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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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환영
할렐루야~ 앞 뒤 옆사람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엄청난 분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오늘 설교를 들으면, 여러분 한분 한분이 왜 엄청난 분들인지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지난주 2026년 첫 예배를 담임목사님께서 열어주시면서
기도의 멧돌, 말씀의 멧돌, 예배의 멧돌을 돌리면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며 준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우리가 어떤 멧돌을,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그 소스를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위해서
성경의 기초편, 모세오경을 함께 5주 동안 살펴보려고 합니다.
2026년도 한해의 목표 중 하나는
우리 이룸청년부가 1년 동안 성경에 목숨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성경읽기 본문도 카톡으로 전송하고,
성경퀴즈로 마일리지도 주고, 한번에 집중해서 읽고싶은 사람은
성경일독캠프도 열어서 같이 성경도 오랫동안 길게 읽어보면서
말씀과 친밀해지는 한 해를 지내보려고 하는데요.
그럴려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핵심, 기초인 모세오경을 한주에 한 권씩 살펴보면서
창세기의 핵심사건 한말씀, 출애굽기의 핵심사건 한말씀
이렇게 신명기까지 쭉 짚어보려고 합니다.
짧은 5주 동안 5권의 성경을 한번에 다 살펴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하나의 사건씩 살펴볼 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신지
특별히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여러분, 혹시 로마의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펼쳐져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는 작품을 아시나요?
이 작품은 바닥에서 높이 20미터에 달하는 높은 곳에
가로 41미터, 세로 13미터의 그림을 그려넣은 것입니다.
<그림 1 -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천지장조>
성당 천장에 그려넣어 하늘에서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영감있게 잘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에 등장하는 300여 명의 인물 대다수는 알몸입니다.
르네상스의 정신을 잘 반영하듯,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 최고의 작품은
사람의 육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림 2 - 아담의 창조>
이 그림은 천지창조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아담의 창조> 장면입니다.
여러분은 이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혹시 좀 불편하진 않으신가요?
아마 그림을 보며 피식 웃고계신 분은 뭔가를 발견해서 그렇겠죠?
르네상스 예술의 대표적 작품
우리가 불편한 것 중 하나는
영이신 하나님을 육체적인 존재로 묘사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하나님은
얼굴은 백발무성한 노인이면서도, 몸은 아주 정정한 청년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천지창조에서 묘사한 하나님은
구약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르네상스 문명이 만들어내고자 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 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기독교 성화라기 보다는
르네상스 예술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정신보다는 육체를, 신앙보다는 예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르네상스 정신이 반영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천지창조> 작품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 에너지가 없이는
생명체가 될 수 없다고 해석한 점입니다.
아담이 아무리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도
그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전달되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전한 만물의 영장이 되려면,
그 몸에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운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27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본문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장면입니다.
이 본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다’는 이야기를
2개의 테마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외에 인간 창조 이야기가 나오는 말씀은
창세기 1장 26~27절입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의 닮은꼴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창조신앙을 가르칠 때 더 많이 사용되는 구절입니다.
사람의 모양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참 멋지고 좋은 말씀입니다.
아담과 생령
그런데 그에 비해 오늘 본문인 창세기 2장 7절은
다른 시각에서 사람의 창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 1장 26~27절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람의 가치, 정체성을 설명한다면,
창세기 2장 7절은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오늘 본문은 사람이 창조되는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단계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2단계는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처음에는 “사람”을 지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람’이 히브리어로 ‘아담’입니다.
그 다음에는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생령’은 히브리어로 ‘네페쉬’입니다.
처음에 흙으로 지은 ‘아담’은 사람의 몸을 가리키고,
나중에 생기를 불어넣어 된 ‘생령’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아담과 생령,
곧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을 때,
마음보다 몸을 먼저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여기서 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아담’과
땅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아다마’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몸은 땅에 속합니다.
몸은 본질적으로 땅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몸은 땅의 이치를 따라야 합니다.
몸은 먹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고, 채우고,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쉬어야 하고, 듣고, 보는 것에 민감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애쓴다고 몸을 육체적인 것이라고
무조건 나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몸은 땅에 적응해야되고, 땅의 문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몸은 생명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몸이 곧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생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통해 우리의 삶과 습관과 행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그래서 레위기는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드릴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우리는 몸을 구별해야 합니다.
몸을 단정히 해야 합니다.
몸이 없으면 곧 사람이 아닙니다.
이 이치를 따라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몸의 유혹
몸은 우리말 “모음”이란 단어에서 왔습니다.
모음, 자음이 아니라 ‘모았다’의 명사형 “모음”입니다.
온갖 장기를 모아놓은 그릇이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창조신앙은 몸의 가치를 마음에 비해서
절대로 낮게 보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몸의 요구에만 반응할 때 일어납니다.
몸이 바라는 대로 살다 보면, 사람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합니다.
그 예가 바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한 실수 입니다.
뱀이 여자를 유혹할 때 뭐라고 물어봅니까?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먹는 문제, 즉 몸의 문제를 가지고 유혹했습니다.
여자는 먹거나 만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여자의 말에 뱀은 이렇게 말합니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너희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까봐 하나님이 못먹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의 여자와 남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냥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몸이 원하는대로 먹어버린 것이 잘못인 것입니다.
육신의 한계
그래서 몸의 한계를 사도바울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람에게는 몸과 마음, 곧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속사람을 따르려는 법과
겉사람을 따르려는 법이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겉사람을 따르려는 나는 “죄에 법”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물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돌보고, 몸의 소리에 기울여야 하지만
‘나’라는 인생의 주소를 몸에만 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닫는다면,
결국 우리는 모두 ‘곤고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한탄하며 소리치는 것입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생령
그래서 오늘 본문은 사람이 흙으로만 지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으로 지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생령은 히브리어로 ‘네페쉬’ 입니다.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하나님의 숨이 사람 몸에 들어가자
땅의 흙으로 지어진 사람, 아담이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온전한 존재가 되려면
그 속에 하나님의 영, 생기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 곧 몸에 영혼이 함께 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 즉 아담은 땅의 흙으로 지어졌습니다.
아래에서 부터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생기, 즉 위에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은 영혼을 담은 그릇이고,
사람의 영혼은 몸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해를 품은 달
정은궐 작가의 <해를 품은 달>이라는 역사 소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TV 드라마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 3 - 해를 품은 달 드라마 포스터>
이야기는 나라의 왕이 변장을 하고 시찰을 나갔다가
우연히 한 소녀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둘입니다.
하나는 해로 표현되는 왕이고, 다른 하나는 그 왕과 만난 소녀입니다.
두 사람이 만난 이후 왕은 ‘달을 그리는 해’가 되고,
그 소녀는 ‘해를 머금은 달’이 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생기를 품은 그릇이라면,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모두 해를 품은 달이 됩니다.
내 육신이 비록 연약하여 온전치 못하고, 매일 실패하지만
내가 해를 품은 달이라면, 비록 부족한 내 모습일지라도
세상은 나를 통해서도 해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나를 통해서 해를 느끼게 해야합니다.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기가 온 누리에 퍼져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AI 로봇의 발전
지금 우리는 점점 과학의 발전으로
사람의 역할을 기계가 하나씩 대체해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AI를 안쓰는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AI를 사용할 줄 모르면 점점 도태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AI 로봇의 발전 단계는 상용화만 앞두고 있지,
기술의 개발은 인간을 대체하기에 충분할 정도까지 와 있습니다.
이미 인공장기를 몸에 장착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작은 AI 로봇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유발 하라리”라는 이스라엘 역사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던 인간이 이제 머지않아
호모 데우스가 되는 때가 온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인간”이란 뜻으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크로마뇽인을 거쳐 최종단계인
현생 인류를 뜻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호모 데우스라는 말은 호모는 인간, 데우스는 신이란 뜻으로
“신이 된 인간”이란 말로, 이제는 인류가 기술의 발전으로
신적 능력을 갖춘 단계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넷플릭스가 삼켜버린 기독교
작년 9월에 <넷플릭스가 삼켜버린 기독교> 책을 읽고
북 쉐어링을 하면서 책에 있는 질문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만일 인간의 신체를 개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느 선까지 개조하는 것이 인간성을 잃지 않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그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질문에 대해서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예전에 만화영화를 보면,
뇌를 이식해서 부자들이 건강한 사람의 몸으로 계속 바꿔가면서
죽지않고 살아가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지금도 종종 그런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제는 뇌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사람마다 가능하다, 아직은 불가능하다, 영원히 불가능하다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가능여부를 판단할 정도로
그 현실이 우리 앞에 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뇌에서 우리의 모든 기억과 생각을 조작하기 때문에
뇌만 그대로 다른 몸에 이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제는 그 몸 조차 AI 로봇으로 가능하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몸의 어디까지가 진짜 우리의 모습이고
어디까지는 교체를 해도 괜찮은 몸의 부분인 것일까요?
진짜 사람이란
그 답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현대과학이 로봇을 아무리 사람처럼 만들어 놓고,
그 로봇의 몸에 우리의 뇌를 이식한다고 해도
그 안에 영혼이 없다면, 하나님의 영, 성령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생령이어야 합니다.
즉, 육체의 몸에 하나님의 성령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뇌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온 몸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인격체처럼
우리와 교제하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뇌와 지적인 대화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감정으로 느끼고, 우리의 마음과 동기를 움직이셔서
말씀을 살아내는 삶으로 받으시고, 삶의 변화로 반응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동시에 영이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온전한 사람, 생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인생일 때 완성됩니다.
그래서 우리 신체의 어느 부위까지 사람이고, 나의 정체성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성령을 담아내고 있는지, 세상의 영을 담아내고 있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이 바로되어야 합니다.
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두려움에 빠져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모든 만물의 처음과 나중이시고,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AI를 몰랐겠습니까? 로봇을 몰랐겠습니까? 뇌 과학을 몰랐겠습니까?
지금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역사가 뒤바껴도,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온전하게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해를 품은 달처럼, 성령을 품은 거룩한 삶으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삶으로
귀하게 쓰임 받는 이룸청년들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찬양 - 성령이 오셨네
기도제목
나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그릇이 되게 하소서.
나의 욕망과 편안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게 하소서.
이룸청년부가 해를 품은 달처럼 세상 속에 하나님의 빛을 밝히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외롭고 지친 영혼들에게 우리의 삶을 통해 성령의 위로가 전해지게 하소서.
마침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우리에게
주의 생기와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매일 넘어지고, 흔들리지만,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참된 생명과 자유가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세상의 유혹에 끌려 다니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담대히 걸어가게 하옵소서.
우리 이룸청년부가 그렇게 해를 품은 달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 속에 비추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각자의 가정과 일터와 학교와 모든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생기가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억눌린 자, 갇힌 자, 지친 자들에게 성령의 위로를 전하는
생명의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날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새롭게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송 - 나의 생명을 드리니
다함께 일어나셔서 <나의 생명을 드리니> 찬양하시면서
준비하신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주를 찬양하며 기쁨의 제물 되리
나를 받아 주소서 나를 받아 주소서
헌금기도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과 시간,
물질과 마음을 허락해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의 정성과 사랑을 담아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이 예물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받은 은혜를 세어보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모든 손길 위에
더 큰 하늘의 복과 은혜를 부어주시고,
이 예물이 교회와 다음세대를 세우고,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데 아름답게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일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를 죄와 어둠에서 건지시고 중생케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우리를 거룩과 성결의 길로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과,
우리의 영육을 신유의 은혜로 회복케 하신
성령 하나님의 역사 교통하심이,
해를 품은 달처럼, 성령을 품은 거룩한 삶으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빛을 아름답게 드러내길 원하는
여기 모인 모든 청년들과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와 미래 위에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