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4일 (주일) 새벽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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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 두 산 앞에 선 사람들”
“ 두 산 앞에 선 사람들”
여리고성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무너뜨리고 한 번의 실패 이후에 완벽한 계획을 통해서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사용한 전략은 선동과 매복이었습니다.
아이성 안에 있는 군인들을 유인해서 끌어내서 매복해있던 5000명의 군사들이 아이성을 차지하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가나안 지역을 정복할 “베이스 캠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전쟁시작해야 하는데 여호수아는 전쟁 보다는 모세가 이야기한 것을 실행할 준비를 합니다.
여호수아는 에발 산이란 곳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준비합니다. 쇠로 다듬지 아니한 자연의 돌로 제단을 쌓고 그 돌에 율법을 새깁니다.
그런데 지금 이순간에 그리고 지금 이 위치에서 갑자기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맥락적으로도 갑자기를 제사를 드릴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제단을 쌓고 제사를 준비하는 근거는 신명기 27장의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27장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27: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27: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27: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27: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27: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27: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27: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27: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2절에 보면 전쟁이 모두 끝날때가 아니라 그 가나안 지역에 들어가면 제단을 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생각하기에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무너뜨린 이 때가 적기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리고성을 함락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어떠한 역사가 일어나는 보았습니다.
동시에 아이성 첫 번째 전투에서 아간의 범죄로 인하여 실패를 맛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 한 후에 다시 아이성을 공격했을 때 아이성을 정복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성에서 조금 위에 위치한 “세겜”지역으로 더 올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겜 지역에 들어가기전에 보이는 쌍둥이산이 바로 그리심산과 에발산입니다. 정면으로 보았을 때 왼쪽에 881m의 그리심산, 오른쪽에 940m의 에발산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또한 세겜이라는 곳은 가나안 땅 중심부 위치 할 뿐 아니라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기도 합니다.
전쟁 중간에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제사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기억하기를 원했습니까?
여호수아 1장
1: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 그대로 역사 속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형통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했을 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더 깊이 하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되는 일
가장 먼저 해야 되는 일
요단강을 건너났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정복했다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를 잘 치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의 누구의 전쟁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주인공인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여리고성 전투나 아이성 전투를 보면 알겠지만 이스라엘은 그저 하나님께서 하라하신대로 하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성 전투를 마치고 특히, 한 번의 실패와 그리고 다시 성공을 경험하고 그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관계를 제대로 정립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신명기 말씀에 의하면 에발에 그 제단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1장 29절 말씀에 의하면 “에발산은 저주를 선포하는 산” 이고 “그리심 산은 축복을 선포하는 산”이었습니다.
신명기
11: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저는 이 말씀이 에발산이나 그리심산 자체를 의미를 부여하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 이렇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신명기 8장
8: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8: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절반(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은 그리심 산에 앞에 세우고 절반(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 은 에발 산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렇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기록된 모든 것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했다.”
그 장소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 산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 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징계를 받으며 심지어는 저주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창 전쟁 중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단 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드려라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드려라
그리고 그 에발산에 쌓은 제단에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리고 말씀합니다. 31절의 말씀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번제 : 제물 전체를 불살라 드리는 제사이다(레1:3-17, 6:8-13).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헌신과 봉헌을 상징한다.
번제는 제사를 드리는 방법을 의미하는데 제물 전체를 불살라드리는 제사의 방법입니다. 이 제사의 방법은 “하나님의 향한 전적인 헌신과 봉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번제와 항상 함께 하는 것이 화목제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자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을 위한 제사입니다.
그리고 화목제는 유일하게 제사를 드리는 자가 그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제사였습니다. 여러 부위와 기름고 콩팝은 하나님의 몫으로 번제로 올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요제(앞뒤로 흔들고 위 아래로 흔든다)로 드린 가슴과 거제(제물을 높이 쳐든다.) 드린 우편 다리는 제사장들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제사를 드리는 자가 가족들과 성막 뜰에 함께 먹었다고 합니다.
화목제 : 경배자와 하나님 사이의 평화와 친교를 나타내는 제사이다(레3:1-17, 7:28-34).
에발산에 쌓은 제단에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렸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 전체를 드리는 헌신을 결단한 것입니다. 또한 화목제물을 드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가나안 정복 전쟁의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두 산 앞에서서 모세와 여호수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했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하나님께 전체를 드린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두 산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선포되는 그 산 앞에 서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발산 앞에, 그리심산 앞에 선다는 것은.
우리가 에발산 앞에, 그리심산 앞에 선다는 것은.
그렇다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그 두 산 앞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가 선포되는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의 말씀입니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위의 말씀에 보면 그 십자가에서 저주와 복이 선포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셔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 죄 때문에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게 되신 것입니다. 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고 그 끝이 곧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비참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 십자가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이 완성하지 못한 그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다시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세워진 열 두 제자와 다른 제자들을 통하여 “복”이 전파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산 앞에 선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는 것이라고 말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마다 죄의 비참함과 파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피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으로 구별되지 않은 하나님의 처소, 권속, 백성이 된 복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주 중요한 순간에 여호수아에게 하셨던 그 말씀이 선포되고 그 두 산 앞에 섰습니다. 그 산은 가난안의 중심 세겜에 위치한 산이었고 아브라함이 처음 제사를 드린 제단이 있었언 곳이었습니다.
그 가장 중요하고 급박한 순간에 ... 기본으로, 처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며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인 무엇입니까?
겉모습이 그럴싸한 것입니까? 내가 원하는 목표를 채우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위치에 올라가는 것입니까? 눈 앞에 어떠한 일은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까? 인생을 잘 살아보는 것이 목표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을 사모하는 신부로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급박하고 위기의 순간 어디에 서야합니까? 우리의 삶의 중심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날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디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십자가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날마다 나의 삶을 점검하고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허락된 그 복음, 그 복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주일 / 드려지는 모든 예배를 위하여 /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과 부목사님들을 위하여 / 교회 곳곳에 봉사하시는 성도님들을 위하여
우리 공동체가 온전히 주일지킴으로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