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안에서 발견된 참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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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우리 핸드폰을 꺼내볼까요? 다들 핸드폰을 꺼내고 카메라를 켜봅시다. 그리고 셀카모드를 켜고 자신의 얼굴을 봐봅시다. 자 어떤가요?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아마 두가지 중에 하나로 나타날 것입니다. 흥~ 역시 겁나 카리스마있어. 라고 우쭐하거나 거울을 빨리 치워버리는거죠. 귀하게 자란 내가 이런걸 봐도 될까? 못마땅해하는거죠. 여러분 제가 샤워 후 거울 앞에서 저를 보며 우쭐해할까요? 못마땅해할까요?
자존감이라고 하죠?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어떤 이들은 자존감이 인생의 전부라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누가 뭐라하든 어때? 사람들이 안이쁘다고하면 어때. 마이웨이로 가는거야. 기세라고 하죠. 기세. (클릭)영상 하나 봐볼까요?
이 영상을 보면 솔직하게 멋있다고 느끼기도 해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당당하고 단단하고부럽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나도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조언을 구하기도하고 상담을 받기도하면 뭐라고하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죠.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며 살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장기하의 그건 니 생각이고 라는 노래가 있어요. 나중에 들어봐요 뭔가 킹받으면서 좋아. 이건 뭐지.. 왜 좋지..? 그 노래 가사를 한번 같이 볼까요? (클릭) (클릭) (클릭) (클릭) (클릭)
정답이 없다는거죠. 그러니 너의 생각, 기준이 중요한게 아니라 진짜 중요한 건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가? 내가 세운 기준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요즘 (클릭)화사의 굿 굿바이가 엄청 유명하더라구요? (클릭)박정민이랑 핫하잖아요. 근데 화사가 예전에 오디션을 본 이야기를 하는데, 심사위원이 이렇게 말했대요. “어~너는 개성도 강하고 노래도 잘하지만서도 뚱뚱하고 예쁘지가 않아.” 그 말을 들은 어린 화사는 울면서 집으로가고 책상에 엎어져 울다가 어느새 이런 다짐을 했대요. 이 시대가 말하는 기준에 내가 맞지 않다면 내가 또 다른 미의 기준이 돼야겠다”라구요. 솔직하게 진짜 멋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마인드. 닮고 싶기도하죠. 목사인데두요.
그러나 우리가 생각을 해봅시다. 복음 안에서 발견된 참된 자유라는 책에서요 팀 켈러 목사님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쓸 필요 없고 그저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라는 말은 눈속임일 뿐입니다.” 이후는 같이 읽어볼까요? (클릭)
부모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녀는 자신의 모습에 항상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회는 물론 다른 사회가 정한 기준에도 미칠 수 없습니다. 이 사실 또한 나를 괴롭게 합니다. 그렇다고 나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기준을 터무니없이 낮추지 않는 한 그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사실 또한 나를 괴롭게 할 뿐입니다. 그러면 아주 낮은 기준을 세우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토록 저급한 기준에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어김없이 절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기준 혹은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게 삶으로써 자긍심을 높이려는 노력은 한낱 속임수일 뿐입니다.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뭐가 정답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세상이 말하는 자존감, 곧 너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만들어가. 너가 너를 어떻게 바라보냐가 중요하다는 세상의 자존감과 다른 성경이 말하는 자존감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세상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살펴보며 올 한해 주 안에서 바울이 이야기했던 당당함과 자유를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클릭)사람들이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아니 나는 다 싫다. 나는 너희와 다르다. 나는 예수파다. 하며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들의 싸움은 내가 옳고 너희는 틀렸다는 주도권 싸움이었어요.
마치 이런거죠. 사랑아 웹툰 중에서 외모지상주의는 쓰레기야. 사실성도 없고 작품성도 없잖아. 그저 잘생긴 얼굴만 나오는 애들 만화라구! 과거 웹툰 전성기 시절이 좋았어. 쎈놈 이런거 봐. 스토리 서사, 캐릭터 모든게 다 완벽하잖아. 라고 요나쌤이 말한다고 해봐. 어때? 그리고 또 다른 옆에 사람은 싸움만화라니 시시하군. 자고로 로맨스를 봐야지. 이런 감정선을 너희가 알어? 몽글몽글하고 몰캉몰캉하게하는 이게 진짜지라고 하은이가 말하는거야. 근데 또 옆에서 채연이는 흥.. 애들만화 시시하다고. 환승연애 으른의 연애가 진짜지. 애들은 가라 라고 하면서 서로를 무시하고 내가 옳다고 싸우고 있습니다.
근데 우연히 그 옆을 외지주 박태준 작가님이 지나가면서 들었다고 생각해봅시다. 물론 그런일은 없지만요. 이러지 않았을까요? 사랑이가 외지주가 왜 재미있는지 뭐가 포인트인지 설명하면 막 역시 뭘좀 아는구만? 라고 흐뭇해하다가 요나쌤이 쎈놈을 이야기하면서 외지주를 까면 니가 뭘알어. 니가 뭐 스토리의 개연성, 흐름, 그러면서도 재미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걸 뭐 알어? 하면서 분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은이가 로맨스 웹툰을 이야기하면 갑자기 아.. 저건 내가하지 못하는거야. 처절한 감정선.. 저건 어떻게 하는거지? 아휴 나는 저런 것도 못하고.. 자책하기도 할 것 같아요.
자 바울을 봐봅시다. 내가 예전에 세운 개척교회에 대한 소식이 들었는데 서로 싸운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 어 내 이름이 있네? 역시 김집사야. 내편에 있을 줄 알았어. 그리고 사람들이 바울을 가리켜 야 바울을 봐. 만약 진짜 하나님의 사도였다면 이렇게 많은 고통, 고난을 당하겠어? 가짜닌까 자꾸 고난을 당하는거야 라는 비판을 들었을 때. 만약 저라면 야 니가 뭘알어? 니가 성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을 알어? 뭐 설교를 알어? 말씀을 나보다 잘알어?라고 분노했을 것 같아요. 혹은 나에대한 비판에 나는 쓰레기야… 나는 재능이 없어… 자책할 것 같은데 바울은 전혀 다르게 말합니다.
3절입니다. 제가 읽어드릴게요.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무슨 뜻이죠?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뭐라고 말하죠? “아니 그것은 나에게 그렇게 큰 일이 아니야 니가 나한테 뭐라고 평가하든 그건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너희가 나를 싫어하든 그건 나를 괴롭히거나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 바울은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을까요? 스웩인가요? 내가 최고야 니들이 뭐라고 하든. 니들이 사도가 뭔지 알어? 그런게 아닙니다. 왜냐면 그 다음부분에 바울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의 놀라온 정체성이죠. “여러분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 스스로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괜찮습니다. 심지어 제가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세상이 말하는 자존감. 곧 내가 스스로를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한발자국 더 나아간,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자존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뭐에요? 4절 같이 읽겠습니다.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다만 나를 심판하질 이는 주시니라! 바울에게 중요한건 주님의 판단, 주님의 인정뿐이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기준 혹은 내가 선택한 기준은 나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 오직 나를 의롭게 하는건 주님의 인정뿐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인정과 판단만이 우리의 자존감이 된다구요?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드릴게요. 상상해봅시다. 여러분이 책을 썼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첫 원고를 떨리는 마음으로 가족이나 친구에게 한번 읽어달라구 부탁을 했어요. 그리고 그 친구는 일주일 후에 다 읽어보고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자 기다리는 내내 저는 마음이 쫄립니다. 그렇죠? 어떨까? 좋을까? 재밌을까? 아 내가 적은 대사의 의도와 의미가 잘 전달됐을까? 조마조마한거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일주일 하루 전날 저녁.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거에요. 평소같았으면 스펨으로 안받았을 텐데 그거 아세요? 뭔가 평소와 다르게 전화를 받고싶은거에요. 그래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하는거죠. 네 황대기 선생님이시죠? 노벨제단 스웨덴 한림원입니다. 이번 선생님이 쓰신 원고의 작품성이 인정되어 노벨문학상에 선정되어 연락드립니다. 아 그리고 상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라고 전화가 온거예요. 아 물론 노벨상이 이렇게 결정되진 않습니다. 예화예요. 그래도 그렇다고 해봅시다. 저는 아주 기뻐 뛸 것입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할거에요. 그리고 다음날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야. 이게 뭐냐. 스토리 개연성도 엉말이고 캐릭터가 매력이 없어. 읽는 내내 조느라 혼났다. 가장 중요한건 일단 재미가 없어. 안읽혀! 라고 말합니다. 자 여러분, 제가 친구의 평가가 들릴까요? 아니요! 친구가 뭐라고 하든 아무 말도 안들릴거에요. 이미 제 머리속은 노벨문학상이라니 캬캬캬캬 엄청 신났을 거에요. 그리고 속으로 야 한달뒤에보자. 그때 니 표정이 정말 궁금하구나 할겁니다.
여러분 바울의 자존감은 여기에 있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너를 볼 때마다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구나 라구요. 전지전능한 신이 여러분 한명 한명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하셨고 귀하다고 내가 너의 머리카락 개수까지 알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데 바울은 성도들의 비판, 인정, 평가가 들리지 않았다는 거에요.
사랑하는 다윗 공동체 어려분, 우리가 있어야하는 자리는 바로 여기입니다. 나를 누구보다 존귀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그분의 사랑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십시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있을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