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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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 설교문]
[송구영신예배 설교문]
제목: 유동하는 세상, 뿌리 깊은 약속 본문: 갈라디아서 5장 22-26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25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26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2025년의 마지막 밤과 2026년의 첫 새벽 사이에 서 계신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조금 전 우리는 카운트다운을 하며 한 해를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2025년은 어떠셨습니까? 스마트폰 사진첩을 넘겨보면 웃고 있는 사진들이 많겠지만, 그 사진들 사이사이, 기록되지 않은 한숨과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가리켜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것이 고체처럼 단단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액체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는 뜻입니다. 직장도, 관계도, 트렌드도 너무 빨리 변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늘 불안합니다. "내가 여기서 멈추면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이 불안함 때문에 우리는 새해가 되면 또다시 비장한 각오로 '투 두 리스트(To-Do List)'를 작성합니다. 더 나은 스펙, 더 많은 성취, 더 완벽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이 불안한 유동의 시대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약속 하나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을 새번역으로 다시 한번 눈으로 따라 읽어 주십시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 두 가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첫째, 내 인생은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맺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성령의 열매를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품처럼 생각합니다. "올해는 '인내'라는 장식이 좀 부족했네, 내년에는 마트에 가서 '인내'를 사다가 내 인생 가지에 달아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합니다. "화내지 말자, 참자, 착하게 살자."
하지만 여러분, 트리에 매달린 장식은 예쁘지만 생명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쌓이고 떨어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열매'는 그런 장식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아홉 가지 성품은 복수가 아닌 **단수(one fruit)**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이것들은 따로따로 획득해야 할 아이템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하나의 인격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올해는 포도를 100송이 맺어야지!" 하고 끙끙대며 힘을 주지 않습니다. 그저 나무둥치에 꽉 붙어 있으면, 뿌리에서 올라온 진액이 가지를 통과하여 때가 되면 저절로 열매가 맺힙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2026년의 목표를 수정합시다. "무엇을 더 이룰 것인가(Doing)"를 고민하기 전에 "내가 누구에게 붙어 있을 것인가(Being)"를 먼저 점검하십시오. 세상의 속도와 성공에 붙어 있으면 불안의 열매가 맺히지만,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생명의 열매가 맺힙니다.
둘째, 기다림은 실패가 아니라 뿌리가 깊어지는 시간입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목사님, 저는 예수님 믿은 지 오래됐는데 여전히 화를 잘 내고,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제게는 열매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자책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독일의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의 주인이시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잠시 폐허처럼 보이고, 아무 변화가 없는 겨울처럼 보여도, 땅 아래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뿌리가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속도'를 숭배합니다. 클릭 한 번이면 배달이 오고,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농사'의 시간입니다. 씨를 뿌리고, 흙을 덮고, 비바람을 맞고,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난 2025년에 겪었던 실패, 남들은 모르는 눈물, 억울했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거름이 되었습니다.
김학철 교수의 통찰처럼, 성령의 열매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증수표'**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넘어져 있는 그 순간에도 성령님은 탄식하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기어이, 반드시, 여러분을 예수 닮은 사람으로 빚어내고야 마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흔들리지 않는 약속'**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2026년, 세상은 여전히 요동칠 것입니다. 경제는 어렵다고 할 것이고, 트렌드는 또 바뀔 것입니다. 그 유동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나의 의지력으로 '성공'을 쥐어짜는 한 해가 아니라, 주님께 접붙임 되어 '성품'이 맺히는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화려한 성취보다 더 위대한 것은,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거창한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잃지 않는 '기쁨'과 '화평'입니다.
성령님은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2026년이라는 새로운 시간 속으로 담대하게 걸어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