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절대성: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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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계시의 기준인 말씀과 복음의 유일성
1. 서론: 계시의 기준인 말씀과 복음의 유일성
지난주일에는 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계시라 부르는 우리가 기도 중, 예배 중에 어떠한 감동, 느낌 또는 음성 같은 것들에 대해 우리가 그것이 하나님의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까 했을 때 말씀이 기준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사랑으로 이어진
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라고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지금 갈라디아 교회에 거짓 복음, 즉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다른 복음'에 대해 복음은 하나이며 복음은 절대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은 바울의 사도직을 공격받고 있으므로 복음의 내용이 퇴색되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지역마다 다르지 않고 복음의 중심 그 내용은 동일합니다.
2. 본론: 복음의 절대성이 가져오는 연합과 자유
2. 본론: 복음의 절대성이 가져오는 연합과 자유
① 복음의 절대성이 무너질 때 일어나는 분열
① 복음의 절대성이 무너질 때 일어나는 분열
바울의 사도직이 흔들려 바울이 전한 복음이 갈라디아 교회 가운데 흔들리면 복음은 이렇게 저렇게 계속 섞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복음의 절대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사람들은 복음에 이런저런 내용을 더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복음의 내용도 하나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유일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라면 복음이 나뉘게 됩니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가진 복음과 그렇지 않은 복음으로 나뉠 것이고 이것이 지속된다면 다른 것들이 더하여지는 다른 복음이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복음이 전해짐으로 분열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복음의 절대성이 무너지면 분열이 일어납니다.
② 복음의 핵심 가치: 연합과 화평 (에베소서, 고린도전서)
② 복음의 핵심 가치: 연합과 화평 (에베소서, 고린도전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복음은 연합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다시 말해 말씀이 풀어지는 것은 서로 연합되어지며 교회가 연합되어지는 겁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장은 하나님의 역사, 은혜, 복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복음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려는 겁니다.하나님의 자녀 백성으로써의 연합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 피로 인해 그리고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으로 하나 되게 하시고 화평하게 되는 겁니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고 연합되어지게 하고 화평하게 하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는 분열이 아니라 함께 지어져 감이며 연합입니다.
③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과 복음의 진리 사수
③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과 복음의 진리 사수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헛되지 않게 한다'는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다른 복음과 분열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에서도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을 속이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 구원이 완성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밖에도 할례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혼란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할례와 복음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신이 전한 복음이 복음이 되도록 하려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이 있도록 하려는 겁니다.
앞서 읽어드린 말씀처럼 교회의 연합,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로 지어져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전한 복음이 정리되며 복음으로 연합되었습니다.
2장 3절로 예루살렘의 복음과 할례의 문제가 정돈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러한 와중에도 여전히 강경한 몇몇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자유를 엿보고 할례를 관철하려 하는 겁니다.
교회안에 정죄 비판 들이.....
그래서 바울이 5절에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라고 하면서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는, 복음에 대하여는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5절에 복음의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복음의 자유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지 억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전통과 율법을 더하는 것은 사람을 옭아매는 겁니다.
구원의 기준, 복음의 기준이 은혜와 믿음이 아닌 조건과 율법이 되어버리면 사람을 판단하며 정죄하며 평가합니다. 정죄는 배척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 됨, 연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한시도 복종하지 않겠다 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복음 되어지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복음 되어지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④ 본질(구원)과 비본질(배려)의 구분
④ 본질(구원)과 비본질(배려)의 구분
고린도전서 8장, 10장에 제사 음식에 대한 고린도 교회 논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상은 실재하지 않는 가짜 신이다. 그러므로 그 앞에 놓였던 고기 역시 그냥 고기일 뿐이다. 먹어도 아무 상관 없다." 그리고 8장 1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말씀적으로 신앙에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내 옆에 믿음이 약한 자들이 시험 들지 않게 먹지 말아라 입니다. 배려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자유로워 괜찮아"라고 말함으로 타인을 자유롭지 못하게, 시험에 들게 합니다.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는 구원이라는 것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이 걸린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의 분량의 크기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며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말아야 하나 그 외의 것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위해 기다려 주고 배려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담배와 술 자체가 구원의 문제가 되지는 않으며 담배와 술 자체를 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성경적으로 아무 문제 안 돼 하면서 교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여러분 보는 데서 술을 마신다면 여기 계신 모든 분을 시험 들게 하는 겁니다.
"나는 자유해 이건 문제가 안 돼"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안에 분열이 일어날 때 구원의 문제, 복음의 문제가 아니라면 분열을 야기하는 일 자체를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⑤ 사람의 권위를 내려놓고 복음에 항복함
⑤ 사람의 권위를 내려놓고 복음에 항복함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덧붙일 말이 없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니라고 합니다.
복음의 완전함 사람의 권위로 전하지 않고 권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말은 복음이 우리를 두르고 우리 삶을 덮고 있으며 복음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절대성과 완전성 아래에서 연합되어진다는 겁니다. 하나로 묶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로 사람의 것을 주장하면 분열을, 분리, 깨어짐을 야기할 것이나
하나님의 것은 우리를 하나로 이어지게 화평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 것 안으로 묶으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것, 복음에 항복한 것입니다. 바울의 지식, 권위, 지위를 바울은 복음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복음 앞에 여러분의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그것은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우리의 것을 주장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십자가에 우리의 것을 한 가지라도 더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할 수 없을 때 하셨고 모를 때 오셨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두르고 있습니다.
바울의 논리가 완벽한 게 아니라 완전한 복음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자유함, 화평, 연합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들고 있고 말씀을 바라보는 자라면, 하나님을 믿으며 십자가를 믿는 자라면 여러분이 있는 곳에 연합, 화평, 하나 됨이 풀어져야 합니다.
3. 결론: 복음의 권위로 이루는 화평의 열매
3. 결론: 복음의 권위로 이루는 화평의 열매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다시 말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권위와 바울이 전한 복음의 권위가 같음을 보았다는 겁니다.
그들의 권위가 아닌 복음의 권위 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의 권위가 아닌 복음의 권위, 하나님의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가 드러났다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권위, 말씀의 권위로 사람들이 자유케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할례 문제가 정리되었던 것처럼, 이방인들의 구원의 자유가 지켜졌던 것처럼
복음을 전함은, 말씀으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자유케 하는 일이며 할례 문제로 갈라졌던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처럼 우리의 세상의 연합, 세상과 하나님을 연합합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사도권은 유대인들에게 공격의 대상입니다. "열두 제자가 아니다", "네가 예수님이랑 같이 살았냐" 등등으로.
지금 그런데 그런 그를 7절에서는 무할례자에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베드로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유대인들이 그를 바라보았고,
8절~9절에는 바울이 복음을 전함으로 그 복음 안에서 누가 높고 낮음이 없이 서로가 동역자임을 고백했습니다.
사람의 권위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증명해서 연합보다는 경쟁과 시기와 분쟁과 분열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복음의 권위는 스스로가 증명하거나 만들어갈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서로를 연합하며 동역하게 합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혜이며 거저 받은 권위입니다. 복음 안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는 화평입니다.
사람의 권위가 지배하는 곳에는 항상 서열이 생기고, 정죄가 일어나며, 결국 분열이 일어납니다. '누가 더 잘났나, 누가 더 정통인가'를 따지는 순간 교회의 연합은 깨어집니다.
하지만 복음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막았던 할례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서로 손을 맞잡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억압하는 율법에서 자유케 하며, 갈라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묶어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의 옳음'과 '나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사람의 권위'를 내려놓으십시오. 대신 우리를 덮고 있는 그 완전한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항복하십시오. 우리가 복음에 항복할 때, 우리를 통해 세상은 다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막힌 담을 허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이, 오늘 여러분의 삶 가운데 화평과 연합의 열매로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