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청년: 사라질 세상에서 영원을 붙들라 2026 0108 요일2:14-17
Notes
Transcript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위대한 교회! 위대한 청년!
이것이 우리 2026년 더터치 청년부의 목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수련회에서, ‘위대한’이라는 이 단어의 개념을 성경적으로 정립하고, 위대한 청년의 길을 우리 함께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서론: 배터리는 어디에 쓰였는가]
[서론: 배터리는 어디에 쓰였는가]
할렐루야! (아멘) 우리 더터치 청년부 여러분, 정말 잘 오셨습니다. 한 학기 동안, 또 치열한 직장 생활 속에서 살아남느라, 버텨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 이 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지친 심령 위에 새 힘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본격적으로 말씀을 나누기 전에, 우리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한번 다 꺼내볼까요? 네, 다 꺼내보세요. 그리고 ‘설정’에 들어가서 ‘배터리 사용량’을 한번 눌러봅시다.
(잠시 시간을 주며) 자, 지난 24시간, 혹은 지난 일주일 동안 여러분의 배터리가 가장 많이 쓰인 어플이 뭡니까? 어떤 분은 인스타그램일 테고, 유튜브나 넷플릭스인 분도 계실 겁니다. 또 어떤 분은 게임이나 카카오톡이 가장 위에 있겠죠.
제가 왜 이걸 확인하자고 했을까요? 여러분, 사실 핸드폰 배터리만 거기에 쓰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인생의 에너지, 여러분의 영혼의 배터리가 지난 한 주간 바로 거기에 쓰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없다", "피곤하다", "힘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힘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엉뚱한 곳에 내 에너지를 다 태워버리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 쓸 힘이 없는 걸까요?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도 지금과 비슷했습니다. 세상은 화려했고, 영지주의니 쾌락주의니 하는 온갖 유혹들이 청년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그때 요한은 청년들에게 아주 강력하고,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방전된 여러분의 영혼이 다시 충전되고, 낭비되던 인생의 방향이 위대하게 재설정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1: 너희는 냄비 받침이 아니다 (정체성)]
[본론 1: 너희는 냄비 받침이 아니다 (정체성)]
먼저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 요한은 여러분을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요일2:14“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여러분, 솔직히 이 말씀이 공감이 되십니까? "너희가 강하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지체들이 있을 겁니다. '목사님, 저는 안 강해요. 저는 스펙도 별로고요, 가진 돈도 없고요, 툭하면 상처받는 유리멘탈인데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너는 약하다", "너는 부족하다", "너는 흙수저다"라며 패배감을 심어줍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대책 없이 우리보고 "강하다"고 할까요?
제가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최신형 스마트폰이 하나 있다고 칩시다. 100만 원, 200만 원이 넘는 최고급 기계입니다.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고, 달의 표면까지 찍을 수 있는 엄청난 기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그 최고급 스마트폰을 사서 라면 끓여 먹을 때 '냄비 받침'으로 쓰고 있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미쳤다!", "아깝다!", "제정신이냐!"라고 소리칠 겁니다. 왜요? 그 기계의 '가치'와 '용도'를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시시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청년'이라는 단어, 헬라어로 ‘네아니스코이(νεανίσκοι)’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나이가 젊은 남자'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 단어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정규군'을 뜻했습니다.
어린아이(Children)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노인(Fathers)은 지혜를 주지만 힘은 부족합니다. 오직 '청년'인 여러분만이 직접 칼을 들고 적진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마귀와 싸워 이길 '하나님의 특수요원', '비밀병기'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진짜 정체성입니다.
여러분, 게임 좋아하십니까? 혹은 축구 같은 팀 스포츠를 생각해 봅시다. 팀에는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뒤에서 판 전체를 읽고 작전을 짜는 '감독'이나 '서포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로 치면 기도로 후원해주시는 장로님, 권사님들, 즉 '아비들'입니다. 그리고 아직 성장 중이라 보호받아야 하는 '루키'나 '유소년'도 있습니다.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청년(네아니스코이)'인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게임 용어로 말하면 '메인 딜러(Main Dealer)', 축구로 치면 '스트라이커'입니다.
'메인 딜러'가 뭡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적진 한가운데로 파고들어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으로 상대방(보스 몬스터)을 쓰러뜨리고 '하드 캐리(Hard Carry)' 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판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구조가 딱 이렇습니다. 어린아이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아비들은 지혜로 작전을 짭니다. 하지만, 실제로 최전방에서 칼을 휘두르며 마귀의 세력을 뚫고 들어가 승리를 가져와야 하는 '화력'은 바로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팀의 '메인 딜러'들이 뭐하고 있습니까? 중요한 한타(결전)가 벌어졌는데, 엉뚱한 맵에서 구경만 하고 있거나, 아이템 파밍(스펙 쌓기)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벤치 멤버'나 '관중'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경기장에 뛰어들어 골을 넣어야 할 '주전 선수'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엄청난 '영적 스펙'을 가지고 고작 무엇을 합니까? 세상의 유행 좇아가고, 남들하고 비교하며 우울해하고, 연예인 걱정이나 하고... 마치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냄비 받침을 하고 있는 것과 똑같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을 엉뚱한 데 낭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14절을 다시 보세요.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여러분의 강함은 통장 잔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학벌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강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말씀이 있으면, 우리는 흉악한 자를 이깁니다. 이미 이겼습니다!
나이가 들면 지혜는 생기지만 체력이 떨어져 최전방에 서기 어렵습니다. 오직 지금, 여러분의 이 젊음의 때에만 가능한 영적 폭발력이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이 시간, 우리 옆 사람을 한번 쳐다봅시다. 그냥 피곤에 쩐 대학생, 직장인처럼 보입니까? 아닙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다시 보십시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세상을 뒤집으라고 보내신 '네아니스코이', 거룩한 용사입니다. 우리 옆 사람의 눈을 보고 진지하게, 뜨겁게 한번 선포해줍시다. “당신은 시시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비밀병기입니다!”
[본론 2: 사라지는 세상에 투자하지 말라 (세상의 실체)]
[본론 2: 사라지는 세상에 투자하지 말라 (세상의 실체)]
자, 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존재인데, 왜 우리는 자꾸 무력해질까요? 왜 자꾸 냄비 받침처럼 살게 될까요? 그 이유가 15절에 나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우리가 힘을 잃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대상을 잘못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내 에너지를 쏟아부을 대상을 잘못 골랐다는 겁니다. 요한은 우리가 빠지기 쉬운 세 가지 덫을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16절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첫째, 육신의 정욕입니다. 이건 뭡니까? 본능대로 사는 겁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보고 싶으면 보는 삶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도파민 중독'입니다. 숏폼 영상, 음란물, 자극적인 콘텐츠... 순간의 쾌락을 위해 내 영혼을 갉아먹는 것입니다.
둘째, 안목의 정욕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목매는 삶입니다. 화려한 겉모습, 명품, 외모 지상주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끊임없이 남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를 비교하며 비참해지는 것, 그게 바로 안목의 정욕입니다.
셋째, 이생의 자랑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가졌다는 교만, 혹은 남들보다 못 가졌다는 열등감. "나 연봉 얼마야", "나 어느 회사 다녀"... 이것으로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도 요한이 이 세 가지를 향해 내리는 충격적인 진단이 있습니다. 17절 앞부분을 보십시오.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기서 '지나가되(is passing away)'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게타이(παράγεται)’입니다. 이것은 "먼 훗날 언젠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실시간으로 붕괴되고 있다", "지금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타이타닉 영화 보셨습니까? 배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다 물에 잠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침몰하는 배의 갑판 위에서 썬베드 위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열심히 의자를 정리하고 있다면, 1등석이 아니라고 화를 내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 사람 미쳤구나."
지금 세상이 그렇습니다. 세상의 인기? 유행? 성공?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라질 것을 붙잡으려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내 청춘을, 내 젊음을, 내 인생을 다 걸고 있습니다. 그것은 투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낭비입니다. 그것은 도박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고,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세상 사랑'이나 '이생의 자랑'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총리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실력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방향'과 '주인'입니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이 실력을 갈고 닦는가? 냄비 받침으로 쓰려고 스마트폰을 닦고 조이는 건 낭비지만, 위대한 통신을 위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건 거룩한 준비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세상에서 실력 있는 '네아니스코이'가 되길 바랍니다. 다만, 그 목적이 나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십시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사라질 것에 여러분의 위대한 인생을 걸지 마십시오. 세상은 여러분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급해질 뿐입니다.
[본론 3: 십자가 복음만이 영원하다 (해결)]
[본론 3: 십자가 복음만이 영원하다 (해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 사랑하지 말아야지", "인스타 끊어야지", "음란물 안 봐야지"... 결심하면 됩니까? 안 됩니다. 며칠 못 가서 또 무너지는 게 우리 아닙니까?
우리의 의지로는 안 됩니다. 냄비 받침으로 전락한 우리 인생을 다시 위대한 걸작품으로 돌려놓을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17절 뒷부분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착하게 살고 봉사 많이 하라는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나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던 내가, 돈과 쾌락을 사랑하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제 마음이 여러분을 향해 불타는 듯이 끓는 이유도 이와 같아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해주셨다는 그것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오직 여러분들의 영혼에만 관심이 있는거예요. 진짜 예수 만나기를. 진짜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기를.
복음은 단순히 "천국 가는 티켓"이 아닙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나의 그 더러운 '육신의 정욕'을 대신 지고 찢기신 곳입니다. 나의 그 허영심 가득한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대신 지고 못 박히신 곳입니다.
내가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주님, 저는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 사랑이 내 안에 밀려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주는 시시한 쾌락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하늘의 기쁨과 평안이 내 영혼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교회에 다니면, 예배에 나오면! 이 하늘의 기쁨과 평안을 발견해서 내 영혼이 예수로 만족되는 경험을 해야 해요! 그냥 교회 다니지 말고! 그냥 예수 믿지 말고, 예수를 잘 믿자! 예수 만나기를 소망하면서!
진짜 명품을 가진 사람은 가짜에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라는 진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세상이라는 모조품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게 됩니다. 억지로 끊는 게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가졌기에 시시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결론 및 초청]
[결론 및 초청]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더터치 청년 여러분.
첫째,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네아니스코이'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하나님의 강한 용사입니다. 냄비 받침으로 살지 마십시오.
둘째, 속지 마십시오. 세상은 지금도 사라지고 있는 신기루입니다. 침몰하는 배에 인생을 투자하지 마십시오.
셋째, 붙잡으십시오. 영원히 변치 않는, 영원히 거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오늘 이 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사랑하는 딸아. 너는 언제까지 사라질 것을 위해 살래? 나는 너를 위대하게 만들었는데, 너는 왜 시시하게 살고 있니?"
이 시간, 우리의 낭비된 배터리를 주님께 반납합시다. "주님, 그동안 썩어질 것에 내 젊음을 태웠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주님을 위해 내 삶을 드리기 원합니다." "나의 비교의식, 열등감, 음란함... 다 십자가에 못 박고, 오늘 밤 진짜 위대한 청년으로 다시 태어나기 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갑시다. 반주해 주시고요. 우리의 기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취업 잘되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가 아닙니다. "주님! 세상을 사랑했던 나의 음란한 마음을 찢어 주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덮어 주옵소서! 내 안에 예수의 생명으로 다시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 이 시간, 주의 이름 크게 세 번 부르짖고, 뜨겁게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기도회 곡
주와 함께 살아가야 해
기도회 기도제목
14절(정체성 선포: 너희는 강하다) → 15-16절(경고: 가짜를 사랑하지 말라) → 17절(약속: 영원한 승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