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2) 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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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2(수) 20200903(목) 20250102(목) 20260102(금)
■ 3장. 인류의 타락 이야기
○ 타락 : 하나님 말씀의 왜곡
“하나님께서 전부를 금하시더냐?”,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는 대답은 금지 명령에 대한 불만과 반항을 담고 있다. 그리고 남자는 침묵으로 이에 동조한다.
○ 뱀의 교활함과 여자의 탐심
▹ ‘아룸’ 잠언서에서는 한결같이 슬기롭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
간교와 슬기는 종이 한 장 차이. 어떤 이는 이를 통해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발견하고 겸손하고 신중하게 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한다.
하나님이 뱀을 악한 존재로 만든 것이 아니라, 뱀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도록 지어진 것이 아니라, 뱀 자신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한 것이다.
▹ 여자의 탐심 : 타락 이전에 이미 탐심이 있었다. 이것은 정상적인 욕구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욕구를 주셨다.
▹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다. 그 자유가 가지고 올 비극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를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그 자유를 통해 우리 인간은 완전한 순종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를 자유가 주어져 있지만, 뱀은 지혜를 교활로 바꾸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여자는 탐심의 충족을 위해 말씀을 왜곡하였다. 남자도 침묵으로 동조하였다.
▹ 스스로의 욕망, 스스로의 탐심을 충족하기 위해 하나님을 떠난 인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 죄의 출발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것과 정 반대의 삶이다.
○ 아담은 이미 충분히 지혜로왔다. 동물들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름을 지어주었고, 하와를 보고 자기에게 맞는 짝임을 알아차렸다. 선악과는 또 다른 지혜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아는 것...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하나님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 인간의 참된 존엄은 자유로운 결단과 선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제약 속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의하고 마음을 같이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은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갈망하게 된다.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죄가 아니다. 아름다움을 알고 음미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다. 문제는 선을 넘는 것.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선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을 넘어서, 자신의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 무엇이든, 어디든 해치워버린다는 것이다. 뱀은 미를 알고 추구하며 욕망하는 총족을 자극하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을 넘어 행하게 한다.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 나무를 따 먹지 말라는 명령은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의지를 주셨음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권위와 위엄과 능력을 선포하신 것.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드러냄. 하나님(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인간은 누구인지(피조물) 늘 기억하라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던 삶이 깨짐(3장)
부끄러워하지 않던 관계(2장)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관계로 전락(3장)
하나님의 왕 되심을 상징하는 동산 중앙 나무(3장)
자율성과 선택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는 인간(3장)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3장) : 피하고 두려워함
1) 인간과 인간의 단절(3장) : 서로 핑계대며 자기 혼자 살려고 함
2) 인간과 세상의 단절(3장) : 땅이 엉겅퀴를 내며, 수고해야 산물을 얻을 수 있다.
반역한 인간을 여전히 돌보시는 하나님(3장): 가죽옷
하나님과 인간의 완전한 단절(3장): 동산에서 쫓겨남,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둠 - 접근 금지
20200901(화) 창세기 3장
○ 상황
삶은 매 순간이 선을 넘느냐 마느냐의 선택이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나에게 유리한 선택, 즉 선을 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 도전
완전한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서 내 삶에 기대하시는 것은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완전한 순종을 드리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 변화
모든 선택의 순간에 잠시 멈추어 완전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창세기 묵상/연구하기
개인 예배 시간 갖기
○ 기도
나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셔서 존엄한 존재로 만드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자유를 가지고 완전한 순종을 하겠습니다.
■ 4~5장. 멀어진 인간들의 이야기 : 죄의 확장
○ 가인과 아벨 이야기
▹ 왜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는지 설명이 없다.
▹ 히브리서의 해석에 의하면, 믿음으로 드린 것의 차이, 즉 태도의 차이이다.
예배는 무엇을 드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과 자세로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유대인 랍비들의 해석 : 아벨은 첫 새끼를(수 많은 양들 중 어느 것이 처음 것인지 계속 살피고 구별하는 노력과 자세 / 가인은 아무 곡물이나 그냥 드린 것, 자기가 임의로 정해서(땅의 소산으로 재물을 삼아 – 자기가 정함). 율법에서 재물로 드릴 때 : 제일 먼저 거둔 것, 익은 것, 태어난 것을 드림.
히브리어 문법 : 아벨의 이야기는 반복되는 행동을 표현할 때 쓰는 문법, 가인은 일회적인 행동을 표현할 때 쓰는 문법
아마도 이 해석을 히브리서 저자도 알았을 것이다. 신약도 구약에 대한 일종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 4:7 분노하고 있는 가인에게 죄를 다스릴 것을 경고
죄가 살아있어서 문 앞에서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표현.
그러나 가인은 그 경고를 무시, 가인은 하나님의 거절과 경고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아야 했다. 그러나 가인에게 관심은 아벨 뿐이었다. 가인도 역시 자신의 선택으로 죄를 지음. 완전한 자유를 주신 하나님 앞에 인격적인 결단이 필요함. 하나님은 인격적 반응을 기대함.
▹ 하나님이 자신을 무시하고 아벨을 인정하는 것 때문에 아벨을 제거,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해결한다. 그것은 아벨을 인정하는 하나님을 배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 죄의 결과 : 관계의 파괴, “내가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까?” 인간은 형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가진 존재. 인간은 근본적으로 형제를 지키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울으신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통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묻고 계시고,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을 통해서는 인간과의 관계(형제간의 관계)를 묻고 있다.
▹ 계속되는 두 종류의 족보
① 가인의 족보(4:16~24) : 라멕의 이야기(창 4:23~24) : 죄의 확장, 심화, 비참함
문명의 발전에는 기여(야발, 목축치는자. 유발, 악기의 조상. 두발가인, 기계를 만드는 자.)했으나 하나님과 관계는 없는 삶이다.
② 셋의 족보(4:25~5:32) :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4:26), 예배하는 사람들의 조상. 여기에서 에녹의 이야기(5:21~24), 노아의 이야기 출발(5:32)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영원한 삶의 비결이다. 죄로 망해가는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 6장 죄의 만연함과 하나님의 심판
○ 1~4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경건한 남자들이 경건하지 않은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취함
하나님의 아들 : 하나님 백성, 하나님 자녀 / 사람의 딸들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여인들
○ 5~22절 세상에 가득한 죄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폭력으로 물든 세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
▹ 폭력이 가득한 시대에 의로운 사람 노아를 통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짐.
11절, 온 땅이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다. : 폭력이 난무함.
가인에게서 시작되고 라멕에게서 확대된 피흘림이 온 땅을 덮었다.
‘의롭다’는 말의 근본 의미는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 이웃과 마음을 같이 함.
노아는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랐고 이웃과도 마음을 같이하여 불쌍히 여긴 사람.
▹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불의한 죄악에 대해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는 이웃에 대한 불의한 폭력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여호와를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등)가 아니다. 그들이 저지른 폭력 때문이다. 예언자들의 심판의 메시지도 공의와 정의를 짓밟은 것에 대한 것이다.
▹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불의한 죄악에 대해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는 이웃에 대한 불의한 폭력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여호와를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등)가 아니다. 그들이 저지른 폭력 때문이다. 예언자들의 심판의 메시지도 공의와 정의를 짓밟은 것에 대한 것이다. 죄를 종교적인 것으로 국한하지 말아라. 서로 돕고 지켜주라고 주신 이웃과의 관계를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느라 무시하고 깨뜨리는 것이 죄다. 죄를 종교적인 것으로 국한하지 말아라. 서로 돕고 지켜주라고 주신 이웃과의 관계를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느라 무시하고 깨뜨리는 것이 죄다.
▹ 폭력이 가득한 시대에 의로운 사람 노아를 통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짐.
‘의롭다’는 말의 근본 의미는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 이웃과 마음을 같이 함.
노아는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랐고 이웃과도 마음을 같이하여 불쌍히 여긴 사람.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 관계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 노아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을 대조.
노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노아
■ 7장 홍수
○ 1절 노아의 의로움을 보시고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 2~12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방주에 들어가고 40일 동안 비가 옴.
○ 13~24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모든 짐승들이 둘씩 방주에 들어갔고 40일 동안 비가 내렸다. 물이 150일 동안 땅에 넘쳤다.
○ 방주의 크기 : 300규빗 x 50규빗 x 30규빗 = 길이 135m, 폭 22m, 높이 13m)
■ 말씀대로 준행한 노아 : 6:22, 7:5, 9, 16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20250102(목) 창세기 4~7장
○ 상황
인간의 죄가 점점 더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안에서 흘러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나기도 한다. 라멕과 같이 끝없이 죄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동시에 에녹과 노아와 같이 죄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 도전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삶은 아무리 발전된다 하더라도 점점 더 깨지고 망가질 뿐임을 가인의 족보를 통해 확인한다. 반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예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가 지속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나와 우리 교회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질문해본다.
○ 변화
내 안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죄의 세력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경계하기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지속하기
○ 기도
하나님이 온 세상과 제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죄의 실체를 인식하고 경계하겠습니다. 저 자신을 죄에 내어주지 않고 죄를 다스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에녹과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겠습니다. 죄가 관영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을 흐르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석교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20260102(금) 창세기 3~5장
○ 상황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다. 인간이 그 자유를 잘못 사용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조종하거나 통제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로 여기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며 자신의 욕망을 따랐다. 인간의 한계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 했지만, 그 한계를 뛰어 넘으려고 했다. 그 결과 인격적 관계 안에 있던 하나님과 분리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죽옷을 입혀주시며 반역한 인간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사랑하신다.
○ 도전
2026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 깊이 사랑하기로 결단한다. 나에게 있는 욕구를 충족시키며 만족하는 삶을 살되, 그것이 나 중심적인 만족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만족이 되게 하자.
○ 변화
하나님의 창조주되심과 나의 피조물됨을 인정하기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결단하기
○ 기도
온 세상과 제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에게 주신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죄의 실체를 인식하고 경계하겠습니다. 저 자신을 죄에 내어주지 않고 죄를 다스리며 살아가겠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존귀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존귀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나를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듯 사람들을 사랑하며 존귀하게 대접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고 예배하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석교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