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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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왜 하필 '그곳'인가?
서론: 왜 하필 '그곳'인가?
할렐루야! 2026년 새해, 주님의 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보통 새해가 되면 어떤 계획을 세우나요? 많은 청년들이 ‘변화’를 꿈꿉니다. "지겨운 알바 그만둬야지", "이 답답한 직장 때려치우고 여행이나 갈까?", "인간관계 싹 다 정리하고 새출발 하고 싶다."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오면 본능적으로 '리셋(Reset)' 버튼을 누르고 싶어 합니다. 그곳을 떠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황당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당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이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곳은 낭만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신 곳이었고, 제자들에게는 뼛속까지 스며든 실패와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이후 제자들을 만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가르쳐주셨습니다. 40일 동안 함께 하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흥분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 어려운 상황에서 예수님과 함께 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하나님 나라로 새롭게 하실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이제 하늘로 올라가셔서 제자들과 떨어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말씀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너무 황당합니다! 아니 같이 계속 함께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 이루시면 안되나요? 이 상황을 변화시켜주시면 안되나요? 그렇게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사실에 더욱 두렵고 힘들어졌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 살벌한 곳을 탈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만약 큰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박살이 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사고 났던 그 현장으로 다시 가서, 거기 텐트 치고 며칠만 기다려라"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끔찍한 기억 때문에 1분도 머물기 싫을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의 심정이 딱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예수님은 이 고통스러운 장소에 머물라고 하셨을까요? 다른 곳으로 가게 하시지. 왜 한시도 있기 어려운 장소를 떠나지 말라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약속’ “성령”이 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이 하나님이 위로부터 보내시는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 이제는 겁쟁이가 되지 않고, 능력 없는 도망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입어 죽음과 공포가 가득한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시킬 정복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본론 1: 밀지 말고 시동을 걸어라 (성령이 필요한 이유)
본론 1: 밀지 말고 시동을 걸어라 (성령이 필요한 이유)
그럼 예수님은 성령이 무엇이기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 하셨을까요?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삼위 하나님의 능력과 현존을 나타냅니다. 성령은 신자들을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맞추어 도우며, 가르치고 인도하면서 성화시키고, 그들 속에서 열매를 맺게 합니다. 능력이 작용하여 행하게 됩니다. 마치 핸드폰에 배터리와 같죠. 핸드폰이 전기 에너지가 없으면 작동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은 능력을 행할 에너지를 공급하십니다.
때문에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않고서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보세요. 그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덧입지 못했을 때 그들은 겁쟁이였고,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배신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3번이나 욕하고 부인하였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없으며, 죄도 이길 수 없으며, 세상의 권세를 이길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만약 비싸고 좋은 슈퍼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차는 그저 무거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밀고 가야 합니다. 얼마나 힘듭니까? 가다가 지쳐서 쓰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기름을 넣고 시동을 거는 순간, 살짝만 밟아도 차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노력, 내 의지로만 살려는 것은 자동차를 뒤에서 혼자 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금방 지치고 탈진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힘으로 밀고 가려 하지 마라. 성령이라는 연료를 채워라." 성령의 세례는 내 속사람이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아서, 내 안에 하나님의 엔진이 가동되는 능력의 사건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우리는 비로소 실패하지 않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성령이 임하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죄로 인해 망가졌던 창조 세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세상의 일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사역들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함께하도록 증인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큰 사고가 났던 그 장소를 이제는 사고난 곳을 기억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멋지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론 2: 고난의 현장이 곧 기적의 현이다 (예루살렘의 의미)
본론 2: 고난의 현장이 곧 기적의 현이다 (예루살렘의 의미)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령을 어디서 받게 된다고 하시나요? 황당하게도 그 장소를 '예루살렘'이라고 하셨습니다. 큰 교통사고가 났던 그 예루살렘 말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의 트라우마가 도사리는 예루살렘, 제자들이 실패하고 낙심하여 예수님을 버렸던 예루살렘,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과 어려움이 도사리는 예루살렘에 임한다 말씀하십니다. 그런 고난의 현장인 예루살렘을 예수님은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그 고난의 현장 속에서 성령을 받아서 그곳을 회복시키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우리에게도 고난과 어려움의 현장인 예루살렘이 있을 것입니다. 그곳은 어디일까요?
먼저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 입니다. 동시에 여러 죄인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나는 상처받았어요, 힘들어요, 이제 교회는 꼴 보기 싫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대한 불평과 원망을 하며 자신은 더 나은 교회를 찾아 떠나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떠나서 다른 교회를 가면 또 똑같은 문제로 어려워하고 힘들어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교회를 보살피십니다.
사도행전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우리 눈에 보기에 교회의 사람들이 부족하고 연약해보여도 성령의 능력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이 보살피십니다. 그 보살핌 속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교회 공동체로 세워가십니다.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떠나지 않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더욱 성령을 받아 그 성령의 능력과 보살핌으로 자라갑니다. 거룩하고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갑니다.
여러분 교회가 힘들다고 느껴지십니까? 바로 그때가 성령을 받을 기회입니다. 내 힘으로는 금방 지치고 훌쩍 떠나고 싶지만, 아버지가 보내시는 성령을 공급받으면 능히 감당하며, 기쁨과 은혜가 회복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둘째, '내게 주어진 고달픈 환경'입니다. 내 삶에서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힘든 환경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지? 왜 나에게 이런 관계와 어려움이 생겨났지? 사람들은 그 상황이 힘들어서 '환경'을 바꾸려고 도망칩니다. 때로는 잠수를 탑니다. 내가 그 환경을 바꾸고 새롭게 내 삶을 시작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직을 하고,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그러나 결국 내가 피했던 고달픈 상황은 다시 똑같이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이 없는 환경은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고달픈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고통스러워하는 그 환경 속에 함께하고 그 곁을 계속 지키시고 계십니다.
진주는 조개가 아픔을 견뎌내며 만들어내는 보석입니다. 조개 속으로 날카로운 모래알이 들어오면 조개는 엄청난 고통을 느낍니다. 이때 조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모래를 무시하다가 살이 썩어 죽거나, 아니면 자신의 몸에서 '나카(Nacre)'라는 성분을 내어 모래를 감싸 안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조개는 모래를 감싸고 또 감쌉니다. 시간이 흘러 그 아픈 모래알은 영롱한 진주가 됩니다.
여러분을 찌르는 환경들이 있나요? 직장의 상사, 해결되지 않는 빚, 관계의 어려움, 답답한 가정 형편, ... 이것이 바로 모래알입니다. 도망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도의 진액을 쏟아내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고난의 현장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 성령께서는 상처를 진주로 바꾸는 능력을 주십니다.
결론: 기도의 자리(예루살렘)를 사수하십시오
결론: 기도의 자리(예루살렘)를 사수하십시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2026년 새해를 시작하며, 혹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도망치고 싶으십니까? 예수님의 명령을 기억하십시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지금 여러분이 처한 그 답답한 현실, 마음에 들지 않는 공동체, 그곳이 바로 여러분이 성령을 받아야 할 '약속의 땅'입니다. 문제를 피하려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무릎 꿇으십시오. "주님, 내 힘으로는 이 상황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자리를 지킬 때, 예배의 자리를 지킬 때, 성령께서 친히 임하셔서 여러분의 힘이 되어주시고, 지혜가 되어주시고, 능력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운 '예루살렘'이 가장 자랑스러운 '간증의 땅'으로 변화되는 축복을 누리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 찬양 - 따스한 성령님
오늘 내가 서있는 상황이 비록 춥고 메마른 광야 같을 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이 부르신 예루살렘임을 고백하며 예배하는 자가 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그곳을 회복하고, 구원이 선포되는 평화와 기쁨이 머무는 행복한 장소가 되도록 함께 주여 고백하고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 내 힘으로 인생을 밀고 가려다 지쳐버린 심령들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떠나지 말라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나의 예루살렘인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게 하소서, 그럴 때,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덧입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