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을 입고 새롭게 시작하자(The New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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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옛 옷을 벗고 새옷을 입어야 합니다. 새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바로 아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입니다.

Notes
Transcript

에베소서 4:20-24

날짜: 2026년 1월 4일 찬송 550장(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436장(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여러분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 예배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과 자녀 그리고 현장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를 시작하며 여러분께 가벼운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새해’가 되었다는 것을 언제 가장 실감합니까?”
벽에 걸린 달력을 바꿔 달 때 입니까? 아니면 떡국을 먹을 때 입니까?
아니면 연말정산을 할 때 입니까?
우리는 매년 습관처럼 새해가 되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저도 여러 곳에서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문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새해가 시작되었기에 작년에 행하지 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결단하고 도전”하고자 할 겁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새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도전할 항목을 적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어제 떴던 태양이 오늘 다시 떴을 뿐이고, 지구는 여전히 똑같은 궤도로 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2025년도와 동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달력이 2025년에서 2026년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내 삶의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거나 내 성품이 갑자기 훌륭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시간만이 흐르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새워지는 것 역시 아닙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가운데, 계획을 세우고 다짐하고, 결단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새롭게 시작하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새로움”이라는 것은, 2025년에서 2026년도로 한 해가 바뀌는 변화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짐하고 결단하는 것 역시 새로움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새로움”은, ‘내 존재의 본질이 바뀌는 변화’를 말합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새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인 에베소서 4장에서 사도 바울“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고 오늘 2026년을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아주 강력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새 사람을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옷은 무엇인지, 그리고 새 옷을 입기 위해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낡은 옷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깊이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워지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의지나 결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아주 강력한 접속사로 문장을 시작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그같이(so)”란 무엇입니까?
앞선 17-19절에 나오는 “이방인의 삶”을 말합니다.
허망한 것에 마음을 쓰고, 총명이 어두워지고, 감각 없는 자가 되어 방탕에 방임하는 삶입니다. 대부분의(세상) 사람들은 결심을 하고 결단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삽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자부하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언합니다.
“너희는”(But You), 이것은 아주 강력한 대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몰라도, 너희는 다르다. 왜냐하면 너희는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배우다”(만다노)는 표현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쌓거나 교리를 암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배우다”(만다노)는 단순히 교실에서 지식을 쌓는 학습이 아닙니다.
이는 제자가 스승과 동고동락하며 그의 인격과 삶을 온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입니다.
“배우다(만다노)”“제자”를 뜻하는 “마데테스”같은 어근을 취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적 앎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헬라어 문화권에서 제자가 스승에게 배운다는 것은, “스승의 삶과 인격 전체를 전수”받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21절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1절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들은 것”(about)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들었다”(from)고 말합니다.
이런 겁니다.
지금 여러분은 설교를 듣고 있는데 누구에게 듣고 있습니까?
“김인수 목사”에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 영혼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배웠지만, 그것은 바울을 도구로 삼아 예수 그리스도께 배운 것임을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근거(방법)”은, 우리가 대단한 결심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새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고, 그분이 지금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실이자 진리”입니다.
1
“진리”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21절 말씀처럼, “진리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새해 계획은 아무리 거창하다 하더라도, 헛된 욕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새해 첫 주일,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고백은 이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 배웠습니다. 저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을 따르는 제자입니다. 나의 주님께서 연약하고 나약하며, 그 어떤 것 하나 이루지 못하는 나일지라도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 영광 받아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정체성”이자 “소망”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변화의 기초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면, 변화의 첫 번째 구체적인 행동“벗어 버리는 것“(Putting off)입니다.
이는 아주 상식적인 겁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먼저 ”더러운 옷“을 벗어야 합니다.
22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한글 개역 개정으로는, ”~벗어 버리라“는 말이 문장 마지막에 나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으로 보게 되면, ”아포테스타이 휘마스“로서, ”너희는 벗어버리라“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22절에서 말하는 ”옛사람“(Old Self)은, 우리의 ”옛 자아“를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기 전, ”죄에 종노릇“하던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옛사람의 특징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입니다.
여기서 ”유혹(아파테)“로서, ”속임수(deceit)“을 의미합니다.
결국, 죄의 본질은 ”나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속이는 것”입니다.
25절이하를 보면 ”옛 사람의 옷“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목들인지를 나열합니다(거짓, 분냄, 도둑질, 더러운 말 등).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이미 소유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한 자이며, 이긴 자“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으로, 우리의 ”신분“입니다.
그런데, 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듭니다.
하늘의 속한 자이지만 땅의 속한 자처럼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온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겁니다.
어떤 일들 앞에서 우리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데 뭐 어때?“, ”적당히 타협해야 이룰 수 있는 거야.“
여러분, 지난 한 해를 저와 여러분을 넘어뜨렸던 은, 아주 거창한 속임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달콤한 속임수“ 였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처럼 약속하지만, 결국은 우리를 ”썩어져 가게(corrupt)“ 만듭니다.
썩는다는 것은, ‘생명력을 잃고 악취를 풍기며 소멸’한다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보면 ”프데이로메논“으로, 그 의미는 ”썩어져 가다“는 뜻 이외에 ”부패하다“, ”더럽히다”, 그리고 “파괴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도록 완전히 우리를 부패시켜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습”‘낡은 생활 방식’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가치관은 ‘물질 중심적’이고, 내 관계는 ‘이기적’이고, 내 삶은 ‘세상적’이라면, 그것은 아직 옛 사람의 옷을 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새로운 옷”도 그리고 “새로운 삶”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주 강령한 어조로 이렇게 명령한 겁니다.
“벗어 버리라(아포티테미)” 바울이 사용인 이 동사는, 마치 더러운 옷을 급하게 벗어 던지듯이, 아주 단호하고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단어입니다.
“옷이 더러워졌네, 천천히 벗어야지~”가 아닙니다다.
그리고 “언젠가 벗겠지”도 아닙니다.
“지금, 당장, 찟어버리듯이 벗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벗어 던져야 할 “낡은 옷”(구습)은 무엇입니까?
게으름의 옷입니까?
원망과 불평의 옷입니까?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옷입니까?
아니면 은밀하게 즐기던 중독의 옷입니까?
오늘 이 시간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그 더러운 옷들을 찟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옛것을 청산하지 않고는 새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살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옛 옷을 벗어버렸다면, 이제 벌거벗은 채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23절입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여기서 중요한 문법적 시제가 있습니다.
22절“벗어 버리고”24절“입으라”단호한 행동(부정과거)을 뜻합니다.
그러나 23절“새롭게 되어”는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지속적인 과정”(Continuing process)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영, 즉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체계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변화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2장 22절에서 말하는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결심과 결단에 따른 결과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성령의 사역”입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안 된다. 못한다, 죽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생각으로 매일매일 포맷(Format) 되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야 하는가?
24절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하나님을 따라”라는 말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던 “그 원래의 모습”, 죄로 인해 깨어졌던 그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새 옷을 이루는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의(Righteousness)”“거룩함(Holiness)”입니다.
“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법적으로 떳떳한 상태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을 향한 구별됨입니다. 바로 죄로부터 분리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새해를 입어야 할 “새 사람”은 내가 만든 스타일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으로 의지를 다잡아 결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의롭고 거룩한 스타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저 사람을 보니 예수님이(작은 에수가) 보인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새 사람을 입은 증거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도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근심과 걱정 그리고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을 이미 가진 자”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놀랍고 특별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365일이라는 시간을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서 살아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를 에베소서 4장 20절에서는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으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부패되어 나를 파괴시키는 옛 구습을 당장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적 결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의와 거룩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더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겁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을 가게 되면, “정직과 성실”로서 나타나고, 가정에서 배우자와 자녀에게는 “온유와 사랑”으로 대하게 되고, 교회에서 봉사할 때는 “겸손과 섬김”으로 섬기게 될 겁니다.
물론 때로는 “옛 습관”이 튀어나와 “헌 옷”을 다시 주워 있고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그 같은 내 모습을 보면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23절 말씀처럼,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계속해서”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전서 5: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삶을 사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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