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의: 간음하지 않기(마 5: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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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의: 간음하지 않기
그리스도인의 의: 간음하지 않기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결 같이 순결한 삶을 요구하시지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의 요구와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TV 프로그램들을 보면, 결혼지옥, 이혼숙려, 환승연애와 같은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면, 요즘 세대의 결혼과 연애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세상적으로 변해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결혼의 성스러움은 사라져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남녀간의 아름다운 성적 연합은 단순한 쾌락의 도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은, 비단 오늘 날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때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게 해석하여서, 간음의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유대 율법학자들은, 제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연구했는데, 그들은 이 계명에 대해서 ‘이웃의 아내와 동침하지 말라’는 레 18:20; 20:10 의 말씀을 토대로, 이웃의 아내와의 간음의 의미로 좁게 해석했습니다.
너는 네 이웃의 아내와 동침하여 설정하므로 그 여자와 함께 자기를 더럽히지 말지니라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유대 율법에 대한 가르침은, 크게 두 학파에 의존했는데, 보수적이었던 샴마이 학파와, 진보적이었던 힐렐 학파가 있었습니다.
샴마이 학파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해석함에 있어서, 아내가 간음한 경우에만 이혼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쳤지만, 힐렐 학파는 좀 더 느슨하게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신명기 24:1 에서 ‘수치되는 일’을 관대하게 해석해서 음식을 태웠다거나, 지금의 아내가 남편에게 만족을 주지 못할 경우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당연히 엄격한 샴마이 학파의 견해보다는 느슨한 힐렐 학파의 견해를 따랐습니다.
실제로 유대 역사가였던 요세푸스는 자신의 아내의 행실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아내와 이혼하고 크레타 출신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본문 32절에서 말씀하시듯이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간음함이니라”고 가르치심으로 7계명에 대한 원래의 의미를 바로 잡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적용함으로써 간음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전도자 피터 카트라이트는 감리교 순회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말을 타고 서부, 당시의 테네시와 켄터키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순회설교자로써, 12,000명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설교를 마친 후 한 남자가 다가와 카트라이트의 기독교 신앙의 진실성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오른쪽 뺨을 때리고 다시 왼쪽 뺨을 때렸습니다.
두 번의 구타에도 카트라이트는 굳건히 버티며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세 번째로 그를 때렸을 때, 이 카트라이트는 그 남자의 얼굴에 멋진 어퍼컷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세 번째 뺨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위대한 설교자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와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잘못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편의대로 해석한 것이, 바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이었고, 그 가르침을 따른 것이 유대인들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처럼 잘못된 유대인들의 가르침을 지적하신 뒤에, 올바른 율법을 다시 가르치셨습니다.
28절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7계명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는 것입니다.
‘여자’로 번역된 ‘귀네’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아내’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아마도 남편이 있는 여성을 포함한 일반적인 여자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개역개정 성경에는 ‘음욕을 품고’라고 되어 있는데, 정확한 의미는, 자신의 음욕을 위해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음욕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여성을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은 여성이나, 남성을 단순히 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이성을 음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대니얼 도리아니라는 학자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음욕을 선동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간음을 생각하도록 옷을 입거나 행동하는 것 역시 죄다”
예수님은 단순히 ‘간음’이라는 실제적을 행동을 넘어서, 이성을 음욕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도 죄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품고 보는 행위 자체가 곧 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목욕을 하는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음으로, 타인의 아내를 빼앗고 그녀의 남편이었던 우리야를 죽이는 행동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간음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죄는 생각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강화하기 위해서 29-30절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교부가 있었는데, 바로 오리게네스라고 하는 교부였습니다.
오리게네스는 2-3세기에 뛰어난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였는데, 그는 청년 시절 성욕을 극복하기 위한 금욕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서, 본문의 말씀과 마태복음 19:12 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스스로 거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하지만 신체를 절단하라는 것은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구약 성경은 스스로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이다(신 14:1; 23: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간음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른 눈’에서, ‘오른쪽’은 주로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을 가리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은,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는 신체를 의미합니다.
이 눈이 우리로 하여금 ‘실족하게’ 한다면, 빼어내라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모든 시각적인 죄의 요소들을 없애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것일지라도,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없애라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이나, TV를 통해 간음의 죄를 범하게 된다면, 우리가 죄를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피하라’는 것입니다.
‘오른 손’에서 ‘손’은 우리가 간음의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술’이 나를 간음의 죄에 빠지게 한다면 우리는 술을 멀리해야 합니다.
어떤 장소가 나로 하여금 간음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면, 우리는 그 장소를 멀리해야 합니다.
‘찍어내버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간음의 죄와 싸우기 위한 강력한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간음의 생각이 둥지를 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매력적인 이성을 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 보는 행위가 마음의 간음으로 이어지고, 그 간음이 머리에 둥지를 튼다면, 그때부터는 겉잡을 수 없는 죄로 퍼질 수 있습니다.
권성수 목사님은 본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은 퍼지기 전에 끄면 된다. 하지만 성적인 잡지나 비디오를 보는 행위는 성욕의 가스통에 휘발유를 먹이는 것이다. 성욕의 가스통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놓고 그것을 끄려고 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고 너무 힘들다”
우리는 악한 생각이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죄의 유혹과 맞서야 합니다.
네 번째는, ‘결과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의 결과에 대해서 ‘지옥에 던져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죄에 굴복하고, 앞 서 말한 죄와 맞서는 치열한 삶의 투쟁이 없다면, 이 땅에서 우리는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순간의 간음의 즐거움으로 에이즈라는 평생 씻을 수 없는 파멸을 낳기도 하고,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고통의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삼손은 순간의 성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두 눈이 뽑히고 힘을 잃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순간의 성욕을 이기지 못한 결과, 충신 우리야를 잃었고, 다윗의 집에서 칼이 떠나지 않는 저주를 받게 되었으며, 밧세바 사이에서 생긴 아이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죄에 굴복하는 만큼,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학력과 인기가 높은 미모의 여인이 매춘을 했습니다.
그녀는 22세가 되었을 때 친구도 없고 마음과 몸이 망가진 채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겨울에 죽기 전에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시를 읇었고 그 시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 시는 이렇습니다.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 간음 대책
기진하고 얼어붙어 혼자 죽어 가고 있다.
너무 악해서 기도도 못하겠다.
너무 약해서 나의 신음소리가
미친 도시의 거리에서 들리지도 않는다.
거리는 내리는 눈을 보며 즐거워 미쳐 있다.
나는 누워서 죽어간다.
무서운 고뇌 속에서
아름다운 눈을 침대와 수의로 삼아.
순간의 죄악의 쾌락을 즐기는 것보다 영원히 복된 생명을 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의 유혹을 이기신 분이시며,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매 순간 나를 붙잡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항상 주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죄를 이기신 우리 주님의 손길이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도록 붙잡아주실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매춘 여성의 시를 읽어드렸는데, 그녀의 시의 뒷 부분에 누군가 이런 시를 덧붙였다고 합니다.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 간음 대책
짓밟힌 눈처럼 힘없고 약해도
죄인이여, 절망하지 말아라.
죄악 중에 길을 잃은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낮은 곳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은 영혼을 살리시고 삶을 다시 즐기게 하신다.
당신을 위해 신음하며 피 흘리며 죽으신 예수님
그분은 긍휼 때문에 나무 위에서 저주를 당하셨다.
나를 위한 긍휼이 있는가?
내 기도에 응답이 있는가?
오 하나님! 죄인들을 씻기 위한 보혈의 강물에
나를 씻어 눈보다 더 희게 하소서.
주님의 보혈은, 세상의 모든 죄를 덮기에 충분합니다.
그분의 보혈의 능력 의지하여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주님께 맡겨드릴 때, 그분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육신의 간음에 대한 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담긴 영적 의미도 함께 묵상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남편과 아내의 정절에 대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 됨을 의미한다고 말씀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또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남편과 아내 사랑의 원천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신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말씀에는 더 큰 영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또한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의미에서 간음은,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호티 랄레만이라고 하는 학자는 호세아 2장 13절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호세아서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는 결혼에 비유되며(호 1–3장), 우상 숭배는 간음으로 묘사된다. 이스라엘은 다른 연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남편을 버렸다(호 2:13).
실제로 본문 28절에서 ‘간음하였느니라’라는 동사가 구약에서는 ‘우상숭배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세상의 것들에 음욕, 즉 열망을 품는다면, 그것이 곧 영적 간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성적 연합과 결혼의 신성함이 왜곡되고, 변질되어가고 있지만, 우리만큼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표지로 삼고, 세상과, 그리고 죄와 끊임없이 싸우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 이광호씨의 ‘교회 변화인가 변질인가’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교회, 변화인가 변질인가 6. 교회의 저급한 세속화 방지
교회는 세상의 것들에 대해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며, 세상 또한 교회가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세상과 완전히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가 세속화되어 타락하면 스스로 저급한 자리에 놓이게 된다. 세상이 교회의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데 교회가 도리어 세상을 부러워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 이 영적 간음으로 인해서, 바벨론에 의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엄중한 책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죄를 바라보지 못해 영적 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간음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강력한 회초리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이 순결한 삶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 공동체의 정체성이며, 표지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영적, 육체적 간음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아내로,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 남편과 내 아내의 순결한 남편과 아내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