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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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힘들 때 참는 건 삼류고,
힘들 때 우는 건 이류고,
그 다음에 뭘까요? 힘들 때 웃는 건 일류다? 아닙니다. 힘들 때 먹는 건 육류다. 힘들 때 참는 건 삼류고, 힘들 때 우는 건 이류고, 힘들 때 먹는 건 육류입니다. 힘들 때는 고기를 먹고 힘을 내야 합니다. 힘듦을 이겨내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말이죠. 이 말은 제가 고기집에서 본 명언입니다. 고깃집에서 만든 멋진 명언입니다. 힘들때는 우는 것보다, 참는 것보다, 즐겁게 고기를 먹으며 힘을 내는 것이 더 정신 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이러해야겠죠.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이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난이 리듬처럼 반복됩니다. 힘든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늘 평안을 위해 기도하지만 사실 우리가 정말 해야 될 기도는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것보다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더 맞을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이든, 악한 영의 유혹이든, 이유 없는 사고이든 우리의 삶은 어려움에 늘 놓여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어떠한 삶의 태도로 살아갈 것이냐가 더욱 중요한 신앙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그 고난을 이겨낼 때 우리는 더욱 강해지고, 성숙해지고, 좋은 것들을 얻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군대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체력검정이 항상 있었습니다. 매 달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겨도 군대는 나왔습니다. 양구에서 나왔는데요. 제가 있었던 부대에서는 늘 체력검사를 혹독하게 했습니다. 종목이 있습니다. 특급전사가 되기 위한 종목이 있었습니다. 사격 20발 중에 18발 이상 표적을 맞추면 특급, 팔굽혀펴기 1분에 80회, 윗몸일으키기 1분에 80회, 3km달리기는 12분 10초 내에 들면 특급이었습니다.
12분 10초는 특급, 13분은 1급, 14분은 2급, 15분은 3급, 그 다음은 폐급이었습니다. 저는 어느정도 나왔을까요? 그런데 달리기가 참 이상했습니다. 원래 군대라는 곳이 상식적이지 않은 곳이니까요. 달리기 코스가 이상했습니다. 운동장 10퀴를 뛰던지, 평지에서 달리도록 해야하는데 달리기 코스 중간에 언덕이 있던 것이었습니다.
1대대에서 3대대로 넘어가는 코스였는데요. 그 대대 사이에 언덕이 있었습니다. 달려가는 것도 힘든데 언덕을 넘어야 하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 언덕의 각도도 굉장했습니다. 45도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너무 심한가요? 그런데 제 체감은 경주월드의 드라켄과 같은 각도였습니다. 그 언덕의 이름이 있었는데요. 그 언덕만 넘어가면 다들 헐떡댄다그래서 일명 ‘헐떡고개’였습니다.
3km구보를 하는데 중간에 그 헐떡고개가 있어서 다들 거기서 포기하거나 큰 위기를 겪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헐떡고개를 넘으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요. 그 헐떡고개를 올라갈 때는 힘들었습니다. 뛰지도 못하고 거의 걷다시피 올라갔는데요. 그러나 최대한 달리는 상태는 유지하면서 뛰어가면 그 다음 언덕의 고개 위로 올라가서 내리막길을 달려가면요. 그 다음부터 탄력을 받아서 달리기가 더 잘되는 것입니다.
신기한 느낌이죠. 물론 힘들긴 힘들지만, 고비를 한 고비 넘기고 나니까 내리막길에서는 탄력을 받아서 안정적인 페이스를 유지하며 더 속력을 내서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도 그렇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르막길이 힘들어서 그랬을까요. 그 다음 내리막길은 쉬워졌던 것입니다. 그때 느낀 것이 ‘힘든 오르막길을 잘 이겨내면 그 다음에는 탄력이 붙어서 쭉 나갈 수 있구나’였습니다.
우리 삶에도 여러 헐떡고개와 같은 오르막길, 힘든 고비, 고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개를 넘으면 또 쭉 달려나가는 시간도 있습니다. 한번 넘으면 끝은 아니지만 우리 삶의 여러 고난과 평탄의 리듬이 있지만 이런 고난을 잘 이겨내면 그 다음은 더 평안하게 능히 이겨내고 더 강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고개를 올라가서 탄력을 받아 쭉 달려나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고난중에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우리의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그 다음에 찾아올 기쁨과 좋은 것들을 기대하시며 하나님과 함께 달려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의 철야기도
저희 부모님은 기도를 많이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철야기도를 많이 하셨는데요. 제 어릴적 교회는 상가교회였습니다. 200명정도 모이는 곳이었는데요. 부모님은 그곳 열쇠를 가지고 열고 닫으시면서 저와 함께 기도하러 밤에 교회에 가셔서 기도하시고 주무시고 새벽기도 드리시곤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작정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시면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냥 생각없이 따라가고 교회 장의자에 누워서 잤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니까 저는 그냥 기도도 안하고 그냥 잤던 것 같습니다. 그 생활이 20대 때까지도 자주 그렇게 많이 했었는데요. 나중에는 저도 기도를 했죠. 그렇게 어머니는 기도할 일이 생기시면 저를 데리고 교회에 가서 기도하시다가 주무셨습니다.
어떤 날은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철야기도를 가셨습니다. 아버지가 기도할 일이 생기시면 꼭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두 분이 같이 가시면 좋을텐데 두 분이 같이 가신 일은 절대 없습니다. 부부싸움을 하실 때마다 가신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동생도 있는데 여동생은 잘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도 기도하실 일이 있을 때 기간을 정하시고 저를 데리고 교회에 가서 기도하다가 주무셨습니다.
아버지와 갔을 때도 아버지의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아버지의 기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이 들곤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란다고 하죠. 저는 아버지를 떠올릴 때 기도하시던 뒷모습이 같이 많이 떠오릅니다. 학생부와 청년부를 오래 섬기셔서 수련회를 참 많이 다니셨는데 그 때마다 저를 늘 데리고 가셔서 아버지가 무릎꿇고 기도하시던 모습이 잘 떠오릅니다.
그 아버지의 기도하시던 뒷모습이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큰 힘이 되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감사합니다. 무엇을 기도하셨는지는 잘 모르지만 부모님이 기도하며 살아가셨다는 것 자체가 지금 제게 힘이 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것이죠. 어려움을 무엇으로 이겨내셨는가, 인생의 고난과 풍파를 무엇으로 견디셨는가 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기도들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말을 잘 안듣는 편인데요. 그래도 기도하라는 소리는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그렇게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자녀에게 신앙의 잔소리를 하시려면 삶으로 보여주셔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단 도살하다, 희생시키다.
노아는 대홍수가 지나고 난 다음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성경에서 제단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입니다. 제단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평평한 돌을 쌓아놓은 책상과 같은 단입니다. 강단도 같은 제단과 같은 ‘단’입니다. 노아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제단을 쌓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자연석을 쌓거나 흙을 다져서 돋우고 그 위에 평평한 돌을 놓아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높이는 1미터 정도 됩니다. 출애굽시대에서는 조금 더 자리를 잡았습니다. 성막 안에 제단을 두어서 희생 제물을 죽이고 태우는 곳으로 사용했습니다. 왕국시대에도 제단이 있다가 이스라엘 멸망 때에 사라졌다가 포로생활을 하고나서 성전을 다시 지었을 때 제단이 다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제단의 어원은 도살하다, 희생시키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을 도살해서 드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단이라고 하는 것은 동물을 희생시키고 도살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단입니다.
번제 올라가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번제라는 말도 나옵니다. 번제는 제사의 방식 중에 하나인데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또 예배자의 전 인격이 하나님께 바쳐짐을 상징하는 중요한 제사 방법 중 하나입니다. 번제물에는 수송아지, 숫양, 숫염소 등 모두 흠이 없는 수컷으로 드려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게는 예외적으로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도 허용되었습니다.
번제는 ‘עֹלָה’(올라)라고해서 ‘올라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ὁλοκαύτωμα’라고 하는데요. 홀로카우토마 ‘전부를 불에 태움’이란 뜻입니다. ‘철저한 자기 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단어입니다. ‘대학살’을 뜻하는 ‘홀로코스트’는 이 홀로카우토마의 영어식 표현입니다. ‘홀로’는 ‘완전히’라는 뜻이고요. ‘카우스트’는 ‘태움’이라는 뜻입니다. ‘완전히 태우다’의 의미입니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번제 드리듯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실행했습니다.
번제는 ‘올라가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오늘 이 번제의 제사에서 의미를 좁혀서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기도’입니다. 번제는 제사이자 예배인데요. 예배 안에는 여러 부분들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 ‘기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번제를 기도로 드리는 것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8:3–4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요한계시록에서 천사가 성도의 기도를 제단에 드립니다. 그러자 천사들의 손에 있던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제단에서 태워져서 하나님께 올려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제단이라고 하죠. 우리가 기도의 제단을 쌓고 기도의 번제를 드릴 때 천사들이 우리의 기도를 향의 연기와 함께 하나님께 올려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기도의 제단을 쌓습니다. 매일매일 살아가며 일상속에서 기도를 합니다. 일을 하다가도 틈틈이 기도를 하며 기도의 제단을 쌓고요. 걸어가면서도 하늘을 보며 기도를 합니다. 새벽마다 새벽제단을 쌓습니다. 매일 시간을 정해서 기도의 제단을 쌓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기도의 제단에서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시편 141편 2절에도 다윗은 기도가 제물과 향기로 드려지기를 간구합니다.
“내 기도를 주님께 드리는 분향으로 받아주시고, 손을 위로 들고서 드리는 기도는 저녁 제물로 받아 주십시오.”
다윗도 기도를 연기로, 향으로 드리고요. 제물로 올려드립니다.
노아의 번제 하나님의 위엄 앞에 무릎 꿇다.
노아의 제단으로 다시 돌아와 보겠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몰아친 후에 하늘에는 구름이 남아있고, 구름 사이사이로 햇빛이 갈라지고, 무지개가 떠 있는 고요한 땅에 발을 딛고 그 자리에서 돌을 쌓고 제물 하나를 취해서 하나님께 태워 드립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로 드리는 번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순복하며 그 위엄 앞에 경배의 제사를 드립니다.
노아의 번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는 번제가 되었습니다. 노아는 배를 만들 때부터 홍수를 겪고, 땅에 발을 내딜 때까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기도로 가득했습니다. 배를 만들면서 했을 하나님을 향한 기도, 조롱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의 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겠다는 마음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배 안에 갇혀서 망망대해를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가족들과 동물들과 보내는 두려움 속에서의 기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라는 것도 있었을 것이고요. 이루어졌으면 하는 수많은 기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땅을 내딛고 나와 처음 드렸던 번제에서 그의 마음과 기도는 오롯이 하나님께 맞춰지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계획과 인도 속에서, 그 위엄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맡겨드리는 것,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것,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에 내 삶을 참여시키고, 하나님의 역사에 내 삶을 맞추는 것이 기도하는 자가 깨닫는 진리입니다. 기도는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비극인 이유는 하나님을 내 삶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나를 위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해 있습니다. 자꾸 하나님을 나에게 맞추려고 하니까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삶이 힘듭니다.
반대로 내 삶을 하나님께 맞출 때 비로소 우리 인생의 퍼즐이 맞춰집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맞출 때 우리는 창조의 질서에 맞춰지는 것이고, 우주의 질서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가운데 평안이 있습니다.
결론 노아의 기도 제단
노아의 기도의 제단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능력 앞에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당신을 경외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제 삶은 주의 것입니다. 제 삶을 드립니다.’ 이 고백이 노아의 고백입니다. 그렇게 노아가 번제를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향기를 받으셨다고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왔던 천사들의 성도들의 기도를 향기와 함께 하나님께로 올려드렸다는 내용과 같습니다. 노아의 기도는 번제의 향기와 함께 하나님께로 올려졌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가 되었습니다. 노아의 이름 뜻은 ‘위로’ 또는 ‘안식’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만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노아에게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노아의 기도를 통해, 향기로운 기도의 번제를 통해서 하나님은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 향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안식을 주는 향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께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가 됩니다. 하나님에게 위로가 되고 쉼이 됩니다.
결론
세상 가운데서 기도의 자리를 놓지 않는 사람을 보시고 하나님은 위로를 얻으십니다. 만족함과 기쁨을 얻으십니다. 기도하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있어서 힘이 된다. 고맙다.’ ‘세상은 악하여도 기도하는 네가 있어서 든든하다’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일부터 새해 특별 새벽기도회가 있습니다. 새벽 기도제단을 드리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위로와 기쁨을 얻으실 것입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분들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기도의 제단을 쌓으시고, 걸으면서도, 틈틈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위로를 얻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기도의 제단을 쌓으셔서 우리의 기도가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올라가서 하나님을 위로해드리고, 기쁘시게 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기도하는 아버지, 기도하는 청년, 기도하는 아이, 기도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기도가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올려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과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327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