 하는 믿음은 제시된 구원의 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살셨으며 그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이시고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없는 다른 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어 이에 대하여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유로운 가운데 인격적으로 고백하는
(16:37)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통하여 주어지는 칭의를 받아들이는 수단이 됩니다.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은 단지 심적인 확신이나 신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반드시 죄에 대한 확신을 어 필요로 합니다. 죄에 대한 확신을 통하여 인간은 죄의 성질과 그것을 그것의 죄책 그리고 이에 따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실제적인 이해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죄인을 온 죄에 관해 깨닫게 되며 어 그렇게 죄인된 상태에서 자신을 위하여 진정으로 필요 한 것이 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그러한 죄인의 신분과 죄의 얽매인 상태에서 스스로 구원하기는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이
(17:41) 의롭다함을 얻는 믿음의 필현적으로 선행됩니다.이 말은 곧 성인의 경우에 죄에 대한 확신이 믿음의 내면을 지리라면 챙기는 그 외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의전의 마음이 믿음이로라고 한다면이 의전의 마음은 자신의 아무리 희망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러한 자신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만이 그러여 의롭다 여김을 받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네 가지로 나누어 보다 나누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길에 대한 전적인 포기. 첫째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18:4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얻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구원 얻을 다른 길이 없음을 믿고 실제로 다른 모든 길을 버려야 합니다.이 같은 확신에는 반드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지식을 포함합니다. 신앙은 영혼과 관련된 작용이고 일반적으로 지식은 정신 작용에만 관련된 작용입니다. 따라서 지식이 곧 신앙은 아닙니다. 둘 사이에는 분명한 구별이 필요하고 어떠한 의미에서도 지적으로 안다는 것이 곧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지식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는 바를 모든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아는 바 없이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9:31) 더욱이 자기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제까지 자신의 삶을 지탱해 왔던 모든 사고의 기반과 가치의 체계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지식없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처음 예수님을 믿고자 할 때에 그 지식의 내용은 아주 적은 분량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 그를 믿을 때 죄를 사하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지식은 성경 전체가 가르쳐주는 시의 지식의 양에 비하면 아주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량이 가치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비록 그러한 지식은 적은 것이라도 그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질적이고 결정적인 지식입니다.
(20:22) 그 지식은 믿음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는 믿음은 이교적 신비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영생이 무엇인지를 몰랐고 그래서 지상의 자원을 넉넉히 차지하는 것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서 풍족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당면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토록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원하고 열심히 공부한 것도 바로 지상의 자원을 소유함으로써이 세상에서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그것을 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방식의 추구들을 통해 인생의 악과 고통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신하여야 합니다.
(21:12)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구원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길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구원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전적으로 포기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얻는 것을 천당에 가는 만 사용하고 그 후에는 이전과 똑같이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함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결코 의롭다 여김을 받을 만한 믿음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혹시이 예전에 그들이 구원을 얻었다면 그들은 지금 견디기 힘든 고통과 보욕을 하나님께 안겨드리면서 죄의 지배 아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자신을 영적 죽음이라는 질병과 그로 말미암는 고통과 악으로부터 구원해낼 수 있는 다른 어떤 길도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22:09) 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제시되는 모든 길을 버려야 합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죽고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혼의 질병적 죽음으로부터 나를 건져내어 구원얻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롭다함을 얻게 만드는 믿음의 첫째 단계입니다. 예. 김학제 목사님, 김학재 목사님 목소리가 안 들립니다. >> 아, 예. 죄송합니다.이 의지의 동의와 하나님을 깊이 인정함. 둘째로 의지의 동의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속에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 없는 길이 없다는 믿음이 믿음이 올 때 의지가 것을 깊이 어 동의해 주는 것을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의지가 결단을 하면 그것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며 그 진리를 붙잡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23:13) 굳게 붙드는 순간 영혼에게 강력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알려진 진리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있어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것은 확신입니다.이 이 확신은이 확신은 자신에게 알려진 진리의 진리를 참된 것으로 인정하고 자기 안에 수용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의지의 동의가 수반됩니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것과는 다른 확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확신은 신자의 내정적인 경험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확신이 따르지만 항상 같은 같은 정도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24:06) 또한 확신 확신 여부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임에도 구원을 확신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포된 복음 진리를 참된 것으로 수반하지 않는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깊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죄인을 향한 주권적인 은혜와 자비의 방식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인정한 사실이 자신의 삶과 일한 관계가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으시고 살아나게 하신 것이 나같이 더러운 주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주시는 방법이요 사랑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인정하고 그것에 의하여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되는 것 이것이 인정한다는 의미이며 이것이 바로 의롭다함을 의롭다함을 얻는 믿음의 셋째 단계입니다.
(25:08) >> 3. 하나님을 의뢰해야 함. 넷째로음 믿음은 전적으로 의존을 포함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 주어진 구원 방법에 대한 신뢰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에 대한 전적인 의전을 포함합니다. 정확히 말해서 믿음이 이것을 포함한다기보다는 영혼 안에 일어나는 믿음의 작용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결대 의존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조상 아담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바되었는지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전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창조주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지정하 지정해 주신 시조물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26:06) 그리고 거기서 만물을 하나님 아 인간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었고 인간은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존재로 남아 있었으며 가장 행복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장 영광을 어 받을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절대 의존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무엇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그하신 실과를 먹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절대적인 의존 속에서 살아온 살아야 할 인간의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처럼 독립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로 이러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27:06) 따라서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절적인 의존을 포함한다는 것을 두만하이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 의전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보혈 속에 속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사와 자비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의존하고 거기에 자신의 구원을 향한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은 최소한 세 가지 요사를 따르게 합니다. 첫째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전적으로 의뢰하면 하나님께서 나라를 받아 주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28:03) 그리고 그것을 어 그것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나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전 어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 안에 하나님에 향한 경외함과 사랑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님 외에는 아무 곳에서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하나님께서 나를 싫어하셨어도 나는 나대로 사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셋째로 하나님 밖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하는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살면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모든 것에 대한 기대를 어
(29:09) 꺼 버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의뢰입니다. 성경에에서 언급한 종류의 믿음은 이처럼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지 자기 암신한 심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믿음을 이야기할 때 그 믿음은 항상 믿음의 대상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 믿음의 대상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뢰과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믿음만이 영혼의 변화를 가져오고 영혼의 변화는 영혼과 관계된 모든 귀관의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이 믿음으로 말 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30:10) 이처럼 아 하나님을 의뢰하는 어 속에서 우리를 회개시키시고 거듭나게 하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두 가지 방해야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편에서 이렇게 하심으로써 인간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독립선을 포기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의존의 관계로 돌려 놓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간편에서 이렇게함으로써 내면의 세계가 완전히 세신되고 하나님을 향한 의전의 관계로 돌아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편에서 인간을 창조하셨던 제자로 돌려 놓으시고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을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관계로 바꿔 놓기 위해 이렇게 하나님을 의전하는 믿음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31:07) >> 믿음의 내용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은 무엇을 믿는 믿음일까요? 간단하게 말해서 그것은 바로 선포된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는 믿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이 사실에 대한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를서해 주십니다.이 사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대에 사는 어떤 불류의 사람들이든지이 사실을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동의하는 방식으로 믿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31:53) 이한 믿음을 역사적 신앙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떠한 영적이고 도덕적인 목적도 가지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지식적으로만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앞에서 언급한 구원얻는 믿음이 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선포된 복음의 내용 가운데 특별히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우리의 관계를 명시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라고만 되어 있으면 그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되는데 선포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다시 사신 것은 우리를 위함이었다라고 명백하게 말합니다.
(32:41)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이셨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덕을 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누가 누구를 대신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만약 그러셨다면 예수님이 수십억 번을 죽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이것은 구원받을 우리 모두를 당신 품에 앉고 우리 모두를 대표하신 분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33:30)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포함한 대리적인 죽음이었습니다. 이것을 내포적 대신이라고 부릅니다.이 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구원 사건이 우리에게 적용되고 그 효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을 우리 모두를 끌어안고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영원히 단번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 속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 되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세례를 받는데이 세례는 믿는 자가 되어가는 과정의 종교를 의미합니다.
(34:25) 믿어가는 과정이 끝났고 이제는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선포된 믿음이 확실히 믿어졌고 이제는 그 고백을 따라 살겠다는 외적인 표시가 바로 세례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이 세례를 받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의 결과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인 유일한 길이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공로에 참여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속죄의 사역에 함께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되는 것이 구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35:16) 이 이 연합의 결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킨다고 할 때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의 존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진노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그분 안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대리자이신 그분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실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진노를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시키셨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하여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6:02) 이처럼 우리는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존재에 참여하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행하신이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끌어신 우리의 대표자로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 박힌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당한 고난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즉 그분이 율법의 저주를 받으신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은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율법의 정죄함을 받고 죽으신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은 것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36:44) 또한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이 모든 일이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일어난 일입니다.이 2. 믿음과 순종의 관계. 이제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과연이 믿음이 순종을 포함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 의롭다 여김을 받는이 믿음 속에 순종이 포함된 것인가 아니면 순종은 믿음과 별개의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교회사 속에서이 두 가지 문제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적인 견해는 의롭다 여김을 받은 믿음은 반드시 순종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37:40) 첫째로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으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누구든지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는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선물로 주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그것 자체가 지극히 일반적이고 얼마든지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선물이 아닙니다. 선물의 이례적이고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는 사람이 아주 기쁘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러한 선물인 것입니다. 이처럼 선물로 받는 믿음이 죽어 있어서 활동할 수 없고 열매를 맺지 않고 어떤 역사를 익히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38:28) 그런데 믿음은 믿음이고 순종은 순종이라고 두부 자르듯이 딱 잘라 놓는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의 히크신 능력으로 주신 믿음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고 마음속에 어떤 감동도 불러일으키셔서 하나님께 순종하게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그것을 가리켜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구원에 이르지 이르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물로 주는 믿음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잠깐 쓰고 버리는 일용이 아닙니다. 둘째로 믿음이라는 은혜가 영적 생명의 원리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단지 우리를 의롭다 여김을 받게 할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은혜를 포함합니다.
(39:24)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잘 깨닫게 되고 성결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뢰의 마음을 가르쳐 주는 믿음은 믿음의 은혜는 순종하게 하는 다른 은혜의 유기적으로 섞여 있습니다. 순종하는 은혜가 행사되지 않는데 유독롭게 하는 믿음이 홀로 역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전적으로 의뢰하며 사는 존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고 싶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의뢰하는 믿음과 순종은 함께 역사합니다. 그렇게 하는 믿음의 아 의롭게 하는 믿음의 은혜를 받게 되면 전적으로 삶속에서 총적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살고 싶은 주적인 경향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40:28)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어 우리에게 의롭다 여김을 받는 믿음 즉 구원 얻는 믿음을 선물로 주실 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의존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않기를 원하는 강력한 소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의정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순종 해야만 합니다. 불순종한 자체가 죄이며 그것을 곧 하나님의과 자신과의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마음이 깊어질 때 순종한 마음이 생겨 생겨나게 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박국 2장 4절은 의롭다 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41:31)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는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런 믿음이 우리를 의다 여김을 받게 하고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가 우리의 것이 되게 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이 믿음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부하여 있기 위해 힘쓰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서 떨어지지 않고 거기에 매달려서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이외에는 소망이 없다고 매달리는 믿음입니다. 언젠가 가정법원에서 이혼을 하고 나온 부부가 아이를 서로 맞지 않으려고 다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다투는 동안 엄마 아빠의 옷자락을 붙잡고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42:23) 결국 아빠가 먼저 돌아서자 내 아빠 따라가라고 떠미는 엄마를 붙들고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처절하게 울며 매달리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밖에는 자신에게 더 이상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매달리는 믿음이 바로 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아이를 꼭 끌어앉고 안심시키는 엄마의 품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떠는 그 아이에게 위로가 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하시는 친절 밖에 내게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하는 절대존의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제시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간단 간 간 간절한 집착으로 나타납니다.
(43:14) 하나님의 자비와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이러한 집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이외에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굳게 붙드는 믿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착하 매달리는 믿음 그 믿음이 바로 우리의 죄가 주같이 붉을지라도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 양털같이 희게 만들어 주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보고 희망을 갖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놓으신 속죄의 사실이 우리에게 적용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절대 의전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44:04) 이 절대 의존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늘 가지고 살아가기를 기뻐하셨던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주셨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죄가 들어오기 전까지 최초의 인간들에게는 어떠한 동 독립심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였고 그래서 하나님께만 순종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들의 존재는 가장 아름게 빛났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며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에게 이러한 절대 의존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 살아날 때 그들은 보게 됩니다.
(45:00) 자신이 얼마나 비천하고 더러운 존재인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밖에 의지할 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낯선 거리에 부모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싶어 합니다.이 믿음을 소유하고 참된 신자의 길을 우리가 걸어가야 합니다. 아멘. >> 아멘. >> 아멘. 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