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 viewsNotes
Transcript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눅2:25-35절
서론
구약과 신약의 구원관은 사뭇 다르다. 구약과 신약의 구원관의 차이는 마치 흑백과 컬러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흑백과 컬러 사진의 공통점은 같은 형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점은 선명도의 차이다. 구약은 형체인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이었다. 반면, 신약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다. 구약에 놋뱀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으로 죄를 짓자,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 많은 백성을 죽게 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한다. 모세 역시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놋뱀을 장대 위에 달아 물린 자마다 살게 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보고서 구원받은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약속으로 정하셨기에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뱀에 물린 자들은 장대 달린 놋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이고, 형태는 훗날 십자가 나무에 달리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구약 백성들은 히브리서 11:1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실상을 멀리서 믿으므로 내다보는 그 믿음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것이 구약에 구원관이었다. 그러나 신약은 그 형상이 드러난 실체였고, 그 인물이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선명도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정황은 구, 신약의 전환기에 해당한다. 이미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왔지만 현실에서 드러나지 않은 구원이다. 구체적인 사항은 본문을 보면서 알아가기로 하자.
본론
25절: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
25절에 시므온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에 대한 소개가 언급된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의 위로”라는 문구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위로란, 이스라엘 백성이 대망하던 메시아와 그분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에서 살아왔다. 특히 황제에게 “주”라는 호칭이 주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라는 사실과 반대된다. 이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여전히 암흑기, 침묵기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위로가 가진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그들의 입장에서 메시아가 어떤 사람이느냐가 주관심사였을 것이다. 실제로 세례 요한은 눅7:19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요한은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예수님인지 확신이 없었고, 이는 신앙의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보여준다. 어쩌면 세례 요한의 이 말은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풀리지 않는 숙제와 같은 것이다.
우리의 신앙, 마음속에도 세례 요한과 같이 이런 불안과 기대가 동시에 공존할 것이라 사료된다. 우리 안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와 같은 면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잘 간 학교일까? 아닐까? 앞으로 갈 대학교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있을까? 없을까? 그러면서도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이 떠오를 것 같다. 불안과 기대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을까? 혹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 가는 게 맞을까?
26절: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
이것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안이지만,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숙제, 일종의 딜레마를 가지고 가면서도 세월이,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불안과 기대가 공존한다. 이것이 참 사람을 힘들게 한다. 무엇이 맞을까? 라는 말을 마음속에 계속 품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다가도, 이건 아닌 것 같다며 현실에 못 이겨 하나님이 아닌 다른 쪽을 선택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주석가에 따르면, 시므온은 평신도이며, 상당히 많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 이유는 26절에 언급된 것처럼,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28-30절: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 아래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던 예수님의 부모와 아기 예수를 만난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안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시므온은 이미 성취된 구원 그러나 아직 드러나지 현실, 그러나 곧 나타날 현실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성경은 이 믿음을 25절에서 “의롭고 경건하다”라고 평가합니다. 여러분, 학교 스쿨처치의 리더를 하고 함께 참여하려는 노력에 감사합니다. 또한 감사한 것은 매 금요기도회마다 나와 기도, 세션, 싱어 등 다양한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제하심에 감사합니다. 비록 아직 우리의 구원이 현실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곧 나타날 것이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그러합니다. 눅 2장 예수의 탄생은 앞서 설교한 바와 같이 “때가 차매”로 이루어졌습니다. 눅 4장은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즉 이 말은 성취된 구원이 현실로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공생애입니다. 그 길목에 오늘 본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오늘 본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으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성취된 구원이 곧 우리 현실, 눈앞에 드러날 것이니 그때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결론
학교 스쿨처치 리더, 참여자와 하루빨리 모임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들이 가진 고민과 나름대로 이야기들을 빨리 듣고 싶습니다. 그러기 앞서, 여러분 학교, 학원의 부흥의 그 날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이 일이 그저 흐지부지 되는 일이 되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시편 121:4 “이스라엘을 지키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우리 학교, 학원의 부흥을 위해 쉬지 않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