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부르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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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1:12-20
딤전 1:12-20
찬송가 553장 새해 아침 환히 밝았네
오늘은 ‘우릴 부르신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이제 2026년 한해가 밝았습니다. 살펴볼 말씀을 통하여, 다시금 우리의 목적과 방향성이 분명히 되는 이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연말이되고 한 해의 시작이 되면, 설레고 시작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무게, 사명의 무게들을 내가 올 한해도 잘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드는거에요. 그럴 때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볼 디모데전서는, 바로 그 질문 앞에 서 있던,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 앞에 서 있던 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디모데전서는 독특하게 어떤 교회에 보내진 편지가 아닙니다. 보통은 로마서, 고린도전서, 교회 공동체에게 보낸편지인데, 이것은 사도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라고 불리던 후배 사역자였던 디모데 개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디모데는 당시에 바울처럼 목회자였습니다. 그가 섬기는 교회는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에베소서라는 편지가 있는 만큼 유명한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을 통하여 에베소라는 도시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고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교회에 우리가 알만한 유명한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고요, 아볼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지역에서 약 3년에 걸쳐, 긴 기간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했고 교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디모데라는 젊은 사역자가 담당하고 있는거죠.
에베소 교회는 겉으로 보았을 때는 꽤 유명한 도시에 있는 괜찮은 교회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결코 그 자리는 편한 자리가 아니었음을 편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말은 그럴듯 하게 하지만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가르침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따르고 순종하기 보다 논쟁에 더 열심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앞에 나서서 가르치려 했고요,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젊었고, 경험이 많이 없었고, 연약했고 그 모든 상황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바울은 이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의 구조를 보면요,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일어난 문제나, 디모데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또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규칙을 먼저 말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는지, 그런데도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어떤 이유로 부르셨는지 그것을 고백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을까요? 그것은 어떤 현상에 따른 답을 찾기 이전에, 아주 근본적인 이유와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할 때가 많이 있기 떄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더 강해져야 한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 된다를 말하기 이적에, 나는 어떤 이유로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하나님이 너를 어떤 이유로 그 자리에 부르셨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초청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디모데와 비슷한 자리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한해를 시작하며, 여전히 내 삶에 있는 문제와 어려움, 현실의 답을 찾기에 앞서, 또 교회에서 맡겨진 나의 역할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물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왜 여기에 서 있는 것입니까?” “주님 저를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다시금 서보아야 합니다.
오늘 이 본문은 바울 개인의 간증을 넘어서서, 디모데의 상황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에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릴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바울은 본문 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한다. 그것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겨 주셨다”라고 고백해요. 그는 먼저 주님에 대한 감사로부터 이야기를 꺼내듭니다. 그가 감사한 이유를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나를 불러주시고 내게 직분을 맡겨 주셨다라는거에요. 왜 이게 감사할 일입니까? 13절에 보면 그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철저하게 은혜라는 거에요.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 특별히 교회에 있어 그는 원래 원수였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되요. 이제 교회를 위한 사명자, 복음을 위한 사명자,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거에요.
12절에 고백에 보면요, 강조하는 핵심이 그거에요.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겼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충성된 일꾼이었기 때문에 직분을 맡았다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충성되이 여겨주셨대요. 자신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이 아니였죠, 원수였죠. 대적자였죠. 그런데 그를 충성되이 여겨주셔서, 그에게 직분을 맡겨주셨다라는거에요. 14절에 주의 은혜가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풍성하였다.라고 고백해요. 15절에 나는 죄인 중의 괴수였다. 그러나 내가 주님께 긍휼을 입었다. 그분은 내게 오래 참으셨고,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게 부르셨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대적자와 비방자도,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 그분의 오래 참으심 드러내기 위하여 자신을 부르심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생각해요. 내게 있는 이 자리, 내게 맡기신 이 직분, 내가 할만하기 때문에, 내가 감당할만 하기에 나에게 주어졌다 생각하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애초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던 자에요. 하나님과 원수의 자리에서 대적하던 자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는 뭐에요? 이 자리를 통하여 내 능력을 보여주며, 나의 영광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연약하고 볼품없는 자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삶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다는거에요.
하나님이 우리가 연약하다는거, 그 자리에 합당하지 않다는거 모르고 부르셨을까요? 아니요 알고 계십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얼마나 볼품없는 인간인지, 죄인인지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잘 아실거에요. 그런데 이러한 죄인들을 부르시고, 자신의 일과 하나님 나라의 직분을 맡기시는 이유가 뭐에요? 이 놀랍도록 엄청난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디모데는 이 편지를 받아들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다시금 새로운 마음을 품었겠지 않겠습니까. 아 그래 부족한 나를 부르신 하나님, 나 같은 자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신 우리 주님, 내가 드러낼 것은 주님의 은혜이구나, 내가 의지할 것은 그분의 은혜이구나 다시금 생각했겠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우릴 부르신 이유는요, 내가 그 자리에 합당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그 일을 잘 감당할만한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모자라지만 그 자리에서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나 같은 자를 부르신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우리의 자리에서 내가 드러나는 삶이 아니라, 이 놀랍도록 풍성한 주님의 은혜만을 드러내는 우리의 삶이 되길, 이번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18절부터 분위기를 바꿉니다. 간증에서 명령으로 고백에서 요청으로 넘어가요. “아들 디모데야,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양심을 버렸고 믿음에 관하여 파선하였다” 이게 참 상반된 분위기 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격 없는 자를 부르신 주님의 은혜를 이야기 하다가, 믿음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요, 그것을 버린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릴 부르신 이유는 은혜를 드러내는 것도 맞고요, 또 한 가지는 이 세상의 죄악과, 죄인들을 대적하며, 양심과 믿음을 지키는 영적 싸움이 우릴 부르신 이유라는거에요.
은혜를 이야기 하고 나서, 믿음의 싸움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뭐에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집니다. 자격 없지만 그 은혜가 주어져요, 그런데 그 은혜를 지켜내고 믿음을 지키는 삶에는 반드시 우리의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신앙생활만 편하게 하라는 이유가 아닙니다. 우릴 부르셔서 이 세상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유혹과 타협 앞에서, 믿음과 양심을 붙들고 살아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특권이면서 동시에 사명인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디모데에게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 은혜를 붙들고 선한 싸움을 싸워라” 이번 한해 우리 교회의 표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지경이 넓어짐, 즉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가까워지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문
은혜로 우신 하나님 아버지
2026년 새해를 시작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해 들었던 것 처럼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우리의 자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아시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자리로 불러 주신
그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풍성한 은혜가 드러나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
우리를 편하게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믿음과 착한 양심을 붙들고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부르셨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믿음이 파선되지 않도록
끝까지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이번 한 해,
내가 드러나는 삶이 아니라
나를 부르신 주님의 은혜만 드러나는 삶 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지경이 넓혀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모든 기도 감사드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