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영웅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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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0:17-27
서론
2026년 표어 “나 혼자 산다? 남은 자로 산다!”로 정했다. 그 이유는 오늘날 학생들은 과거와 달리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소수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교회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현대 청소년 크리스천은 나 혼자 신앙생활 하는 것과 같은 외롭고 힘겨운 신앙생활, 영적 전쟁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열왕기상 19:18절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와 영적 전투를 벌인 후, 그대로 뻗어버린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000명의 사람을 두고 계신다고 엘리야에게 위로를 건넨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편 가르기가 아닌 동역자이자 지체이다. 2026년 표어는 겨울 수련회 주제와 동일하다. 2026년 한 해 서로 귀한 동역자, 지체가 되길 소망한다.
10:17-19: 왕의 요구에 대한 정황, 배경
사무엘은 늙었고, 그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웠다. 그러나 아버지와 달리 그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 오히려 사명을 돈벌이로 생각했다. 사명을 생존의 수단으로 여겼다.(8:3)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 나라와 같은 왕을 요구한 것이다. 왕 자체를 요구한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근본적인 문제는 보이는 현상을 영적 대처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12지파는 각 지파마다 지도자가 있었다. 그래서 군사력이 흩어진다는 점이 그들이 우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앙집권체제를 만들어 국방력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방 나라들이 하는 방식이었다. 보이는 현상적인 문제를 보이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이끄신다는 영적인 원리를 망각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두고 18-19절 두 구 절에 걸쳐 얘기한 게 그 이유에서다.
>> 대환장 파티
그렇다면 이스라엘 왕이 해야 할은 무엇인가? 9:16절에서 보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13:3에 따르면, 당시 베냐민 지파 레위인의 도시 게바라는 곳에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사울 왕의 목적이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는 우리끼리의 모임이 아니다. 우리들만의 놀이터가 아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것처럼, 잃은 양을 되찾는 것이다.
20-22, 26절: 사울의 반응- 짐보따리에 숨음, 부르심에 대한 반응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처럼, 그 어둡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신다. 그러나 이 말과 성경이 다른 점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능력한 인간을 세우신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은 당시 30살이었던 사울이다. 그는 왕을 선출하는 자리에서 짐 보따리에 숨어있었다. 그는 자신을 하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다(15:17). 그 이유는 그가 베냐민 지파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지파가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작은 지파이고(9:21), 그 안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 가정이라고 말한다(9:21). 설교자는 베냐민 지파가 가장 작은 지파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에 사실 이유가 있고 역사가 있다. 이것을 알기 사사 시대 말미에 있었던 사건을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왕이 없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시대이다. 어느 날, 레위인과 첩이 베냐민 기브아라고 하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찾아와 첩을 성폭행하고 죽인 것이다.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토막내어 11지파에게 보낸다. 그렇게 이스라엘에 내전이 벌어진다. 11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내전을 벌인 것이다. 3번의 싸움 중 2번이 이스라엘 11지파가 패배했지만, 마지막 3번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둔다. 이때 2만 6000명이었던 베냐민 지파는 600명으로 축소된다. 25,400명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이후 베냐민 지파가 계속 후손을 이어갈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었지만, 그들의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를 들어, 물론 이 사건이 사울의 직계 가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영향은 그 정도 파급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이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사회에서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출세는 고사하고 취업도 생각할 수 없다. "조두순" 사건이 그러하다. 2008년 12월에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한 교회 안의 화장실에서 조두순이 만 8세 여아를 강간 폭행한 사건이다. 일명 “나연이 사건”이다. 그런 아버지의 자녀라고 한다면, 그의 자녀 역시 사회에서 살아가기 쉽지 않다.
우리 안에 이런 가족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다니는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 평가 그것은 단지 학교만의 시선은 아닐 것이다. 그에 소속된 나 역시 동일시된다. 예를 들면, 이런 언어일 것이다. “그 엄마에 그 자식”, “그 아빠 그 자식이라는 말을 듣는다”. “피는 못 속인다.” “강씨 집안 ~~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오면 그 이미지다 굳혀진다. 그래서 자신감도 자연스레 떨어진다.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서 형성된다.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런 가족 배경을 가진 사울은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사람, 하찮은 사람으로 여겼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짐 보따리 숨은 것으로 파악된다.
여러분, 이런 와중에 하나님의 선택은 바로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여겼던 사울이었다. 바울은 고전1:26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실 때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보잘 것 없는 데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가장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에 자리하고 있는 성경 이것은 ‘두루마리 휴지’에서 시작했고, 십계명 역시 길에 나뒹구는 아무것도 아닌 ‘돌’에 새겨졌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이다. 스스로 낮게 평가하는 것과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다르다. 두 쪽 모두 자신의 부족함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전자는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이고, 후자는 자신의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에 그분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부르심을 생각해 보자. 대게 우리는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고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 내 한계 안에서 한정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최선을 다한다는 그 자체가 내 힘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어”는 진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수 있는 때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내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가 일하시네” 찬양의 가사가 “날이 저물어 갈 때, 빈 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라고 말하는 것이다. 저도 여러분과 같이 학생입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안 되는 과목은 잘 안 됩니다. 싫어하는 과목은 공부하기가 너무 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공부하면 머리에 들어오는 경험들을 합니다. 여러분,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물이 주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실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23-24: 사람들의 반응-환호, 따라가는 사람
25-27: 사람들의 반응-경멸, 무시 / 이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할 수 있느냐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 부르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19살 크리스마스, 처음 교회에 나와 정착했다. 시간이 흘러 캄보디아 선교 아웃리치를 가게 되었다. 일주일 중 하루를 신학생 형님과 룸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군대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두고 기도하던 중이었다. 형과 하룻밤을 지내는데, 문득 “목사를 하려면 꼭 교회를 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형님께 물어봤다. 형님의 답변은 대한민국 정서, 사회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었다. 이후 한국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대절한 버스 안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때 하나님께서 나를 목회자로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약 6개월을 기도하며 기다렸던 나에게 그 응답의 내용과 관계없이 응답해 주셨다는 그 기쁨이 컸다. 그래서 주변 친한 형들에게 알리려 했는데, 하나님께서 말하지 말라는 마음을 주셨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사모님과 대화 중 그럴듯한 답변을 듣게 됐다. 이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아마도 그때 제 성향을 고려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었다면 제 스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의심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들어 보아도 그럴듯한 답변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런 줄로 생각하고만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오늘 현재 나의 모습을 보고 부르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회는 오늘 현재 나의 모습을 보고 미래를 전망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심은 그렇지 않다. 먼 미래를 보고 오늘 나를 부르신다. 성경에서 베드로가 제일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현재 어부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 지도자로 귀하게 쓰임 받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사람을 만들어 가시는 분이다.
당시 사울이 왕으로 뽑힐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쪽은 환호했지만 다른 한쪽은 경멸, 무시했다. 이는 아마도 사사시대 베냐민 지파를 떠올렸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사울은 사람들의 무시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결론
사울, 그의 말미는 좋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 혹은 외부의 도움에 의지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했지만, 자신이 왕의 자리에 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 난세의 영웅은 예수 그리스도다. 400년의 어두운 침묵을 깨고 등장했다. 직업으로는 평범한 목수요, 볼품도 없는 구유에서 탄생했다. 그의 삶은 타자를 위한 삶이었고, 그 절정이 구원이다. 진정한 난세의 영웅은 사울이 아닌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를 붙잡고 따라가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이다. 그분을 붙잡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절하게 반응하고 그 부르심에 목적에 따라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부르심이 때로 환호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오늘 본문 26, 27절에 사람들이 그러하다. 아마도 베냐민 지파 과거 이력을 염두에 두고 한 언행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집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따라가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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