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시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다음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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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로마서 12:1-2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0. 서론
2026년 첫 주일 예배에 함께 하고 계신 모든 중고등부을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새로 올라온 중1 친구들이 있죠? 그래서 오늘은 중고등부 전반적인 방향성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는 작년 첫 설교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작년보다 내용을 줄여서 살필 예정입니다. 다 살피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1) 시대를 분별했던 인물들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여 위기를 극복하거나 혹은 큰 혁신을 일으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까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을 한 번 볼까요? 보통 사람들은 이때를 2차 산업 혁명의 시기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전기가 도입되고, 대량 생산 체계가 확립되고 교통과 통신 혁신이 일어나는 시기였습니다.
0.1.1. 토머스 에디슨
이 사람은 누구인지 아시나요?? 맞아요.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입니다. 에디슨은 전구 뿐만 아니라 축음기, 카메라 등을 발명해서 전기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0.1.2. 헨리 포드
사람은 헨리 포드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포드 모터 회사를 창립해서, 대량 생산 방식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한 사람입니다. 그가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위한 방식은 자동차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건을 생산하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0.1.3. 록펠러
이 사람은 록펠러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석유 독점 기업을 운영하면서 석유 정제 유통 과정을 혁신했던 사람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또 두각을 나타난 사람들이 있는데, 보통 이 시기를 3차 산업 혁명이 일어난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때는 여러분들도 잘 아는 컴퓨터, 인터넷, 소프웨어와 같은 기술들이 발달하는 시기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도 잘 아는 사람이 나올 꺼 같습니다.
0.1.4. 빌게이츠
이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창립자인 빌 게이츠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윈도우 운영체제를 만들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윈도우를 통해서 정보화와 디지털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0.1.5. 스티브 잡스
이 사람은 누구에요? 맞아요 바로 애플을 창립하고 맥북,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혁신적으로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그는 이와 같은 기기들로 현대인들의 삶의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몇 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나요? 맞아요 4차 산업 시대라고 이야기해요. 이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주도하고 앞서간다고 평가 받는 인물들이 있을까요?
0.1.7. 일론 머스크
여러 인물들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인물은 일론 머스크일꺼에요. 그는 여러 시도들을 하며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 인공지능 AI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어요.
0.1.8. 순다르 피차이
또 다른 한 인물은 순다르 피차이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구글의 CEO로서 AI, 딥마인드, 자율주행 프로젝트 등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 기술들에 있어서 앞서서 연구하고 있어요.
몇 년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도 순다르 피차이가 CEO로 있는 구글이 인수했어요.
여러분 이와 같은 사람들의 이름을 들으면 어떠세요? 이와 같이 시대를 읽고 앞장섰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수 많은 부를 누리고, 사람들에게는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려 명예를 얻은 사람들이었어요.
0.2. 시대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에 중요성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이 이 땅의 시대마다 산업의 방향성을 읽고 앞서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와 같은 것보다 훨씬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어요. 그것이 뭘까요? 맞아요. 각 시대마다, 각 시기마다 주도권을 잡고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분별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거에요. 각 시대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분별하지 않고, 땅의 것에만 초점을 맞춰 다양한 업적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것들은 전혀 하나님 앞에서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요? 맞아요.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분별하되, 하나님께서 이 시대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고 계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지를 분별하여 그 자리에 서는 사람이 돼야 해요.
0.3. 오늘 살필 내용
-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던 동참했던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
- 현대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성(세상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
- 이 시대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할 자리
그래서 오늘은 시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던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들을 살피고, 현대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성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기를 원하시는 지를 살펴봄으로써, 실제적으로 우리가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리에 있게 되길 원해요.
1. 시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던 믿음의 선진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이 그 시대에 맞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들을 볼 수 있어요.
1.1. 노아
먼저 노아가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면 좋겠어요. 창세기 6장 말씀에 나온 말씀 한 번 볼까요?
1.1.1. 그 당시 사람들이 느끼는 노아 시대
-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풍족함과 부요함을 누리며, 아무 문제가 없는 사회
(창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창 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1절 말씀을 보면 그 시대를 사람들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한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4절 말씀을 보면 ‘네피림’이라는 자들이 있었고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땅 위에 번성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맞아요. 먹고 살만했다는 거에요. 고대 사회에서는 인구의 증가가 경제적 풍족함과 연관되는 경우가 있는데,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누리는 물질적 풍요 속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네피림이라는 사회적, 군사적으로 영향을 가진 강력한 존재들이 그 땅 가운데 명예와 권력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즉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풍족함과 부요함을 누리며, 아무 문제가 없는 사회를 이루고 살았다라고 볼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이와 같은 관점은 누구의 생각인가요? 맞아요. 사람들의 생각이었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 시대를 어떻게 보고 계셨고 어떤 일을 하고 있으셨을까요?
1.1.2. 하나님 보시는 노아 시대
- 세상의 아름다움, 즉 자기중심적인 것에서 오는 쾌락을 추구하는 시대
- 하나님의 심판에 있었던 시대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창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먼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 시대였어요. 이 성경 말씀에 대한 성경 해석은 아주 다양한데, 이 구절을 느슨하게 혹은 광범위하게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 즉 자기중심적인 것에서 오는 쾌락을 추구하였다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5절 말씀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시대,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으시다는 것, 사람들로 인해 한탄과 근심이 있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로 인하여 심판을 계획하셨어요.
(창 6: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1.1.3. 세상 사람들이 보는 관점과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의 차이
사랑하는 다음세대 여러분, 사람들이 관점과 사람들이 보는 관점 얼마나 다른지 보이시나요? 그들은 나름대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좋아했을 것이고, 결혼을 잘했다고 기뻐했을 것이고, 명예와 권력을 얻었다고 우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장 눈 앞에 닥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물에 다 휩쓸려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 생명을 잃게 될 것이라 것도 몰랐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마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1.1.4. 하나님의 관점으로 시대를 분별한 노아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시대를 분별하여 하나님 앞에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요? 맞아요 바로 노아입니다. 먼저 성경이 노아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겠습니다.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성경은 그를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 의인, 당대에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인, 완전한 자라는 표현은 다 아시다시피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스스로 다 지켰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 그래서 상대적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려고 했던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1.4.1. 하나님의 관점을 듣게 된 노아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시대를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의 관점을 듣게 됐습니다.
(창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사랑하는 다음 세대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가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동행하는 자에게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관점과, 그 시대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말씀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1.1.4.2.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도록 초청을 받는 노아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방법을 알리십니다.
(창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창 6: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창 6: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창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 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창 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 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1.1.4.3. 하나님의 초청에 대한 노아의 반응
(창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에 대한 노아의 반응은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는 것이었어요.
1.1.5. 노아 이야기의 함의
- 하나님과 상관 없는 세상에서의 성공은 무용지물이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관점을 알리시고, 하나님의 일에 초청하신다.
- 초청 받은 사람의 반응은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이다.
이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하고, 돈을 많을 벌고, 명성을 얻는 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시대를 어떻게 계시는지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들은 다 무용지물이라는 거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관점을 알리시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도록 초청하셔요. 그리고 그 초청을 받은 사람의 반응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준행하는 것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바라본, 시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삶이에요.
1.2. 에스더
다음으로 시대를 분별하여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사람으로 에스더를 살펴보면 좋겠어요.
에스더는 누구였나요? 유대인 출신으로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가 되어 왕비가 되는 사람이에요.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였던 왕후 와스디가 잔치를 벌이는 도중 왕후를 자랑하고 싶어서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였는데, 와스디 왕후는 왕의 말을 듣기를 싫어 했어요. 그러자 왕은 화가 많이 났고 그의 신하들의 조언을 따라 와스디를 자신에게 나아오지 못하게 하고, 다른 왕후를 뽑기로 결정했어요. 그때 부모를 일찍 잃고 모르드개의 손에서 자란 에스더도 아하수에로 왕의 신하였던 헤게의 눈에 들어 후보 중 한 명에 속했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결국 왕후가 됐던 거에요.
그런데 에스더가 왕후로 있을 때, 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 하만이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어요. 그 이유는 왕의 명령을 따라서 다른 모든 신하들이 자신에게 꿇어 절을 하는데, 모르드개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화가 난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모르드개의 민족까지 다 멸하여여야겠다고 생각을 한 거에요. 그래서 그는 자신을 신임하는 왕에게 유다민족들에 대해 모함하여 자신의 뜻대로 유대인들을 멸망시키는 법을 만들도록 왕을 설득했어요. 그의 설득에 넘어간 아하수에로 왕은 법령으로 열 둘째 달 13일에 모든 유다인을 죽이도록 공포했어요.
이 일을 들은 모르드개는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 대성통곡을 했어요.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사람을 보내 무슨 일인지를 물었고, 모르드개는 자초지종을 설명을 했어요. 그리고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서 자신들의 민족을 위해 이 법령을 취소해줄 것을 요청하라고 했어요. 에스더는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 않고 왕 앞에서 나아갔을 때 왕이 금 규를 내 밀지 않는다면, 죽게 될 것인데, 이미 왕이 자신을 부르지 않은지 30일이 넘었다고 난처해 했어요. 그때 모르드개는 강력한 메시지를 에스더에게 알려줬어요. 같이 그 말씀을 한 번 볼까요?
(더 4: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더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의 이 문장을 보면 그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 가운데 유대인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에스더도 동참할 것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모르드개는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이 때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라는 것을 말했어요.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깨닫고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더 4: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더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자신이 모르드개의 말처럼 유다인들을 위해 왕 앞에 나아갈 것인데,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자세로 나가겠다고 한 거에요. 그는 하나님의 일에 목숨을 걸고, 그 시대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한 거였어요.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통해서 왕의 마음을 바꿔 법령을 뒤집고, 오히려 유다인을 해하고자 한 자들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는 법령을 만들게 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원수들에게서 건짐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원수에 대해 승리를 경험하게 됐어요.
에스더에는 더 깊은 성경 신학적 함의들이 들어있지만, 이 시간 다 살피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에스더는 그 당시에 하나님의 행하시는 역사를 보고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는 것은 분명해요.
1.2.1. 에스더 시대에 세상 사람들의 관점
그 당시 페르시아 백성들은 당연히 유다 민족이 멸살을 당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을 거에요.
1.2.2. 에스더 시대에 하나님의 일하심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시대를 바라본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함으로 그 시대 가운데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된 거에요.
1.2.3. 에스더 이야기의 함의
-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동참해야 한다.
- 아무리 치밀해 보이는 인간의 계획이라고 할지라도 무산되고, 하나님의 계획만이 이루어 진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하나 알 수 있나요? 맞아요. 시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때 자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인 거에요.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의 보이신 길을 가야 하는거에요.
또 하나님과 상관 없이 자신의 감정과 야망을 따라 감정을 세운 계획이 거의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상황이 역전되어 하나님의 행하심만이 우뚝 섰다는 것이에요.
2. 현대 사회
이때까지 우리는 노아의 이야기와 에스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시대를 분별한 자들의 모습을 살폈어요.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번성을 누리며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다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코 앞이었고, 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시대를 분별한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구원 받을 수 있었어요. 에스더 시대의 사람들은 하만이 유다인들은 다 멸살 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역전 시키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 반대로 유다인들은 구원을 받고, 그들을 해하려는 민족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알아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살아가고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를 알아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시대를 어떤 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고, 반면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가운데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만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하나님의 의중과 의도를 알아 노아와 에스더처럼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2.1. 키워드로 본 현대 사회
그렇다면 먼저 세상 사람들은 현대 사회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1.1. 과학 우월 주의
2.1.1.1. 디지털 시대 (Digital Age)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이 우리 실생활에 녹아 들어,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고 정보를 찾고, 공부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디지털 시대를 통해서 넘치는 정보를 접하는 시대여서 정보화 시대라고도 해요.
2.1.1.2. 4차 산업혁명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그런데 우리가 아까 전에 살폈듯이 디지털 시대가 점점 더 발전해서 인공지능 AI, 자율주행, 가상 현실 등으로 심화된 사회가 도래했다라고 말해요. 그래서 생산 방식의 혁신, 새로운 직업의 등장 등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디지털 시대, 그리고 디지털 시대가 심화 돼 나타난 4차 산업 혁명이 보여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과학’이 강조되는 시대라는 것이에요. 과학이 증명할 수 있는 것만 공적인 영역에서 사실로 받아들이고, 과학이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사적인 영역으로 몰아 넣으려는 시대라고도 할 수 있어요.
2.1.2.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
2.1.2.1. 포스트 모던 사회
한편 오늘 현대 사회를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라고 이야기해요. 포스트 모더니즘의 뜻은 모더니즘 다음 사회라는 뜻이에요(모더니즘, 계몽주의, 이성을 중시, 하나님의 말씀을 비평적으로 나누기 시작, 1차 대전, 2차 대전으로 실패).
이 사회의 특징은 절대적인 진리나 객관성보다는 개인의 경험과 주관성을 중시하는 시대에요. 그래서 고정된 규범이나 가치관 대신 다양한 가치와 관점이 공존하며, 대중문화와 소비 문화가 사회를 이끄는 주요 요소로 나타나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 절대 진리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절대 진리를 말하고 있어요. ‘절대 진리는 없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만이 공적인 영역에서 받아들일 수 있어!라는 그들만의 절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거에요.
2.1.3. 소결론
- 과학이 우선시 되고, 전통적 가치보다 개인의 자율성과 주관적 가치를 중요시하슨 시대
따라서 이 사회는 공적인 영역에서는 과학적 방법과 같이 사람들이 나름대로 인정하는 방식대로 증명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와 같은 방법과 연관이 없는 것들은 다양성이라는 상호존중이라는 명분하에 수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2.2. 탈기독교 사회
- 기독교의 진리가 공적 영역에서 밀려나는 시대
그런데 현대 사회의 이러한 흐름은 공적인 영역에서 점점 기독교적 가치를 몰아내고 사적인 영역으로 국한되게 만들었어요. 왜냐하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주관성과 다양성이라는 명목하에 기독교 진리의 본질적인 것을 건드린다면, 그 문제에 대해서 결코 타협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그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세상은 공적인 자리에서 기독교의 근본 가치들을 말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또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과학을 포함한 인간의 ‘이성’이라는 잣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성경에 말씀에 근거한 교회가 아닌 인본주의적 사상이 물든 교회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이 거대한 물결 가운데로 떠밀려 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와 같은 시대의 현상을 보고 이 시대를 탈기독교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 시대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기독교적 전통과 가르침에 대한 회의가 증가하고, 종교적 신념보다 개인의 자율성과 다원적 가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특징을 보여요.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이 마주하는 도전은 그들의 신앙을 어떻게 유지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관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2.2.1. 정의
탈기독교 시대"(Post-Christian Era)는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더 이상 기독교적 가치가 사회 전반의 규범이나 도덕의 기준이 되지 않는 시대를 말해요.
과거의 기독교적 영향력이 약화되고, 세속주의, 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도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기독교적 믿음과 가치관이 사회 전반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고 있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기독교의 진리가 공적 영역에서 밀려나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어요.
2.2.2. 통계
그리고 통계는 현대 사회가 탈 기독교 사회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교회에 갔으나, 1년에 한 번 이상 교회 가기를 그만 둔 사람들의 숫자를 보여주는 그래프에요. 점점 가파르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1년에 한 번이라도 나간 사람은 이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거죠? 그럼 상황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2.3. 소결론
-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
여러분 이 자료들을 보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지금 현대 사람들은 과학과 이성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견해를 중요시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라는 것을 명확하게 우리는 볼 수 있어요.
마치 어떤 시대와 같아요? 맞아요 노아의 시대와 같아요. 노아의 시대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보시고 심판을 계획하고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없이도 번성하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 없이 번영과 평화를 누리려고 하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어요.
3. 성경이 말하는 오늘날 시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노아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알려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이 시대가 어떠한 시대라고 알려주고 있을까요? 말씀을 통해서 한 번 살펴보도록 해요.
3.1.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는 시대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마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디모데후서 3:1-5는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그리고 이 구절들의 내용을 보면, 기독교 진리를 공적 영역에서 몰아내고 포스토머니즘 시대에 다원화를 추구하며 나타나는 현상들을 적시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따라서 우리는 말세의 징조가 나타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3.2.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시대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롬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와 같은 현상은 전 세대에 걸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사회에서 있어 왔던 현상이지만,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는 이것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 진리의 부재를 강조하며,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고 개인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사조는 성경적 세계관과 충돌하며, 절대적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흐름을 형성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진리 대신 물질적이거나 세속적인 가치를 숭배하는 현상은 이 구절과 일치합니다.
3.3. 영적 타락과 배교의 시대 (데살로니가후서 2:3, 마태복음 24:12)
(살후 2: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살후 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데살로니가후서 2:3은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라고 말하며, 마지막 때에 교회와 사회 안에서 영적 타락과 배교가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어요. 실제로 현대 사회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교회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탈기독교 시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3.4. 영적 전쟁이 격렬해지는 시대 (에베소서 6:12)
(엡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항하는 영적 전쟁을 치른다" (에베소서 6:12)고 가르칩니다.
현대는 영적인 전쟁이 더욱 심화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가파르게 그 물결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가치관, 쾌락주의, 물질주의, 인간 중심의 철학 등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영적인 어둠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조 속에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영적인 싸움에 임해야 합니다.
3.5. 재림을 준비하는 시대 (마태복음 24:44, 요한계시록 22:12)
크레이그 바르톨로뮤와 마이클 고힌은 그들의 공저인 「성경은 드라마다」라는 책을 통해서 성경을 거대 담론, 즉 메타 내러티브로 보고 드라마로 비유하여 6막으로 나누어 시대를 구분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현재 이 시대를 5막 후반의 시대라고 이야기해요.
(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 24: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준비하라고 하고 있어요.
3.6.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는 시대 (마태복음 24:14)
한편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일어날 일 중에 하나는 온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처럼 현대는 복음 전파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중요한 시대라고 볼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세속적 가치에 빠져들어 탈기독교 시대와 같아 보이는 때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토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해요.
4.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 시대 속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우리는 성경 말씀을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 말세를 살아가고 있고, 영적 전쟁이 치열한 시대로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시대라는 것을 살폈고, 또 이 시대에 온 세계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을 것임을 살폈어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하나님이 보시는 시대를 향한 관점을 알리신 후, 그가 할 일, 즉 방주를 만들도록 초청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자리로 초청하실까요?
십자가 복음 가운데 서서 선교적 교회의 삶을 살되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은 수준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시대
(십자가 복음 가운데 서서 선교적 교회의 삶을 살 되, 초대교회 성도들의 수준으로!)
4.1. 초대 교회의 상황
현재 여러 학자들을 비롯한 주님께서 세우신 리더들은 초대교회 당시 사회가 출세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시대였다는 것, 공공 장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 시대였다는 것,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토대로 현대 사회가 이와 같은 사회로 흘러 가고 있다는 공통점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대에서도 교회가 확장되고 전세계적으로 선교가 일어날 수 있었던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체로 함께하고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신 여주봉 목사님께서도 리더로서 하나님의 길을 분별하고 따라가시면서 이 부분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말씀하시기에 리더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르심은 우리를 향한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2.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
그렇다면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것에 대해서는 알렌 크라이더가 자신의 책 「회심의 변질」에서 이야기한 회심의 세 가지 요소를 살펴보면 그들의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4.2.1. 신념
단순한 이론적 동의를 넘어, 철저하게 성경 이야기로 무장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얻는 체험적 지식을 통한 신념입니다.
초대교회는 핍박을 받아서 원형경기장에서 짐승이 밥이 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다는 것을 확신했고, 따라서 자신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죽음을 이겼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2.2. 행동(산상수훈의 삶)
이 부분은 ‘윤리’나 ‘도덕’이라기 보다는 ‘생활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외부 이교도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교회와 성도들의 삶 속에 있는 “매력”과 자유함이었습니다. 바로 위에서 초대교회 목표가 “전 세계적이고 구원사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구별된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매력적인 반문화 대안 사회 건설이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비 신자들로 하여금 그 당시 삶의 각 분야에서 그러한 종류의 삶을 살아가도록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켰습니다.
성적 유희에서 벗어나 금욕의 기쁨을 누리고, 주술에 중독된 삶이 아닌 선하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 부와 재산에 얽메이는 것이 아니라 공동 기금으로 모으고 필요한 사람들과 함게 나누는 것, 증오하고 죽이고 상종하지 않는 원수된 것에서 돌이켜 함께 사랑하며 사는 것 등을 보고 비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의 삶에서 매력과 자유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소망을 품고 살기에 이와 같이 살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하며 기독교에 끌렸을 것입니다.
그 당시 예비 신자 양육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행해졌던 축사사역(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비 신자들의 양육에서 거의 매일 축사사역이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실제로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포함되었겠지만, 그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중독이나 강박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추구하기 위한 사역이었습니다. 저스틴은 ‘사람들을 종과 노예로 부리려는’ 마귀의 행태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듣고 마귀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기술했습니다. 초대교회는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한 삶의 네 가지 영역에서의 자유를 언급합니다. 그 네 가지는 1) 성적 유희에 탐닉하던 사람들이 이제 금욕의 기쁨을 누리는 것, 2) 주술에 중독되었던 사람들이 이제 ‘선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헌신한 것’, 3) 부와 재산을 늘리는 일에 기쁨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제 가진 것을 공동 기금으로 모으고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 4) 서로 증오하고 죽이고, 다른 족속의 사람과는 풍습이 다르다고 절대로 상종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함께 살면서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4.2.3. 소속
오랜 기간동안 진행된 신앙문답교육을 통해 참된 신념을 가지고, 삶의 양식으로 성도의 삶을 드러낸 자들이 연합한 교회 공동체.
우리가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교회는 필요할 때 나와서 은혜받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은 그 당시에는 전혀 존재하지도 상상할 수도 없는 비성경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초대교회의 신앙의 모습을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 복음 가운데 서서 선교적 교회의 삶을 살되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은 수준으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알고 사랑하는 친밀한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동역자의 삶을 살기를 갈망하는 가운데, 온 피조 세계를 구속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중과 의도를 알아, 온 삶을 드려 주님을 따르는 세대, 이를 위해 자신이 부르신 자리를 알아 주신 재능과 달란트를 가지고 맡겨진 역할을 감당하되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여, 비춰주신 비전을 따라 살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의제로 다른 사람들도 이끄는 영적 리더로 자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것입니다.
5. 우리의 반응
그렇다면 이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설교를 준비하면서 떠오른 세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1.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이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혹은 이 부르심에 대한 개인적인 초청을 듣기 위한 길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위에서 이 시대가 재림을 준비하는 시대, 즉 예수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시대라는 것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길을 준비한 자가 나오는데 그 자가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5.1.1.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한 자였던 세례요한
(마 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마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 3: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5.1.2. 빈들에 머물렀던 세례 요한
(눅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그런데 그 세례요한이 있었던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눅 3: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눅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이 구절에 자세히 읽어 보면, 먼저 당시 세계 최강 제국으로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로마 황제를 언급합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가 임명한 총독 본디오를 언급한 후, 유대 지역을 세 부분으로 나뉘어 통치하고 있던 세 명의 분붕 왕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언급한 후 말씀은 빈들에 있는 요한을 언급하면서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 당시 시대 배경을 설명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만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 권력자가 있는 곳에 임한 것도 아니고, 유대 지역의 권력자가 있는 곳에 임한 곳도 아니고, 그 당시 최고로 인정 받던 종교 지도자들에게 임한 것이 아닌, 빈들에 있던 세례요한에게 임했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최고 권력자나 종교지도자들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빈들에서 하나님 앞에 머물렀던 세례요한을 주목하시면서 그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다음 세대 여러분, 주님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권력자들이 있는 곳, 재벌들이 있는 곳, 유명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주목하시는 것이 아니라 빈들에서, 광야에서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면서 주님을 바라보는 자를 주목하시고, 그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이제 삶을 살다보면, 이 세상으로부터 다양한 유혹들이 찾아올 거에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을 쫓고 싶은 마음,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이 돈을 많이 벌고 명예와 권력을 누리고,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을 거에요. 그렇지만 우리는 노아의 시대를 기억하며, 하나님과 상관 없이 번영을 누려보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심판을 당한 사람들과 같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시대에 행하신 일에 동참했던 노아의 삶을 살기를 갈망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거에요.
사랑하는 다음 세대 여러분, 세상이 말하는 행복이 있다는 곳, 쾌락을 주는 것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머무는 빈들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빈들은 여러분이 무릎꿇고 주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골방이 될 수도 있게,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찾는 다윗의 장막, 이사야 62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주일 예배, 수요 예배와 같은 시간이 골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5.2.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라
인터넷이 미국의 탈교회 가속화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과 전혀 다른 다양한 종류의 세계관을 쉽고도 주기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tv, 라디오, 영화, 매체는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 자유, 행복, 상대주의와 같은 현대 사회의 내러티브와 믿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2시간 30분을 소셜 미디어, 2015년을 기준으로 볼 때 고3은 하루 평균 4시간을 온라인상에서 보냈다. 절대적인 시간을 온라인 상에서 보내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우리에게 단지 새로운 믿음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믿음을 형성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 이때의 믿음은 매우 빈약해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싶은 방식에 적합할 때에만 채택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버려진다.
정체성 당신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자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당신 선탁핸 돌 인생을 살아가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
행복 당신은 자신이 느끼기에 가장 행복한 일을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도 그 행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과학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객관적인 과학과 사실로부터만 주어진다.
도덕성 모든 사람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정의 세상 모든 사람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역사 역사가 진행될수록 종교는 퇴보하고 사회는 진보한다.
절대 시간을 줄이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미디어와 매체와 단절하고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과는 동떨어진 삶이 돼 세상 속에 들어가 빛을 비추는 삶은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 사람들의 신념을 분별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믿는 바를 확고히 하고, 우리의 신앙을 지킬뿐만 아니라, 부르심을 따라 이 미디어, 문화 예술의 영역에 성경적 세계관이 우뚝 설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기독학교에 등록하는 것도 너무 너무 필요할 것이고, 혹시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성령님께 은혜를 구하여 그 인도하심을 따라 반드시 이 영역에 자라나는 자리로 가야합니다.
5.3. 영적 리더로 자라나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님의 얼굴 구하여 주님의 말씀 가운데 머물며,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여 주님의 보여주신 길을 살되, 우리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우리와 가는 길로 걸어야 합니다.
5.3.1. 영적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영적 리더십은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5.3.2. 비전과 리더십에 따른 네 종류 사람 유형
존 맥스웰 박사를 ‘리더십의 대가‘는 다음과 같이 네 종류의 사람의 유형으로 정리했습니다.
첫째는 방랑자 둘째는 겁쟁이 셋째는 성취자 넷째는 리더
5.3.2.1. 방랑자
방랑자는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지런히 달려가고 열심히 일하는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사람이죠.
태평양에서 배를 저어갑니다. 가끔 풍랑 과 싸우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사투를 벌입니다 또 암초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힘씁니다. 또한 열심히 노를 젓습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거죠 목표가 어딘지를 모르는 거죠.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죠! 얼마나 심각합니까? 그게 방랑자입니다
5.3.2.2. 겁쟁이
겁쟁이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도 대가 지불이 두려워서 가지 못 하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비전, 세상이 말하는 비전 말고 하나님의 비전, 성경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그러한 비전,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 그 일은 절대로 대가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5.3.2.3. 성취자
잔 맥스웰 목사가 말하는 성취자는 비전을 보고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온 힘으로 달려가 그곳에 이른 사람이죠.
제가 말하는 성취자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하나님의 행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하여 인내하며 순종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룬 사람입니다.
5.3.2.4. 리더
리더는 비전을 보고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 그 곳에 이르러 그 일을 성취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그곳으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말하는 ‘성취자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자기의 전체를 걸고 하나님 인도에 순종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그 하나님의 목적을 그를 통해 이루는 사람이 성취자라면, ‘리더는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그렇게 비전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룰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 자리로 인도하는 자가 리더입니다 그게 리더입니다. 그리고 말과 삶과 행동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5.3.3. 노아 내러티브의 예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시대를 향한 하나님이 관점을 듣고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신 방주를 만들고, 동물들을 싣는 그 일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가족들도 그 일에 동참시킴으로 같이 구원을 경험했어요.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가 성취자가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성취자들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을 이끄는 자들이 돼야 해요.
6. 결론
결론으로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읽고 정리하길 원합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사도 바울이 영적 예배가 무엇인지 설명했어요.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거라고 알려줬어요. 그런데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거에요. 즉 시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우리를 드리는 거에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현 시대의 상황, 하나님이 보시는 시대, 그리고 이 시대 속 우리를 어디로 초청하시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어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무엇보다 십자가 복음에 가운데 서서 선교적 교회의 삶을 삶을 살되, 초대교회 성도의 수준으로 자라나갈 수 있게 되기를,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머무는 하나님의 얼굴 구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여, 성취자의 삶을 살 뿐만 아니라 리더로서 다른 사람들도 그 자리로 이끄는 자들로 자라나길 예수님 이름으로 소망해요.
그리고 저는 이 세 가지를 제가 중고등부 교역자로 있는 동안 설교하고 가르치고 인도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하기 전에 더 근원적인 부분인 우리에게 부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고, 우리에게 베푼 그 크신 은혜를 맛볼 수 있도록 설교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하는 우리가 함께 드리는 모든 예배 가운데 주님을 경험함으로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을 누리고 그 은혜에 압도당하여 감격하고 기뻐하고, 그 사랑 안에 안식하는 시간을 보내기를 합니다. 그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지 나를 향한 열망과 질투가 얼마나 큰 지를 경험하게 되길 원해요.
또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고 압도당하였던 것처럼 그 하나님의 그 영광과 아름다움에 압도 당하여 주님이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라고 물으실 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생명을 드릴 수 있는 자들이 될 수 있길 원해요.
그래서 쥐어짜내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한다고 주님 제 생명까지도 드리겠다고 고백하는 중고등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