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워 그리고 팔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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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성경 16장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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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부터 우리 중등부를 섬기게 된 김민성 목사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예배드리게 되어서 너무나도 반갑고 또 기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말씀을 전하다 보니까,
제 마음에 굉장히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매우 긴장한 상태였어요.
“우리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설교 잘 하고 싶은데.. 우리 친구들이 좋아하는 거가 뭘까?”
이런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근데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제 마음에 한 질문을 계속 던지셨어요.
“너는 지금 누구를 의식하고 있니? 사람들의 반응을 따라가고 있니, 아니면 나를 따라가고 있니?”
뭔가 의미심장한 질문이 떠오르다보니 집중도 잘 안되고
그러다가 뭐 그런거죠. 잠깐 쉴 겸, 또 뭐 여러가지 찾아볼 겸,
겸사겸사 딴짓도 좀 하려고 핸드폰을 꺼냈어요.
그러면서 유튜브도 보고, 인스타도 들어가보고 했죠.
근데 무서운게 뭔지 알아요?
여러분 많이들 알고 있을거 같은데…
우리가 말하고 이야기하는거 핸드폰이 다 듣고 있는거 알아요?
그렇게 우리 알고리즘이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 차요.
핸드폰을 켰는데 알고리즘이 제 마음을 너무 잘 아는거예요.
처음엔 ‘설교 관련 영상’이 말 뜨더니,
갑자기 중등부 예배 꿀팁 이런거 뜨고,
그 다음엔 ‘중학생 유행어’, ‘중학생 밈’ 이런거가 뜨는거예요.
분명 설교 준비하려고 예배 준비하려고
들여봤던 핸드폰이었는데, 어느 순간 유행하는 밈 보는 아저씨가 되어 버린거죠.
시간도 생각보다 훌쩍 지나가 버렸고요.
저처럼 핸드폰 보다가 잠깐 본거 같은데?
시간이 휙 가버린 적 있는 사람? (손 들기 싫으면 고개만 끄덕여요.)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팔로우/팔로워가 넘쳐나는 세상이죠.
유튜브, 인스타, 스레드, 틱톡… 다들 많이 하죠?
유튜브에서는 구독과 조회수가 기준이 되고,
인스타에서는 팔로우와 좋아요가 마음을 흔들고,
스레드에서는 누가 내 글에 반응하는지가 신경 쓰이죠.
그런데 팔로우는 단순히 “좋아한다”에서 끝나지 않아요.
팔로우는 기준을 잡는 거예요.
‘내가 이 사람, 이 채널, 이 컨텐츠와 비슷한 것들을 보겠다고 기준을 잡은 거예요.’
결국 내가 계속 보는 콘텐츠가 내 생각을 만들고,
영상이나 릴스를 보다보니 거기서 알려주는 내용이 아 맞는거 같아~
또 거기서 하는 행동이 내 기준이 되고,
내 마음을 흔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사실 매일 마음속에서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팔로우하며, 따라가며’ 살고 있는 거예요.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가볍게 “나 팔로우해! 나 구독해!”라고 하신 게 아니었어요.
오늘 본문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러분, 오늘은 제가 이 말씀을 여러분과 같이 붙잡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도 여러분도, 이 팔로우의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 하나를 매일 마주하거든요.
“나는 지금 누구를 따라가고 있지?”
그리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오늘은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까지 말씀하시는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함께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기- 공감대 형성: 우리는 이미 ‘무언가의 팔로워’로 산다
기- 공감대 형성: 우리는 이미 ‘무언가의 팔로워’로 산다
여러분, 팔로우는 재미만 주는 게 아니라 감정도 건드려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내가 올린 게시물 반응이 괜찮으면 기분이 올라가요.
내가 말한 거에 사람들 반응이 없으면 괜히 망한거 같아요.
단톡방에서 내가 말했는데 씹히면 괜히 마음이 ‘툭’ 떨어져요.
근데 그게 사실은 우리 마음이 ‘팔로워’로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내 마음이 흔들리는 버튼”
“내 마음이 흔들리는 버튼”
여러분 각자 마음에 ‘버튼’이 하나씩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하면 확 눌리는 버튼.
반응이 없으면 눌리는 버튼.
비교하게 되면 눌리는 버튼.
어떤 친구는 성적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말수가 줄어요.
어떤 친구는 외모 얘기만 나오면 괜히 자신이 작아져요.
어떤 친구는 “인기” 얘기만 나오면 마음이 급해져요.
그 버튼을 누르는 게 뭐냐면, 사실은 “사람들의 시선”일 때가 많아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게 내 마음을 통째로 흔들어버려요.
—-
✅ 반응 질문
✅ 반응 질문
“나는 하고 싶었는데,
‘애들이 뭐라 할까 봐’ 안 해본 말/행동 있었던 사람?”
(고개 끄덕이게 하고)
맞아요.
—-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갈 때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쉽게 지쳐요.
팔로우할 게 너무 많거든요.
트렌드 따라가야 하고
분위기 따라가야 하고
친구들 기분 맞춰야 하고
내 이미지 관리해야 하고
이건 진짜 체력이 아니라 마음 체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왜 생기냐면
우리가 ‘팔로우할 대상’을 잘못 잡고 있기 때문일 수 있어요.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은 팔로워”를 주겠다고 하면서,
더 많은 기쁨과 재미를 주겠다고 하면서,
사실은 우리 마음을 점점 더 묶어버려요.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초대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초대하신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 그렇게 끌려다니지 말고, 따라와.”
“네 마음을 묶는 것들이 아니라, 나를 따라와.”
예수님이 오늘 본문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그래서 엄청 강하게 말씀하시는거 같아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하신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은 ‘팔로우’를 가볍게 말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우리가 진짜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지를 보게 하시고,
새로운 길, 진리의 길로 초대하신 거예요.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로우가 무엇인지, 본문에서 확인해봅시다.
승— 성경의 근거: 예수님의 팔로우는 ‘딸깍’이 아니다
승— 성경의 근거: 예수님의 팔로우는 ‘딸깍’이 아니다
여러분, 팔로우나 구독은 어떻게 할 수 있죠?
네 맞아요. 딸깍 누르면 구독이 됩니다. 팔로우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쉽게 버튼을 누르고 딸깍 팔로워가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따르는 팔로워는
팔로우 버튼을 딸깍 누른다고 해결되진 않아요.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냥 “힘들어도 따라와” 정도의 말일까요?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진짜 제자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순간입니다.
1) 본문 배경: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십자가”를 말씀하셨나?
1) 본문 배경: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십자가”를 말씀하셨나?
마태복음 16장은 아주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앞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하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로 고백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냐면,
“이제 나는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날 것이다.”
즉, 예수님의 길은 ‘인기’나 ‘성공’이 아니라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라는 거예요.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깜짝 놀라서 예수님을 말립니다.
“주님, 무슨 말씀이세요???? 말도 안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 마음에는 이런 그림이 있었던 거예요.
“예수님을 따르면… 멋있어지고, 잘되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승리하고, 편해질 거야.”
그런데 예수님은 그 기대를 확 뒤집으세요.
“아니야. 내가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야.
그리고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너희도 그 길을 함께 걸어야 해.”
여러분, 이게 핵심이에요.
예수님을 따른다는 건 “좋아 보이는 것만 따라가는 팬”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함께 걷는 제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따르라”를 가볍게 말하지 않으시고,
딱 3가지를 이야기 하셔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제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2) “자기를 부인하고” — 자기혐오가 아니라 ‘주인 교체’다
2) “자기를 부인하고” — 자기혐오가 아니라 ‘주인 교체’다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여러분, 이 말이 오해되기 쉬워요.
어떤 사람들은 이걸 “나를 싫어해야 믿음 좋은 거다”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자기부인은 자기비하가 아니에요.
자기부인을 쉽게 설명하면 이거예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 자리를 내려놓는 것.”
우리 마음에는 ‘왕좌’가 하나 있어요.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가 내 삶을 결정해요.
내가 앉으면 이런 말이 나와요.
“내가 맞아.” “내 기분이! 내가 기준이야!” “나 손해 보기 싫어!”
예수님이 앉으시면 이런 질문이 나와요.
“예수님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 자기부인은 나를 내려놓는 순서의 문제예요.
내가 항상 1번이던 삶에서, 예수님이 1번이 되는 삶.
내 욕심이 1번이던 삶에서, 예수님의 뜻이 1번이 되는 삶.
그리고 이건 여러분의 일상에서 굉장히 많이 부딪혀요.
친구가 나를 건드렸을 때,
“내 자존심”이 1번이면 바로 싸움이 나죠.
친구가 나를 무시한 것 같을 때,
“내 감정”이 1번이면 바로 폭발하기도 해요.
친구들이 다 하는 행동 앞에서,
“내 체면”이 1번이면 따라가요.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 순간에 멈춤이 생깁니다.
“잠깐… 지금 내가 왕이 되려고 하나?”
“예수님이라면 지금 어떻게 하실까?”
이 멈춤이 바로 자기부인의 시작이에요.
완벽하게 안 되는 날도 많지만, 한 번 멈추는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 믿음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불편한 순종’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 믿음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불편한 순종’
두 번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요.
여러분, 십자가는 원래 로마 시대에 가장 치욕적이고 무서운 처형 도구였습니다.
십자가는 “편한 길”의 상징이 아니라, 죽음과 포기의 상징이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을 하신 건,
“나를 따르려면 대가가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십자가는 꼭 “엄청난 박해”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십자가는 이런 형태로 올 때가 많아요.
‘예수님을 선택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
‘예수님을 선택하기 위해 내려놓아야 하는 것’
예를 들어볼게요.
분위기 십자가:
다 같이 한 사람을 놀리는데, 나도 웃으면 편해요.
근데 예수님을 따르려면 웃지 못하고 멈춰야 해요.
“야 그만하자.” 한 마디가 필요해요.
그 한 마디는 편하지 않아요. 그게 십자가예요.
정직 십자가:
시험이나 과제에서 유혹이 올 때, 슬쩍 넘어가면 편해요.
근데 예수님을 따르려면 정직을 선택해야 해요.
손해 볼 수도 있죠. 그게 십자가예요.
관계 십자가:
내가 먼저 사과하면 자존심이 상해요.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려면 먼저 손 내밀어야 해요.
그 불편함이 십자가예요.
여러분, 이걸 꼭 기억해 주세요.
예수님이 “남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 십자가”라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해?”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
이게 아니라,
내 삶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려고 할 때,
예수님을 따르려 할 때 만나는 그 지점이 내 십자가입니다.
죄가 원하는 방향은 늘 “편한 길”이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는 길”로 이끄시거든요.
4) “나를 따르라” — 감동이 아니라 ‘방향과 걸음’이다
4) “나를 따르라” — 감동이 아니라 ‘방향과 걸음’이다
세 번째는 “나를 따르라.”
여러분, 여기서 ‘따르다’는 말은 ‘좋아하다’와 달라요.
좋아하는 건 마음에서 끝날 수 있어요.
“예수님 좋아요.” “교회 좋아요.”
근데 따르는 건 발이 움직이는 것이에요.
삶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나를 진짜 믿는다면, 내 방향으로 걸어오라.”
“내가 사랑하는 방식, 용서하는 방식, 진리를 지키는 방식으로 살아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른다는 건, 내 인생에 기준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가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은 뭐라고 하실까?”가 기준이 되는 것
그리고 이때부터 진짜 자유가 시작돼요.
왜냐하면 내가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에 끌려다니는 팔로워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5) 한 문장 정리: 예수님 팔로우는 “클릭”이 아니라 “길”이다
5) 한 문장 정리: 예수님 팔로우는 “클릭”이 아니라 “길”이다
정리해볼게요.
세상에서 팔로우는 딸깍이에요.
하지만 예수님 팔로우는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내 왕좌에서 내려오는 길
십자가를 지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길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방향으로 걷는 길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이 말하는 ‘진정한 예수님 팔로워의 길’인 겁니다.
전 — 확신과 결단: 나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전 — 확신과 결단: 나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자,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짜 팔로우’가 무엇인지 알았어요.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 예수님 따름.
그럼 이제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가?”
여러분, 이 질문은 “교회 다니냐 안 다니냐”를 묻는 질문이 아니에요.
“착하냐 나쁘냐”를 묻는 질문도 아니에요.
이 질문은 더 현실적입니다.
내 마음의 왕좌에 지금 누가 앉아 있느냐를 묻는 질문이에요.
우리는 겉으로는 “예수님 믿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다른 걸 따라가고 있을 때가 있거든요.
사람들의 반응을 따라가는 팔로워
내 감정(분노/질투/불안)을 따라가는 팔로워
비교와 인기의 기준을 따라가는 팔로워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딱 한 가지를 원하십니다.
“너는 내 팔로워가 되지 않을래?”
✅ 반응 질문(결단 직전, 마음 점검)
✅ 반응 질문(결단 직전, 마음 점검)
여러분, 잠깐만 솔직하게 속으로만 대답해볼래요?
“요즘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이는 건 뭐예요?”
(1) 친구들의 인정 / (2) 성적과 비교 / (3) 내 감정과 자존심 / (4) 폰과 알고리즘
하나만 마음속으로 골라보세요.
(2초 침묵)
좋아요. 그게 바로 “내가 자주 따라가는 것”일 수 있어요.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에요.
(인정 받으려고 하는거? 성적 잘 받으려고 하는거? 내 감정? 나쁜게 아니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거예요.
그게 내 주인이 되어버리면 안된다. (나는 끌려다니는 거다.)
예수님은 우리를 끌려다니는 사람으로 살게 하지 않으세요.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로운 제자로 부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 하셨잖아요.
그럼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결단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결단은 이렇게 하면 됩니다.
“주님, 제가 주인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겠습니다.”
“주님,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오해 하나가 있어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고 해서,
여러분의 삶에 고난이 없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팔로워가 되었다고 어려움이 없을까요?
아니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여러분이 갑자기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실수도 하고 넘어질 수도 있어요.
예수님을 따르는 건 완벽이 아니라 방향이에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방향을 예수님께로 돌리는 사람,
그 사람이 예수님의 팔로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힘내서 따라와”만 하신 게 아니에요.
(그냥 저~~~ 멀리서 파이팅!! 잘한다잘한다 잘한다~!)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를 지셨고,
먼저 자기 자신을 내어주셨고,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결단은 ‘나 혼자 하는 결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에요.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으니,
저도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첫 설교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딱 하나예요.
이번 주에 “완벽한 신앙”을 살라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 한 걸음만 더 가까이 가보자는 거예요.
그 한 걸음이 쌓이면,
여러분은 어느 순간 “팔로우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걷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결 — 적용과 행동 제시: 이번 주 ‘한 걸음 팔로우’ 챌린지
결 — 적용과 행동 제시: 이번 주 ‘한 걸음 팔로우’ 챌린지
자, 이제 구체적으로 적용해볼게요.
여러분, 예수님 팔로우는 클릭이 아니라 길이기 때문에,
오늘 예배에서 끝나면 안 돼요.
월요일부터 내 삶에서 한 번은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한 주 챌린지를 제안할게요.
이건 어렵지 않아요. 딱 3단계입니다.
1단계: “내가 왕 되는 순간” 포착하기 (자기부인)
1단계: “내가 왕 되는 순간” 포착하기 (자기부인)
이번 주에 딱 한 번만, 이런 질문을 해보세요.
“지금 내가 왕처럼 굴고 있나?”
이 질문은 진짜 강력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부인은 ‘감정’이 아니라 ‘인지’에서 시작하거든요.
예를 들어 이런 순간들:
내가 무조건 맞아야 할 것 같을 때
지기 싫어서 목소리 커질 때
비교 때문에 마음이 초조할 때
누가 나를 무시한 것 같아서 화날 때
“나만 손해 보기 싫어”가 올라올 때
“나만 뒤처질까 봐” 불안할 때
그 순간이 바로 왕좌의 순간입니다.
내가 앉으려는 순간이에요.
그때 이렇게 한 번만 말해보세요.
(속으로) “잠깐. 지금은 내가 왕이 되려는 순간이다.”
이게 자기부인의 시작입니다.
2단계: “작은 십자가” 하나 지기 (불편한 순종)
2단계: “작은 십자가” 하나 지기 (불편한 순종)
그 다음에, 딱 하나만 선택하세요.
예수님 선택 1번.
뒷담화 분위기에서 조용히 멈추기
과장/거짓말 하고 싶은 순간에 정직 선택하기
먼저 사과하기(짧게라도 “미안”)
친구를 놀리는 말에 웃지 않기
예배 시간/말씀 시간에 폰 내려놓기
부모님께 말투 한 번 부드럽게 바꾸기
여러분, 이게 엄청 커 보이지 않죠?
근데 이게 바로 “자기 십자가”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순간은 보통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냥 편하게 가자.”
“한 번쯤 괜찮아.”
“괜히 나만 튀지 말자.”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팔로워는 그때 다르게 선택하는 거예요.
‘편한 길’ 대신 ‘옳은 길’을 택하는 것.
‘인기 길’ 대신 ‘사랑의 길’을 택하는 것.
그게 작은 십자가입니다.
3단계: “따름”을 한 문장으로 고백하기 (방향 고정)
3단계: “따름”을 한 문장으로 고백하기 (방향 고정)
그리고 마지막.
그 선택을 한 날 밤에, 아주 짧게 이렇게 기도해보세요.
“예수님, 오늘 한 걸음 따라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한 걸음 걷게 해주세요.”
여러분, 이 한 문장이 ‘방향’을 고정해줍니다.
주를 향한 이 방향이 여러분의 기준이 되고
여러분 삶의 알고리즘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2026년 표어가 뭡니까?
“나를 따르라.”
이 말은 여러분을 부담 주려고 주신 말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려고 주신 초대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은 팔로워”를 약속하지만,
대신 우리 마음을 묶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며,
우리 마음을 풀어주십니다.
그리고 혼자 걷게 하지 않으시고,
주님이 먼저 걸으셨고, 지금도 함께 걸어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첫 설교를 이렇게 마치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번 주에 한 걸음만 따라가봅시다.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딱 한 번만 예수님 선택을 해봅시다.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팔로워 입니다!”
예수님의 팔로워 되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중등부 공동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팔로우 그리고 팔로워”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지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사람들의 시선,
비교와 두려움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예수님의 팔로워가 되게 해주세요.
주님, 팔로우 버튼을 누르듯 쉽게 신앙을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한 걸음을 이번 한 주에 살게 하옵소서.
학교와 가정, 친구 관계 속에서도
예수님의 기준으로 선택하게 해주시고,
넘어질 때마다 다시 주님께 돌아오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