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8
골로새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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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리고 여러분들은 예전에는 (하나님 나라의) 이방인으로 간주되었었고, 태생적으로 원수였으며,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예전에는 (하나님 나라의) 이방인으로 간주되었었고, 태생적으로 원수였으며,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지금껏 복음을 설명하였습니다. 복음이 무엇이고 골로새 교인들이 받은 선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 복음을 받은 골로새 교인들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한 상황 설명을 해줍니다. 왜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그 복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역시 설명을 합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의 기독교인들, 기존에 교회를 다니던 분들 역시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잊고 있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원래 하나님 나라와 아무런 관계가 없던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 나라에서 추방된 것이 아닙니다. 죄라는 구체적인 존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은 것입니다. 아담이 한 일은 그 죄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두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음이라는 존재가 사람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인 우리들은 자동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관계가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이 원래 하나님 나라와 관계가 없던 분들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는 원수였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종교가 이 부분을 교묘하게 공략합니다. 우리는 원래 중간에 있는 존재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선한 쪽으로 가기도 하고 악한 쪽으로 가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매우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선행이라고 이야기하는 일들만 하고 살았다 하더라도 하나님 눈에는 악한 일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진실입니다. 우리의 진실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우리의 구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도덕과 철학과 교육의 영향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교묘하게 희석하는 것들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시도에 넘어가고 있고 자신들도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명확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흠도 모자란 점도 없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인간은 다른 창조물과는 차별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주입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선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주저없이 그 선택권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선택권을 사용하여 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둡니다. 세상이 악해서 인간이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완벽했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망친 것입니다. 죄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인이 된 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가 우리를 지배하게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에 속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 앞에서 결백하고 도덕적 결함이 없는 거룩한 사람들로 드려지기 위해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의 육체 안에서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 앞에서 결백하고 도덕적 결함이 없는 거룩한 사람들로 드려지기 위해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의 육체 안에서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설명합니다. 우리는 원래는 하나님 나라의 원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체적으로는 육체가 죽으심으로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었던 죄라는 존재를 치우신 것입니다. 그 죄가 인간을 다스릴 수 있었던 근거를 제거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창조때 설정되었던 그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결백하고 도덕적 결함이 없는 거룩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동과 생각과 과거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일일’이 된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죄가 생긴 이후 인간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것이고 그분만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선택이 인간을 다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선택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함께 그분께 속하여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과는 아무 관계없이 세상과 죄에 속하여 살아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어쩌면 핑계를 댈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태어나자마자 바로 죄에 속한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 다시 선택이 나의 앞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매일 매일 매순간 순간마다 새롭게 됩니다. 나는 다른 선택을 언제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번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은 중요합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고 지금은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 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에게도 해당되고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태의 사람들이었는지를 기억해야 하고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오늘 우리가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있는 선택의 순간들을 지혜롭게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믿음 안에 거하고 기초를 튼튼히 하고 변하지 않으며 여러분들이 들었던 복음의 소망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그럴 것입니다. 이 복음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창조물 안에서 선포된 것이며 나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믿음 안에 거하고 기초를 튼튼히 하고 변하지 않으며 여러분들이 들었던 복음의 소망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그럴 것입니다. 이 복음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창조물 안에서 선포된 것이며 나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3절에 바울은 조건을 의미하는 만일 이라는 부사를 사용합니다. 바울은 네가지의 조건을 답니다. 첫째 믿음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오늘 우리가 보았던 예전 우리의 상태 그리고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간 순간 내가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입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에피메노’ 라는 동사를 사용하였는데 어떤 영역안에 계속하여 머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믿음은 일시적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한번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결말이 아니라 진행이고 여정이라는 말입니다.
둘째로,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기본기라는 말을 씁니다. 기본기가 튼튼해야 발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믿음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가 없고 기본이 안되어 있는데 거기에 무엇을 더해봐야 나중에 무너지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기초를 설명하시며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기초는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나를 선지자라고도 하고 선생님이라고 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하고 질문을 하십니다. 그랬더니 시몬 베드로가 그 유명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명대사를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이제 너의 이름은 반석이다 내가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기초와 반석은 바로 이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우리의 기초로 세워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하며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하는지의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바라고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고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 역시 할 수록 능숙해집니다. 사람 사이에도 대화가 있어야 친해지듯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도 기도가 있어야 친밀해 집니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로 기초를 쌓는 사람들은 매일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을 알아야 찬양을 할 수 있고, 그분과 친해지면 예배는 자연스럽게 우리 삶의 일상이 됩니다.
셋째로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어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한 설정이나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믿음은 거하는 것이다 라고 설명을 드렸는데, 이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 주거지를 믿음에서 믿음이 아닌 곳으로 이사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을 떠나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선택입니다. 믿음에 거하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매우 개인적인 것입니다만, 이 믿음 안에 거하는 일은 혼자하기 쉽지 않습니다. 믿음의 동료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각자 다른 성격 다른 재능 다른 형태의 믿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이 모여 하나가 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신앙 고백에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 안에 거하고 기초를 튼튼히 하면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능합니다.
네째로, 여러분이 처음에 들었던 복음의 소망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소망은 골로새서를 통해 여러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오늘 설교의 내용도 다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현실이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라는 표현도 믿음 안에 거한다 라는 동사를 또 한번 사용하였습니다. 그 소망 속에 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동이나 신념이라기보다 소속에 가깝습니다. 거하고 머물러 있고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다시 한번 복음에 시선을 집중 시킵니다. 이 복음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창조물에게 선포된 것이다 라고 합니다. 아담의 선택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분리되어 죄에 속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세상에 오셔서 그 죄를 자신의 육체 안에 가두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죄까지 같이 죽이셨습니다. 이제 만물은 세상은 다시 한번 죄가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밖에는 여전히 죄가 다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 거하면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 것이라는 약속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이미 모든 창조물들에게 선포가 되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만물들이 그래서 이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 복음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요? 사람을 통해서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복음의 사역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임무를 맡은 것입니다.
아마 여기 계시는 분들 중 이 복음을 처음 들으신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셨어서도 이 복음을 제대로 듣고 이해하고 계신 분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평생 제가 교회를 다녔지만 이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즘은 인터넷의 발전으로 이 복음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복음이 아닌 유사한 변질된 메세지들도 많기 때문에 분별하지 않으면 속을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늘어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설교에 다 나와있습니다. 복음을 말씀을 통해 배우고 이해하고 그 복음 안에 거하고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그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를 항상 도우시는 성령님이 계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즉 교회가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셨다면 오늘 그 복음을 배우시고 그 안에 살아가기로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받으셨다면 오늘도 그 복음 안에 사시고 그 복음의 소망에서 벗어나지 않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한 축복이 매일 매순간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