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설교 준비/ 1월 3,4주차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1 views
Notes
Transcript

말씀하신 대로 목사님의 조금 빠른 호흡을 감안하여, 명료한 단문 위주로 구성하되 분량은 넉넉하게(약 12~13분 분량) 준비했습니다.
빠르게 읽으시더라도 청취자가 내용을 놓치지 않도록, 핵심 키워드는 반복하고 접속사를 적절히 배치하여 '논리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다듬었습니다.
오후 시간대 방송인만큼, 지적인 자극과 감성적인 위로가 균형을 이루도록 구성했습니다.

[극동방송 10분 방송설교]

주제: 영적 호흡 - 의지력을 넘어선 습관의 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7, 다니엘 6:10
(시그널 음악: 활기차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피아노 연주 -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변주곡)
[오프닝: 작심삼일, 우리의 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극동방송 청취자 여러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복음의 전파를 송출하고 계신 귀한 전파선교사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2026년의 새해가 밝은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지난주, 새해 첫 방송을 들으시면서 다들 결심 하나씩 하셨지요? "올해는 기필코 성경 일독 하겠다", "매일 새벽을 깨우겠다"라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셨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솔직하게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지난 일주일, 어떠셨습니까? 그 결심대로 승리하셨습니까? 아니면, 어느새 예전의 익숙한 모습으로 슬그머니 돌아와 계십니까?
우리는 흔히 이런 상황을 두고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하며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아, 내 믿음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나는 역시 의지가 약해."
하지만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실패한 것은 믿음이 없어서도 아니고, 게을러서도 아닙니다. 단지 **'전략'**이 없었을 뿐입니다.
거창한 결심은 우리를 잠시 흥분시키지만, 우리 삶을 실제로 끌고 가는 것은 '사소한 습관'입니다.
오늘 이 시간, 2026년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영적 시스템, 바로 **'습관의 힘'**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본론 1: 의지력은 배터리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자꾸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적 생활을 오직 **'의지력(Willpower)'**으로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하지만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는 그의 책 《습관의 힘》에서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를 합니다.
"의지력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쓰면 닳아 없어지는 소모성 자원, 즉 배터리와 같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하루가 얼마나 치열합니까?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데 의지력을 씁니다. 출근길 만원 버스와 지하철을 견디는 데 또 에너지를 씁니다. 직장에서 까다로운 상사를 대하고, 점심 메뉴를 고르고, 퇴근길 막히는 도로에서 짜증을 참아냅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의지력 배터리를 다 써버리고 집에 돌아옵니다. 몸은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자, 이제 경건하게 앉아서 성경 10장을 읽고 1시간 기도하자!"라고 다짐합니다. 그게 될까요? 안 됩니다. 의지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누워 TV 리모컨을 집어 들거나,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이 듭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신앙심 부족이 아니라, 뇌가 지쳐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지력 배터리가 방전되어도, 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습관(Habit)'**입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질할 때 "주여, 제게 양치할 힘을 주시옵소서!" 하고 비장하게 기도하고 닦으십니까? 아니죠. 그냥 합니다. 뇌가 생각하기도 전에 손이 먼저 움직입니다.
이것이 습관의 위력입니다. 2026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의지력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영적 양치질', 즉 거룩한 습관입니다.
[본론 2: 핵심 습관, 기도의 재발견]
그렇다면 어떤 습관을 만들어야 할까요? 기업 경영에는 **'핵심 습관(Keystone Habit)'**이라는 원리가 있습니다. 수많은 습관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를 바꾸면, 나머지 다른 것들도 도미노처럼 따라서 바뀐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알루미늄 회사인 '알코아(Alcoa)'의 사례는 아주 유명합니다. 이 회사가 적자에 허덕이고 노사 갈등이 극심했을 때, 폴 오닐이라는 CEO가 부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매출 증대"나 "비용 절감"을 외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엉뚱한 선포를 합니다.
"나는 직원들의 안전(Safety)을 최우선으로 하겠다."
투자자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안전'이라는 하나의 습관을 지키기 위해 공정을 꼼꼼히 살피자 불량률이 줄었습니다. 불량이 줄어드니 비용이 절감되고, 회사가 직원을 아낀다는 신뢰가 쌓이자 생산성이 폭발했습니다. 결국 '안전'이라는 단 하나의 습관이 회사를 세계 최고로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정 문제, 자녀 문제, 건강 문제, 관계의 갈등... 이 복잡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내 힘으로 해결하려면 지쳐서 못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고,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단 하나의 핵심 습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은 말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 말씀은 24시간 내내 입으로 중얼거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호흡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숨 쉴 때 의지력을 씁니까? "지금부터 숨을 쉬어야지" 하고 결심합니까?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쉽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이현우 목사님은 **"기도가 멈추면 삶이 멈춘다"**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뚫리면 관계가 뚫립니다. 기도가 뚫리면 문제 해결의 지혜가 생깁니다. 기도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 우리 인생을 작동시키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자 안전장치입니다.
[본론 3: 다니엘의 창문]
이 기도의 습관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보여주는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다니엘입니다.
다니엘 6장의 상황은 절박합니다.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겠다는 조서에 도장이 찍혔습니다. 기도하면 죽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그다음 구절에 밑줄을 그으셔야 합니다.
"...전에 하던 대로(as was his custom)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전에 하던 대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다니엘은 위기가 닥치니까 갑자기 금식하며 특별 작정 기도를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평소에 '늘 하던 대로' 했습니다.
다니엘에게 기도는 위기 탈출용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루틴이었습니다. 밥을 먹듯이, 물을 마시듯이, 하루 세 번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여는 행위는 그의 몸에 깊이 배어 있는 습관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포로로 끌려온 남의 나라 땅에서, 80세가 넘도록 총리직을 감당하며 그 살벌한 정적들의 위협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켰겠습니까? 그의 탁월한 정치력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에게는 **'숨 쉴 구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그를 짓눌러도, 하루 세 번, 하나님과 연결되는 창문을 열고 영적인 산소를 공급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습관이 그를 살렸습니다. 사자 굴에서 그를 건져낸 것은 어쩌면 천사 이전에, 그의 몸과 영혼에 배어버린 이 거룩한 기도의 습관이었을 것입니다.
[본론 4: 당신을 위한 적용]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봅시다.
"목사님, 다니엘은 위대한 선지자니까 그렇죠. 저는 하루 10분 기도하기도 힘듭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한 의지'가 아니라 '현명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뇌과학에서는 습관을 만드는 고리를 **[신호 - 행동 - 보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 기도 생활에 적용해 볼까요?
첫째, 확실한 신호를 만드십시오.
"시간 나면 기도해야지" 하면 평생 못 합니다. 눈에 보이고 몸에 닿는 신호를 정하십시오.
예를 들어, **"아침에 눈을 뜨고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이 신호입니다. 혹은 "출근해서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운전대를 잡는 순간"**이 신호입니다.
둘째, 아주 작은 행동을 반복하십시오.
처음부터 1시간 기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니엘 흉내 내다가 지쳐 쓰러집니다. 아주 작게 시작하십시오.
발이 바닥에 닿으면, 딱 1분만 무릎 꿇고 "하나님, 오늘도 제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고백하십시오. 컴퓨터가 켜지는 그 짧은 순간에 "주님, 오늘 업무 가운데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셋째, 보상을 누리십시오.
그렇게 짧게라도 하나님을 찾았을 때 주시는 마음의 평안함, "아, 내가 그래도 하나님 자녀지"라는 정체성의 확인. 이것이 보상입니다. 이 맛을 보면 우리 뇌는 내일 또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특별히 50대, 60대 이상 되신 성도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기도 소리가 쌓인 그 방석, 낡아진 성경책... 그것이 자녀들을 지키는 최고의 유산입니다.
자식들이 세상에서 힘들 때, "아, 우리 어머니가 지금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지." 이 사실 하나가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결론 및 축복]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6년, 세상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우리를 흔들 것입니다. 때로는 다니엘의 시대처럼 우리의 신앙을 조롱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을 지켜주는 것은 1월 1일에 썼던 거창한 일기장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비몽사몽간에 무릎 꿇었던 그 1분의 습관, 밥상 머리에서 잠시 눈을 감았던 그 짧은 감사, 운전대를 잡으며 불렀던 찬양 한 소절...
그 몸에 밴 사소하고 거룩한 습관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분을 붙들어 줄 것입니다.
억지로 숨 참으며, 이를 악물고 버티는 신앙생활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숨 쉬고, 기도로 살고, 기도로 승리하는 **'영적 호흡'**이 있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방송을 듣는 모든 분의 삶 속에, 다니엘이 열었던 그 기도의 창문이 활짝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전에 하던 대로'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그 거룩한 습관이, 2026년 여러분을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힘내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시그널 음악: 웅장하고 희망찬 오케스트라로 마무리)
방금 들으신 설교의 핵심 메시지인 **'의지가 아닌 습관', '다니엘의 창문', '영적 호흡'**을 녹여내어, 청취자들이 삶의 자리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축복하는 1분 마무리 기도문입니다.

🙏 습관의 영성을 구하는 1분 마무리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연약한 의지가 아닌, **'거룩한 습관'**이 우리를 붙들어 줌을 깨닫습니다.
새해의 거창한 결심이 무너졌다고 자책하고 있는 영혼이 있다면, 이 시간 주님의 위로로 다시 일으켜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는 매일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주님을 찾기 원합니다.
다니엘이 위기 속에서도 '전에 하던 대로' 기도의 창문을 열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몸에 배어버린 기도의 능력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침에 눈을 뜰 때, 운전대를 잡을 때, 일터에서 컴퓨터를 켤 때...
그 짧은 순간 주님을 부르는 **'1분의 습관'**이, 우리의 2026년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게 하옵소서.
지금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모든 청취자의 가정과 일터 위에, 기도가 막히지 않는 형통의 복을 더하여 주시기를 원하오며,
우리의 영원한 호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공해주신 주일예배 설교 원고를 바탕으로, 불특정 다수의 청취자(특히 5070 세대)가 듣는 극동방송 라디오 설교(약 12~13분 분량)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라디오 매체의 특성상 '시각적 요소'가 없으므로, '젖 뗀 아이'의 이미지와 '소비 vs 섬김'의 대비를 더욱 선명하게 그릴 수 있도록 묘사를 강화했고, 청취자와의 대화체로 친밀감을 높였습니다.

[극동방송 10분 방송설교]

주제: 채워도 허전하다면, 이제는 흘려보내십시오
본문: 시편 131:2, 마가복음 10:45
(시그널 음악: 잔잔하고 서정적인 첼로 혹은 피아노 연주 - '주 품에 품으소서' 멜로디)
[오프닝: 택배 상자의 유통기한]
사랑하는 극동방송 청취자 여러분, 그리고 이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무게를 견디고 계신 성도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어느덧 1월의 세 번째 주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새해, 안녕하신지요?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법 1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소비', 즉 물건을 사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홧김에 돈을 쓰는 것을 '시발비용'이라고 부르더군요. 마음이 허전하니까,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일단 결제 버튼을 누르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으시지요?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도착했을 때의 그 설렘 말입니다. 상자를 뜯을 때 "드디어 내 것이 왔구나!" 하는 짜릿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솔직하게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그 기쁨이 며칠이나 가던가요? 하루? 이틀? 아마 일주일만 지나도 그 물건은 거실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우리의 마음은 다시 썰물처럼 공허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자꾸만 외부의 좋은 것을 내 안으로 가져와서 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소비하는 자아(Consuming Self)'**라고 부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소비로는 결코 영혼의 구멍을 메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허무한 굴레를 벗어나는 내면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채우는 인생이 아니라, 비워내고 흘려보낼 때 찾아오는 진짜 행복, **'섬기는 자아'**로의 초대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본론 1: 젖 뗀 아이의 비밀 - 당신은 무엇을 원합니까?]
성경은 참된 만족의 비밀을 아주 독특한 비유로 설명합니다. 시편 131편, 다윗의 고백입니다.
"내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여러분, 이 장면을 한번 머릿속에 그려보십시오.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냥 아이가 아니라 **'젖 뗀 아이'**라고 콕 집어 말합니다.
'젖 먹는 아이'와 '젖 뗀 아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젖을 떼기 전의 아이는 엄밀히 말하면 엄마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엄마가 주는 **'젖(Milk)'**을 원합니다. 배가 고프면 엄마를 찾고, 젖을 주면 울음을 그칩니다. 만약 젖이 안 나오면요? 엄마 가슴을 깨물고 보채고 웁니다. 이 아이의 관심은 오직 '내 배를 채우는 욕망'에 있습니다.
하지만 '젖 뗀 아이'는 다릅니다. 이제 더 이상 젖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서 쌔근쌔근 잠이 듭니다. 엄마의 '소유(젖)'가 아니라, 엄마의 '존재(품)' 그 자체로 만족하는 단계로 성숙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2026년 여러분의 신앙은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까?
혹시 아직도 하나님을 향해 젖병을 내놓으라고 보채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돈 주세요. 건강 주세요. 자식 잘 되게 해 주세요."
물론 필요한 기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주지 않으실 때, 혹은 조금 늦추실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계신다면 우리는 여전히 '영적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돈을 벌고 소비하며 자기를 위로합니다. 이것을 '자위(自慰)'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타위(他慰)', 즉 위로부터 내려오는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젖을 떼야 비로소 엄마의 눈을 마주 볼 수 있듯이, 내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알게 됩니다.
[본론 2: 예수님의 역설 - 성공해서 섬겨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미성숙한 '소비하는 자아'에서 벗어나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가장 최고급의 대우와 소비를 누릴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을 '대속물', 즉 노예를 해방시키는 몸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언가를 소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태워서 남을 살리러 오셨습니다.
세상은 가르칩니다. "성공해라. 그래서 남 부리며 떵떵거리고 살아라."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공해라. 그래서 그 힘으로 남을 섬기며 살아라."
이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행복'이 걸린 문제입니다.
재미있는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세계적인 커피 기업 스타벅스의 직원 교육 이야기인데요. 스타벅스는 직원들에게 무조건 참으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신 **'관점을 바꾸라'**고 가르칩니다.
손님이 까다롭게 굴 때, 직원이 "나는 커피 팔아서 돈 버는 사람(소비자 마인드)"이라고 생각하면 그 손님은 나를 괴롭히는 '진상'이 됩니다. 지옥이죠.
하지만 "나는 이 커피 한 잔으로 손님의 우울한 하루를 행복하게 바꿔주는 사람(섬김의 마인드)"이라는 사명을 가지면, 까다로운 손님은 내가 해결해야 할 미션이 되고, 그를 만족시켰을 때 엄청난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물며 커피 파는 일도 이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직장을 단순히 '월급 타서 카드값 갚는 곳'으로 생각하면 매일 아침 출근길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그곳을 '나의 섬김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선교지'라고 생각하면, 얄미운 상사조차도 내가 품어야 할 기도의 대상이 됩니다.
내면의 방향이 '나'에게서 '남'으로 바뀔 때, 지옥 같던 일상이 천국으로 변하는 기적, 이것이 바로 **'섬김의 신비'**입니다.
[본론 3: 어른의 품격 - 늙지 말고 익어가십시오]
특별히 오늘 방송을 듣고 계신 50대, 60대, 70대 성도님들께, 존경과 사랑을 담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피부에 주름이 느는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에서 공급자'**로 바뀌는 과정이 바로 노년의 품격입니다.
갓난아기는 받기만 합니다. 기저귀 갈아주고, 밥 떠먹여 줘야 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나이 칠십 먹은 어른이 "왜 자식들이 용돈 안 줘? 왜 며느리가 전화 안 해? 왜 교회에서 나 안 알아줘?" 하고 섭섭해하신다면, 몸은 어른인데 영혼은 아직 젖 먹는 아이인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진짜 어른은 '주는 사람'입니다.
교회 식당에서 "오늘 국이 짜네, 싱겁네" 평가하는 미식가가 되지 마시고, 묵묵히 설거지하는 청년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수고했다, 고맙다" 말해주는 공급자가 되십시오.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 애쓰기보다, 기도의 유산을 물려주십시오.
젊은 세대는 돈 많은 어른을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갑을 열어 밥을 사주고, 자신의 실패 경험을 나누어 길을 열어주는 **'섬기는 어른'**을 존경합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 더 좋은 차, 더 큰 집... 그거 갈 때 다 놓고 갑니다. 대신 **'사명'**을 남기십시오. "나는 우리 가정을 기도로 지탱하는 기둥이다."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한 후원자다."
이 거룩한 자존감이 여러분의 노년을 초라하지 않게, 누구보다 위대하고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결론 및 축복]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간은 참 신비한 존재입니다. 움켜쥐면 빠져나가고, 내어주면 채워집니다. 나를 위해 쓰면 공허하고, 남을 위해 쓰면 기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 즉 **'사랑하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습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물은 생명을 살립니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2026년에는 여러분의 삶이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비하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섬기는 자아로 다시 태어나십시오.
가정에서 "여보 물 좀 떠와"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물 한 잔 떠다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교회에서 대접받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을 살피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처럼 섬김의 앞치마를 두를 때,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우리 사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젖 뗀 아이의 평안함이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배경음악: 서서히 고조되며 은혜로운 분위기로 마무리)
"하나님 아버지, 채우려 할수록 더 목마른 우리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제는 젖병을 찾는 아이가 아니라, 주님의 품을 구하는 성숙한 자녀가 되길 원합니다. 움켜쥔 손을 펴서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흘려보낼 때,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이 우리 안에 샘솟게 하옵소서.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라 하셨사오니, 오늘 하루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