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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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레미야 31:7–14
7 “참으로 나 주가 말한다. 너희는 기쁨으로 야곱에게 환호하고 세계 만민의 머리가 된 이스라엘에게 환성을 올려라. ‘주님, 주님의 백성을 구원해 주십시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해 주십시오.’ 이렇게 선포하고 찬양하여라.
8 내가 그들을 북녘 땅에서 데리고 오겠으며, 땅의 맨 끝에서 모아 오겠다. 그들 가운데는 눈 먼 사람과 다리를 저는 사람도 있고, 임신한 여인과 해산한 여인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9 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올 것이며, 그들이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인도하겠다. 그들이 넘어지지 않게 평탄한 길로 인도하여, 물이 많은 시냇가로 가게 하겠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이고, 에브라임은 나의 맏아들이기 때문이다.”
10 “뭇 민족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듣고, 먼 해안지역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께서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자기 양 떼를 지키듯이 그들을 지켜 주신다.’
11 그렇다. 나 주가 야곱을 속량하여 주고, 야곱보다 더 강한 자의 손에서 그를 구원해 냈다.
12 그들은 돌아와서 시온 산 꼭대기에서 찬송을 부르고, 주의 좋은 선물,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양 새끼와 송아지들을 받고 기뻐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은 물 댄 동산과 같아서, 다시는 기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13 그 때에는 처녀가 춤을 추며 기뻐하고,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고, 그들을 위로하여 주겠다. 그들이 근심에서 벗어나서 기뻐할 것이다.
14 그 때에는 내가 기름진 것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것이며, 내 좋은 선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참고: 요한복음 1:1–9
1 태초에 ‘말씀’ 이 계셨다. 그 ‘말씀’ 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 은 하나님이셨다.
2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6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 사람은 그 빛을 증언하러 왔으니, 자기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1. 들어가는 말: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
1. 들어가는 말: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 새해의 첫 주일입니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 뒤편에,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고단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공존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예기치 못한 사회적 참사와 경제적 위기, 그리고 찢어진 관계 속에서 깊은 탄식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은 말씀합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어둠은 스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오직 빛이 올 때만 물러갑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예레미야의 말씀은, 가장 깊은 절망의 심연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에게 임한 ‘찬란한 회복의 빛’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 아침, 그 빛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2. 역사적 배경: 끝난 것 같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노래
2. 역사적 배경: 끝난 것 같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노래
예레미야 31장은 소위 ‘위로의 책’이라 불립니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해 흩어졌고, 남왕국 유다 역시 바벨론의 위협 앞에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선포하십니다.
본문 7절에서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야곱을 위하여 기쁘게 노래하라. 민족들의 우두머리를 위하여 외쳐라!”
포로로 잡혀간 이들에게 노래하라니요?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는
"하나님의 위로는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현장에 계시기 때문에 시작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고통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오는 노래,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여러분은 작년에 체념한적이 있습니까?
저는 너무 많이 체념을 해가지고. 하나님은 우리가 체념, 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때가 일하실때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잔머리가 계속 굴러가고 있을 때는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8절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풍경을 말합니다.: 자격 없는 자들을 향한 초대
3. 8절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풍경을 말합니다.: 자격 없는 자들을 향한 초대
하나님이 불러 모으시는 ‘남은 자’들의 면면을 보십시오. 8절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눈먼 사람과 다리를 저는 사람도 있고, 아이를 밴 여인과 해산한 여인도 함께 있다.”
이 구절은 당시 종교적, 사회적 통념을 완전히 뒤엎는 선언입니다.
레위기 21:18 “18 몸에 흠이 있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은, 눈이 먼 사람이나, 다리를 저는 사람이나,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이나, 몸의 어느 부위가 제대로 생기지 않은 사람이나,”
에 따르면, 신체에 장애가 있는 자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레위기 12장에서 산모는 일정 기간 ‘부정하다’고 여겨져 성소에 접근이 제한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설계하시는 회복의 행렬에는 소외된 자, 부정한 자, 연약한 자가 가장 앞자리에 서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은 문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일찍이 야곱의 아내 라헬은 약속의 땅으로 가던 길 위에서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창 35:16-19). 그 길은 죽음의 길이었고 슬픔의 길(베노니, 슬픔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 기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광야를 지날때 잉태한 여인, 해산한 여인은 죽음을 감수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 길을 '새 생명의 길'로 바꾸십니다.
죽음의 기억이 서린 그 길 위에서, 이제는 아이를 낳고 생명을 잉태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구 증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셨음을 의미합니다.
4. 울음이 기도로, 기도가 관계로
4. 울음이 기도로, 기도가 관계로
9절을 보면, 돌아오는 백성들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그들이 울면서 돌아올 것이나, 내가 그들을 위로하면서 인도하겠다.”
이 눈물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날의 고통과 노역에 대한 **‘탄식의 눈물’**이고,
다른 하나는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감격의 눈물’**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9절 중반부입니다. “그들이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인도하며...”
성서학자 김학철 교수는 기도에 대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복원되었음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신호"라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바벨론의 압제를 겪으며 깨달은 것은, 자신들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 머무는 것이 생명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부수지만, 그 부서진 틈 사이로 비로소 하나님이 들어오십니다.
포로 생활을 거치고 나서야 그들은 하나님을 ‘참된 아버지’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관계가 회복되자, 그들의 삶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기도가 안된는 분 있습니까. 예배가 안되는 분 있습니까….너무 힘들어서도 아니고 바빠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금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5. 12절 봅니다.
5. 12절 봅니다.
하나님은 회복된 백성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그들의 마음은 물 댄 동산 같아서, 다시는 시들지 않을 것이다.” (12절)
‘물 댄 동산’이란 무엇입니까? 중동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동산이 푸르름을 유지하는 비결은 동산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되는 ‘수원(Source)’에 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이를 "하나님께 접속된 인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환경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인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생명줄로부터 끊임없이 은혜를 공급받는 상태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는 늘 목말라 있습니다. 더 많은 소유, 더 높은 지위로 목마름을 채우려 하지만, 영혼은 갈수록 황폐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맺어지면, 우리는 어떤 가뭄 속에서도 타인을 적셔주는 ‘물 댄 동산’이 될 수 있습니다.
6. 현대적 적용: 슬픔을 춤으로 바꾸는 기쁨의 공동체
6. 현대적 적용: 슬픔을 춤으로 바꾸는 기쁨의 공동체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눈물, 일터에서 소외된 청년들의 한숨, 고독사 위기에 처한 어르신들의 적막함이 우리 사회의 그늘입니다.
기쁨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상태가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소설처럼, 한 사람의 진심 어린 기쁨과 환대가 얼어붙은 이웃의 마음을 녹이는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게 더 높은 가격을 쳐주는 사회적 기업이나, 배고픈 아이들에게 기꺼이 공짜 식사를 내어주는 '선한 영향력 가게'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들이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생명의 빛을 경험한 기쁨이 그들을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사건(13절)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오늘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때 시작됩니다.
반대로 우리는 타인의 눈물을 흘리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자들이지 기쁨을 슬픔으로 바꾸는 자들이 아닙니다.
한해 우리의 대화가 기쁨으로 바꾸게 하는 대화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7. 나가는 말: 빛으로 오신 예수와 함께 걷는 한 해
7. 나가는 말: 빛으로 오신 예수와 함께 걷는 한 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참고 본문인 요한복음 1장은 선포합니다. “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요 1:9)
예레미야가 예고했던 그 회복의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 다리 저는 자를 걷게 하셨으며, 부정한 여인들을 품으셨습니다. 그분이 지금 우리 곁에 계십니다.
2026년 한 해,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녹록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물 댄 동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수원이 되십니다. 억지로 짜내는 웃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근원적인 기쁨으로 우리 주변의 어둠을 밀어냅시다.
우리의 기도가 깊어질 때, 우리의 삶은 세상을 적시는 생명수가 될 것입니다.
슬픔을 춤으로 바꾸시고, 탄식을 노래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올 한 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 나라 이 땅 위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